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대한 잡설들/오감만족... 이 영화 봤수?

[터치]우리는 길 잃은 고라니를 보았다... 생명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던진 영화!

송씨네 2012. 11. 16. 07:05

 

 

 

인간의 생명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요? 죽음을 우리는 너무 손쉽게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요?

여기 한 부부가 있습니다. 죽음으로 돈을 버는 여인과 사람을 죽일 뻔한 위기에 몰리는 남자가 있습니다.

늘 삶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던졌던 민병훈 감독의 신작... 영화 <터치>입니다.

 

 

 

 

 

성당... 어느 한 사람의 추모미사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좋은 곳으로 가셨을 거에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있지만 그냥 기계적으로 유가족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버림받은 노인들을 카톨릭 요양원에 돈을 주고 거래하는 수원(김지영 분)은 이제는 신부님(성준서 분)에게 그만 오라는 이야기까지 들을 정도입니다.

그녀는 간병인으로 병원에서 일하지만 이런 저런 비리 아닌 비리로 이미지도 좋지 않은 상태입니다.

더구나 의약품 도매상인 은아(윤다경 분)과의 거래로 몰래 약품을 빼돌려 환자에게 투약하는 불법도 저지릅니다.

한편 그녀의 남편 동식(유준상 분)은 고등학교 사격부 코치로 활약중인데 성적이 영 신통치가 않습니다.

사격부 선수인 채빈(채빈 분)을 나무라다가 자신의 해임소식을 듣게 되었고 이사장(손희순 분)에게 원치 않은 술접대와 성접대까지 해야하는 상황입니다.

동식은 알콜 중독으로 병원에서 금주령을 내린 상태라 술을 마실 수 없는 상황이지만 술만 마시면 그는 이성을 잃어버립니다.

음주운전 상태로 얼떨결에 채빈을 차에 치고 도망을 갔지만 결국 들키게 되고 절대 합의해줄 수 없다는 빈 아버지(김기승 분)으로 인해 수원은 고통스럽기만 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어렵게 보상없이 합의를 하고 다시 풀려난 동식 앞으로 숲속에서 그는 고라니를 발견합니다.

그런데 고라니를 발견한 것은 수원도 마찬가지... 딸 주미(김지영 분/아역)가 사라져 고통스러워하던 그녀에게도 고라니가 나타났습니다.

철없는 소년 정원(장정원 분)과 병마에 고통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그의 어머니(이승연 분)를 바라보며 수원은 고민에 쌓이게 됩니다.

그러나 동사무소도, 요양원도, 은아도... 그 모두 그녀를 도와주려 하지 않습니다.

길잃은 고라니... 과연 수원과 동식 부부에게 찾아온 고라니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요?

그리고 그들에게 희망은 찾아올까요?

 

 

 

 

사실 죽음을 우리가 실제 경험할 수 없습니다.

그야말로 간접경험을 하는 방법이 바로 내 옆의 사람(가족이나 친구)가 생사의 갈림길에 오르내리거나 혹은 정말로 이 세상과 마지막 인연일 때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죽음에 대처하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니 뺑소니 사고를 일으킨 남자와 간병인으로 살아가며 노인들의 남은 여생을 지켜보는 여성이 바로 이들 주인공이라는 것입니다. 이들이 부부로 등장한다는 점도 인상적이죠.

 

 

문제는 극단적인 상황의 끝을 보여주는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음주운전의 남편은 알콜중독자에 자신도 없으면서 정의감에 불타오르는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더구나 자신을 포함한 세 식구를 먹여 살려야 하는 가장인데 감옥에서도 너무 편안하게 여유와 농담을 부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부인은 또 어떤가요? 돈이 없으니 돈많은 노인과의 불편한 관계를 해야하는 상황이며 간병인으로 살아가면서도 뻔뻔하게 병원 원무과장과도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정의감에 불타는 것은 남편보다도 더한 것이 부인인 수원입니다. 하지만 정작 자신도 속물이라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살아갑니다.

이 가운데 만난 정원이라는 소년을 만난 동기도 조금 어이없는 상황이죠. 변태적 성향을 지닌 정원이라는 소년은 자신의 욕구를 그림을 그리면서 해결하는데 그 때 나타난 수원의 딸 주미가 그것을 해소시켜 준 것이죠. (성폭행 장면은 등장하지 않아 확인은 어렵지만 폭행보다는 단순히 그림만 그린 것으로 확인됩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 소년을 수원이 따귀를 때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겠지요.)

 

 

막장으로 이루어진 상황에서 이들에게 나타난 것은 고라니 입니다.

사슴인가 고라니인가 약간은 헛갈렸지만 후반에 사냥터에서 고라니를 잡는 장면에서 볼 때 그들이 본 것은 고라니가 아니었을까 싶은데요.

