나이가 든다는 것, 늙어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요?
지난번에 화양극장 이야기를 했었지만(반응은 더럽게 없었지요. 많은 분들이 공감하시길 빌었지만...) 우리는 언젠가는 나이가 들고 늙어간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사는 사람이 아직도 있는 것 같습니다. 늙어가는 것 만큼이나 슬픈 것은 자신이 그 최후를 맞이하는 모습이겠지요.
행복한 최후라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해피엔딩은 힘든 일처럼 보입니다.
노년의 일곱명의 남녀들... 마치 이들은 모 방송국 프로그램인 '짝'처럼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지고 어딘가로 향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애정촌이 아닌 실버타운이라면 어떨까요? 그리고 그것도 많은 이들로 정신없이 북적이는 인도의 낡은 호텔이라면 말이지요.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그들의 삶... 마지막 노후를 위해 혹은 사랑을 위해 머나먼 이 곳에 모인 일곱 남녀의 이야기를 들어봅시다.
영화 <베스트 엑조틱 메리골드 호텔>(이하 <매리골드 호텔>)입니다.
남편을 잃은 여자 1호 에블린(주디 덴치 분)이 인터넷 회사에 전화를 걸고 있습니다. 뭔가 연결을 해야 하는데 제대로 되는게 하나도 없지요.
그런데 전화기너머 목소리는 상당히 기계적인 말만 되풀이 합니다. 가입자의 허락이 있어야 안내가 가능하다고 말이죠. 남편은 세상에 없는데 말이죠.
한편 고등법원 판사인 남자 1호 그레이엄(톰 월킨슨 분)은 답답한 옷을 벗고 명예퇴직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의사의 얼굴 색깔을 무진장 따지는 여자 2호 뮤리엘(메기 스미스 분)은 저렴한 가격으로 편하게 자신의 다리 수술을 받을 수 있는 곳을 기다리고 있고요. 노후를 위해 사놓은 집이 오히려 싸움의 요인이 되어버린 남자 3호 더글라스(빌 나이 분)와 여자 3호 진(페넬로피 윌턴 분)은 위급시 누를 수 있는 비상버튼이 멀리있다는 것 또한 그들에게는 좌절입니다. 사랑을 찾아 길게도 방황하는 남자 4호 노먼(로널드 픽업 분)과 여자 4호 마지(셀리아 아임리 분)의 각자 나름대로의 구애작전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으며, 더구나 노먼은 그 나이에도 정력왕으로 의심될 정도로 활발하게 살고 있지요.
이렇게 각자 다른 사연을 지닌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한 여행 상품을 발견하게 됩니다. 최고급 리조트 같은 호텔에 대한 관광 광고였지요.
그런데 웬걸... 속지말자 뽀샵질! 낡아도 너무 낡은 이 호텔의 주인은 소니(데브 파텔 분)라는 청년으로 그의 어머니 카푸르 여사(릴레테 두베이 분)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 호텔을 지키려고 마음을 먹죠. 더구나 그는 콜센터 직원인 수내나(테나 데사에 분)를 사랑하고 있으니 여러가지로 고민이 많습니다.
노먼과 마지가 새로운 인생을 찾기 위해 사교 클럽을 나서는 사이 에블린은 수내나가 일하는 콜센터의 예절 관리사로 채용이되고, 그레이엄은 누군가를 계속 찾으러 다닙니다. 공무원 출신인 더글라스가 세로운 것을 만나려고 노력하는 반면 부인 진은 호텔 밖을 전혀 나서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까칠하게 굴었던 뮤리엘은 호텔에 근무하는 여자 하인에게 친절함에 호감을 얻고 그녀에게 초대까지 받는 상황을 맞이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바람잘날 없던 메리골드 호텔에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지고 모두들 그 감정을 숨기지 못합니다.
그동안 우리가 인도에 대한 문화를 잘 몰랐던 것도 사실입니다.
물론 헐리웃을 비롯한 유럽권에서 인도를 바라본 이야기는 있었지만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었지요.
그러나 발리우드라고 불리우는 인도의 영화산업이 발전하고 중국 다음으로 많은 인구수를 자랑한다는 점에서 인도의 문화에 관심을 안 갖을 수가 없지요.
더구나 인도는 영국의 지배를 받아왔다는 점 때문에 인도 고유의 문화와 영국의 문화가 약간 뒤섞여 있습니다. 크리켓(11명으로 이루어진 두 팀이 공격과 수비를 번갈아 하면서 방망이로 공을 쳐서 위킷을 쓰러뜨려 승부를 겨루는 경기로 야구랑 약간 비슷하죠. 이 영화에서도 동네 아이들이 벌이는 크리켓 경기 장면이 등장합니다.) 같은 것이 대표적이죠.
그런점에서 이 영화 <메리골드 호텔>은 과거 지배자였던 영국인들이 이제는 관광객이 되어 인도를 방문한다는 설정에서 상당히 주목할 부분이라고 봅니다.
또한 이들 노년의 남녀들이 단순 관광을 오러 온것이 아닌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생애를 보내기 위한 장소로 인도가 설정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또 하나... 그렇다면 노인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가 있었는가라는 의문인데 이것 역시 많지는 않았습니다.
노인의 삶에 대해 진솔하게 이야기하는 영화들은 물론 없지는 않았지만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 영화들은 그리 많지 않았으니깐요.
