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대한 잡설들/오감만족... 이 영화 봤수?

[라자르 선생님]스승과 제자, 서로에게 힐링을... 참스승에 대한 또 다른 해답을 보여주다.

송씨네 2013. 5. 14. 17:59

 

이 영화, 이렇게 보세요

스승에 대한 영화는 많습니다. 너무 많죠. 지난번 소개한 <선생 김봉두>도 있지만 특이한 선생님이지만 아이들을 가르치는 마음들은 다 똑같지 않았나 싶습니다. <스쿨 오브 락>(2003)의 듀이, <위험한 아이들>(1995)의 루앤 존슨, <코러스>(2004)의 마티유, <지상의 별처럼>(2007)의 니쿰브... 그리고 모두가 기억하는 <죽은 시인의 사회>(1989)의 키팅까지... 하물며 <완득이>(2011)의 동주까지... 겉으로는 괴팍하고 인정머리 없어 보이지만 세상에는 좋은 선생님도 많은 것은 분명합니다.

 

 

140자로 말해봐! 

스승의 모습도 중요하지만 서로 힐링을 받을 수 있다는 것... 서로 상처를 공유하고 치유하는 모습은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이 영화도 그렇네요!

 

1. 중학교 시절 저는 심각한 몸치였습니다. 기억력도 최악이었지요. 조금은 집중력이 떨어져서일지도 모르겠지만 학교의 문제아는 절대 아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체육이라던가 무언가를 배움에 있어서 속도도 느리고요. 음악시간에 리코더 시험을 하던 때 였는데 더럽게 리코더를 못부르던 저는 제대로 연습을 하지 못했고 솔직히 못하겠다고 이야기를 드렸지요. 그런데 음악 시험을 보던 음악 선생님은 저에게 뺨을 날리셨죠. 반항을 한 것도 아니고 단지 제가 리코더를 부르지 못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 뿐인데 말이죠.

 

 

2. 초등학교 졸업 시즌... 강제적이였는지 자발적인지는 모르겠지만 방학 기간에 선생님에게 편지를 드렸던 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졸업을 앞둔 시점 선생님에게 담임선생님에게 답변이 왔습니다. 손글씨가 아닌 컴퓨터가 덜 보급되던 시절의 프린터 전용 용지로 작성하신 것 같은 편지였습니다.

제 마음을 이해하고 일년동안 함께해서 고마웠다는 답변이었습니다. 저는 손글씨 같은 느낌은 안나지만 손글씨 만큼이나 진심이 보였던  아름다운 이 편지를 아직도 보관하고 있습니다.

 

 

서두에 이런 이야기를 드린 이유는 제가 기억하는 두 명의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드렸던 것입니다.

그 외에도 열심히 공부하는 아이에게는 칭찬과 간식을 마구 뿌리셨던 중학교 시절 기술과목 여 선생님도 생각나고 고등학교 시절 빨간 헬멧을 머리에 쓰고 오토바이를 타고 출근하시던 고등학교 시절 담임 선생님도 생각납니다. 그 분들은 참 좋았던 분들로 기억합니다. 안타깝게도 고등학교 시절 그 선생님은 암으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최근에 접하게 되었지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참스승은 어떤 분인가요? 영화 <라자르 선생님>(원제 Monsieur Lazhar)입니다.

 

 

 

 

캐나다의 어느 초등학교... 우유 당번인 시몽(에밀리언 네론 분)이 교실로 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실로 향하던 시몽은 그 자리에서 주저 앉아버리고 말았습니다. 담임이던 여교사 마틴이 자살을 한 모습을 발견했던 것이죠.
충격에 휩싸인 학교는 긴급한 대책을 내놓으려 하지만 뾰족한 방안이 없습니다.

마침 알제리에서 온 라자르(모하메드 펠라그 분)은 교장선생님(다니엘 프룰 분)의 도움으로 어렵게 임시교사로 들어오게 됩니다.

하지만 라자르는 정식교사가 아닌 망명을 온 사내입니다. 테러의 위협으로 가족들을 모두 잃은 상태에서 망명신청을 한 상태이고 그 결정을 기다리는 상황입니다.

한편 라자르의 부임 이후에도 교실의 분위기는 달라지지 않습니다.

발표시간에도 여전히 마틴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으니 말이죠.

더구나 아이들에게 체벌도 금지, 신체 접촉도 금지인 상황에서 이 말썽꾸러기들을 다룬다는 것은 힘들어 보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 파티에서 시몽이 찍은 사진이 발견되는데 사진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죽은 마틴 선생님입니다.

마틴이 죽은 이유가 격려의 의미로 시몽을 포옹을 시도했던 것이 화근이 되어렸고 그 일로 마틴이 죽었다고 생각한 아이들은 시몽을 나무라기 시작합니다.

시몽의 반항은 더욱 더 심해지고 라자르 역시 더욱 난처한 상황에 빠지게 됩니다.

조금씩 서로의 상처가 아물려고 하는 순간 라자르의 망명사실이 학교에 알려지면서 교사직에서 해임되는 사태가 발생됩니다.

마지막 수업을 하는 라자르...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우화처럼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그들의 마지막 수업은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올리브 나무 가지에 에메랄드 빛 번데기가 매달려 있다.

나무는 번데기를 지키기 위해 바람을 가리고 개미를 막아주었다.

하지만 내일이면 떠나 보내야 한다.

그날 밤 뜨거운 불꽃이 숲을 집어 삼켰고 화염과 슬픔으로 큰 생채기가 남았다.

훗날 나무는 팔에 날아 앉은 새에게 번데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름다운 나비가 되어 날개를 활짝 펴고 푸른 하늘을 날아간 자신이 사랑했던 아름다운 나비 이야기를...

