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에서 무성영화를... 현존하는 최초의 한국 무성영화 '청춘의 십자로'!

이 글이 올라갈 때 쯤 여러분들은 귀성전쟁을 하고 계시겠지요?

고향으로 가는 길만큼 아마 행복한 것은 없으리라 봅니다.

저는 고향이 서울이라서 식구들과 잠깐 다녀오는 수준이지만 점점 가족들과의 만남이 줄어드는 것 같아서 아쉽기도 합니다.

 

 

 

이렇게 고향길을 가다보면 아무래도 많이 이용하는 것이 철도과 버스같은 교통수단이겠지요.

차가 있으신 분들에게는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아무래도 대중교통 수단을 좋아히시는 분들도 있을테니깐요.

이럴 때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서울역이죠.

서울역은 우리나라의 역사를 대변하는 장소로 많이 활용이 되었습니다.

촌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고층빌딩에 놀라는 장면들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심심치 않게 보았고 과거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도 서울역은 새로운 꿈을 위해 도전하는 곳으로 많이 사용되곤 합니다.

 

 

 

이 오래된 서울역 역사(驛舍)는 많은 변화를 하게 되는데요. 지금은 유리 칸막이로 되어있는 신식 건물로 모두 이전이 완료되었지요.

그런점에서 과거 서울 역사는 이대로 버려지는게 아닌가라는 우려가 많았습니다. 노숙자분들의 쉼터로는 안성맞춤일지 몰라도 범죄라던가 겨울철의 경우 이들의 신변은 장담할 수 없었을테니깐요. 또한 한동안 이 건물은 흉물이라는 지적도 많았습니다. 재활용하느냐, 아니면 그냥 하나의 유적으로 보호하느냐의 문제일 것입니다.

서울역 역사는 그 역사적 가치가 충분한 건물이니깐요.

 

 

 

 

 

 

 

 

그런점에서 서울역 구 역사는 이렇게 변했습니다.

유적지로의 역할과 문화공간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기로 말이지요.

'문화역 서울 284'라는 곳은 바로 이 서울역 구 역사를 활용한 문화시설입니다.

근데 '284'가 뭐냐고요? 284는 바로 '사적 284호'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문화제라는 것이지요.

자... 그런데 이 곳에서 독특한 공연이 열립니다. 바로 1930년대 무성영화를 감상하는 것이죠.

 

 

 

 

 

 

 

 

 

제가 볼 작품은 <청춘의 십자로>라는 작품입니다. 2012년 올해 등록문화제 제488호로 등록되었습니다.

1934년 안종화 감독의 이 작품은 2007년 영상자료원에 도착한 필름으로 당시 서울의 모습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였다는 것입니다.

서울역(예전에는 경성역)의 모습뿐만 아니라 골프를 치는 장면이라던가 주유소가 등장하는 장면 등 지금 생각해도 놀라운 모습들이 담겨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청춘의 십자로>는 아직까지는 현존하는 가장 최초의 무성영화로 기록되어 있지만 열심히 찾다보면 이 기록은 계속 깨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 일단 서울역 구 역사를 한번 들어가볼까요?

이 곳은 리모델링이라는 개념보다는 복원에 더 신경을 쓴 모습이 보입니다. 따라서 일부 시설만 리모델링하고 나머지는 그대로 복원을 했다는 것이죠.

2층으로 올라가는 복도만 해도 그렇습니다. 상당히 심플함 그 자체이지요.

 

 

 

 

 

 

 

2층 공연장은 과거 식당이나 귀빈 손님을 모시던 곳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이곳을 임시 공연장으로 만들었고 평상시는 전시실로 사용할 예정입니다.

영락없는 1930년대 느낌이 나실껍니다. 발권하는 분들도 예전 단색(검정과 흰색)으로 이루어진 한복을 입고 계실 정도로 느낌이 묘했습니다.

 

 

 

 

 

 

 

 

자, 밑에는 변사가 영화의 대사를 들려줄 자리입니다.

