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어렸을 적 소심한(?) 개구쟁이였습니다.
개구쟁이이면 골목대장처럼 활발해야 하겠지만 저는 정말로 소심한 아이였습니다.
그렇다고 사고를 안치고 다니는 것도 아니었으니깐요.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는 놀이터 미끄럼틀을 내려가다가 얼덜껼에 지나가던 아이의 이빨을 부러뜨린 적도 있고, 친구 녀석의 요청에 거절에 티격태격하다가 바로 옆의 아파트 입구 유리창을 박살낸 적도 있었습니다. 소심한 개구쟁이의 이런 크고 작은 사고들은 부모님의 지갑에서 돈을 날리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습니다.
배우 박준규 씨의 아버지로 알려진 영화배우 박노식 씨의 유명한 CF 카피에는 이런 말이 있지요.
"개구쟁이라도 좋다, 건강하게만 자라다오!"라고 말이죠. 하지만 실제 개구쟁이들은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할 수 있지요.
서두가 길었습니다. 대부분 이런 아이들의 싸움에는 부모님들이 원만하게 합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자칫 그 합의에 실패하는 경우가 있지요. 피의자가 피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피의자가 될 수 있으니깐요.
그리고 '아이 싸움이 어른 싸움된다'는 속담은 틀린 말이 아니었습니다. 영화 <대학살의 신>입니다.
미국 뉴욕의 브루클린 공원...
재커리와 이턴이 싸우고 있습니다. 자신의 패거리에 끼워주는 것을 거절했다는 이유로 들고 있던 막대기로 재커리는 이턴의 이빨 두 개를 날려버린 상황입니다.
피의자와 피해자의 대면이 불가피한 상황... 그러나 피해자와 피의자는 보이지 않네요. 피해자인 이턴의 집으로 피의자인 재커리의 부모가 찾아옵니다.
피해자 측으로는 이턴의 어머니이자 작가로 활동하는 페넬로피(조디 포스터 분)이 있고 남편 마이클(존 C. 라일리 분)은 생활용품을 하는 상인입니다.
이에 맞써는 피의자 측은 평범한 가정주부 낸시(케이트 윈슬렛 분)과 변호사로 활동중인 남편 앨런(크리스토프 왈츠 분)입니다.
그 시작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시작됩니다. 시어머니의 비법이 담긴 코블러 요리(과일을 따뜻하게 익혀먹는 타르트 종류의 음식)을 그들에게 대접하는 페넬로피...
낸시와 앨런 부부는 이턴의 치료비를 보상하고 그렇게 끝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앨런의 휴대폰은 대화를 방해하고 이턴이 아끼던 햄스터를 몰래 버렸다는 마이클의 고백에 낸시가 분노를 합니다.
이렇게 쉽게 끝날 것 같은 그들의 대화는 끝나갈 줄은 모르고 거의 육탄전에 가까운 서로에 대한 비난이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도대체 이들의 대화 혹은 전쟁은 언제쯤 끝이 날까요?
연극에 관심이 있으신 분이라면 이 작품의 줄거리만 봐도 '어디서 봤던 이야기더라?'라는 생각이 들으실 껍니다.
맞습니다. 이 작품은 원작이 있는 작품이죠. 프랑스의 극작가인 야스미나 레자의 동명 작품을 원작으로 한 작품입니다.
우리에게는 '아트'라는 작품으로도 알려져 있는 극작가인데요. <대학살의 신>은 국내에서도 여러번 공연이 될 정도로도 알려진 작품입니다.
특히 작년 연말에도 무대에 올려져 올해 2월까지도 무대에 올라갔을 정도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은 작품입니다.
그런 작품이 의외의 감독을 만나 영화로 재탄생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로만 폴란스키 감독이죠. 일부에서는 이 작품이 그의 첫 코미디 연출작이라는 헛소리(?)도 합니다만 1967년 작인 <박쥐성의 무도회>처럼 코미디와 공포가 적절히 가미된 작품을 비롯해 그가 코미디적인 장르를 연출한 경우도 있는 것을 생각한다면 본격적이고 나발이고 하는 소리는 좀 집어치워야겠지요.
하지만 주목할 점이 있습니다. 하나의 제한된 공간에서 작품을 만들어냈다는 것이죠.
