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대한 잡설들/오감만족... 이 영화 봤수?

[홀리 모터스]'네'가 '내'가 되고, '나'는 '내'가 되는 이야기... 레오 카락스의 난해한 충격 요법!

송씨네 2013. 4. 1. 12:05

 

 

 

140자로 말해봐 @songcine81 (http://twitter.com/songcine81)

'이게 뭐야?'라는 의문이 들것이고 짧은 시놉시스만으로는 이해가 안되죠. 내가 네가 되는 이야기인데 수많은 타인이 되며 누가 누구를 연기하는가에 대한 의문도 갖게 되지요. '홀리 모터스'는 회사명이자 다양한 인간들의 집합소 입니다. 

 

이 영화, 이렇게 보세요

레오 카락스의 영화들은 범상치가 않죠. <퐁네프의 연인들>(1991), <소년, 소녀를 만나다>(1984) 등의 대표작이 있지요. 사실 오래간만에 컴백작이라 전작들을 챙겨보시는 것이 좋겠지만 그의 스타일이 대략 어떨지 궁금하시다면 옴니버스 영화 <도쿄!>(2008) 중 <광인>을 참고하시면 될 것 같네요. 봉준호 감독과 미셸 공드리가 도쿄를 배경으로 했던 특이한 옴니버스 영화인데 <광인>의 대부분의 장면이 바로 오늘 소개할 영화 <홀리 모터스>에 일부 들어가 있음을 생각하신다면 이해가 가실지도 모르겠네요.  

 

저는 그에 대해 어떻게 소개해야할지는 모르겠습니다.

저는 영화블로거이지만 보지 못한 고전이 많습니다. 그리고 영화학을 공부한 경험이 전혀 없기 때문에, 그리고 책과는 담을 쌓기 때문에 영화관련 전공서적도 읽지 않지요. 오직 영화 잡지나 영화 포털을 통해 공부를 하는 편입니다. 그런점에서 예술영화의 개봉이 서서히 늘어나던 1990년대 중반에 보던 영화들도 어려움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죠. 고 2짜리 애송이가 이해하기에는 당시 영화들은 좀 어렵긴 어려웠죠. 그 중 아직 접해보지 못한 감독 중 한 명이 바로 레오 카락스 감독입니다.

 

기존 기성세대와 다른 영화를 만들겠다는 '누벨바그 운동'(Nouvelle Vague)에는 여러 영화인들이 있었겠지만 아무래도 <소년, 소녀를 만나다>와 <퐁네프의 연인들>을 만든 레오 카락스를 빼고 이야기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겠지요. 그는 '누벨바그 운동'에서 영향을 받은 한단계 업그레이드 된 '누벨 이마쥬'(Nouvelle Image)의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그의 영화를 한 편도 보지 않은 상태에서 과연 이 리뷰를 쓸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섰지만 아마도 이 영화를 접하신 분들은 '그가 이런 감독이구나!'라는 것을 저처럼 느끼셨을지도 모르겠네요.

오랜 공백을 깨고 돌아온 그의 다섯번째 장편... 영화 <홀리 모터스>(원제 Holy Motors)입니다. 

 

 

 

 

 

쥐죽은 듯이 고요한 극장... 한 남자가 벽면 뒤의 어딘가의 작은 방 침대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고요하지만 분명 극장에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죽었는지, 잠들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죠.

한편 또 다른 사내가 길다란 리무진에 탑승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오스카(드니 라방 분)로 말끔하게 차려입은 옷을 입고 어딘가로 향하고 있습니다.

여러장의 내용이 담긴 파일이 보이고 이 리무진의 운전자이자 지시를 알리는 셀린느(에디스 스콥 분)은 그에게 지령을 내리기 바쁩니다.

그런데 이 리무진의 비밀은 곧 밝혀집니다. 분장실이 딸려 있는 이 곳에 오스카는 실리콘 가면에 스스로 분장을 하고 있습니다.

거리의 노파가 되었다가 알 수 없는 야광센서가 달린 쫄쫄이 옷을 입고 정체 불명의 여성과 춤을 추고 있습니다.  

차는 정신없이 달리고 있고 그는 외눈박이 걸인이 되어 촬영중인 모델(에바 멘데스 분)을 납치하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아무일 없다는 듯이 오스카는 다시 분장을 마치고 딸 앙젤(진 디슨 분) 밖에 모르는 딸 바보가 되어 있습니다.

시간을 흘러 어느 순간 오스카는 살인을 저지른 뒤 분장한 자신의 얼굴과 바꿔치기는 물론, 죽음을 앞둔 갑부 노인이 되어서는 조카 레아(엘리스 루모 분)의 간호를 받고 있고요.

