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인 <환상속의 그대> 뿐만 아니라 단편인 <백년해로외전>에 대한 작품설명이 들어 있습니다. 주의바랍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이 작품은 강진아 감독의 단편인 <백년해로외전>(2009)의 장편버전입니다. 따라서 먼저 단편인 이 작품을 보시고 영화를 보시면 이해가 빠르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원작에 해당되는 단편은 이 영화의 제작사인 크라켄 공식 블로그(http://kraken.tistory.com)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비슷한 영화라고 한다면 아무래도 꿈과 비현실이라는 몽환적인 느낌이라는 점에서 <수면의 과학>(2006)이나 <이터널 션샤인>(2004)에 가깝지 않나 싶습니다.
140자로 말해봐!
살아 생전의 기억, 그리고 죽은자에 대한 환영... 그 모든 것이 교차하는 영화입니다. 기억한다는 것이 얼마나 슬프고 괴로운지를 이야기 합니다. 아름답고 서정적인 멜로입니다. 그런데 저예산이라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는...
누군가에게 나에 대한 기억이 잊혀진다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잊고 싶은 기억이, 그 잔상이 너무 오랫동안 남아 있다면 그것도 고통이지요.
단편 <백년해로외전>으로 알려진 강진아 감독이 장편을 들고 나왔습니다.
바로 <백년해로외전>을 장편으로 만들기로 한 것이죠. 몽환적이면서 아름다운 영상으로 벌써부터 화제를 모은 영화를 미리 만나봤습니다.
영화 <환상속의 그대>(영문원제 Dear Dolphin)입니다.
폴로리스트인 차경(한예리 분)은 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조무사인 혁근(이희준 분)을 남자친구로 사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 사이에는 기옥(이영진 분)이 있습니다. 부페에서 돌잔치 보조진행일을 하고 있는데 직함이 있지만 그냥 말단 직원에 가깝습니다.
기옥의 집에 찾아와 이벤트 주인공의 꽃을 건내주고는 혁근에게로 돌아가던 그 날 밤... 교통사고로 차경은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일 년이 흘렀지만 혁근은 금방이라도 자신의 집에 놀러올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차경의 기일이 찾아오던 날 수목장으로 온 차경과 혁근의 감정도 너무나도 어색하기만 합니다.
차경의 언니인 주경(최은아 분)은 자꾸 기옥의 집에 찾아와 차경의 유품을 챙기러 오지만 이제는 그것이 너무나도 신경이 쓰일 정도입니다.
차경과 기옥이 같이 살았던 집이지만 이제 이 집의 주인은 기옥인데 말입니다.
남몰래 혁근을 짝사랑했던 기옥는 혁근에게 접근하지만 아직 서로의 앙금을 풀기에는 그 시간이 너무나도 짧았던 것 같습니다.
고장난 자전거를 끌고 나가지 않았더라면, 혁근이 만나자고 부르지만 않았더라면...
혁근의 환청은 심해져가고 기옥 역시 주경과 혁근 때문에 괴롭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돌고래가 되어 푸른 바다를 헤엄치고 싶었던 차경... 그녀는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참으로 이 영화는 묘한 작품입니다. 죽음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죽은자는 계속 나타나 산 사람을 괴롭히며 마치 저승과 이승 어딘가를 떠도는 듯한 그런 생각이 들었으니깐요.
이야기의 시작도 차경의 죽음으로 시작되니 과연 이 이야기를 어떻게 풀 것인가가 궁금했습니다, 차경도 주인공이니깐요.
영화는 판타지와 멜로라는 아주 아슬아슬한 경계선을 넘어가기 시작합니다. 더구나 이야기의 순서 또한 일정하지가 않고요.
역순으로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차례대로 그들의 만남부터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설명하는 것도 아니었으니 조금은 어리벙벙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앞에 이야기한 <백년해로외전>에서 그 힌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해야 할 것 같습니다. 단편이라고 이야기드렸지만 30분 분량으로 의외로 긴 단편입니다.