 

 

 

 

 

 

앞의 질문에 대해 다시 질문드립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참스승은 무엇일까요?

영화의 초반 라자르는 일반적인 선생님과 같았습니다. 권위적이었고 말을 안들으면 머리를 후려치는 한이 있어도 체벌을 해야하는 선생님이었지요.

물론 이 학교에도 다양한 선생님들이 존재합니다. 아이들을 사랑으로 가르치는 열정적인 교사 클레어(브리짓 푸파 분) 같은 선생님도 있고, 마치 학교의 선도부 선생님처럼 호루라기를 불어대며 아이들을 지도하는 가스통(쥴리 필립 분)도 있지요.

하지만 교장을 비롯한 동료교사는 말합니다. 체벌은 금지이며 가벼운 포옹도 할 수 없다고 말이죠. 또한 아이들을 선도하기가 너무 힘들다는 푸념도 늘어놓습니다.

 

그렇다면 라자르는 어떻게 이 아이들과 함께 해야만 했을까요?

영화에서 심리 치료라는 부분이 많이 나옵니다. 아이들이 담임의 죽음을 접하게 되고 큰 충격에 휩싸인 아이들 중에는 전학을 가는 이들도 속출합니다.

학교에서는 어느 정도 심리 치료가 완벽하게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아이들의 슬픔이 발표에서 드러나게 되면서 라자르는 충격을 받게 됩니다.

자살을 한 마틴 선생님의 행위도 폭력적이라고 발표하는 아이들의 말이 바로 그것이죠. 폭력이라는 것이 누군가를 때려서 폭력이 아닌 그 폭력을 제 3자가 지켜보고 있는 것도 정신적 폭력이고 피흘리거나 자살하거나 다치는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는 자체로도 고통이며 폭력이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아이들이 어른보다 나은 이유가 이런 것이죠.

 

사실 라자르가 아이들에게 특별히 한 것은 없습니다. 다만 라자르는 아이들에게 더 가깝게 접근하려고 노력을 했던 것은 분명합니다.

아이들에게 좋은 말도 아끼지 않고 공부하는 방법에 있어서도 틀에 박힌 방식으로 가르치려고 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그가 실제 선생님 자격증이 없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도 싶어요. <완득이>나 <스탠리의 도시락>의 선생님들처럼 남의 물건을 빼앗는 치사한 짓도 하지 않고, 그렇다고 뭘 더 주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속에서도 아이들도 성장하고 선생님 자신도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죠.

 

 

 

 

 

그런데 이런 고통은 아이들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로 라자르 본인도 그 고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죠.

알제리에서 캐나다로 망명한 라자르는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을 버리고 이 곳에 와야만 했습니다.

정치적인 비판을 책으로 출간했다는 이유로 라자르의 아내는 테러 조직에게 쫓기게 되고 이는 라자르와 그의 자식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망명신청과 관련한 법정 장면에서 그를 나무라는 재판관과 사람들의 모습을 보더라도 라자르는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마틴 선생님의 죽음을 본 것처럼 바로 가까이에서 자신들의 가족이 불타서 죽음을 당하는 장면을 목격한다는 것은 이것 만큼 잔인하고 슬프고 괴로운 일이 어디 있을까요? 아이들과 라자르 모두 그 폭력에 간접적인 피해를 입은 희생자라는 점에서 이 영화가 보여주는 내용들은 웃고 넘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죠.

 

위의 스틸컷을 보시면 다양한 인종의 아이들이 보입니다. 그리고 서로 다른 모습으로 단체사진을 찍습니다.

사진기를 항상 쥐고 다니는 시몽의 모습도 보이고 파일럿인 엄마(에브린 드 라 체네리에르 분)때문에 대부분을 홀로 지내는 알리스(소피 넬리스 분)도 보이며 자기 주장이 너무 강해 라자르와 설전을 벌이는 마리(마리-이브 비우르가드 분)도 보입니다. 몸집이 크지만 아이들에게 놀림 받는 빅터(빈센트 밀라드), 늘 편두통과 코피를 몸에 달고 사는 보리스라는 아이도 있습니다. 풍요롭고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던 캐나다에도 어떻게 보면 사회 문제라던가 개개인의 문제점을 바라보는 부분에 있어서는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느끼게 만듭니다.

 

요즘은 조금씩 다른 나라 영화들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는데 인도나 이란영화에 이어 캐나다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것도 참으로 반가운 일이라고 봅니다.

더구나 이 작품은 작년(2012년) 전주영화제에서 상영됨은 물론이요, 작년 로테르담 영화제와 홍콩 국제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을 정도로 관객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입니다. 코미디 영화에 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필리프 팔라도 감독의 다음 작품은 리즈 위더스푼과 함께 <A Good Lie>라는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니 기대해 볼만하다고 생각됩니다.

 

 

 

 

 

 

 

세 번째로 다시 묻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참스승을 떠올려 보셨나요?

저에게 뺨을 때린 그 선생님도, 그리고 따뜻한 편지를 건내준 그 선생님도 아이들을 참되게 가르치려는 마음은 똑같다고 봅니다.

다만 그 아이들이 선생님을 바라보는 입장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이 다른 점이죠.

절묘하게도 스승의 날 이전에 개봉된 이 영화는 그런 점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요즘 들어 꼰대라는 단어를 제가 많이 사용하는데요. 이번 리뷰에서도 이런 결말을 내리고 싶습니다.

당신에게 아름다운 기억이 있다면 그 분은 참스승일테고 더러운 악몽만이 기억된다면 그 분은 꼰대였을 확률이 높습니다.

서로에게 힐링이 되고 서로에게 뭔가를 배울 수 있다는 것... 그런 선생님을 만났으면 합니다.

아마 여러분들은 그런 분들을 많이 만나셨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