자, 이제 시간은 자정을 행해 가고 있습니다. 마지막 의뢰를 받기 전 그는 낡고 오래된 백화점 건물 터에서 그레이스(카일리 미노그 분)를 만납니다.

그녀도 리무진에서 누군가의 의뢰를 받고 누군가를 대신하고 있는 중인 것 같습니다. 서로 사랑했던 두 사람은 다시 만날 수 없는 관계임을 인정합니다.

마지막 의뢰... 바로 오스카 자기 자신입니다. 밤이 깊어오고 그는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하는 순간입니다.

 

 

 

 

 

 

 

<홀리 모터스>는 줄거리로 요약하기가 난해한 영화입니다.

리무진에서 미션을 의뢰받고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런 모습들은 하나같이 연관성이 없고 불친절하게 툭툭 끊기는 느낌도 있습니다,

주인공 오스카는 어떤 이유로 누군가의 의뢰를 받아 다른 사람의 일을 대신하는가에 대한 이유를 말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이 영화의 감독인 레오 카락스의 의도이기도 하고요. 다양한 인간군상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가령 거지의 경우에도 그냥 구걸을 하는 거지도 있고 행패를 부리면서 제멋대로 사는 망나니의 모습을 한 걸인의 모습도 보입니다. 다양한 직업군은 아니더라도 중산층의 사내도 보이고 이제 죽음을 맞이하는 나이 든 갑부도 보이죠.

이 중에 오스카의 진짜 모습도 있고 가짜인 모습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느게 진짜 오스카인지는 보여줄 생각도 하지 않고요.

어쩌면 이게 레오 카락스의 스타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불친절하지만 위트도 빼먹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이죠.

 

 

 

이 영화의 주제는 끝에 가면 갈수록 더 선명하게 보입니다. (아니, 그렇게 착각을 들도록 만듭니다.) 오스카가 집으로 들어가고 셀린느는 자신의 리무진을 몰고 어디론가 들어갑니다. 바로 이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홀리 모터스'라는 이름의 건물이 보이고 검정과 하얀 리무진은 이 회사 안의 건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자신의 얼굴을 가면으로 숨긴 상태로 하루의 일과를 마치지요. 셀린느는 집행자인 동시에 자신도 이 '홀리 모터스'라는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직원이라는 얘깁니다. 하지만 그녀는 얼굴을 숨기고 있습니다. 오스카가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다양한 얼굴을 하며 미션 아닌 미션을 수행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여기서 다시 저는 선명할 것만 같았던 주제에서 다시 멘붕 상태가 됩니다. 영화를 보던 관객들이 하나같이 '이게 뭐지?'라는 반응이 나오기 충분하죠.

 

 

 

결국은 인터넷을 뒤져 얼마전 레오 카락스가 국내에 내한했을 때 관객과의 대화 행사에서 이 영화의 의도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프랑스에서는 리무진을 이용해 결혼식에 활용하는 사람이 많았고 그 점을 유심히 관찰하던 레오 카락스는 남의 삶을 대여하는 것을 영화로 만들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것이 여행의 개념으로 약간 바뀌면서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하더군요.

결론적으로 볼 때 이 영화는 타인의 삶을 사는 사내의 하루 일과를 담은 영화라는 것이죠.

한편으로는 타인으로 하루동안 살아본다는 점에서 얼마전 <무한도전>의 '타인의 삶' 특집도 생각나더군요.

 

 

 

 

 

 

 

저는 웬지 모를 오스카가 엑스트라나 재연배우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냥 주연 배우 말고요.

주연 배우는 장기간 자신의 역할에 몰입할 수 있지만 재연배우나 엑스트라는 자신의 모습을 바꿔야 하며 한 회의 작품에서도 심지어는 여러가지 역할을 해야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연이나 조연배우들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연기를 하는 반면 엑스트라나 재연배우는 그 사람의 이미지를 기억해서는 안되는 임무도 띄고 있습니다. 주연보다 돋보이면 큰일나기 때문이죠. 제가 영화를 볼 때 이상하게 주연보다는 조연들, 그 중에서도 아주 너무 작아서 관객들이 눈치채지 못하는 역할들에 관심을 갖는 것도 그런 것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보게 되네요.

어쩌면 이 세상에서는 수많은 오스카와 그레이스(영화에서는 '진'으로 불리우지만) 처럼 남의 역할을 대신 해주거나 혹은 자신의 모습을 지워가면서 살아야 하는 슬픈 운명을 가진 사람이 많을 것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참으로 심각하고 오묘하고 어려운 영화입니다만 인상적인 장면이 있습니다. 리무진들의 대화 장면이 그것이죠.

