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대한 잡설들/오감만족... 이 영화 봤수?

[마이라띠마]21세기로 간 강재와 파이란... 그들은 행복했을까?

송씨네 2013. 6. 16. 00:53

140자로 말해봐!

21세기 파이란과 강재의 모습은 아마 이렇지 않았을까요? 세상에서 누락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입니다. 당신이 알던 배우 유지태는 잊어도 될만큼 열심히 만들었다는 느낌이 드네요.

 

이 영화, 이렇게 보세요

외국인(이방인)과 한국인의 사랑 이야기는 이제 어색한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2001년 <파이란>, 2009년 <반두비> 2010년 <방가방가>끼지...

어색하고 어려워 보이는 이 사랑... 저는 응원하고 싶네요.

 

 

 

 

 

 

 

저런 사랑, 저런 이야기, 저런 삶이 가능하냐고 묻습니다.

아마 몇 일 동안 공교롭게 이런 질문을 하게될 영화들이 많아질 것 같습니다. 오늘은 그 첫번째 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감독이 우선 특이한데요. 바로 배우로 익숙한 유지태 씨 입니다.

그는 이미 여러 단편을 제작한 경험이 있는 감독이기도 합니다. 그가 이번에는 조금은 특별한 사랑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합니다.

영화 <마이라띠마>(영문원제 Mai Ratima)입니다.

 

 

 

 

한 여인이 전화를 걸고 있습니다. 전화 속 수화기 넘어 목소리는 조금은 불안해 보입니다.

태국에서 온 마이 라띠마(박지수 분)는 돈을 벌러 한국에 왔지만 그것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말이 어눌한 남편 때문에도 고생이지만 아주버님은 그녀를 성희롱은 물론 그녀를 고용한 고용주로써 제대로 임금도 주지 않습니다.

체류기간을 연장하지 않으면 불법체류자가 되기 때문에 아주버님의 말에 따를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여전히 체류기간을 연장할 생각은 하지 않고 더구나 고향에 한푼도 입금되지 못한 상황에 대해 아주버님과 설전을 벌인 마이는 결국 그에게 폭력을 당하게 됩니다.

그녀를 구한 사람은 수영(배수빈 분)이라는 이름의 사내... 그는 무슨 이유인지 주민등록증이 말소된 상황입니다.

사랑하는 애인도 잃었고 땡전 한푼 없는 그에게 서울이라는 곳은 그에게 희망적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마이와 서울로 도피한 수영의 불안한 서울 정착이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신분증도 없는 이들에게 돈을 버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사랑은 그런 삶을 극복하는데 큰 힘이 되고 있었습니다.

한편 업소에서 일하는 여인 영진(소유진 분)의 도움으로 수영은 호스트바에서 일하게 되었지만 반면 마이는 지하철 전단지를 보고 위험한 업소에 취직하는 위기를 겪게 됩니다. 새로운 삶을 시작한 수영은 마이를 잊고 영진과의 삶을 지속합니다.

하지만 수영이 영진과 일하고 호스트바 생활에 익숙해하면서 마이의 노숙생활도 길어지고 점점 두 사람의 사랑은 멀어지고 어긋나기만 합니다.

 

 

앞에 말씀드린 대로 그렇게 특별하거나 새로운 소재의 영화는 아닙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특별한 것은 배우 유지태가 아닌 감독 유지태의 본격적인 장편영화의 시작을 알렸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이 영화 <마이라띠마>는 어떤 영화일까요?

 

이 영화는 특이하게도 쫓기는 두 남녀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더구나 이들에게는 자신을 입증할 수 있는 어느 서류하나 없습니다.

그들이 일을 함에 있어서 여려움이 생기는 이유도 바로 이런 것이죠. 수영은 서류나 주민증을 요구하는 사람들의 말에 돌아서야 하고 편의점 물건을 품치고 박스등의 폐품을 팔아 겨우겨우 연명을 했던 것이죠. 마이 역시 마찬가지였고 그 순간만큼은 가난해도, 아무것도 없어도 나름 행복했던 삶을 살고 있었음을 영화는 보여줍니다.

그러나 영진을 만나면서 수영은 자신의 행복했던 삶을 잊어버리고 모든 것을 다시 포맷 시킵니다. 아무일 없다는 듯이 말이죠.

영진이 수영의 주민증을 재발급하는데 들었던 비용은 겨우 십만원... 겨우 십만원에 그는 도망자가 되었고 아무일도 할 수 없었다는 것이 좀 아이러니였지요.

 

마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어눌한 말투의 남편, 깡패에 가까운 아주버님도 그렇고 마이의 형님이라는 사람도 깊은 신양심을 갖은 것처럼 보이지만 알고보면 속물인 것이죠.

시어머니라는 사람은 마이를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무시하고 괄시하는 상태이며 그녀에게 지속적으로 지급되는 피임약만 보더라도 마치 '선녀와 나무꾼'처럼 도망을 방지하기 위해 내놓은 상당히 비인간적인 처사로 밖에 볼 수 없는 상황입니다.

