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에 대한 잡설들/컬처 확대경, 컬처 쇼크

뮤지컬 '영웅' 진정한 영웅, 안중근 의사의 감동 스토리를 이야기하다.

송씨네 2010. 12. 7. 23:03




뮤지컬 관람은 저랑 동떨어지는 일처럼 보였습니다. 

저는 영화블로거이니 누가 뮤지컬 구경이나 시켜주나 싶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인가 뜻밖의 초대를 받았습니다.

국내 창작 뮤지컬들 중의 대표적인 작품인 '영웅'에 대한 관람기회를 갖게 된 것이죠.

그러고 보면 저는 그동안 작은 공연장에서의 공연을 많이 본 것 같습니다. 

소극장 공연이 많았고 중급 공연으로 얼마전 장항준 감독의 뮤지컬 작품인 '와타나베 삐지다'를 본 적이 있긴 했죠. 무언극도 보고 이런 저런 작품들을 많이 봤네요.

장항준 감독의 작품이 공연된 그 공연장 역시 중급이긴 했으나 아직 큼지막한 그러니깐 세종 문화회관이나 리틀엔젤스 공연장, 그리고 국립극장에서 볼 일이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공연장이 국립극장이라니... 이렇게 좋을 수가...

추위고 뭐고 저는 공연장을 향해 갔습니다.









고달픈 청춘이여, 먹고 먹어도 배가 고픈 건 어머니가 그립고 따뜻한 정이 고픈 것...

(뮤지컬 '영웅' 중에서...)



오후 2시 공연 시작...

과연 대형 공연은 어떤 모습일까요?

총소리가 울려퍼지고 막이 오릅니다.

안중군 의사와 운명을 함께할 독립투사들이 자작나무에서 결의를 다지는 모습으로 시작하는 장면들은 이토 히로부미의 모습을 보여주고 이토 히로부미의 관련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 게이샤로 위장하는 설희의 모습이 등장하죠.

블라디보스크에서는 독립투사들이 이토 히로부미의 방문소식을 듣고 마지막 심기일전에 들어가는 장면도 등장합니다. 

1 막이 순식간에 넘어가고 20 분의 쉬는시간이 주어지지만 이것도 너무 짧습니다.

길게 늘어선 매점 줄과 화장실 줄로 정신이 없지요.







ⓒ (주)에이콤 인터네셔날



2막으로 넘어서면 다시 자작나무입니다.

사격으로 이토 히로부미 암살을 준비하는 사람들...

그 속에서 쫓고 쫓는 일본군과 독립 투사들의 모습이 보여지고요.

열차에 몸을 실은 이토 히로부미는 설화와 친해지지만 그것이 계획된 상황임을 알게 됩니다.

이토 히로부미를 여러 방식으로 암살하려는 계획은 실퍠하고 이제 안중근 의사의 방아쇠가 점점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다가오고 있습니다.







'명성황후'를 만든 에이콤의 또 하나의 명작으로 손꼽히는 '영웅'은 제 4회 더뮤지컬 어워즈와 제 16회 한국뮤지컬 대상에서 각각 6 관왕을 차지한 작품입니다. 안중근 의사로 등장한 정성화 씨는 두 곳에서 모두 남우주연상을 차지했고요.

그런 그에게 어쩌면 정말 '영웅'은 그에게 최고의 작품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박영규 씨와 더불 캐스팅된  '스펨어랏'을 끝내자 마자 이 작품으로 복귀를 한 것을 보면 이 작품에 대한 애착이 크다는 것을 볼 수 있으니깐요.


사실 작품을 이야기하기 전애 배우 정성화 씨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보통 개그맨들은 연극이나 영화로 진출할 경우 성공할 가능성이 상당히 드물죠. 송지나 작가가 드라마 '카이스트'에서 배우 정성화를 발견한 것은 큰 소득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 작품은 그러나 정성화 씨의 독무대는 아닙니다. 트리오로 캐스팅된 이 작품은 정성화 씨 외에도 신성록 씨와 양준모 씨를 또 한 명의 안중근으로 설정하여 공연하고 있습니다.


아쉽게도 이 날 공연은 정성화 씨 공연버전이 아닌 신성록 씨가 안중근 의사로 등장한 버전을 보게 되었습니다. 정성화 씨가 워낙 인기가 많다보니 초대권으로 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테니깐요.

그렇다보니 신성록 씨가 과연 연기를 잘 할 수 있을까가 의문스럽긴 했습니다.