심각하던 영화가 갑자기 리무진들을 의인화 시키면서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조금은 코믹해 보이는데요.

대화를 나누던 리무진 중에서는 폐차 직전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마치 군대처럼 상하 복종관계에 있는 모습들도 보이니깐요.

다 하나같이 하얕고 검정의 리무진이지만 이 중에 연식이 오래된 것이 있을 수 있을 것이고 더 이상 이 '홀리 모터스'에서 미션을 수행할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이 영화는 이렇게 한 사람의 삶을 대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동시에 집단생활(특히 직장같은)에서 보여지는 애환을 차를 통해 보여줌으로써 난해하지만 마지막에는 웃음을 주는 장면으로 끝을 맺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혼자 갖아봅니다.

 

 

 

드니 라방은 레오 카락스의 패르소나로 알려진 배우입니다. 레오 카락스의 장편에 모두 출연했을 정도로 아끼는 배우라고 생각됩니다.

이 영화에는 그의 독무대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다양한 삶을 살아가는 남자 오스카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한 명의 배우가 하나의 영화에서 여러 인생을 사는 모습을 보여주기란 쉽지 않지요. 그리고 그런 모습을 연기하는 것도 쉽지 않을텐데 그는 그 역할을 무리 없이 수행하고 있습니다.

'진' 역할의 카일리 마노그는 짧지만 강한 영화에 강한 임팩트를 남기는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가수로 많은 남성들의 마음을 뒤흔든 여인이죠. 80-90년대 팝의 음악의 절정기를 구사하던 인물이고요. 영화에 'Who were we?'라는 제목의 노래를 부르며 기구한 두 사람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는데요. 참으로 인상적인 장면이었죠. 셀린느를 연기한 에디스 스콥은 자세한 소개가 나와 있지는 않지만 프랑스 영화의 대부분에서 많은 활약을 보였던 여배우입니다. <퐁네프의 연인들> 뿐만 아니라 <여름의 조각들> 등의 영화를 통해 알려진 배우입니다.

 

 

 

이 영화는 음악도 남다르죠. 앞에 이야기한 카일리 마노그가 부른 'Who were we?'라는 노래도 그렇고 'Let my Baby Ride'라는 곡처럼 점점 악기와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축제의 분위기로 등장했던 장면과 음악들도 있었습니다. 스팍스(Sparks)라는 팀의 'How Are You Getting home?'도 인상적이었고요. OST 출시 관련 자료가 하나도 없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는데요. 그 마음을 달래보고자 이번에는 영화에 삽입된 두 개의 노래들을 소개해보기로 하죠.

 

 

 

 

 

 

 

 

 

 

 

 

 

 

<홀리 모터스>는 타인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네'가 '내'가 되고, '나'는 '내'가 된다는 이야기로 생각해도 좋을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남의 말만 믿고 내 생각은 포기한 상태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많이 보게 됩니다.

'누가 니 인생 대신 살아주니?'... 그런데 레오 카락스는 이것을 실천에 옮겼습니다. 참으로 재미있죠?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것은 영화일 뿐 실제 우리의 삶은 우리가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이 그렇게 한다고 본인도 그렇게 할 필요는 없죠. 자신이 좋다면 그 일을 하는 것이 행복한 일니깐요.

영화에서 오스카는 마지막 미션에서 단란한 가정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무미건조한 삶에 일탈도 꿈꿔보지 못한다면 짐승처럼 사는 것과 다를바가 뭐가 있을까요?

아마도 영화속 오스카와 레오 카락스는 우리에게 그렇게 살지말라고 충고라도 해주는 것 같습니다.

 

PS. (3/25 추가) 이 영화에 대해 영등위가 제한상영가 등급을 준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극장에서 틀 수 없다는 이야기죠. 이 영화 때문에 레오 카락스는 몇 십년만에 한국을 찾았습니다.

영등위는 그걸 알고 계신가요? 그리고 그놈의 왜설과 예술의 의미가 궁금합니다.

성기가 길게 나왔다는 이유로 제한상영가를 주었다고 하는데요. 그 기준이 궁금합니다.

엿장수처럼 마음대로 기준을 정한다면 그게 진정한 등급 심의라고 할 수 있을까요?

 

(4/1 추가) 결국 모자이크 처리 되어 상영... 영등위... 정말 대책이 안서는 기관입니다. ㅠ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