뭐... 이런 영화는 사실 의외로 많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롱테이크로 찍은 송일곤 감독의 <마법사들>도 있고 일본의 마타니 코키 감독은 자신의 영화에 연극적인 요소를 첨가한 코미디를 항상 선보이며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주기도 하니깐요. 제한된 장소라는 것은 어쩌면 연극적인 요소를 갖는 작품들에게는 상당히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그런 점에서 <대학살의 신>은 세트가 그렇게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집에서 모든 이야기가 구성된다는 것을 생각할 때 상당히 중산층이 사는 집처럼 보이는 세트에 공을 매우 들인 점은 대단한 부분이라고 봅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이 작품은 전형적인 '애 싸움이 어른 싸움이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제대로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가벼운 차 한잔에 코블러 요리로 시작했던 영화는 그냥 이빨에 대한 치료비를 물어주는 것으로 끝나는가 싶지만 누가 먼저 누구의 집에서 사과를 해야할 것인가라는 별 것 아닌 문제로 다투기 시작하고 '내 아들은 싸이코'라고 내버려 두라는 식으로 비아냥 거리는 앨런의 말이 문제를 일으키게 되지요. 거기에 아들들의 싸움과는 전혀 이야기의 요점이 어긋나는 상황까지 벌어지는데요. 마이클이 몰래 버렸다는 햄스터를 두고 낸시가 생명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이들의 싸움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재미있는 점은 이들의 싸움을 부추기는 것이 두 가지 방식인데 하나는 햄스터같은 동물이라던가 마이클의 어머니가 먹은 혈압약이 알고 보니 앨런이 변호하는 악덕 제약업체더라는 꼬리에 꼬리는 무는 사소한(?) 사건들로 이어지면서 이들의 싸움은 애들에 대한 논쟁에서 벗어나 점차 안드로메다로 향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또 하나의 주목할 점은 음식으로 인한 사건의 연속입니다. 의도하던, 의도하지 않았던 간에 코블러를 먹은 낸시가 구토를 하게 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남편 마이클은 맛나게 두 접시 이상을 비운 것과 달리 말이지요. 물론 이것이 코블러 보다는 남편 마이클이 쥐고 있던 휴대폰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스트레스와 소화불량이 더해지면서 낸시가 마이클과 페넬로피 부부 집에 오바이트를 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처절함 그 이상입니다. 이후 콜라로 겨우 속을 진정시키고 나서 이번에는 페넬로피와 마이클의 부부싸움이 이어지고 살짝 남자 대 여자로 편가르기가 시작됩니다. 이 때는 위스키가 등장하면서 길고 긴 싸움을 끝내려던 낸시와 앨런 부부는 다시 마이클 & 페넬로피 부부 집에 묶여 있게 되지요.
롱테이크로 찍은 영화가 아님에도 그렇게 느껴졌던 것은 아마도 제한된 공간에서의 이야기가 끊임없이 이어진다는 점 때문일 것입니다.
이런 연극적인 요소의 작품이 그냥 소극장에서 보여지는 연극이라면 정말 재미가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극장에서 화면으로 본다는 점에서는 분명 호불호가 갈릴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실제로도 연극을 보는게 낫겠다는 의견도 있었고, 아메리칸(헐리웃) 방식의 코미디를 이해 못하겠다는 반응도 있었으니깐요. 어쩌면 원작 연극을 어떻게 영화로 옮기느냐의 고민은 이렇게 클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이 보여주는 메시지는 단순합니다. 평범한 중산층이자 품격있게 사는 사람들도 알고 보면 찌찔한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라는 보여주는 것이지요.
아무리 그 직업이 잘난 변호사이건, 사바 문명에 대해 공동집필 하는 지식 많은 작가라고 할지라도 말이지요. 신사의 품격, 숙녀의 품격이 얼마나 망가지는가 확실히 보여주는 것이지요.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데 일등 공신은 각자 역활을 한 네 명의 배우들이겠지요.
뭐... 조디 포스터는 두 말하면 잔소리가 될테고요, 케이트 윈슬렛도 한가닥 하는 진상녀로 등장해 그동안 보여준 연기와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버스터즈:거친 녀석들>에서 인상적인 악당을 보여준 크리스토프 왈츠는 휴대폰 없이는 일을 보기가 불가능한 변호사로 등장하며, 얼마전 소개한 <캐빈에 대하여>에서 이기적인(?) 아버지로 등장했던 존 C. 라일리는 이번에도 만만치 않은 찌질함을 보여줍니다. 내공이 큰 배우들이 모여 연극무대 못지 않은 연기를 펼친 것이지요.
제가 생각했을 때에는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된다'라는 속담은 그저 동양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흔히 선진국이라고 생각하던 곳에서는 그래도 신사적이고 품격있게 사건을 원만하게 해결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것은 나라를 떠나 잘살고 못살고를 떠나 어디나 똑같다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그건 그렇고 과연 이들의 싸움은 어떻게 종지부를 지었을까요? 영화의 엔딩에 그 모든 것이 숨겨져 있습니다.
한가지 분명한 건... 마이클이 몰래 버린 햄스터는 다행히도(!) 무사하다는 것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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