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대한 잡설들/오감만족... 이 영화 봤수?

[지슬-끝나지 않은 세월 2]조작된 이상한 이념... 제주 4. 3 사건의 진실을 집요하게 캐묻다!

송씨네 2013. 3. 20. 21:13

 

 

 

 

140자로 말해봐 @songcine81 (http://twitter.com/songcine81)

희곡과 비극이 있는 영화입니다. 웃음 속에 슬픔이 녹여져 있다니... 어긋난 편가르기의 결과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보여줍니다. 제주 4. 3 사건에 대해 더 궁금증을 가지게 만들었네요. 

 

이 영화, 이렇게 보세요

의외로 제주 4. 3 사건을 다룬 영화가 많습니다. <지슬>의 부제가 '끝나지 않은 세월 2'인데 1 편은 지금은 고인이 된 故 김경률 감독의 2005년 작품입니다. 그의 유작이죠. 현재의 시대적 배경에 4. 3 사건을 겪었던 두 제주도 출신의 노인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입니다. 한편 제주도를 배경으로 한 영화도 참 많았습니다만 대표적인 것이 이 작품의 연출을 맡은 오멸 감독입니다. 제주 방언을 제목으로 이용한 <뽕똘>(2010)과 <어이그, 저 귓것>(2009)인데 이 두 영화는 제작 시기는 다르지만 특이하게도 같은 시기에 동시개봉을 했습니다.  

 

제주 4. 3 사건을 정리한다는 것은 매우 힘든일입니다. 아직도 조사가 진행중이며 사상자 숫자는 우리가 생각했던 만큼 더 많았을지도 모르니깐요.

문제는 무고하게 희생된 사람들이라는 것이죠. 왜 죽음을 당해야 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무차별로 희생을 당했고 그들은 소위 말하는 '빨갱이'라는 낙인이 찍히게 됩니다. 이런 잘못된 이념을 심어준 사람은 누굴까요? 그리고 왜 그들은 희생되어야 했을까요?

제주의 숨겨진 아픔을 이야기한 영화 <지슬-끝나지 않은 세월 2>(영문원제 Jiseul, 이하 '<지슬>')입니다.

 

 

 

 

 

1943년 11월 제주... '해안선 5Km 밖 모든 사람은 폭도로 간주한다'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합니다.

이름 모를 어느 작은 마을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하나 둘 기약없는 피난을 가게 되지요.

홀로 계신 어머니를 놔두고 길을 떠나는 것이 마음에 걸리던 무동(박순동 분)의 모습도 보이고 어른들의 잔소리를 한몸에 받지만 넉살 좋은 경준(이경준 분), 자신의 다리는 말다리라면서 자신감을 보이는 상표(홍상표 분), 그리고 마을 처녀 순덕(강희 분)을 사모하는 순수청년 민철(성민철 분) 등의 동네 청년 삼인방도 보입니다.

한편 마을을 점령한 군인들은 주민들을 찾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주민들을 사살하지 않거나 사살자의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여지없이 얼차려를 받아야 하는 상황까지도 오게 되니깐요. 하지만 이들 중에도 자신이 잡고 있는 주민들이 정말 폭도인지는 이해가 가지 않은 이들도 있습니다..

상황이 악화되면서 마을 주민들은 동굴로 피신을 하게 되고 지슬(감자)로 끼니를 떼우는 상황이 되어버립니다. 이와중에 애지중지 여기던 돼지 때문에 고통스러웠던 원식이 삼촌(문석범 분)은 돼지를 찾기 위해 길을 나서게 되고 같이 만나게 될 것이라 여겼던 순덕은 행방불명 상태에 놓입니다.

주민들의 은신처가 발각될 위기가 생기자 상표는 군인들을 다른 곳으로 유인하지만 포로로 잡히게 됩니다.

작은 동굴이지만 나름대로의 생활을 하게 되면서 그들은 마음속의 평안을 갖게 되지만 그것도 평안도 잠시...

그들의 은신처가 발견되면서 또 한번 위기가 찾아옵니다.

