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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대오_구국의 철가방]역사와 코미디 사이... 코미디로 역사를 재조명하다!

송씨네 2012. 10. 31. 07:04

 

 

 

1985년 5월 23일... 1981년생인 제가 태어나고 4년 뒤 미국 문화원에는 조금은 특이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지금은 서울시청 을지로 별관으로 쓰여지고 있지만 27년전 그 곳은 롯데 호텔을 마주보며 있던 자리였지요.

뜬금없는 질문하나 해보죠. 우리에게 투쟁이란 무엇이며, 민주주의란 무엇일까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미국은 우리의 동반자이자 적대국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지요.

그렇다면 1985년 우리의 젊은이들은 과연 이 당시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았을까요?

<방가?방가!>를 통해 외국인으로 위장취업을 했던 김인권 씨가 이번에는 철가방 출신의 대학생으로 위장합니다.

그냥 웃게 되지만 보고 나면 씁쓸해지면서 1985년의 그 시절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게 되실지도...

영화 <강철대오:구국의 철가방>(이하 <강철대오>)입니다.

 

 

 

 

대오(김인권 분)은 중화요리집의 배달부입니다.

그는 배달의 민족은 아니지만 배달이 하나의 숙명이 되었지요.

이소룡을 동경하던 비홍(박철민 분)과 숙식을 함께하며 동고동락을 하는데 어느 때 처럼 주문이 들어왔고 여자 기숙사로 배달을 가는 대오...

그런데 잘 먹었다면서 깨끗하게 치워진 그릇을 보며 대오는 그 여성이 누굴지 궁금하기만 합니다.

수소문 끝에 그녀의 이름이 예린(유다인 분)이라는 것을 알아내고 그녀에게 프로포즈를 하기로 마음먹지만 중국집 배달부와 여대생의 로멘스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잔돈으로 받은 천원짜리 지폐에 생일잔치를 한다는 내용의 글을 보게 됩니다.

들뜬 마음에 단정히 옷도 빼입고 나왔건만 하나같이 정체불명의 선물 꾸러미를 준비한 사람들이 대오의 뒤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 무작정 뛰는 사람들... 덩달아 대오도 그렇게 뛰었건만 그가 도착한 것은 미국 문화원...

그건 생일파티가 아니었습니다. 바로 미국 문화원 점거 시위를 계획하는 내용의 일종의 암호였거든요.

졸지에 미국 문화원에 갇혀버린 대오는 웬지 모를 시크해보이는 우두머리 포스를 지닌 남정(권현상 분)을 비롯해 전경을 애인으로 둔 기구한 운명의 헤숙(유신애 분), 얼굴에 웬지 불만이 많아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순해보이는 봉수(김기방 분) 등을 만나고, 민중가요계의 조용필이라 불리우는 영민(조정석 분)도 만나게 되지요.

예린에게 줄 머리핀을 그렇게 준비했지만 영민이 예린에게 다가오지를 않나, 대오는 졸지에 프락치로 몰리는 상황까지 발생됩니다.

경찰과 문화원 관계자 안드레이(달시 파켓 분)와의 협상도 번번히 실패...

배는 고프고, 프락치의 누명은 벗어나야겠고... 그리고 예린에게 자신의 마음은 고백하고 싶고...

이래저래 대오의 마음은 속이 타들어 갑니다,

 

 

 

 

음... 우선 영상하나 보실까요? 생각보다 좀 깁니다.

(참고로 출처는 정치인 출신의 사업가 함운경 씨의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것으로 함운경 씨는 당시 미 문화원 점거 농성사건에 연류된 당사자 중 한 분입니다.)

 

 

 

 

 

 

보시다시피입니다. 바로 이 영상이 1985년 5월에 벌어진 미국 문화원 점거 농성사건입니다.

화면을 보니 옛날 버스의 모습에 장발머리의 남성들과 촌스러운 패션들이 보이시죠. 우리 어머니, 아버지의 시절의 모습입니다.

1985년 5월 23일 12시 고려대, 서강대, 서울대, 성균관대, 연세대의 삼민투(민족통일/민중해방/민주쟁취) 소속 학생 73명이 일시에 미문화원 2층 도서관을 점거한 사건으로 <강철대오>은 이 사건을 영화로 재구성하였습니다.

이 사건의 발단은 1980년 광주민주항쟁에 미국이 지나치게 간섭하였다는 부분에 대한 불만을 표출한 것으로 미국측의 사과와 전두환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며 자그마치 72시간을 도서관 건물을 점거한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시위참여자 73명 중 25명이 구속된 이 사건은 점거농성의 시초를 알리는 조금은 특별한 사건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이 역사적 기록을 대폭 줄이는 대신 대오라는 남자를 등장시켜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사내의 모습을 통해 민주주의와 더불어 투쟁의 의미를 다시한번 상기시키는 결과를 보여주었습니다.

