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대한 잡설들/오감만족... 이 영화 봤수?

[지상의 별처럼]아이들이 미래다! 교육과 인권의 사각지대에 소외된 아이들...

송씨네 2012. 9. 9. 12:10

 

 

 

최근들어 좋지 않은 소식들로 가슴이 아픈 요즘입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노리개처럼 성범죄에 이용되어 다치거나 희생되는 일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 아이들은 이런 묻지마 범죄에 당하고 있는 것이죠.

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는 교육수준은 최고라지만 대안학교를 비롯해 다른 방식의 교육 시스템이 아니고서는 자신의 재능을 보일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이건 우리나라 이야기만 해당되는 것도 아니고요. 여전히 우리 아이들은 인권과 가난과 교육에 소외되어 있습니다.

우리보다 더 열악한 인도는 어떨까요? 인도의 대표적인 스타 아미르 칸이 인도의 현재의 현실을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영화 <지상의 별처럼>입니다.

 

 

 

 

한 소년이 있습니다. 약간은 지저분한 좁은 콘크리트 연못에 작은 물고기에 집착하는 이 소년은 오늘도 학교에 늦을 뻔합니다.

이샨(다쉴 사페리 분)의 관심사는 다른데 있습니다. 시험지나 책을 봐도 숫자와 글자는 눈에 안보이고 글자와 숫자는 제멋대로 춤을 추고 있으니깐요.

선생님들은 그런 그를 이해할 수가 없고 이샨의 아버지(비핀 샤르마 분)과 어머니(티스카 쵸프라)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죠.

학교에서는 이샨은 낙제는 물론 한 학년을 2년 이상 다니고 있습니다. 이러다가는 성적으로 학교에서 퇴학당할 위기입니다.

그에 비해 형 요한(사쉐 엔지니어 분)은 공부도 잘하는 우등생에 테니스 선수로도 활동하는 그야말로 엄친아이죠.

이렇게 다른 두 형제... 이샨은 공부를 피해 홀로 도시를 돌아다니고 형에게 부탁하여 조퇴 요청서도 위조합니다.

어느 날 위조된 조퇴 요청서가 집에서 발견되고 성적표도 제대로 전달하지 않은 것이 확인되면서 이샨의 부모는 그를 외딴 곳의 기숙학교로 보내게 됩니다.

엄격한 규율과 스파르타식 교육인 이 곳에 당연히 이샨이 적응할리가 없지요. 이샨은 아예 주눅이 들고 활발하던 그는 말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새 미술 선생님이 이 기숙학교에 오게 됩니다. 기묘한 탈을 쓰고 첫 수업에 나타난 니쿰브(아미르 칸 분) 선생님...

그는 엄격한 기숙학교의 분위기를 완전히 탈바꿈 함은 물론 이샨이 처한 문제점을 알게 되면서 같이 마음 아파하며 그를 도울 방법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샨은 그냥 주위가 산만한 것이 아니라 글을 제대로 구분 못하는 난독증이었던 것... 하지만 그림에서는 천부적인 재능을 지니고 있었지요.

니쿰브의 열의에 기숙학교의 교장과 선생님들도 그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기 시작하고 경쟁사회에서 뒤떨어지면 안된다고 생각했던 이샨의 아버지의 마음에도 조금씩 변화가 찾아옵니다.

이샨의 재능을 확인해볼 수 있는 학교 사생대회의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과연 이샨은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을까요?

 

 

 

 

 

난독증이라는 단어는 많이 접해보셨을 것입니다.

특히나 인터넷을 하다보면 뉴스나 게시판의 댓글에 정말 사고방식이 그릇된 사람들에게 '난독증 환자'로 비야냥 거리는 경우도 있으니깐요.

하지만 이 영화를 보시고 나서는 이런 난독증 환자를 우리가 비아냥 거려서는 안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생각하시게 될 겁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베토벤, 토마스 에디슨, 알버트 아인슈타인, 피카소, 윈스턴 처칠, 월트 디즈니... 이들은 지금도 존경받는 대표적인 명사와 위인들이지만 알고보면 이들 역시 난독증 환자였다고 합니다. 영화에서는 소개되지 않았지만 성룡과 조지 부시, 심지어는 헐리웃을 대표하는 톰 크루즈 역시 난독증 환자였는 사실을 알게 되면 놀라게 되지요.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개그맨 김신영 씨가 '자신은 난독증 환자였다'라고 고백하면서 이슈가 되기도 했습니다.

자... 이렇게 의외로 우리가 알고 있는 천재중에서도 그 어려움을 극복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래도 우리가 이런 난독증 환자에게 비아냥 거릴 자격이 있을까요?

