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서린 비글로우의 전쟁을 다루는 방식은 탁월합니다.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거기에 특이하게 여성 주인공의 눈으로 바라보았다는 발상도 신선... 다만 그렇게 러닝타임을 질질 끌만큼의 이야기인가는 의문!
이 영화, 이렇게 보세요
우선 이 영화처럼 빈 라덴을 사살하는 작전을 이야기했던 영화중에는 <코드네임 제로니모>(2012)가 있습니다. 이 영화와 비교해서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고요.
아울러 <제로 다크 서티>는 빈 라덴의 본거지와 배후 인물을 알아내기 위해 고문을 하는 장면들이 나오는데요. 음악을 이용하는 고문 장면도 등장하는 등 다양한 고문 장면이 등장합니다. 실소를 금치 못하는 고문 장면이 등장하기도 하는데요. 어떤 고문들이 등장하는가 궁금하시다면 <초(민망한) 능력자들>(원제 The Men Who Stare at Goats/2009)을 보시는 것도 추천합니다.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라는 의문이 드신다면 다큐 <아르마딜로>(2010)도 추천하고 싶군요.
미국은 걸프전으로 인해 이라크와 적대관계를 갖았고 사담 후세인은 악의 축으로 불려왔습니다.
후세인이 사라지고 더 이상 골치 아픈 전쟁은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미국은 의외 끝판왕을 만나게 됩니다.
바로 오사마 빈 라덴이죠. 이제는 파키스탄의 어딘가에 숨어 있는 그와 싸워야 하는 사람들...
여 감독으로는 드물게 군대와 군인, 군사와 관련된 이야기를 만드는 감독이 있습니다.
<K-19>, <허트로커>에 이은 남자보다 더 군인들의 이야기를 알고 있는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
그녀의 또다른 전쟁 대서사시가 시작됩니다. 영화 <제로 다크 서티>(원제 Zero Dark Thirty)입니다.
2001년 9월 11일... 미국 중심부의 쌍둥이 빌딩 중 하나가 흔적도 없이 두 동강 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그로부터 몇 개월이 지났습니다. 심리학을 공부한 CIA 요원 댄(제이슨 클라크 분)은 9. 11 배후를 조사하고 있고 조사를 받는 남자는 심한 고문을 당하고 있는 중입니다.
한편 CIA 요원을 어렸을 때 부터 꿈꿔온 여성 요원 마야(제시카 차스테인 분)은 파키스탄에 내려와 이번 사건을 조사하기로 합류합니다.
가까이 고문 현장을 보고 싶지는 않지만 수사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요.
그들은 이번 사건의 배후가 빈 라덴이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만 빈 라덴이 어디에 있는지, 그를 누가 조종하고 있는지, 자금은 누가 공급하고 있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상황에 답답하기만 합니다.
연락책 중 일원인 마흐메드를 찾는데 총력을 기울이지만 그것도 쉽지 않은 일... 어렵게 그들은 그의 이름이 아브라함 사이드가 본명인 것을 알아내고 수사에 박차를 가합니다. 하지만 오바마 정권이 들어서면서 더 이상 고문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수사는 점차 어렵기만 합니다.
더구나 파키스탄 지부장인 브래들리(카일 챈들러 분)과의 의견 충돌은 끊임없이 이어지기만 합니다.
그 사이 가장 절친했던 여성 요원인 제시카(제니퍼 엘 분)을 비롯한 많은 동료를 잃어버리는 상황이 발생되면서 마야의 분노는 더욱 더 커지게 됩니다.
어렵사리 발견한 빈 라덴의 본부로 의심되는 저택... 하지만 확신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속에 이 곳을 공격할 것인가의 고민은 더해져 가고 결국 이 곳을 공격하기로 결정합니다.
일명 카나리아 작전... 과연 그들은 빈 라덴을 처치하게 될까요? 그리고 마야의 마음 속에서도 평화가 찾아올까요?
일단 이 영화의 감독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바로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이죠.