자, 여기서부터 이 영화의 포인트를 살펴봐야겠지요. 왜 이 영화는 기존의 역사적 사실에 중점을 두지 않고 코미디로 돌아섰는가라는 점이죠.

여기서 생각해볼 작품이 바로 육상호 감독의 전작 <방가?방가!>입니다. 이 영화에도 김인권 씨가 나오고 <강철대오>와 상당한 유사점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죠.

우선 얼떨결에 위장을 하게 된 상황입니다. <방가?방가!>의 방태식은 힘든 취업난 속에 여기저기 퇴짜를 맞게 되고 결국 동남아 사람으로 위장하여 어렵사리 취업에 성공하지요. 취업에 성공하여 진짜 외국인들과 살아가면서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그들과 하나가 되지요.

<강철대오>의 대오도 그런 면에서 상당히 유사합니다. 중국집 배달원인 대오는 짝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생일파티에 참여하지만 그것이 진짜 생일파티가 아니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지요. 얼떨결에 대학생이 되었고 미 문화원에서 시위를 하고 있는 진짜 대학생들과 마주치게 됩니다. 그러니깐 이 두 영화는 가짜가 진짜를 만나면서 진짜가 되는 과정을 다루는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이렇게 심각한 상황의 소재를 웃고 넘길 수 있는가라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코미디로 위 두 영화는 만들어졌지만 외국인 노동자도, 시위하는 대학생들도 비하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강철대오>의 상황은 결코 웃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위에 동영상만 보시더라도 이 사건이 상당히 심각한 사안이라는 것이죠.

그러나 코미디로 엮으면서 이야기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어떻게 보면 이 점이 이 영화의 장점이자 단점이 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심각하지 않고 유쾌하게 풀어나갔기에 당시 사건에 대해 관객들이 이해할 수 있고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이 영화는 미 문화원 시위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관객들에게 제공하지 않습니다. 자막으로 '1차 충돌', '2차 충돌' 등의 횟수를 나타내는 자막이 전부였고요. 그 후 이 사건이 어떻게 마무리 지었다는 자막도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1985년 당시 사건에 대한 정보를 너무 주지 않기 때문에 상당히 불친절한 영화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 영화를 관객이 코미디로 바라보느냐, 역사극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영화의 재미와 관심은 달라진다고 보여집니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당시의 고증을 완전히 무시한 것은 아닙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청산가리(사실은 비타민 C 가루였던...) 사건이라던가 문화원 관계자와 말이 안통해 고생하던 상황등은 실제로 일어난 상황이었고 코미디로 엮기에 충분한 상황이었습니다.

 

 

김인권 씨는 슬픔을 지녔지만 삐에로처럼 웃어야 사는 남자로 등장하며, <혜화, 동>에서 인상깊은 연기를 보여준 유다인 씨는 사실상 첫 상업영화의 첫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이외에도 박철민 씨나 하일(우리에게는 로버트 할리로 익숙한 분이죠.), 김미려 씨 등의 의외의 출연진들이 포진해 웃음을 주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반전을 주는 역할은 영민 역의 조정석 씨일 것입니다. 영화 <건축학 개론>의 납득이로 알려진 그이지만 사실은 시나리오가 먼저 온 것은 이 작품이었다고 합니다. 촐랑거리는 대학생으로 등장하지만 이후 전설의 시위 대학생으로 등장하여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많은 배우들이 까메오로 등장하거나 웃음을 주며 영화의 큰 재미를 주고 있습니다.

 

영화의 대부분은 민중가요가 등장합니다. '타는 목마름으로'를 비롯해 많은 노래들이 등장합니다. 우리가 접하기 힘든 음악들이죠.

그러나 의외의 곡도 흘러나오는데 김완선 씨의 '오늘밤'입니다. 혁명의 어려움을 방해하는 것을 어둠이라고 규정짓는 것에서 착안해 어둠이 들어간 노래츨 찾던 대오가 얼떨결에 부르던 노래였죠. 마치 전작 <방가?방가!>의 편승엽 씨의 '찬찬찬' 만큼이나 외외의 선곡이었다고 보여집니다.

 

 

 

 

이 영화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단순한 코미디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철가방 배달원과 여대생의 러브스토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역사적 사실을 서사적으로 심각하게 푸는 영화도 있지만, 육상호 감독처럼 역사적 사실을 웃음으로 풀어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임상수 감독의 <그 때 그 사람들>의 장르는 블랙코미디라고 부르지만 쉽게 웃을 수 없는 영화였습니다. 어쩌면 진정한 블랙코미디는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웃고 있지만 극장문을 나선 순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분명한 건 사랑도, 혁명도, 민주주의라 불리우는 것들도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죠.

대오라는 가상의 인물이 역사 속으로 들어가 희생을 하였지만 과연 그 희생이 값진 일이었을까라는 의문을 갖게 됩니다.

이제는 그 희생을 강요하려는 사람도 생겨나고 있는 요즘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희생이어야 말로 멋진 일이 아닐까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