그러나 그 우려는 과한 걱정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부에서는 성량이 부족하고 대사가 잘 전달이 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조금 먼 자리에서 공연을 봐서 그런지는 몰라도 약간 몇 장면의 노래 가사가 들리지 않은 것을 제외한다면 신성록 씨도 상당히 안중근 의사 역할을 충분히 했다고 봅니다.



설희 역의 이상은 씨나 이토 히로부미를 연기한 조승룡 씨 같은 경우는 그들이 왜 매인이고 주연만큼의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가를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 외에도 가상 인물 링링을 연기한 전미도 씨도 모습도 아름다웠지만 안중근 의사와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보여주려고 혼신의 힘을 다해 노래한 흔적이 보였습니다. 

더구나 자칫 안중근 의사의 일대기를 다루다보니 이야기가 무거울 수도 있는데 안중근 의사의 부하들을 열연한 문성혁, 조휘, 임진웅의 활약상도 컸습니다. 특히 우덕순과 조휘가 이토 히로부미를 기다리며 아리랑을 부르는 장면은 무거우면서도 즐거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장면이었습니다.








ⓒ (주)에이콤 인터네셔날



내가 이토를 죽인 이유는 이토가 있으면 동양의 평화를 어지럽게 하고 한일 간이 멀어지기 때문에 한국의 의병 중장의 자격으로 최인을 차단한 것이다. 그리고 나는 한일 양국이 더 친밀해지고, 또 평화롭게 다스려지면 나아가서 오대주에도 모범이 돼 줄 것을 희망하고 있었다.  

(안중근 의사의 최후변론. 1910. 2. 12 발언 중 일부)

                                            


인상적인 대목도 많았는데요.

가령 1 막의 끝 시점쯤에 일본 순사들과 독립군이 쫓고 쫓기는 장면에서는 동선을 잘활용하여 사다리를 타고 이동하고 거기에 그것을 춤으로 표현한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또한 이 작품에서는 벽돌 무늬의 움직이는 벽들이 상당히 작품의 이야기를 전환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는데 벽돌무늬의 벽과 레이저 빔이 같이 움직이면서 때로는 벽돌무늬의 주택가로, 때로는 성당으로, 어떤 때는 독립군의 비밀 아지트... 그리고 마지막에는 안중근 의사가 자신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장면으로 등장하여 효과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히토 히로부미를 태운 열차가 움직이는 장면에서도 동영상과 미니 세트를 적절히 혼합하였는데 영화와 달리 연극이나 뮤지컬이 장소의 제한을 크게 받는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빠른 시간안에 세트가 이동하고 위치를 이전시키는 모습은 참으로 놀라웠다는 생각이 듭니다.

소규모 뮤지컬이 세트가 움직이지 않은 상태에서 조명의 힘만으로만 움직여야 한다는 불편한 점이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순식간에 바뀌는 수 많은 세트는 인상적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언론에서는 이 작품을 보고 기립박수를 보냈다는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보도자료는 진짜 같지가 않고 마치 지어낸 느낌이 강하죠.

어떻게 모두 관객들이 일어나서 기립박수를 한다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었죠. 칸 영화제나 베니스 영화제도 아닌데 말이죠.

그러나 실제 제가 체험한 뮤지컬의 엔딩에서는 왜 관객들이 앉아서가 아닌 일어서서 박수를 쳐야만 했는가를 확실히 볼 수 있었습니다. 앉은 관객을 찾아보기 힘들정도로 모두 서서 박수를 보내고 있으니깐요.

저 역시 일어나 수고한 배우들에게 박수를 보냈습니다.


국립극장을 나오면서 뮤지컬의 여운이 상당히 오래가더군요.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이 이야기가 실화를 기초로 만들어진 이야기라는 점과 안중근 의사를 비롯한 많은 독립투사들이 우리를 위해 애쓴 점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 작품은 일본인들이 보면 상당히 불쾌한 작품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국력을 키우지 못하고 나라 잃은 설움을 받았던 우리에게 안중근 의사를 비롯한 독립투사들의 열정은 역사속에 기억에만 남길 것이 아니라 우리의 기억에도 남아야 할 일이라고 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연평도에 많은 이들이 희생당하거나 다치는 일이 생겼습니다.

21 세기인 지금에도 우리는 분단된 국가에서 살고 있고 슬픈 과거를 아직도 끄집어내야 한다는 일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잊혀진 역사라면 우리가 다시 생각하고 그 역사에 대해 이야기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 점에서 '영웅'은 꼭 보셔야 할 작품이라고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