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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홍상수 감독의 '인셉션'... 꿈이여, 깨지 말아다오!

송씨네 2013. 3. 4. 20:06

 

140자로 말해봐!

너무 공중분해 되어 끼워 맞추기 어려운 기억의 파편들을 보고 있는 느낌입니다. 홍상수 감독이 '인셉션'을 만들면 아마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싶네요. 현실과 꿈의 경계도 보이지 않으니 분리작업은 필수! 더불어 관람 후 남한산성 방문 역시 필수!

 

이 영화, 이렇게 보세요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는 특징이 있습니다. 남성들의 찌질함과 반대로 여성들은 당당하다는 것이죠. 남성들이 불쾌할 수 있는 요인이긴 하지만 그만큼 재미를 느끼는 것이 홍상수 영화의 특징입니다. 또한 최근 들어서는 자신의 영화에 클레식을 삽입하는 것이 인상적이죠. 하단에 그 이야기를 하겠지만 홍상수 영화 속의 클레식 찾기도 재미있지 않을까 싶군요.  

 

 

우리는 늘 꿈을 꾸고 살아갑니다. 잠을 잘 때나 현실 속에서 말도 안되는 상상을 살아갈 때도 꿈이죠.

그 꿈이 희망적이라면 좋겠지만 대부분의 꿈은 꾸고나면 한순간 개꿈이 되어버리는 슬픈 현실입니다.

사랑을 꿈꾸지만 자신의 키다리 아저씨를 기다리는 여인이 여기 있습니다.

그녀의 키다리 아저씨는 과연 누구일까요? 홍상수 감독의 신작 <누구의 딸도 아닌 햬원>(영문원제 Nobody’s Daughter Haewon)입니다.

 

 

 

 

해원(정은채 분)은 어머니와 이별을 준비중에 있습니다.

어머니인 진주(김자옥 분)은 가족들이 있는 캐나다로 이민을 갈 예정이기 때문입니다. 해원만 남겨놓고 말이죠.

식사를 하고 사직공원에도 들려 보고 어머니의 모교도 찾아가 봅니다.

거리를 거닐다보니 수염이 덮수룩한 동주(류덕환 분)이 카페에서 서성거리고 있고 원하는대로 헌 책을 사가면 된다는 말을 이들 모녀에게 남깁니다.

몇 일 후 유부남인 교수 성준(이선균 분)을 만났습니다. 교수와 제자 사이 그 이상입니다.

학교 동기들은 성준과 해원의 관계를 알아차린 눈치이고 그들의 위험한 데이트는 절정을 맞이한 상태입니다.

남한산성에 들린 두 사람은 서로의 관계를 확인하던 도중 흔적은 남겨 둬야 한다는 성준과 흔적을 남기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이야기하는 해원 사이에 의견충돌이 생깁니다.

몇 일 후... 해원은 다시 사직공원 주위를 걷고 있고 미국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중원(김의성 분)을 만납니다.

매우 친절하게 그녀에게 다가왔던지라 해원도 그렇게 싫지만은 않았습니다.

약속이 있어서 자리를 먼저 떠난 해원은 남한산성에서 친한 지인인 연주(예지원 분)과 그녀의 남자친구인 중식(유준상 분)을 만납니다.

그러나 연주와 중식의 관계도 불륜 관계... 세 사람이 남한산성을 오르던 중 성준에게 전화가 왔고 무작정 남한산성에 오겠다고 합니다.

뭔가 꼬여버린 상황을 맞이한 해원... 근데 일어나보니 꿈입니다. 정말 꿈이었을까요?

그리고 그녀의 기억 속에 남은 착한 아저씨는 과연 누구였을까요?

 

 

 

 

 

우선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과연 해원이 꾼 꿈은 어디까지가 꿈일까요?

이 넌센스 같은 문제는 어쩌면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서는 늘 관객들에게 홍상수 감독이 던지는 질문이자 반대로 관객들이 홍상수 감독에게 묻는 질문 같습니다.

