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기록이 되어있고 이를 바탕으로 영화나 드라마는 끊임없이 만들어집니다.
하지만 최근 드라마나 영화는 기록되어 있지 않은 몇 일간의 공백에 대해 다양한 발상으로 이야기를 시도하려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야말로 픽션의 세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최근 사극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같은 듯 다른 다양한 조선시대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고 이 중에는 역사적인 고증과 더불어 가상의 픽션을 넣어 새로운 생명을 넣는 작품들도 있지요. 오늘 소개할 작품은 광해군의 몇 일간의 기록되어지지 않은 행적에 대한 픽션을 이야기한 영화입니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이하 <광해>) 입니다.
까다로운 성격을 지녀 폭군이라는 별칭을 지녔던 광해(이병헌 분)...
광해군 8년, 독살이나 암살등으로 공포에 휩싸인 광해는 도승지(임금의 명을 전달하는 직책) 출신의 허균(류승룡 분)에게 자신의 외모와 닮은 자를 찾아낼 것을 명령합니다. 특수한 상황이 발생될 경우에 대한 대비책이었지요. 허균은 마을의 광대인 하선(이병헌 분)을 데려와 몇 시간 정도를 임금으로 앉히게 되지요.
하지만 특수한 상황이 결국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정체 불명의 약초에 중독되어 광해가 혼수상태에 빠지게 되어버린 것이죠.
광대 하선는 이리하여 얼떨결에 광해가 되고 나라의 중요지책을 맡아야 하는 상황에 이릅니다.
그러나 허당과 다름없고 엉뚱한 기행을 이어나가는 하선의 모습에 허균은 난감하기만 합니다.
하지만 광해보다 더 광해같이 잘못된 관행을 바로 잡으면서 하선은 자신의 또 다른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가난으로 어린 수랏간 나인이 된 사월이(심은경 분)의 사연을 들은 하선은 충격을 받고 그녀의 부모를 찾기 위해 나서기 시작했음은 물론 어색해질 뻔한 중전(한효주 분)과의 관계도 회복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는 왕이 아닌 광대였기에 임금의 노릇에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는 상황.
한편 광해의 이상한 점이 의심되었던 박충수(김명곤 분) 대감을 포함한 일부 신하들은 하선을 의심하게 되는 상황입니다.
진짜 광해는 건강을 회복하여 다시 왕의 자리에 오를 수 있을까요? 그리고 위기에 빠진 가짜 임금 하선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솔직히 이 영화의 개봉 소식을 접하고 줄거리로 내용을 접하게 되었을 때는 최근 개봉했던 <나는 왕이로소이다>를 떠오르기 충분했습니다.
'왕자와 거지' 스토리가 요즘 너무 재탕이 되고 있는게 아닌가라는 의문과 아쉬움도 들었고요.
뚜껑을 열고 몇 분을 감상했을 때는 더 걱정스러웠습니다. 광대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왕의 남자>가 떠올랐기 때문이죠.
왕을 풍자하는 것이 그 시대 광대들이 하는 일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초반 등장하는 내용만 보면 위험한 믹스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러나 몇 분 후 그 우려는 사라지더군요. 가장 놀라웠던 것이 이병헌 씨의 슬랩스틱이었습니다.
물론 이병헌 씨는 과거 코미디 영화에 출연한 적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리 많지는 않았다는 것이죠. 장동건 씨처럼 묵직하지만 코미디를 보여줄 생각이 없어보였으니깐요. 하지만 의외로 류승룡 씨와 짝을 이루어 웃겨야 되는 부분에서는 적당히 웃기고 감동을 주는 장면에서는 확실히 감동을 주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천으로 가려진 봉투를 뒤집어 쓴 상태에서 천장에 계속 부딪치거나 왕과 신하의 자리가 뒤바뀌는 헤프닝, 그리고 대변을 보는 장면까지도 기존에 봤던 이병헌 씨의 연기 스타일과는 거리가 멀어보였지만 의외로 큰 재미를 주었습니다.
<광해>는 왕과 광대가 바뀌는 부분에 초점을 두지 않았습니다. <나는 왕이로소이다>가 왕과 노비가 바뀌며 살아가는 부분을 반반씩 보여준다면 <광해>는 왕이 된 광대의 부분을 상당히 할해하고 있습니다. 왕은 거의 코마 상태였으니 당연히 그를 길게 보여줄 필요는 없을테니깐요.