여주인공인 차경 역의 한예리 씨는 동일하며 혁근에 해당되는 인물은 좀 다릅니다. 영화 <전국노래자랑>을 감독한 이종필 씨가 혁근 역으로 등장하죠,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이종필 씨는 원래 배우입니다.) 내용도 거의 동일합니다. 하지만 기옥이 빠진 상태에서 영화가 진행되었다고 생각하시면 이해가 빠르실 것 같은데요.
사고 후 고통을 겪는 혁근의 모습이 대부분의 장면을 차지합니다. 오히려 단편에서는 혁근의 심리상태를 많이 강조를 했지요.
특히 차경의 경우는 과거의 이야기를 많이 들려줍니다. 차경은 마치 관객을 향해 바라보듯 혁근과의 추억을 이야기하고 죽음당시의 상황들을 아주 담담하게 이야기하지요.
그렇다면 영화는 어떻게 이 부분이 달라졌을까요? 일단 앞에서 말씀드렸다시피 기옥이 추가가 됩니다.
단편에서는 고통을 혁근 혼자서 겪는다면 장편으로 넘어가면서 그 고통을 그나마 두 사람이 나눠갖는 모습으로 변화하게 되었지요.
차경의 언니 케릭터가 더욱 더 살아난 것도 장편과 단편의 다른 점이죠. 장편에서 다른 점입니다.
단편에서는 혁근을 괴롭혔던 차경의 언니는 장편에서는 기옥과의 대립으로 방향이 변합니다.
어쩌면 단편에서 책임을 한 사람에게 돌리는 방식이 장편에서 여러 사람에게 책임을 이동시기고 그 책임 역시 나누게 된다는 것은 누구를 지정해서 단순하게 질책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의 책임이며 모두의 슬픔임을 강조한다는 점이라고 생각될때 단편에서 장편으로의 확장이 확실히 달라지게 된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장편에서는 그 판타지에 대한 부분이 선명해집니다. 혁근의 환청과 환영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어딘가에 있는 차경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차경이 죽기전에는 어떤 질환을 갖고 있었지만 장편인 이 작품에서 그것이 무엇인지는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치료를 받으라고 혁근이 차경에게 이야기하지만 그 다음 장면은 돌고래가 있는 대형 수족관으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하지만 이것이 차경이 죽기전의 이승의 모습인지 그것이 아닌 저승인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인 것이죠.
거기에 정체불명의 치료사(기주봉 분)은 그녀에게 상담을 해주지만 그것이 카운셀러 역할로써의 치료사인지 아니면 저승에서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단순한 청취자의 역할인지는 확실치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후반에 들면서 그 의문은 풀리게 되지요. 거대한 세트가 무너지면서 그 곳이 혁근의 집임을 보여주게 됩니다.
그러나 이 장면 역시 판타지일 확률이 높지요. 어디까지나 저승에서도 쉽게 떠날 수 없는 차경의 모습을 이런 판타지 장면을 통해 보여준게 아닌가 싶어요.
이런 모습은 마치 <이터널 션샤인>이나 <수면의 과학>에서 보여지는 세트가 만들어지고 사라지는 모습을 연상하기에 충분합니다. 앞의 두 영화에서 보여주는 환상이 사랑하는 사람과의 단순한 이별과 슬픔이라면 <환상속의 그대>에서의 세트가 무너진다는 것은 차경을 이제는 저승으로 완전히 보내줘야하는 상황을 나타낸 것이 아닌가 생각도 됩니다.
시네마톡 형식으로 벌어진 관객과의 대화에서도 다양한 이야기가 나왔는데요.
어쩌면 단편에서 코끼리가 되고 싶었다는 차경이 장편으로 넘어가면서 거대한 스케일의 돌고래로 변한 것은 엄청난 모험이었던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이영진 씨나 한예리 씨 모두 물속에서의 연기가 쉽지 않았고 특히 한예리 씨의 경우 돌고래와 대면하는 장면이 많다는 점에서 쉽지 않은 장면들임은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저예산으로 찍은 영화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모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지요.