그녀의 필모그레피를 우선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왜 그런 소리를 하는지는 보시면 이해가 되실텐데요.
우선 일반적인 여성 감독들의 행보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맬로가 없으며 코미디가 없습니다.
스릴러나 액션이 많고 범죄 영화도 있습니다. 그리고 재미있는 점은 군인을 소재로 한 영화를 많이 만들었다는 것이죠.
핵잠수함 이야기를 다룬 <K-19>(2002)를 보고나서 나중에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이 여성이라는 것을 알고 저는 깜짝 놀라게 되었지요. 흥행은 성공하지 않았지만 여성 감독에서 볼 수 없는 거친 느낌의 영상들과 소재들이 인상적이었지요. 그리고 그녀는 <허트로커>(2008)를 통해 전 남편인 제임스 카메론과 결코 꿀리지 않는 경쟁을 하게 됩니다. 거기에 아카데미에서는 그녀에게 여러 상을 안겨주기도 하지요.
어쩌면 이 정도의 나열만으로 이 영화 <제로 다크 서티>는 봐야만 하고 기대할 수 밖에 없는 영화임을 말해주게 됩니다.
그리고 이번 소재 역시 만만치가 않다는 것이죠. 바로 9. 11과 빈 라덴 저격을 다룬 소재라는 것입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빈 라덴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 그의 저격을 다룬 영화들에 대한 제작 소식이 들려왔고 그게 매우 불쾌하다는 느낌마져 들었습니다.
철저한 계획으로 영화를 준비하는 것이 아닌 기획적으로 영화를 만든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돈을 벌기에는 참으로 좋은 수단들이죠.
기왕 영화를 준비하는 것이라면 시나리오 단계부터 몇 년이 들더라도 천천히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 것인데 그런점에서 빈 라덴의 저격 이야기를 다룬 영화의 소식은 그리 유쾌하지 못했던 것이죠.
사실 애초에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은 이 영화를 만들 계획이 없었지만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헐리웃의 경우도) 제작사가 당초 비글로우 감독이 계획하려던 영화에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서 빈 라덴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기로 마음을 바꾸었다고 전해집니다. 어쩌면 비글로우 감독에게는 빈 라덴이 영화로 만들어야만 했던 운명을 지닌 귀인 아닌 귀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네요.
그러나 영화를 보고나서 제 생각은 약간은 바뀌었습니다. 여성 감독이 여성의 입장으로 빈 라덴의 행적을 추적한다는 것은 쉽지 않으니깐요.
이 영화에서는 두 명의 기집애가 등장하는데 한 명은 이 영화의 감독인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 자신이고 또 한 명은 이 영화의 여주인공인 제시카 차스테인이 그 주인공이죠. 심지어는 이 영화에서는 '기집애'라는 대사(<다이하드>를 비롯한 여러 영화에서 흘러나오던 'mother fucker'를 이렇게 번역했네요.)도 등장하는데 여성들은 남자들의 대화나 그들의 세계에 동참할 수 없다는 의미의 상당히 불쾌한 비아냥거림이지만 오히려 이 영화의 두 여성은 이 작품을 통해 그 고정관념을 무너뜨렸지요.
또한 기집애라고 스스로 마야가 셀프디스를 하지만 그것은 한 편으로는 작전 수행의 자신감을 나타내는 부분인데 여러 의미로 상당히 인상적인 단어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렇듯 <제로 다크 서티>는 여성의 눈으로 바라본 빈 라덴 작전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절대로 남자들에게 기죽지 않는 기센 여자의 무용담이기도 한 것이죠.
하지만 여자임에도 이 사건을 꾸려나가는 것은 쉽지 않았지요. 남자들도 힘든데 여성들이 이 사건을 파해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죠.