변사라... 익숙치 않은 단어죠. 예전 무성영화들은 변사라는 사람이 나와서 영화의 대사를 들려주었습니다.

해설자 역할과 배우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사람이지요. 잠시 후 의외의 분이 이 변사역할을 할 예정입니다.

 

 

 

 

 

 

 

엔틱한 느낌들이 나는 이 소품들은 문화역서울 284에 보관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군요.

한국영상자료원 프로그래머 모은영 씨의 멘션에 의하면 이 작품의 상영을 위해 1930년대 느낌이 나는 엔틱 소품들을 열심히 수집하고 다니셨다고 합니다.

 

 

 

 

 

 

 

 

 

이번 <청춘의 십자로> 공연은 악극 형식도 사용하고 있는지라 이런 4인조 연주팀이 꼭 필요합니다.

배우들이 나타나 연기를 할 때, 그리고 변사가 쉬어가는 타임에서 배경음악으로 이들의 역할은 매우 큰 존재이거든요.

 

 

 

 

 

 

 

 

 

 

 

 

공연 시작 전 가벼운 퀴즈가 시작되었습니다. 상품은 공연 전 주전부리로 판매하는 찹쌀떡...

남녀 배우 두 분이 가볍게 이 영화에 대한 사전 지식과 정보를 알려주며 퀴즈를 내고 계셨습니다.

이 분들의 역할은 바람잡이 역할일지 몰라도 사실상 영화에 정보를 들려주는 도우미 역할을 담당하셨지요.

저도 찹쌀떡 하나 구입했습니다. 물과 눈깔사탕은 무료...

찹쌀떡 맛이요? 아... 정말 꿀맛입니다. 견과류를 넣은 찹쌀떡은 처음 먹어보았습니다.

 

 

 

 

 

 

 

 

 

 

 

(작품 관람도중 사진촬영은 금지되어 있어서 이후 사진은 <청춘의 십자로> 공연팀이 보내준 보도자료로 대체합니다.)

 

 

 

 

 

 

 

공연이 시작됩니다. 휴대폰은 꺼달라는 맨트가 강하게 다가오는 공연입니다.

아무래도 소리에 민감할 수 밖에 없는 공연이지요.

 

 

 

궁금해하실 변사를 우선 보여드리죠. 바로 배우 조희봉 씨 입니다.

뭐 아시다시피 이 분 최근 들어 씬스틸러라는 별칭으로 많은 분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배우죠.

그는 변사의 역할을 톡톡히 했는데요. 1930년대 영화지만 간간히 요즘에 맞제 애드립을 구사하기도 하셨습니다.

관객들은 조 씨의 목소리에 울고 웃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영화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7년 동안 데릴사위로 건실하게 살아가던 청년 영복(이원용 분)은 결혼의 꿈이 물거품이 되어버리며 경성(지금의 서울)로 상경합니다.

그는 경성역에서 승객들의 짐을 실어주는 짐꾼 역할을 하고 있지만 그 누구보다도 성실한 청년이었지요.

이런 영복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경성역 근처의 개솔린 스탠드(지금의 주유소)에서 일하던 여인 계순(김연실 분)이 그를 사모하고 있었던 것이죠.

하지만 영복이나 계순 모두 가난한 상황인데다가 영복은 동생 영옥(신일선 분)과 연락이 끊긴 상태입니다.

한편 영옥은 경성의 한 카페에서 일하고 있었는데요. 그녀에게 반한 사채 업자 개철은 그녀에게 끊질게게 구애를 하고 어렵게 영옥은 그의 구애를 받아들이지요.

하지만 악덕 사채업자였던 개철은 사랑을 미끼로 농락을 당하고 맙니다. 거기에 계순도 영옥과 똑같은 방법으로 농락을 한 것이죠.

병든 아버지와 어린 동생을 데리고 살아야 할 계순에게는 큰 고민이었고 이 사실이 영복에게 알려지자 영복은 개철에게 달려가 복수를 감행합니다.