 

 

영화는 이샨이라는 소년을 통해 획일화 된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특히나 영화에서 아미르 칸은 세 번 정도 아이들과 사람들의 일상을 보여줍니다. 이샨이 홀로 여행을 떠날 때 사람들의 일상을 보여주며, 니쿰브가 멀고 먼 길을 가서 이샨의 집으로 방문하는 과정에서 카메라는 거리의 풍경속에 학대받고 가난에 찌들어 사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주지요. 특히 니쿰브가 서빙을 하는 꼬마에게 음료와 비스켓을 대접하는 장면은 저는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가난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의 모습에 대한 너무나도 직설적인 표현이었지요.

실제로도 아미르 칸은 사회 운동가로도 그 영혁을 넓히고 있는데 아직도 계급사회나 빈부격차가 심한 인도의 사회에서 슈퍼스타로 대접받는 아미르 칸의 이런 움직임은 인도 교육계의 혁신을 가져왔다고 하는 군요. 이는 어쩌면 우리나라에서 개봉된 아미르 칸의 또 다른 작품인 <세 얼간이들>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된다는 점에서 인상적입니다. 아미르 칸이 맡았던 란초라는 청년 역할도 어떻게 보면 자신의 재능이 철저히 무시당하다가 그것이 반전된다는 점에서 <지상의 별처럼>과 닮아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생각보다 최근 많은 인도 영화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생각외로 인도 아이들의 모습도 많이 보았습니다.

역시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스텐리의 도시락>만 해도 그렇습니다. 점심을 굻어 아이들의 도시락을 나눠먹거나 물로 배를 채우는 모습은 단시 그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과거 우리 어머니, 아버지 세대에서도 겪었던 일이라는 것이죠. 또한 거기에 이들은 어른들의 학대를 받으며 구걸을 하고, 배움의 기회를 잃은 상태에서 강제 노동을 당하기도 합니다.

<지상의 별처럼>의 이샨의 경우는 상당히 좋은 편에 물론 속합니다. 잘먹고 잘사는 중산층에 가까우니깐요. 아버지는 잘나가는 기업의 회사원으로 늘 외국출장을 반복하고 있고 큰 아들은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니깐요. 부와 명예를 얻었다고 할지라도 힘든 점은 교육에 대한 질이 아닐까 생각도 됩니다.

영화의 초반에 바쁘게 출근하는 이샨의 아버지의 모습 속에 등장하는 노래를 보더라도 일류 사회에 일등이 되어야 하고 남과 뒤쳐지면 절대 성공못한다는 이야기는 마치 우리나라에서도 벌어지는 상황과도 닮아 있습니다. 노량진은 쉴세 없이 많은이들로 북적이고 강남 뿐만 아니라 학원이 몰린 지역은 밤 10시가 넘은 시간에도 학원버스로 몸살에 아이들은 거의 지친 상태로 창살없는 감옥에서 탈출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나마 다행인 것이 니쿰브가 가르치는 기숙학교의 선생들의 사고방식이 막힌 사람들은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이렇게 교육과 인권은 바꿀 수 있다는 희망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지요.

 

 

영화는 이렇게 소외된 인권의 사각지대에 속하는 아이들에 대한 모습을 소개함과 동시에 이들에게 관심과 대책이 필요함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러닝타임도 매우 길지만 오히려 그것은 이 영화에 큰 마이너스 요인은 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단지 영화의 느슨한 전개가 있을 뿐이지 오히려 이샨이라는 소년에 대한 케릭터를 자세하게 소개할 수 있는 시간을 준 것이니깐요. 또한 이 작품은 국내에서는 가위질 없이 개봉되었다는 점도 이색적인데 이 역시 아미르 칸의 요청도 한 몫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상식하나 전해드리면 우리나라는 163분으로 러닝타임이 나와있지만 IMDB(인터넷 무비 데이터베이스)에는 165분입니다. 어느 게 맞을까요? 정답은 둘 다 맞습니다. 인도영화 뿐만 아니라 외국영화들의 경우 러닝타임에서 크레딧 시간을 빼고 심의요청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따라서 <지상의 별처럼>은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에서는 2분이 줄어든 것처럼 보이지만 엔딩크레딧이 제외된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인도 영화들이 그렇듯 대부분의 작품들은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립니다.

하지만 인도의 교육이나 인권문제는 현제 진행형이고 우리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고 보니 아미르 칸이 보여준 세 가지 화면 중 마지막 화면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네요.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는 해맑게 웃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화면을 보니 비단 인도의 아이들만 담아낸 것 같지는 않더군요.

어쩌면 아미르 칸은 엔딩 크레딧을 통해 다시한번 관객과 이 사회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이들은 앞으로 우리들의 미래다라고 말입니다.

 

PS. 이 영화에서 공들인 장면을 뽑으라면 '3X3=3'이 등장하는 애니메이션일 것입니다. 어떤 분은 '9'가 아니던가라고 이야기하실 껍니다.

하지만 왜 '3'이 되는지에 대한 과정이 재미있습니다. 이 장면의 경우만해도 따로 애니메이터 들이 등장하는 크레딧이 있더군요. 얼마나 공을 들였는가 알 수 있는 장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