우리는 이미 이런 페이크(속임수)를 그의 전작인 <다른나라에서>를 통해 본 적이 있습니다.

안느(이자벨 위페르 분)가 숙소에서 휴식을 취하던 중 영화감독 문수(문성근 분)을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결국에는 만나게 되는데 과연 그게 진짜였는지 가짜였는지를 확실하게 보여주지 않았던 것이죠. 그런데 이런 작전을 이 영화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에서 다시 써먹고 있는 것이죠.

 

어떻게 보면 홍상수 감독의 스타일에는 슬슬 질려버릴 때가 된 것도 사실입니다.

저도 솔직히 말해서 그런 느낌이 이번 작품을 통해 조금씩 드러난 것 같기도 하고요. 하지만 홍상수 감독은 조금씩 방식을 관객들도 모르게 바꾸고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관객들이 그걸 모른다는 것이죠.

 

우선 여성들에게 지배되는 남성의 관계입니다. 홍상수 영화의 남자들의 대부분이 찌질하고 여성들에게 대해 배려가 없는 이들로 묘사가 됩니다. 그렇다보니 항상 의견 충돌을 일으키는 것을 먼저 제공하는 것도 사실상 남자라는 것을 보여주죠. 반면 여성들은 생각이 깊고 이성적으로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다만 남성들에게는 기가 절대 죽지 않으며 오히려 남성들을 제압한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죠. 일반적인 한국영화나 외국영화들이 마초 중심의 남성들에게 여성들이 꼼짝없이 당한다고 볼 때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전혀 다른 방향을 보여준다는 것이죠. 하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여성들이 남성들의 기를 죽이게 만드는 상황들이 별로 드러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남성들에게 윽박지르고 자신의 주장만 내세우던 기존의 홍상수 영화 스타일에서 약간 한발짝 뒤로 물어난 느낌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영화 속 해원은 홍상수 감독 속 여성 스타일의 계보를 그대로 밟고 있지만 어딘가 모르게 약간은 순한 인물로 그려졌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죠.

 

 

두 번째는 홍상수 영화의 음악의 변화입니다. 어떤 분이 SNS를 통해 한국영화에는 클레식이 없다고 이야기를 하시더군요.

생각해보니 그 말이 맞더라고요. 저작권의 문제도 있겠지만 그래도 오래된 클레식들은 저작권이 풀렸으니 어떻게 보면 팝보다는 저렴한 수준으로 저작권 문제를 해결하고 음악을 틀 수도 있는 상황임에도 클레식이 사용되는 경우는 없더군요. 한편으로는 이 이야기는 우리나라 영화에는 감성적인 멜로가 부족하다는 의미로도 해석이 되거든요. 잔잔한 클레식이 흘러나오면서 멜로장면이 극대화 되어야 하는데 우리나라에는 그런 영화는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갑자기 딴 길로 갔죠? ^^; ) 홍상수 영화에서 클레식 음악을 본격적으로 들었던 것은 아마도 2010년 작인 <옥희의 영화>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위풍당당 행진곡'이 흘러나오는데 재미있게도 영화 속 상황은 전혀 '위풍당당'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옥희(정유미 분)로 인해 희생된(?) 남성들의 찌질함을 비꼬는데 이 '위풍당당 행진곡'이 사용되었기 때문이지요. (자세히 확인해보니 진짜 클레식을 본격적으로 사용한 것은 2008년 <밤과 낮>이었군요. 곧 이야기하겠지만 여기서 베토벤의 음악이 등장합니다.)

