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1일... 한진중공업 본사가 있는 서울 갈월동...
1호선 남영역에서 내려서 그렇게 걸었습니다. 아... 저기 판자같이 생긴 곳이 보이네요.
사실 예정에 없는 일이었습니다. 희망버스에 대한 뉴스를 접했고 85 크레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지만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깐요.
임시 스튜디오에 들어왔습니다. 말이 스튜디오이지 임시로 만들어진 이 곳에는 사람이 겨우 세 명 들어갈 수 있는 크기입니다.
김진숙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 긴 직함을 지닌 그녀를 사람들을 김 지도위원이라 불렀습니다.
그녀에 대해 아는 바도 없는 저는 이 날 그녀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희망버스... 그리고 김진숙... 크레인 85호... 다큐멘터리 <깔깔깔 희망버스>입니다.
앞에 서두의 이야기는 실제로 제가 한진중공업 본사에서 김진숙 씨가 크레인 시위 300 일을 맞이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한진중공업 측의 제대로 된 정책을 요구하는 헌정 방송이었습니다. 인터넷 방송이었지만 생방으로 한진중공업 본사에서는 많은 이들이 릴레이로 방송을 하였으며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저명인사들이 시간을 내어 이 방송에 함께 했습니다.
저는 이 사건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조남호 한진중공업(정확히는 한진중공업 홀딩스) 대표에게 받치는 영화음악을 선곡했었지요.
영화블로거가 영화음악 선곡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테니깐요. 노동자들에 대한 영화를 찾아보려고 하니 쉽지 않더군요.
사실 이 이야기는 처음에 시작되어야 할 이야기는 아닙니다.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김진숙 씨가 85 크레인에 300 일 이상 메달린 이유를 이야기해야 하며 그에 앞써서는 故 김주익 씨, 故 곽재규 씨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하늘에서 관이 내려오고 반대로 하늘로 올리는 관이 등장하는 세상에서 슬픈 장례식...
2011년 1월 6일... 결국 김진숙 씨는 두 사람을 대신해 그들이 올랐던 85 크레인에 오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녀를 응원하기 위해 부산 영도에 희망버스를 몰고가기 시작하지요.
6월 11일... 희망버스의 방문이 시작되었고 이수정 감독이 이 다큐를 만들게 된 계기가 됩니다.
이 작품은 김진숙 씨의 이야기이자 희망버스를 오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 길고 긴 그 기록들을 담고 있습니다.
여섯번의 희망버스가 출발했으며 마지막 희망버스는 김진숙 씨가 크레인에서 내려온 상황에서 벌어진 흥겨운 축제였습니다.
자칫 어두울 수 있는 이야기이고 날짜로 기록된 다큐이다보니 딱딱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수정 감독 본인이 희망버스를 오른 계기를 포함해 많은 이들의 사연을 들려주고 서울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진 시위현장을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故 이소선 여사(故 전태일 씨의 어머니)의 살아생전 김진숙 씨에 대하여 이야기한 부분이나 정동영 전 의원(현 민주당 최고위원)은 조남호 대표를 꾸짖는 모습을 보이며 사태의 심각성을 이야기하기도 하였습니다.
앞에 제가 이야기드린 300 일 기념방송의 경우도 이 다큐에서 소개된 화면 중 하나였습니다. 오전에 저도 이 현장에 있었고, 심야토크 타임에 등장한 배우 김여진 씨는 김진숙 씨와 통화 도중 눈물을 흘리기도 했지요.
김진숙 씨는 2011년 11월 10일 크레인에서 내려옵니다. 길고 기나긴 309 일의 이야기가 서서히 끝나가는 시점이었지요.
이 날 시사회는 딴지일보가 운영하는 문화시설인 '벙커 원'에서 열린 행사였습니다. 이 작품의 감독인 이수정 감독과 정동영 최고위원이 게스트로 참여했고 딴지일보 해설위원인 원종우 씨(우리에게는 '파토'라는 닉네임으로 더 익숙한 분이죠.)의 사회로 영화를 본 후에 대한 간단한 좌담회도 열렸습니다. (관객과의 대화가 없었다는게 쬐금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세 분의 이야기꺼리는 많았습니다.)
세 분의 토론에서 인상적인 대목은 3,200 여명의 노동자들이 800 명으로 대폭 줄어들었다는 것입니다. 이들을 대신한 사람들은 모두 비정규직 노동자로 대체되었으니 이들의 목숨도 사라진 노동자들만큼이나 파리 목숨이었던 것이죠. 정동영 전 의원은 조남호 회장이 눈물을 흘렸던 당시를 회상하였지만 그 눈물이 진정한 눈물이었는가라는 의문을 이야기하더군요.
이수정 감독은 이 영화를 만든게 기적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카메라를 살 돈이 없어서 동료 감독에게 카메라를 빌려 겨우 촬영했다는 이야기나 크레인의 이름이 '85 크레인'이라는 점에서 착안해 러닝타임을 85분으로 기획하였지만 영화에 삽입되었던 비틀즈 음악이 저작권에 걸려 다큐에서 보여줄 수 없으면서 1분이 줄어든 84분의 러닝타임으로 공개되었다는 일화도 인상적입니다.
아울러 이 영화에서는 또 다른 작품이 잠시 등장하는데 인권운동가인 박성미 감독입니다. 그녀 역시 영화감독이었지만 쌍용 사태를 비롯해 여러 노동자들이 탄압받는 현장을 보고 영화를 찍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희망버스, 러브스토리>라는 8분 내외의 짧은 단편을 만들게 되는데요. 이 작품은 레고 블록으로 만들어진 스톱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에서 인정적이며 또한 김진숙 씨에게 받치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인상적인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김진숙 씨는 크레인으로 내려왔지만 아직 우리들의 현실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쌍용 노조들의 일부는 생활난과 극심한 스트레스에 자살이 줄을 이었고, 콜트 콜텍 노조는 아직도 용역과 경찰들의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SJM 노조들은 경찰보다도 더 위대하신 용역들에게 당해 힘든 나날을 지내고 있습니다. 최근 경찰과의 112 통화내역에서는 무인 경비 업체가 나서서 노조들이 당하고 있다고 하소연을 했음에도 이것 또한 묵살당했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85호 크레인은 지금은 자취를 감추고 사라졌습니다.
김진숙 씨는 건강을 회복해 많은 강연회를 통해 당시의 이야기와 지금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인권과 일할 권리가 묵살당한다면 제 2의 전태일, 제 2의 김진숙은 다시 나올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동지', '투쟁'이라는 단어는 상당히 직설적이고 거친 단어처럼 보입니다. 제 입에 잘 안붙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를 쓰면 마치 내가 대단한 진보주의자나 혁명가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건 아니거든요.
그런데 일부 사람들은 그들에게 손가락질을 합니다. 그들을 귀족 노조라고 할 수도 있고, 빨갱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일부 영도 주민들은 희망버스를 가지고 온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다고 합니다.
물론 그들을 무조건 설득할 수 없습니다. 설득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잘 압니다.
하지만 직접 경험하게 되면 그 무서움을 알게 된다는 말처럼 그 무서운 현실은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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