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영화입니다만 의외로 많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벌써 그렇게 되었군요. 영화 엔딩 크레딧에 50주년이라는 자막이 이 영화의 역사를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6명의 제임스 본드, 13명의 감독들, 그리고 46명의 악당들과 65명의 본드걸처럼 그 숫자를 파악하기 힘든 숫자들.., 그리고 23번째의 시리즈...
그렇게 007 시리즈는 우리에게 오래된 시리즈가 되었습니다.
많은게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지켜야 하는 것들도 있지요.
스물 세 번째의 007 시리즈... 영화 <스카이폴> 입니다.
터키 이스탄불... 영국 비밀첩보국 MI6의 요원들의 정보가 담긴 하드 디스크가 사라지짐과 요원들이 살해되는 사고가 발생됩니다.
제임스 본드(다니엘 크레이그 분)과 이브(나오미 해리스 분) 요원이 범인의 뒤를 쫓지만 악당과 격투를 벌이던 도중 본드가 총에 맞아 기차 밑 강물에 빠지는 사고를 당하게 됩니다. M(주디 덴치 분)은 그에 대한 부고 글을 작성하기 시작하고 그렇게 그는 사망처리 되는가 싶었습니다.
그러나 구사일생으로 본드가 살아나고 M 앞에 본드가 다시 나타납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MI6 본부의 폭발사고가 일어나고 요원들이 연달아 사고를 당한 책임을 물어 M을 사퇴시키려는 움직임까지 보입니다.
그 사이 새로운 차기 M으로 말로리(랄프 파인즈 분)이 거론되면서 보이지 않는 신경전도 나오는 상황입니다.
한편 이번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전 MI6 요원이었던 실바(하비에르 바르뎀 분)으로 밝혀지면서 긴장은 최고조에 이릅니다.
옛 애인 세버린(베레니스 말로히 분)을 인질로 잡은 실바는 결국 붙잡히게 되지만 치밀한 계산으로 탈출에 성공합니다.
다시 맞붙은 본드와 실바의 싸움... M의 불편한 관계까지 폭로했던 했던 그는 본드가 살던 저택에서 마지막 결판을 지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과연 승자는 누가 될까요?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영화였습니다.
너무 많은 것을 바꿔버린 영화라고 해야할까요? 더구나 어디서 본 듯한 내용들이 가득하다는 부분에서는 실망감을 느끼는 관객들도 많으리라 봅니다.
우선 영화에서 바뀌어버린 것들을 생각해보죠.
(여기서부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먼저 달라진 점은 세대교체의 변화라는 것입니다. 영화에서 M을 나이든 여성 국장 쥬디 덴치로 보여주었는데요. 주디 덴치는 그동안 007 시리즈에 오랫동안 등장에 수많은 제임스 본드에게 지령을 하달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왜 M이 여자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일부 분들의 불만도 있었으리라 봅니다. (그 분들을 모두 마초라고 하긴 그렇지만 웬지 모를 마초 근성에 사로잡힌 분들이라는 생각도 들었거든요.)
그런데 이번 작품에서는 M이 드디어 바뀝니다. (주디 덴치의 경우 1987년부터 M 역할을 맡았다고 하네요.) 영화의 말미에 M이 최후를 보여줌으로써 세대교체에 대한 예고를 하게 되는 것이죠. 물론 이 부분에 대한 암시는 앞에 등장한 말로리와의 신경전에서도 보여줍니다. 그녀의 본명도 공개가 되지요. 암호명이 아닌 실명이 등장하는 것도 영화에서는 거의 처음인 것 같네요.
과거의 M... 그러니깐 엠마에서 말로리로 변경되면서 새로운 M이 007 시리즈에서 지령을 내릴 것이라는 것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의 변화라면 Q의 변화입니다. Q는 본드에게 무기를 공급하던 연구원이었죠.
하지만 Q의 모습은 전작들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나이든 남성이었고 지금 봐도 허무맹랑한 무기들이 총출동하기도 했지요.
그런데 Q를 이번에는 아주 젊은 과학자로 바꾼 것입니다. 영화 <향수>에서 인상깊은 연기를 펼쳤던 벤 위쇼가 새로운 Q로 등장하는데요.
영화에는 아예 과거 007을 스스로 셀프 디스하는 모습도 보여줍니다. 펜에서 총으로 변하는 등의 무기는 기대하지 말라는 식의 대사였지요.