 

 

 

 

그렇다면 이 영화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은 어떨까요? '베토벤 교향곡 7번 2악장'이 이 영화에 삽입되었는데 성준은 해원에게 자신이 이 음악을 약간 편곡했다며 남한산성에서 자신의 워크맨으로 이 음악을 들려줍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밤과 낮>에 처음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음악은 해원이 놀라거나 만족할만한 그 어느 대꾸도 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냥 성준의 자기 만족이고 그것을 위안 삼으며 별 이유없이 이 음악을 계속 틀면서 듣고 있다는 것이죠. 심지어는 펑펑 울면서 그 음악을 듣고 있지요. (이렇게 표현하면 그렇겠지만) 마치 성준과 해원은 관계를 맺고 나서 성준은 해원에게 만족하냐고 묻지만 대답할만한 가치를 못느끼는 것이죠. 마치 홀로 앉아 베토벤 교향곡을 틀고 있는 것은 그만의 자위 행위가 아닐까라는 위험한 상상을 해보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영화속 베토벤 교향곡은 성준의 찌질함을 보여줄 수 있는 홍상수 감독 방식만의 암호라고 보여집니다. 그리고 이런 클레식을 통한 홍상수 감독의 남성들에 대한 비유는 아마도 계속 될 것이라고 생각되네요.

 

홍상수 영화에는 확연히 드러나는 페르소나들이 등장합니다. 가령 이선균, 유준상, 김의성, 예지원, 정유미 등의 인물들이 그런 예라고 볼 수 있지요.

또한 고현정 씨 같은 의외의 페르소나들이 탄생되기도 하는데 이번 영화에서 예지원 씨나 고현정 씨를 대신하는 새로운 인물로 정은채 씨를 선정한 것은 의외라고 생각됩니다. 물론 영화계에서는 여전히 신인이지만 의외로 많은 작품을 해왔었고 연기력이 확실히 입증되었기에 홍상수 감독의 새로운 페르소나로는 적합하다고 보여집니다. 저는 개인적으로는 <초능력자>와 <플레이>에서의 모습을 봤던지라 그녀 역시도 상업과 독립을 넘나들며 멋진 연기를 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외에도 홍상수 영화에 빠지지 않는 분들... 앞에 이야기한 페르소나들이 총출동하며 이번 작품에는 특이하게도 김자옥 씨라던가 기주봉 씨, 류덕환 씨의 얼굴도 볼 수 있습니다. 특히나 기주봉 씨의 경우 남한산성을 사랑하는 등산인으로 등장해 해원과 성준의 사이에서 이야기를 건내는 인물로 등장하여 잠깐이지만 미친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이 영화는 근래의 홍상수 영화 중에 미스테리 추리극이 아닐까라는 묘한 생각도 해봅니다.

해원이 꾸었던 꿈의 경계가 어디까지인지도 이야기하지 않았으며 그녀가 이야기한 친절한 아저씨가 누구인가라는 이야기도 하지 않았으니깐요.

용의자는 많은데 알 수 없는 결말을 보여주었지요. 홍상수 영화의 묘한 추리극이라는 장르는 묘하지만 보고나니 그런 느낌도 드네요.

영화를 보고나니 남한산성을 가보고 싶네요. 홍상수 영화에는 늘 여행지를 추천하는 느낌이 드는데 이번 작품도 마찬가지이거든요.

북촌방면은 지겹게 보았으니 이제는 남한산성도 둘러봐야겠군요.

 

PS. 해원 모녀가 걷는 사직공원 길에는 진주가 다녔다는 학교가 나옵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 학교안으로 들어가지 않지요.

영화에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사직공원 근방에 있는 대학교는 배화여대 하나 뿐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진주 역의 김자옥 씨가 졸업한 곳은 한양대입니다.

디테일과 즉흥성을 좋아하던 홍상수 감독도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네요.

아울러 이 영화에는 제인 버킨이 등장합니다. 유명한 뮤지션이죠 그녀의 딸은 명배우 샤를로뜨 갱스부르 입니다.

홍상수 감독은 참으로 운이 좋은 감독이라고 드는 것이 <다른나라에서>에서 이자벨 위페르에 외국인을 기용한 두 번째 영화가 되었기 때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