고라니는 어쩌면 이들에게 여러가지 의미로 해석이 되는데요. 진실을 숨기고 있는 이들에게 고라니는 마치 수원과 동식에게 '그러지 말고 진실을 말해봐!'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아 보입니다. 한편으로는 행운의 상징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동식의 경우 사냥터에서 총구를 겨누긴 했지만 쏘지는 못했지요. 그리고 원수로만 여겨졌던 채빈이 청원서를 돌리면서까지 동식을 사격부 코치로 복귀시키려고 애를 쓰는데요. 전화를 받지 않았더라면, 혹은 고라니에게 총을 쏘았더라면 그에게는 불운이 왔을지도 모를 일이죠. 그가 사람이 아닌 고라니를 결국 쏴버린 마지막 장면에서 동식이 통곡을 하는 장면은 어쩌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대목입니다.

사실 뜬금없는 동물의 등장을 생각해보니 자크 오디아르 감독의 <예언자>도 떠오르더군요. (이 영화에서는 사슴떼가 등장했었지요.) <예언자>의 사슴떼가 생뚱맞았다면 적어도 <터치>에 등장하는 고라니의 모습은 감독이 의도적으로 상징하는 바가 분명히 보였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고라니의 모습은 인간의 생명과도 연결지을 수 있고 순수한 인간의 영혼을 대변하는 하나의 상징적인 동물이 아닐까도 생각되네요.

 

 

 

 

 

 

<넝쿨째 굴러온 당신>의 방귀남 유준상 씨와 <전원일기>의 복길이 김지영 씨가 만난 이 작품은 앞에도 이야기했듯 인간의 극한 상황이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주었는데 유준상 씨는 워낙 진지한 연기와 코믹 연기가 모두 잘 맞는 배우라는 점에서 이해가 가겠지만 김지영 씨의 연기는 의외라는 평가가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시트콤 <올드미스 다이어리>등의 작품을 통해 개성강한 연기를 보여주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저절로 그녀의 연기가 완성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죠.

재미있는 점은 유준상 씨의 대부분의 연기가 피범벅으로 이루어졌다면 김지영 씨의 모습은 땀범벅으로 이루어진 연기로 대조된다는 것이 상당히 인상적입니다.

 

 

이 영화가 개봉된지는 딱 1주가 넘어갔습니다. 2주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상영관이 줄어드는 사태가 벌어졌더군요.

이는 비단 <터치>만의 문제가 아니었지요. 김기덕 감독이 분노를 하는 이유가 납득이 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영화 <올드미스 다이어리-극장판>의 경우 퐁당퐁당 상영에 김조광수 대표는 불쾌함을 나타내기도 했고, <엽기적인 그녀>로 알려진 곽재용 감독의 <싸이보그 그녀>는 무가지 신문광고를 통해 상영관이 줄어든 것에 대해 불편한 심경을 광고로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민병훈 감독은 영진위에 이의를 제기하는 방식으로 이번 사태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였습니다.

 

 

멀티플렉스에서 독립영화는 마치 무덤(공동묘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독립영화 전용상영관은 상영관에 한계가 있지만 멀티플렉스는 노력만 한다면 상영관을 많이 개봉할 수 있는 것이죠. <워낭소리>나 최근 개봉된 <MB의 추억>같은 다큐들이 상영관을 늘린 것은 배급사와 관객의 힘도 있지만 극장들이 그만큼 열어준 결과이기도 합니다. 단지 개봉된지 한 달 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상영관을 일방적으로 줄인 것은 영화인들이 분노할만도 한 것입니다.

하지만 관객들의 영화편식이 나아질 기미가 없다면 독립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는 사라질 것입니다. 멀티플렉스 때문이라고 분노하시는 분들에게도 묻고 싶은 것이 발품을 팔아서라도 영화를 볼 의지가 있는가라는 의문입니다. 바쁜 시간을 쪼개 의식을 가지고 독립영화를 보시는 분들이야 말로 진정한 영화 마니아라고 봅니다. 그렇지 않고서 멀티플렉스에 불만만 제기하는 분들은 그럴 자격이 없다고 감히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민병훈 감독은 <벌이 날다>, <포도나무를 베어라> 등의 작품을 통해 인간 관계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다룬 감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번 작품도 그에 대한 연장선상이라고 보여집니다. 사실 그의 '두려움에 대한 3부작' 중 제가 유일하게 본 영화가 <포도나무를 베어라>였는데 정말로 생각이 많은 감독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번 이야기는 새로운 이야기로 그 시작점이 되는 작품인데 감독의 제작 의지를 빼앗아 버리는 행위가 이어진다면 영화를 만들려는 의지도 사라지겠지요. 김기덕 감독에 이어 상영중단을 선언한 이번 사태가 어떻게 이어질지 모르겠네요.

현재로써는 아직 상영관은 많이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퐁당퐁당 상영이라 불리우는 교차상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예매사이트에 <터치>의 상영관이 사라지지 않는한 아직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는 남아 있습니다.

생명의 존중에 대한 의문을 관객에게 던지는 이 영화... 늦기 전에 만나보시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