그러니깐 허무맹랑하고 불가능한 무기의 모습을 관객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실제 실용성이 있고 앞으로 가능성이 보이는 무기를 선보이겠다는 의미로도 해석됩니다.
이번 영화에서 무기가 초미니 위치추적기와 본드의 지문에만 반응하는 특수총이 이번 시리즈에 등장한 무기의 전부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많이 간소화되었다는 것이죠.
또한 IT 기술에 강한 모습을 보여주며 지금 시대에 중요한 것은 허무맹랑한 최첨단 무기가 아닌 IT 기술이 우선임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새로움을 이야기하는 007임에도 고민이 있다면 아마 전통성일 것입니다.
007 시리즈의 또 다른 특징이라면 전통성을 강조하는 부분입니다.
M을 데리고 본드가 보여준 것이 있는데 바로 애스턴 마틴 DB5 모델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이 모델은 지금은 클레식 카의 대표주자가 되었지만 1964년 작인 <007 골드핑거>와 1965년 작인 <007 썬더볼 작전>에 등장했다는 점에서 007의 전통성을 유지시키는 장치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차를 몰고 본드의 저택으로 향하는 장면에서는 아예 007 OST 중 메인테마를 다시한번 들려준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변주하거나 리믹스하는 등의 기교를 쓰지 않고 음악을 들려준다는 것입니다. '007 테마=전통성'의 공식을 다시한번 관객에게 상기시켜주는 것이지요.
또 다른 의문점... 이 영화의 제목인 <스카이폴>은 뭐지?
영화에 후반부에 이 비밀이 풀리게 됩니다. 물론 영화의 오프닝을 보더라도 이 '스카이폴'에 대한 힌트가 등장하긴 합니다. (오프닝을 화려하게 장식하던 영국 뮤지션 아델의 동명제목인 'Skyfall'는 정말 멋졌습니다. 007 시리즈의 또 하나의 전통이죠.)
바로 본드가 유년시절을 보낸 대저택의 이름이었던 것이죠. 재미있게도 이 저택은 실바와 마지막 설전을 벌이는 장소로 이용이 됩니다. 부모를 잃은 트라우마를 지닌 것도 바로 이 곳이었으니 그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임에는 분명한 것이죠.
그러고 보니 이 영화는 웬지 크리스토퍼 놀란의 베트맨 시리즈와 닮아있습니다. 특히 <다크 나이트>와 닮아있는데 어둠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대목이 바로 그것이죠. 본드는 베트맨이 되었고 실바는 조커가 되어버린 것이죠. 이런 트라우마를 왜 007 시리즈에 넣었는가라는 의문은 문제가 될 법도 합니다. 이 영화의 감독인 샘 멘데스는 물론이요, 각본가인 존 로간 포함 3인에게 묻고 싶은 대목이지요.
또한 실바와의 마지막 대결을 위해 스카이폴 저택 곳곳에 폭탄같은 부비트랩을 설치하는 장면에서는 영락없는 <나홀로 집에>였다는 것입니다.
전반부에는 화끈한 액션과 이야기가 있는 반면 후반부에는 어이없는 설정 때문에 관객들의 호불호가 갈렸던 것이 아닐까 추측이 됩니다.
액션이 생각보다 적었던 것도 <아메리칸 뷰티>등의 드라마 적인 작품들을 연출한 샘 멘데스의 특징일지도 모르겠지만 전반부 오프닝에만 주로 액션을 쏟아부은 점과 전편의 007 시리즈와 달리 본드걸의 활약이 약했던 점(다만 나오미 해리스의 본드걸 역할은 양자경의 본드걸 역할만큼이나 확실히 강렬했습니다. 그건 인정합니다.)은 좀 아쉬웠던 것이죠.
전반부에 너무 쏟아붙고 후반부에는 어이없는 설정과 고민을 하고 있는 본드의 모습을 보여주니 관객들이 이해를 못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새로운 007 시리즈는 장점과 단점이 골고루 있어서 호불호가 상당히 갈리는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장점부분은 너무 강하고, 반대로 단점부분도 너무 강하다는 것이죠.
속편에서는 새로운 인물로 시작되어야 하는 부분임을 감안할 때 어떻게 이야기가 진행될지 궁금해집니다.
50 주년을 맞이한 007 시리즈... 이제는 첩보물의 대명사가 되었지만 '본' 시리즈나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 등의 작품들이 007의 새로운 라이벌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의 진짜 원작자인 이안 플레밍(1908~1964)... 과연 그는 하늘에서 이 작품들을 보며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요? 정말 궁금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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