피부색과 언어가 다르다는 이유로 무시당하는 모습은 이제 한국사회에서는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물론 최근에 다문화 가정에 대한 오해나 편견을 없애기 위한 캠패인들이 많이 등장한 덕분에 이들에 대한 무시는 어느 정도 줄지는 않았나 생각됩니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하고 문제가 많은 것도 사실이죠.

 

어쩌면 서로 버림받고 무시당하던 남녀가 서울로 도피를 하고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개척한다는 것은 여러면에서 볼 때 주목할 부분이라고 봅니다.

더구나 무일푼의 인물들의 도전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절대 성공하지 못할 사람들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 예상하게 되지요.

 

 

이런 이방인과 한국인의 사랑과 우정에 대한 이야기는 끊임없이 영화와 드라마로 등장했는데요.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작품에서 외국인 역할을 한국인을 기용하는 모습들이 많았다는 것도 이색적인 부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런 방식은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사람이 연기를 하기 때문에 스텝과 의사소통은 괜찮지만 제작비 비용절감을 위해 한국인 배우를 동남아 배우로 둔갑시킨다는 것은 조금은 아이러니한 일이라고도 보여집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영화 속 마이 라띠마는 태국사람 같다는 것이죠.

 

이런 경우 참 많죠. 드라마 <황금신부>의 이영아 씨나 영화 <방가방가>의 신현빈 씨가 대표적인데요.

거기에 이번 경우가 하나 더 추가가 될 것 같습니다. 바로 마이 라띠마 역을 맡은 박지수 씨이지요.

이국적인 이미지는 아닙니다만 아주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배우죠. 재미있는 사실은 그녀는 한에종 연극원 무대미술과를 졸업했다고 하네요. <은교>의 김고은 씨 역시 바로 이 한예종 연극원 출신이죠. 이렇듯 제대로 연기 공부를 한 이런 한예종 출신의 배우들이 영화에서 많이 볼 수 있다는 것은 상당히 반가운 일이라고 보여집니다. 

 

 수영 역의 배수빈 씨의 경우 <26년>에서 멋진 연기를 보여주었는데요. 감독 유지태 씨와의 인연은 1999년 김상진 감독의 <주유소 습격사건>에서 말딴 액스트라와 주연배우로의 만남이 처음이었는데 이후 이들은 이 작품을 통해 배우와 감독으로 다시 만나는 기묘한 인연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최근 독립영화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인 관심을 보애고 있는 소유진 씨의 모습도 인상적이죠.

아울러 이 영화는 오광록 씨와 오달수 씨의 모습도 만날 수 있는데요. <올드보이> 때 만난 인연이 평생가는게 맞나봅니다.

 

이 작품은 장편 데뷔의 유지태 감독의 작품치고는 정말 잘 만든 작품이라는 것에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배급을 맡은 롯데엔터인먼트는 그를 위해 한 것이 뭔가는 좀 의문스럽습니다. 자사 편의점인 세븐 일레븐이나 음료 등의 PPL에 자사 업체상품을 노출하고 그 댓가로 제작비나 배급을 지원한게 고작이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이지요. 독립영화나 다양성영화의 배급망이 부실한 것이 어제 오늘은 아닙니다만 과연 배급사가 그에 걸맞는 역할을 했는지는 의문입니다. 그가 스타 배우로써가 아니라 정말 일반적인 독립영화 감독이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되고요.

 

 

 

 

 

시네마 톡 행사에서 유지태 씨와 주연 배우 세 분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요.

아울러 <봄날은 간다>를 연출한 허진호 감독도 옆에 계셨지요. 배우와 감독의 관계가 아닌 이제는 감독과 감독의 관계이지만 상당히 허진호 감독을 떠받고 모시는 유지태 씨의 모습이 보기가 좋더군요. 더구나 자신이 무엇을 준비해야 하며 겸손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 역시 그는 잘 알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스크린쿼터나 봉사활동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그는 이런 독립영화나 다양성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돈을 벌어야 한다는 속마음도 관객들에게 이야기했는데요. 저는 그런 유지태 씨의 솔직함이 앞으로도 계속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갖아봅니다.

 

우리는 <파이란>에서 강재와 파이란의 비극적인 사랑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영화의 엔딩 역시 그런점에서는 유사성을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적어도 강재와 파이란에 비해 수영과 마이는 희망적인 삶을 살고 있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영화에서 마이는 산세베리아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어느 곳에 놔도 잘자라는 식물이지만 그것을 너무 우습게 알고 어두운 곳에 물도 주지 않고 키운다면 금방 죽는 것이 바로 산세베리아라고 이야기합니다. 무관심 속에 세상으로 나온 자신의 모습과 닮았다고 이야기하는 부분은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는 온실 속의 화초들이었습니다. 이제는 온실이나 비닐하우스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개성을 향해 나아가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