그러나 운명의 장난처럼 거기에는 그가 그렇게 애타게 찾던 동생 영옥이 있던 것이지요.

분노가 최고조에 다다른 영복은 개철이 주최한 파티장에 나타나 한바탕 소란을 피우고 개철에게 복수를 시작하게 됩니다.

 

 

 

 

 

 

이 작품은 무성영화 상영과 악극을 동시에 진행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중간 중간 배우가 나타나 영복과 계순의 심정을 보여줍니다. 바로 이렇게 말이죠.

 

 

 

 

 

 

 

 

 

 

영복 역을 맡은 배우 양준모 씨(좌측)과 계순 역의 임문희 씨(우측)...

마치 스크린에서 튀어나온 듯한 두 사람은 영복과 계순의 심정을 노래로 표현했는데요. 강필석 씨의 경우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 <닥터 지바고>로 알려진 뮤지컬 배우이며 임문희 씨는 뮤지컬 <돈주앙>을 통해 알려진 배우입니다. 이외에도 강필석, 김대종, 정명은 씨 등의 많은 배우들이 더블 캐스팅되어 공연을 펼칠 예정이더군요.

 

 

 

 

 

 

 

 

 

 

 

공연이 끝나고 박수가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영화는 예상하셨겠지만 해피엔딩입니다.

하지만 안보시면 후회하실 정도로 재미있는 장면들도 많습니다.

재미있는 뒷 이야기가 있는데요. 영복 역을 맡은 무성영화 속의 배우 故 이원용 씨의 경우 과거 레슬링 선수로 활동하였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이 영화는 액션 장면이 많았던지라 안종화 감독은 그를 배우로 기용을 하게 되었던 것이죠. 그 역시 많은 슬럼프를 겪었으나 <청춘의 십자로> 이후 재기에 성공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계순 역의 故 김연실 씨의 경우는 일제시대 가수를 겸했던 경력이 있었으며 많은 대중가요와 영화주제가를 불러 인기를 모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故 신일선 씨의 경우는 열 다섯 나이에 나운규 감독의 <아리랑>에 출연하였으며 그 이후 스타덤에 올랐다고 하네요.

 

 

 

<청춘의 십자로>는 무성영화입니다.

따라서 대사를 알 수 없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추측하거나 짐작을 하여 시나리오를 만들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지요.

복원으로 쉽게 끝나는 작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영화의 시나리오와 연출을 의외의 인물에게 맡겼는데 바로 <가족의 탄생>과 <만추>를 연출한 김태용 감독이었던 것이죠. 당시 1930년대 신문기사 몇 줄의 줄거리와 수백번 필름을 돌려보면서 지금의 시나리오로 만들어진 작품을 볼 수 있었던 것이죠.

 

 

 

 

 

 

 

서울역의 밤이 깊어왔습니다.

우디 엘런의 <미드나잇 인 파리>처럼 마치 1930년대 경성을 여행하다가 다시 현재의 서울로 돌아온 느낌이더군요.

문화적 공간이라는 것이 이렇게 중요하구나라는 것을 느끼게 하였습니다.

<청춘의 십자로>는 그야말로 '브라보'라는 단어가 절로 나오는 영화입니다.

어르신들에게는 당시의 추억을, 저 같은 젊은이들에게는 당시 영화나 경성의 모습을 통해 새로운 발견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우리는 얼마전 <아티스트>라는 영화가 흥행에 성공한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무성영화 시스템을 온전히 가져와서 일 수도 있지만 당시 추억을 공유하고 싶었던 사람들이 많아서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헐리웃에는 <아티스트>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청춘의 십자로>가 있습니다.

추억을 공유하고 싶으신 분들은 서울역으로 한번 향해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공연은 10월 13일까지입니다.

 

 

 

 

자세한 문의는 <청춘의 십자로> 블로그(http://blog.naver.com/silent_film)나 문화역 서울 284 홈페이지(http://www.seoul284.org)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