그렇다면 임금이 된 광대의 활약상을 확실히 보여주어야겠지요. 초반은 일반적인 허당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실수도 많고 심지어는 그의 존재가 들킬 뻔한 사건들도 많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그가 사월이의 사연을 들으면서 광대가 아닌 진짜 임금으로써의 진면목을 보여주는데요. 서고에서 책을 읽고 대동법(곡물을 쌀로 통일하여 세금처럼 부과한 당시 부세제도)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는 장면은 매우 인상적이죠. 후반에는 청나라에 끌려다니는 조선의 상황에 대해 비판함으로써 국민을 위한 것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최근 일본이나 미국에 끌려다니는 어느 분(!)을 생각하게 만드는 대목이었습니다. ^^; )
이 영화는 주연 이병헌 씨, 류승룡 씨도 빛났으며 조연이지만 주연만큼 많은 분량으로 등장한 장광 씨, 심은경 양도 반가웠습니다.
장광 씨는 <도가니>에서의 악역에서 벗어나 임금의 실질적인 조력자 역할을 수행해 류승룡 씨가 맡은 허균 역할만큼이나 영화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기도 하였습니다.
심은경 양의 경우 바쁜 유학생활 속에서도 틈틈히 국내에서 영화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대단할 정도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마이웨이>에서 오히려 주인공보다도 더 빛났던 김인권 씨는 <광해>에서도 특유의 코믹함과 진지함을 고루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다만 일부에서 지적한 이야기처럼 한효주 씨의 분량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는 점이 아쉽네요. 이는 오히려 오랜만에 스크린 나들이를 한 김명곤 씨(임권택 감독님의 <서편제>로 알려졌으며 우리에게는 전 문화관광부 장관으로도 유명한 분이죠.)보다도 적은 분량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자, 지금부터는 쓴소리를 좀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이것은 제작자나 감독의 문제가 아닌 배급의 문제에 관한 얘기입니다.
이 영화를 배급하는 곳은 아시다시피 CJ 엔터테인먼트인데요. 당초 이 영화는 19일과 20일 사이를 저울하며 개봉일을 이야기하더니 갑자기 일주일 앞당긴 13일 개봉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추석시즌이 아닌 조금더 앞당겨서 반전을 노려보자는 것 같습니다.
사실 이 부분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작용합니다. 최근 CJ는 여러 작품을 배급하였지만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그 작품들은 나열하기가 곤란할 정도로 많은 작품들이지만 대표적으로 <7광구>, <라스트 갓파더>, <마이웨이>에 최근 정지훈(비) 씨가 등장해 기대를 모았던 <알투비:리턴투 베이스>도 흥행에 참패하면서 매우 큰 위기에 빠져 있는 상황입니다. 더구나 최근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가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가운데 실질적으로 극장을 갖추고 있지 않은 배급사 NEW가 배급망을 확대시키는 상황입니다. CJ 측으로는 위기라는 것을 잘 알지만 갑작스러운 개봉일을 앞둔다는 것은 다양성 영화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극장 시장에 좋지 않은 악영향을 끼치는 부분이라고 봅니다. 이는 실질적인 CJ의 선장인 이미경 씨의 욕심이 큰 부분이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김기덕 감독이 <도둑들>의 배급망에 쓴소리를 했지만 정말 쓴소리를 했지만 진짜 쓴 소리는 이 영화에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광해>의 제작팀이 무슨 잘못이 있겠습니까? 제가 지적하는 것은 배급의 문제라는 것이죠. 규모가 작은 영화, 그리고 독립영화들의 상영시간을 빼앗으려는 발상은 매우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규모가 큰 영화들의 개봉으로 인해 이들 영화는 극장 간판에서 내려가야 하거나 더욱더 심한 교차상영의 압박을 가하게 될테니깐요.
<광해>는 분명 오락적인 재미가 있고 마지막에는 공감이 가는 감동도 있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이런 좋은 영화를 망치는 것이 배급라인의 문제라면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팀킬(엑스맨)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또한 이것은 단지 이병헌 씨의 홍보 시간을 벌기 위한 방식이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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