 

 

 

 

 

 

 

얼마만에 보는 흑백 스타일의 영화인가 싶었습니다. 어쩌면 사건의 본질과 긴박했던 순간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칼라보다는 흑백화면이 더 어울렸을 영화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 대부분의 분들이 제주 4. 3 사건에 대해 모르실 것이라고 봅니다. 그럴것이 최근에 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는 위원회가 발족이 되었고 사건을 조사하는 움직임도 활발히 진행되었기 때문이지요. 간략하게 4. 3 사건을 이야기하자면 광복 이후인 1943년으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광복이후 일제강점기에 활동하던 사회주의 세력들 중의 일부가 제주로 진출하게 되었고 이에 미군정(광복 이후 북위 38도 이남의 남한에 진주한 미군이 설치한 군정청)을 지지하던 세력들은 이들의 움직임을 탐탁치 않게 여겼고 이들 세력을 공격하는 사건들이 벌어집니다. 문제는 이들 사회주의 세력들을 공격하는 과정에서 죄없는 제주도민들까지 학살되었다는 것이죠.

 

 

 

<지슬>은 4. 3 사건에서 숨겨진 일화들을 극으로 재구성한 작품입니다.

이 영화가 묘했던 것은 이들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너무 극적으로 이야기를 만들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바로 위에 스틸컷에서 보시다시피 주민 다섯명이 좁은 구덩이에서 대화를 나누던 초반 장면의 경우 의외의 유머가 터져나오기도 했으니깐요. 하지만 이 유머는 순박한 제주 주민들을 표현하기 위한 아주 적절한 장면들이었습니다.

자신의 목숨보다도 돼지의 상태가 더 걱정되었던 주민이라던가 미제 총기를 주워와 이것이 발사가 되느냐 안되느냐를 두고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들이 대표적이죠.

이렇게 희극으로 시작된 영화는 점차 비극으로 변하면서 가슴 아픈 제주의 과거를 끄집어내고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참혹함은 죄없는 주민들을 학살하는 과정에서 보여지는데요.

행방불명되었던 순덕이 군인들에게 잡혀 포로가 된 상황에서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인간의 잔인함을 보여주는데 성노리개로 그녀가 이용되는 것도 모자라 빨갱이라는 이유로 죽음을 당하는 상황까지 보여주고 있으니 정말 화가 날 노릇이지요. 선명히 남아있는 핏자국을 어쩌면 흑백화면으로 보여준 것은 그 참혹함과 비참한 상황을 어느 정도 가려야 하는 슬픈 현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는 이후 무동의 어머니가 처참히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에서 보여집니다. 자신을 해야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이야기하는 군인과 아들 무동 또래의 군인에게 죽음을 당하는 한탄이 더해지면서 보여지는 슬픔은 처참함 그 이상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의외로 인상적인 장면은 영화의 말미에 있었는데요. 학살의 과정을 지켜보던 군인 정길(주정애 분)의 모습입니다.

학살을 지시하고 지휘한 병사를 마을 간이 아궁이에 태워 응징하는 장면이 그것이었습니다. 철모에 가려저 표정을 알 수 없었지만 제 3자의 입장에서 묵묵히 학살과정을 지켜보던 정길의 모습에서 뭔가 일을 벌릴 것 같은 예감이 들었는데 웬지 그 예감은 틀리지 않았던 것 같네요.

(영화 개봉 이후 올라온 이야기인데 실제 주정애 씨는 여성분이라고 하네요. 주정애 씨가 맡은 정길은 학살 과정을 지켜보는 감시자의 역할이자 혼령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있네요. 왜 저는 여성이 군복을 입고 군인 역할을 했는가 궁금해 했는데 이런 이유가 있었네요.)

 

 

 

 

 

언론을 접하셔서 아시겠지만 이 영화는 개봉되기도 전에 해외 영화제에서 찬사를 받고 있는 작품입니다.

선댄스 영화제에서는 심사위원대상(월드 시네마 극영화 부문)을 수상한데 이어 얼마전에는 브졸국제아시아 영화제에서 황금 수레바퀴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보여주었으니깐요. 2008년 양익준 감독의 <똥파리>가 세계 영화제를 싹쓸이 했던 상황을 다시 떠오르게 만드는 유쾌한 출발을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것이죠.

