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자로 말해봐!
4.3 사건과 해군기지 건설문제가 하나로... 왜 우리는 이런 슬픈 콜라보레이션을 봐야 할까요? 최근 제주 문제에 관심을 갖고 계신다면 이 작품도 꼭 보시길. '지슬'이 제주의 어제였다면 '비념'은 제주의 현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 이렇게 보세요
당연히 <비념>과 짝패인 영화는 말씀 안드려도 아시죠? 최근 개봉된 작품 <지슬>이죠. <지슬>이 4.3 사건의 과거를 이야기했자면 <비념>은 이후를 이야기합니다.
아울러 강정마을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는 점에서는 <잼 다큐 강정>도 같이 봐야 할 영화이죠. 이 두 작품 외에는 또다른 작품을 권한다는 것이 말도 안될 정도라고 생각됩니다.
제주도는 참 묘한 곳입니다. 섬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하나의 자치국가의 성격도 가지고 있고 관광자원도 많습니다.
가는 길마다 모두 그림이고 예술입니다.
하지만 제주의 슬픔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나마 최근 개봉된 영화 <지슬>이 제주부터 시작된 특이한 개봉방식 덕분인지는 몰라도 입소문을 타고 제대로 성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화를 보지 않은, 그야말로 악플을 쓰기 위해 태어난 것 같은 악플러들의 '그냥 싫어, 빨갱이 영화야!'라고 떠드는 사람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재미있게도 최근 <지슬>과 더불어 하나의 짝패처럼 붙어있는 영화가 개봉을 하였습니다. 다큐멘터리 <비념>(영문원제 Jeju Prayer)입니다.
제주 애월읍 남읍리... 굿판이 벌여지고 있습니다.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로하는 굿판인 것 같습니다. 노자돈도 보이고 그 노자돈을 올려놓은 종이들을 불로 태우고 있습니다.
이 곳에 사는 강상희 할머니... 그는 남편을 제주 4.3 사건에 잃었습니다.
이제는 고인인 된 故 김봉수라는 이름의 묘를 찾아가는 그와 그의 자식들...
그런데 묘를 찾기가 힘듭니다. 겨우 겨우 도착해서 그들의 영혼을 위로합니다.
제주 풍습에 벌초는 남성들의 몫이었기에 여성들이 간다는 것은 생각도 못할 일이라고 합니다. 전통 민간신앙과 더불어 유교적 색체가 강한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라고 합니다.
아흔 셋의 적지 않은 나이를 드신 어르신은 아직도 감귤 농사를 하러 움직이십니다.
하지만 그에게도 살아있다는 것이 힘들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4.3 사건으로 겨우 살아남은 사람들도 고문에 가까운 폭력이 가해지고 그 휴유증은 지금 현재로도 넘어와 또 다른 고통을 주고 있다는 느낌도 듭니다.
다큐는 단순히 국내의 이야기에만 집중하지 않고 일본으로 건너가 그들의 이야기도 듣게 되는데요.
일본 오사카의 마유코모리 제 1 공원에는 제주에서 건너온 어르신들이 모여 있습니다. 한국으로 치자면 그들만의 탑골공원이지요.
그들이 겪은 수모는 제주에 있을 때와 별다른 점이 없었습니다.
자신들의 언어를 잃어야 했으며 제주도 사람이 일본으로 건너와서 해야하는 일은 일본어를 익히는 것이 우선이었다는 것은 안타까운 점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르신들 중의 대부분이 우리말을 잊어먹고 일본어로 대화를 나누는 부분이 바로 그런 모습이었지요.
하지만 용왕궁처럼 일본의 어딘가에도 그들이 여전히 자신들이 살아왔던 관습이나 토속신앙들을 잊지 않았다는 것은 그들이 한국인임을 잊지 않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제주 출신의 시인 김성주 씨는 세 살적 기억나지도 않을 것 같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을 끄집어내며 당시 기억을 회상합니다.
눈덮인 겨울 먹을꺼리를 찾아 사람들은 나섰고 길을 잃어 굶어죽고 얼어죽은 이들도 많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발포는 어디서 시작했는지 알 수 없었고 그렇게 1949년~1950년 사이에 많은 이들이 희생되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비행기의 길인 제주공항 역시 과거 200 여명이 넘는 이들이 희생되었는데요,
당시 기록 화면들은사체 앞에서 어쩔줄 모르는 가족들과 방관하고 있는 군인들과 미군들의 모습을 비춰줍니다.
기록화면이라기 보다 그들의 사체를 보고 있으면 이건 스너프 필름을 보는 듯한 불쾌한 기분까지 들 정도로 참혹한 현장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다시 화면은 아주 익숙한 곳을 비춰주고 있습니다. 바로 제주 강정마을입니다.
경찰과의 대치 속에 주민들과 시민단체들은 '해군기지 결사반대'를 외칩니다.
당신들이 사는 곳이 이렇게 망가진다면 괜찮겠냐는 여인의 울부짖음에도 공사장 인부들은 말이 없습니다.