사무실에서는 무서운 눈매의 CIA 요원이지만 밖으로 외출을 하는 순간 그들도 평범한 여자들이니깐요. 그러나 메리어트 호텔 폭발 사건을 다루는 장면에서 보셨듯이 테러에는 남녀노소와 인종을 구분하지 않는다는 모습에서 상당히 살기가 느껴지는 부분이라고 봅니다. 더구나 아랍권 국가들은 여전히 미국을 적대 관계로 생각하면서 관광을 오던 무역을 하러오건 간에 어느 미국인도, 어느 백인들도 이 곳 파키스탄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음을 이야기하고 있는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어쩌면 이런 모습들은 빈 라덴 작전이 종료되고 나서의 마야의 모습에서도 느껴지는 대목인데요. 대형 수송 헬기에 몸을 맡긴 마야가 어디로 갈꺼냐는 질문에 쉽게 대답하지 못하는 부분이 아마 그것일 것입니다. 멘탈 붕괴의 상황으로 멍해진 자기 자신을 추스려보지만 사건이 해결되었다고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고 오히려 공허한 마음만 가득찬 것은 어쩔 수 없었나 봅니다.
이런 모습은 비글로우 감독 전작인 <허트로커>에서 볼 수 있지요. 몇 년전 <허트로커>의 리뷰에서도 밝혔지만 제가 생각했던 인상적인 장면이라면 제임스(제레미 레너 분)가 작전 임무를 마치고 자신의 조국으로 돌아왔음에도 여전히 자신의 삶에 정착하지 못하는 순간들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아마 마야의 모습도 제임스 같지 않았을까 생각이 되더군요. 폭탄 제거 전문가였던 사람이 정작 마트에 널려있는 수많은 씨리얼 중에 무엇을 골라야할지 모르는 그 상황들처럼 말입니다.
오히려 임무를 마친 마야의 모습에서도 평화로운 세상으로 돌아갔지만 그 곳에서는 적응을 하지도 못할 상황인지도 모르죠. 제임스가 결국 다시 피비린내 나는 현장으로 다시 찾았듯이 마야의 경우도 또 다른 빈 라덴을 찾으러 현장으로 돌아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 영화는 분명 잘 만든 영화입니다. 하지만 아쉬운 점이 마야의 이야기와 빈 라덴 생포 작전의 이야기를 모두 담으려다 보니 시간 조절에 실패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마야의 이야기와 빈 라덴의 생포작전 모두 비슷한 비율로 시간이 배분되었긴 하지만 너무 많은 시간을 배분하다보니 결국에는 러닝타임이 너무 길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느 이야기도 놓치고 싶지 않았던 비글로우 감독과 이 작품의 각본인 마크 볼의 심정은 이해가 가나 관객들의 생각도 해주었으면 하는 생각도 드네요.
만약 이 영화가 <반지의 제왕> 같은 판타지물이었다면 아마 많은 관객들이 러닝타임이 길더라도 집중하고 보았겠지만 액션이 없는 이야기만 나열된 초반의 부분에 지루해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어느 부분을 과감히 들어내고 어느 부분을 더 키워낼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해봤으면 하는 아쉬움도 듭니다.
독재자라고 불리우던 인물들은 하나같이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합니다. 히틀러, 후세인, 그리고 빈 라덴까지 말이죠.
물론 일부에서는 정말 9. 11이 빈 라덴의 소행이냐고 묻는 이들도 있고 빈 라덴을 잡기 위해 많은 군사와 자원과 돈이 낭비된 것이 아니냐는 비난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고문을 행하는 부분에 있어서도 포로들의 인권은 존중되었는가라고 묻는 것입니다.
아직도 전세계는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습니다. 총에 맞아죽고, 폭탄에 맞아죽고, 굶어죽고 등등 말이지요.
몇 년전 같으면 '위 아 더 월드'를 부르며 세계 평화를 이야기하겠지만 시대는 바뀌어 버렸고 오히려 소통의 벽은 예전보다 더 심한 상황입니다.
전쟁의 위협으로 우리나라 역시 편할 수는 없는 요즘... 진정한 평화는 언제 찾아오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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