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대한 잡설들/오감만족... 이 영화 봤수?

[힘내세요, 병헌씨]무비 키드 혹은 루저들의 영화제작기...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는 이야기!

송씨네 2013. 6. 25. 22:43

 140자로 말해봐!

액자식 구조에 페이크 다큐까지... 독립영화도 재미있게, 버라이어티하게 만드는게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영화 속 단편도 놓치지 마시길... 무엇하나 버릴것, 놓칠것이 안보이네요!

이 영화, 이렇게 보세요

영화를 만드는 과정을 다루는 영화도 은근히 많습니다. 장훈 감독의 <영화는 영화다>(2009), 신수원 감독의 <레인보우>(2010) 등은 영화를 제작기나 시나리오를 만드는 과정들을 리얼하게 보여주고 있지요.

겁없이 부산영화제에 가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는 임진순 감독의 <슈퍼스타>(2012)와도 유사하죠. 아기자기한 상황이나 연출방식에서는 <할 수 있는자가 구하라>를  비롯한 윤성호 감독의 영화들을 떠오르게 만듭니다.

 

 

 



제 친구 이야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저랑 영화 관련 인터넷 카페에서 만난 친구였지요.

그는 대학에 낙방해 재수를 하였고 저는 고졸에 거의 반복되는 공장 근로자의 삶이 지겨웠던 상황입니다.

이 두 찌질이는 캄캄한 미래 속에서 암울한 시기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헝그리했던 시절을 겪던 그는 대학시절에는 마트 정육코너에서 알바를 하며 밀린 학자금을 겨우겨우 내기 시작했고 저에게 외장 하드에 담긴 자기가 참여했던 영화들을 보여주면서 빛을 보게 될 날을 서로 염원하고 있었습니다.

몇 년이 지나 저는 여전히 안정된 직장을 찾아 헤매고 있는 반면 그 친구는 인터넷 언론사의 기자가 되었습니다.

근데 그 친구는 기자 일에만 만족하지는 않았죠. 영화 제작에 참여하는 스텝으로 참여하면서 그는 경력을 쌓아갔지요.

신께서도 그 고생을 알고 응답을 하셨을까요? 그가 제작에 참여한 영화가 해외 영화제에 초대되었고, 올해 부천영화제에서 그가 제작에 참여한 단편영화가 상영이 됩니다.

 

친구 이야기를 드린 이유는 이번에 소개할 영화가 단순한 영화가 아니기 때문이죠.

헝그리하지만 영화만큼은 좋아하는 사람들... 그들에게 영화는 어떤 존재일까요?

좌충우돌 영화제작기를 다룬 영화 <힘내세요, 병헌씨>(영문원제 Cheer Up Mr. Lee)입니다.

 

 

 

 

 

화장실 앞에 한 남자가 서 있습니다. 그는 방금전 생리현상을 마치고 손을 씻는 상황이죠.

그의 이름은 이병헌(홍완표 분)... 근데 조연출로 보이는 여자는 그에개 왜 이렇게 늦게 나오냐고 쏘아붙이기 시작합니다.

결국 연출부 일을 그만 둔 병헌은 그 슬픔과 괴로움을 친구들을 만나 술로 풀기로 합니다.

식권으로 생색을 내며 나름 후배들에게 호의를 배풀었던 전직 CJ맨인 범수(양현민 분), 촬영감독이긴 한데 정식은 아직 아니며 부인에게 쥐어사는 공처가 승보(허준석 분), 그리고 여섯편의 영화에 출연했으나 뭐뭐에 출연했는지는 모르는 무명배우 영현(김영현 분)...

이 들 네 명의 찌질이들은 술을 마시며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사실 병헌의 이야기는 한 방송국에서 다큐로 준비중인 상황입니다. 근데 감독 데뷔를 언제 할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고 도대체 시나리오는 언제 쓰는지도 확실치 않은 상황... 촬영을 포기하려는 찰나 단숨에 만들어진 시나리오는 <써니>의 강형철 감독에게 의뢰를 받게 됩니다.

가능성만 믿고 다시 시작된 촬영... 여전히 병헌의 친구들은 술을 진탕 마시고 있고 이혼한 상태에서 병헌은 전 아내의 집으로 향하지만 신고받고 출동한 경찰에 주춤하기만 합니다.