그리고 개그같은 상황... '제주도 세계 7대 경관 선정'...
문화유산이 가득한 제주도는 아이러니하게도 한쪽에서는 그 유산들이 무참히 파괴되고 있습니다.
일본에 사는 한 한국인이 이야기합니다. 그는 국내에서 자수성가해서 잘 살았지만 4.3 사건이 터지고 나서 제주도를 떠나야만 했습니다.
아무도 그들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분노에 그는 한국이 제일 나쁜 곳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의 마음을 이해할 것도 같습니다.
그리고 비춰지는 화면... 극단 '항로'라는 재일동포가 만든 극단입니다.
'현해탄의 새', '하늘 가는 물고기, 바다 나는 새' 등의 작품을 통해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조국에 대해 이야기하고 우리말을 잃은 자신들을 자책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남한 사람도 아닌 북한 사람도 아니라는 이유로 조국 땅을 밟지 못합니다. 조선적이라고 불리우는 이들이죠.
해방된 나라에서, 자유로운 나라에서 여전히 그들은 또 한번 누군가에게 족쇄가 채워지고 있었습니다.
천지연 폭포, 고야언덕 등등... 우리에게는 관광지로 익숙한 곳이고 <1박 2일> 같은 TV프로그램에서도 소개되기도 했지요.
하지만 이 곳 역시 많은 사상자가 있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드문 것 같습니다.
이 곳에서 산행을 하고 사진을 찍고, 올레 코스로도 개발이 됩니다.
<비념>은 제주의 과거와 현재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제주의 과거가 4.3 사건으로 희생되거나 몸과 마음을 다친 사람들이라면 제주의 현재는 바로 강정마을의 모습입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박근혜 새 대통령도 제주 4. 3 기념식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국가의 슬픈 기념일로 지정해야 하는 부분에서도 침묵합니다.
4. 3 사건으로 상처받은 이들이 강정마을 해군기지 문제로 다시 상처를 받고 있습니다.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흉터가 다시 생기는 끔찍한 상황입니다.
강정마을이 4. 3 사건과 관련이 있는가 의문이 들으실지도 모르지만 이 곳 역시 199명이 희생되었던 곳입니다. 물론 공식적인 집계이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기에 이 숫자도 정확할지는 의문입니다.
빨갱이와 폭도로 몰렸던 그들은 이제 서로 얼굴을 맞대고 싸웁니다. 환경 보존이냐, 일자리 창출이냐의 문제로 그들의 대립은 끝날줄 모릅니다.
<비념>은 특이한 관점에서 보고 있는 다큐입니다. 강상희 할머니와 그의 남편이었던 故 김봉수 씨, 그리고 그들의 가족을 앞세워 만들어진 다큐입니다.
강상희 할머니의 딸인 김순자 씨가 등장하며 다시 그녀의 딸인 김민경 씨가 등장하는데 바로 김민경 씨는 이 영화의 제작과 프로듀서를 맡은 분이었던 것이죠.
하지만 그들의 모습과 이야기로만 그치는 것이 아닌 또 다른 제주 4.3 사건의 피해자들의 증언들을 듣고 담담하게 그 사연을 담아냅니다.
후반에는 故 김봉수 씨가 희생되었던 결정적인 이유가 등장하는데 이 부분 역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이 작품은 다른 다큐에 비해 화질도 좋고 영상도 좋습니다.
물론 오프닝과 후반부에 눈덮인 눈밭을 뛰는 정체 불명의 인물의 모습이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작위적인 느낌도 듭니다.
하지만 이런 영상이 나오게 된 비결로 임흥순 감독의 연출 덕분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보게 되는데요.
다른 감독들과 달리 미술을 전공했고 사진과 그림 등이 결합된 작업들을 많이 해왔다는 것이 기존 다큐 감독들과 차별화를 보이는 점이죠.
설치미술 등을 하셨을 가능성이 높겠죠. 그런지 몰라도 작위적인 화면도 많아 단점을 보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그 화면들이 영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밟았던 올레길이, 그리고 등산을 하고 사진을 찍던 그 폭포와 산들이 역사의 현장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여러분들은 놀라게 되실껍니다.
하지만 이건 마술이 아닙니다. 눈앞에 다가온 슬픈 과거라는 것이죠.
그리고 그 슬픈 과거는 아직 끝날 줄 모릅니다. 아직도 제주 4. 3 사건을 폭도라고 이야기하는 철없는 악플러들과 개념없는 분들이 계시기에 이들의 슬픔은 아직 끝난 것 같지 않습니다.
거기에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사건은 또 하나의 4. 3 사건으로 기록될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합니다.
피 흘리고 살점은 찢겨나가고 이제는 흔적도 어딘가에 남아 찾기 힘든 그 슬픈 흔적들을 남겨두고 다시 싸운다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우리가 보고 싶은 것은 두 아픈 사건이 합주되는 슬픈 노래, 슬픈 콜라보레이션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생각을 한다면, 생각할 줄 안다면 4. 3 사건을 기억하고 강정을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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