어쩌면 이 영화가 수상을 할 수 밖에 만드는 이유가 거짓말 같은 사건이 제주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는 의미로도 해석이 된다는 것이죠. 그리고 여전히 가슴아픈 이 사건에 대한 기록과 조사는 계속 되고 있다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익숙한 얼굴이 하나도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배우들의 필모그레피들을 뜯어보면 많은 작품에 출연한 베테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요. <김씨 표류기>, <영화는 영화다> 등에서 단역으로 활약한 이경준 씨나 <잘 알지도 못하면서>의 홍상표 씨 등이 대표적인 예이죠. 그외 대부분의 배우들은 크고 작은 상업영화와 독립영화에 출연해 자신의 몫을 해냈다고 보여집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오멸 감독은 실제 제주도 출신으로 제주를 매우 사랑한 나머지 제주도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실제로 많은 단체에서 활약함은 물론이요, 제주 독립영화 발전에도 많은 기여를 한 감독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감자를 뜻하는 제주방언인 '지슬'은 영화의 제목이기도 하지만 마을주민들이 생존을 위해 먹어야 했던 음식으로 등장하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무엇보다 무서운 것은 생존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일 것입니다. 하지만 살아야 함에도 많은 사람들과 단체는 여러 말도 안되는 이유로 삶을 살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아직도 사람들은 편을 갈라 일부 진보인사를 '빨갱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우리의 피는 빨갛기에 색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이죠. 진보주의자들은 빨갛고, 보수주의자들의 피는 파랗고... 이건 아니잖아요.

정치적 이념과 지역적 갈등은 끊임없이 등장합니다. 과거에 비해 많이 그런 분들은 줄어들었지만 나이가 많으신 분일 수록 이런 쓸대없는 이념에 목숨거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분명한 것은 젊은 사람들에게까지 이런 이념을 세뇌시킬 필요는 없습니다.

자신의 생각이 옮다면 진보가 될 것이고, 보수가 될 것이니깐요. 말도 안되는 논쟁으로 시간 낭비를 할 바에는 건전한 토론으로 서로의 생각을 이야기해보는 것이 옮은 일이겠지요.

그런점에서 제주 4. 3 사건을 '빨갱이들 때문에 벌어진 일이니 당연한 것이다'라고 이야기하는 논리는 그냥 쓰레기통에 처박아 두셨으면 좋겠습니다.

억울하게 희생된 제주도민들에 대한 올바르지 못한 이념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많은 광주 시민들이 희생된 5. 18 혁명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고 이념과 사상을 조작하려고 든다면 그 죄의 무서운 댓가는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라는 것을 명심하셨으면 하네요.

아무쪼록 <지슬>을 통해 숨겨진 제주 4. 3 사건의 진실이 많이 알려졌으면 하는 생각을 갖아봅니다.

 

 

PS. 이 영화 시사회와 관련된 일화 하나...

저는 얼마전 2월 13일 국회에서 <지슬>의 시사회를 보았습니다. <경계도시 2>, <잼 다큐 강정> 이후 세번째 방문이었습니다.

(모르시는 분들이 있을까봐 알려드리는데 국회에서 열리는 영화시사의 경우 특별한 경우가 없는한 일반인도 자유롭게 관람을 할 수 있습니다. 대신 신분증을 꼭 지참하셔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시사회는 처음이네요. 장황스럽게 이 영화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정치인들을 소개하는데 30 분을 까먹는 일은 시작에 불구했는데요.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비매너도 보였고요. 프로젝터를 이용한 시사였기 때문에 프로젝터 영사기를 가리면 영화관람에 방해가 되는 것을 알면서도 스크린을 가리는 분들도 속출했습니다.

결정적인 것은 엔딩크레딧도 잘라먹는 모습까지...

이 영화의 엔딩크레딧에는 한 푼 한 푼 모아 영화 제작비에 써달라고 하셨던 후원 회원분들의 자막도 같이 올라가는데 말입니다.

나라를 사랑하신 나머지 국민의례나 4. 3 희생자를 위한 묵념까지 하신 것은 좋았습니다. 하지만 나라를 사랑하신다면 독립영화를 사랑하는 마음가짐도 갖아주셨으면 좋겠네요.

그게 야당이던 여당이건을 떠나서 말입니다.

국회 시사회가 영화 홍보에 도움이 되는 것은 잘 알겠지만 자신의 얼굴을 알리기 위해 관심도 없는 영화보러 오신 높으신 분들은 차라라 관람을 안하시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울러 배급을 담당하는 분들도 소신있게 차라리 이런 분들에게는 영화를 상영하지 않는게 더 이득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PS 2(4/12 추가). 국회의워님들 덕분에 엔딩크레딧 관람을 망쳐버린 저는 이후 다시 이 영화를 보았습니다. 그렇다보니 놓친게 있었네요.

바로 이 영화의 주제가이자 제주도에서는 늘상 부르는 곡 '이어도사나'입니다. 이 영화의 OST에 참여한 양정원 씨의 거리 공연 동영상 하나 소개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