청각 부분을 강조한 김진아 감독의 센스도 돋보였으며 몽환적인 판타지의 느낌이 들도록 다양한 방식을 시도한 것도 이 영화에서 인상적인 부분이라고 생각됩니다.
시각적인 부분에서도 특이한 장면도 많았는데 차경이 혁근 집 밖을 나서면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나가는 방법을 보여주는 장면의 경우에도 한예리 씨가 뒤로 걷는 장면을 앞으로 돌리는 방식으로 찍어 특이한 방식으로 연출했다고 하는 군요.
아울러 강진아 감독은 영화에서 잠시 동명의 노래인 서태지와 아이들의 '환상속에 그대'가 사용될 수 있도록 도와준 것에 대해 서태지에 관한 고마움도 잊지 않았고요. 이 외에도 다양한 이야기가 나왔고 특히 이영진 씨와 사회를 맡은 김영진 평론가는 토크를 아주 화기애해한 분위기로 이끌었다고 생각됩니다.
이 영화는 여성파워가 강한 작품입니다. 강진아 감독의 경우 그녀가 만든 회사 크라켄은 단순한 영상물을 작업하는 회사가 아닌 CF나 영화 예고편 등을 만든 곳으로 앞에 링크한 홈페이지에서는 강 감독이 만든 작품들을 여러편 감상할 수 있습니다.
이영진 씨와 한예리 씨의 활약도 대단하죠. 이영진 씨는 모델 출신이자 우리에겐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로 알려진 배우인데요. 대부분의 '여고괴담' 출신의 배우들이 큰 성공을 거두어 상업영화나 드라마로 눈길을 돌리는 반면 그녀는 다양한 독립영화에 도전하며 연기 영역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학생을 가르치는 역할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녀의 입담 실력이 좋을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알 것도 같습니다.
한예리 씨는 배두나, 하지원 씨 주연의 <코리아>에서 그 얼굴을 각인시켰지만 그녀 역시 많은 독립영화에서 모습을 비추었지요. 또한 단편인 <백년해로외전>과 장편인 <환상속에 그대>에 그대로 출연하는 행운을 얻었지요. 그 덕분인지 몰라도 단편과 장편의 차경 캐릭터에서 미묘한 차이라던가 같은 점을 발견해보는 것도 큰 재미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유일한 청일점이라고 할 수 있는 이희준 씨는 상업과 독립을 넘나드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TV버전의 <전우치>에서 연기력 논란이 있었지만 어쩌면 사극 연기는 누가 되었건간에 힘든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최근 드라마 <직장의 신>과 이 작품을 보신 분이라면 그가 단순한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실껍니다.
영화제에서 빠른 시간에 안에 예매가 매진되는 영화는 드문 편입니다. 그런데 32초만에 매진된 영화라고 하네요.
특히 개막작이나 폐막작이 아니고서는, 그리고 외국영화에 한해 금방 매진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전주영화제에서 돈이 없는 관계로 많은 작품을 보지는 못했지만 <말하는 건축 시티:홀>과 더불어 보고 싶었던 작품이었거든요.
(<시티:홀>도 결국 서울 환경영화제에서 보았습니다. 이 작품에 대한 리뷰도 곧 올릴 에정입니다. 기대하시길...)
<환상속의 그대>가 화제를 모을 수 밖에 없던 것이 아마도 원작이 되는 단편있는 덕분이라고 생각됩니다.
단편이 장편으로 만들어지면 큰 기대를 할 수 밖에 없죠. 제작 여건상, 시간관계상 다룰 수 없었던 이야기를 충분히 다룰 수 있다는 점에서 단편에서 장편으로의 확대는 기대할 수 밖에 없는 부분이죠. 분명한 것은 <환상속의 그대>는 단편만큼이나 확실히 재미있고 인상적인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CF를 만들고 영화 예고편을 만든 감독답게 디테일한 부분까지 신경을 썼다는 점에서 강진아 감독의 <환상속에 그대>는 올해 작품들 중에서 큰 수확이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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