그런점에서 강풀의 만화가 원작이였던 작품 <그대를 사랑합니다>를 떠오르게 만들더군요. 영화와 뮤지컬, 드라마 등의 여러 방식으로 만들어진 이 작품에서도 각기 다른 네 명의 노인이 등장해 그들의 삶에 대해 진지한 물음을 주기도 했지요. 그런점에서 볼 때 <메리골드 호텔>은 상당히 유사점이 보입니다.
영화는 에블린 역을 맡은 주디 덴치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일종의 화자의 역할과 동시에 자신의 블로그에 하루하루 그 내용을 기록하는 기록원의 역할도 수행하고 있는 것이지요. 마치 대형 선박을 운행하는 항해사(선장)같은 느낌이죠. 그래서 그런지 아기자기한 그들의 일상을 우리가 훔쳐보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각자의 사연들도 인상적이죠. 정년 퇴임한 판사와 공무원, 남편과 사별 후 자신의 일상을 블로그로 기록하는 여인, 단체 미팅에서도 전혀 겁내지 않고 자신의 시링에 대한 열정을 과시하는 노인도 보입니다. 흑인이라서 싫고, 황인종이라서 싫은 여인은 자신에 대해 유일하게 알아주는 한 여성을 만나고 생각을 고쳐먹는 것은 물론 '메리골드 호텔'을 살리는데 적극 나서는 모습도 보여주죠.
영화는 판사출신의 그레이엄이 게이임을 선언하고 인도에서 살았을 때 사랑했던 인도 친구를 만나는 모습에서 의외의 전환점을 보여주게 됩니다. 그가 심장마비로 먼저 세상을 떠나지만 <두결한장>의 티나의 대사처럼 그 역시도 '내 인생의 황금기'를 얻은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인도 방식으로 장례를 치루는 부분에서는 상당히 숙연한 느낌도 듭니다. 어쩌면 이 영화의 메시지가 몽땅 여기에 담겨져 있다는 느낌도 들었으니깐요. (역시 인도를 배경으로한 <다즐링 주식회사>도 잠시 생각나네요.)
<메리골드 호텔>은 서로 다른 이들이 모여 사랑에 대해 고민하고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는 부분은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모범 답안처럼 느껴집니다.
이 영화는 일곱 남녀의 이야기에만 그치지 않고 인도 청년인 소니의 모습을 통해 여러 고민들을 보여줍니다.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처럼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갖고 있지만 확실한 계획도 없이 무작정 호텔을 리모델링 하고 이곳을 노인 전용 호텔(요양원에 가까운...)로 개조하려는 야심찬 계획을 만들려고 하죠. 그런데 그런 것이 마치 겁없는 불나방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죠.
어쩌면 그녀의 어머니 카푸르가 호텔의 리모델링이나 소니의 애인인 수내나와의 교제 및 결혼을 허락하지 않는 이유도 같은 이유로 보여집니다.
인도는 특히나 계급사회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나라 중 하나라는 점에서 이런 부분은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것이기도 합니다. 장래와 미래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그 도전이 두려운 것이지요. 하지만 소니의 겁없는 도전은 어머니를 설득하게 만들고 수내나의 오빠(역시 같은 콜센터에서 일하는...)의 허락도 받게 됩니다.
이 작품의 감독은 <세익스피어 인 러브>의 존 매든 감독입니다. 코미디와 스릴러, 희곡 형식의 장르 등 다양한 방식의 영화를 제작한 감독답게 인도의 복잡하고도 아름다운 모습등을 고루 담아내려고 애를 쓴 흔적이 보입니다. 이 작품은 그린 데보라 모가치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작품으로 은퇴 생활 자체를 다른 곳에 의탁해 보낸다는 설정이 존 매든 감독이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라고 하는 군요.
아울러 이 영화의 OST는 인도를 배경으로 해서 그런지 음악들이 모두 이국적인데요. 토마스 뉴먼의 음악으로 이 OST가 만들어졌습니다.
<007> 시리즈를 통해 수많은 제임스 본드에게 지령도 내리고 곤경에 빠뜨리기도 한 주디 덴치는 간만에 007을 따돌리고 그녀만의 휴가를 영화속에서 즐겼으며,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에서 데이비 존스 역(문어 아저씨 ^^; )으로 알려진 빌 나이, <해리포터> 시리즈의 메기 스미스 등의 중견 배우들이 총출동하여 자신의 매력을 뽐내기도 했습니다.
데브 파텔은 <슬럼독 밀리어네어>에 이어 인도인 같지 않은 인도인(!)을 연기했지요. (데프 파텔은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영국출신이지요.) 최근 화제의 미드 <뉴스룸>에 출연중이기도 하고요.
어릴 적 우리는 어른이 되길 희망했습니다. 그리고 어른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일에 지치고 사랑에 지쳐 추억을 잃고 살고 여유라는 것을 잃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원하던 원하지 않던 우리는 나이를 먹고 30대를 넘고 40대를 넘어 중년에 다다르죠.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못하였을 때 이 영화를 통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여유를 갖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이글스는 자신들의 노래 '호텔 켈리포니아'를 통해 사랑스러운 지상낙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우울한 멜로디에 말이죠.
그런데 이런 가사가 있네요. '체크아웃은 가능하지만 영원히 떠나는 것은 불가능하다'라고 말이죠.
어느 곳이 지상낙원 일까요? 우리가 사는 이 세상? 아니면 이글스가 부르던 그 호텔 켈리포니아?
그것도 아니라면 바로 이 낡아빠진 메리 골드 호텔? 선택은 여러분의 몫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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