수다쟁이 프로듀서 범수의 도움으로 영화를 만들기로 한 제작사를 수소문하는데 성공...

하지만 영화사의 메인 PD인 소민(최다연 분)의 테클은 계속되고 시나리오는 다시 처음부터 뜯어고쳐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걸로 끝나면 다행일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것이 끝나면 배우 섭외를 해야하고, 배우 섭외가 끝나면 투자사를 찾으러 다녀야 하는 상황입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제작 준비단계... 과연 병헌은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요?

 

 

 

이 영화는 제목과 등장인물의 이름부터 터지기 시작합니다.

이병헌... 우리가 알고 있는 여배우 이민정 씨의 남자로 알려진 그 이름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단순 동명이인 입니다.

한류스타 병헌 씨는 잘생기고 돈도 많이 벌고, 영화도 많이 찍는 젠틀한 남자이지만 지금 이야기하는 병헌 씨는 달라도 너무 다른 상황입니다.

영화에 미친 그는 아내와 이혼을 하고 딸을 만나러 다녀가지만 그의 아내는 임신중인 상황에서 바람을 핀 병헌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병헌의 부모도 애지중지 키운 아들이고 대학에 합격하자 잔치를 벌였을 정도... 하지만 부모 몰래 영화학과에 입학한 것을 알게된 후 충격을 받게 됩니다.

 

이 거지같은 상황에서 병헌의 시나리오가 제대로 나온다는 것은 불투명해 보일지도 모릅니다.

노트북은 켜기만 하고 그 주위를 청소하고, 밥먹고, 다운로드 받은 영화를 보고, 다시 밥먹고...

시나리오를 위해 키보드를 잡은 시간은 불과 몇 분이며, 문서작성 프로그램 앞에서도 제목 쓰고 폰트 고치기도 여러번입니다.

게으르고, 게으르며, 게으른 남자죠. 근데 안나올 것 같은 시니라오가 뚝딱 나온다니 말이죠.

 

어쩌면 진짜 고민은 이제부터 입니다.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고 있으니깐요.

새 작품을 준비하는 작가들이 흔히 하는 합숙이라는게 시작되었으니 이제는 슬슬 풀리는 일만 남은 것 같아보이지만 첫번째를 지나, 다섯번째, 여섯번째...

지옥같은 시나리오 탈고 과정을 마치니 '산넘어 산' 상황이 보이죠. 의외로 독립영화에서 이런 창작의 고통을 이야기하는 부분을 많이 봐와서 그런지 신선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요. 근데 문제는 그들이 처해있는 상황은 헝그리, 그 자체인 것이죠. 이것이 웃음을 유발시킨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모델이자 배우로 알려진 조향기 씨의 <인간극장>스러운 나레이션과 황당한 자막들이 어우러져 그 웃음이 더해지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한 편의 영화가 만들어지기 위해 프로듀서는 제작사를 섭외하고 싸바싸바(?) 아부도 해야합니다.

제작업체가 선정되어도 그 시나리오는 온전히 영화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라톤에 가까운 회의를 하며 시나리오를 탈고하며 그것을 들고 시나리오 모니터단에 보여지게 되며 거기서 온갖 비난과 욕과 지적을 먹어가며 다시 원고가 수정에 들어갑니다.

배우를 컨택하고 배우가 퇴짜를 맞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각오해야 합니다. 만약 배우가 하겠다고 하더라더도 분량이 적거나 자신이 등장하는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또 고쳐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게 확정되 크랭크 인이 되면 일단은 안심을 해도 좋은 상황이죠.

사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상황은 크랭크 인도 해보지 못하는 상황에서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입니다.

 

영화가 엎어지는 방식은 다양합니다.

시나리오를 쓰던 도중 도저히 답이 안나와 엎어지기도 하며, 투자사(혹은 투자자)를 못구해 엎어지기도 하고, 배우를 못구해 엎어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크랭크 인이 되더라도 제작진끼리의 불화, 배우와의 불화, 자연재해(미국 같은 경우는 911이나 총기난사사건 같은 사건도 포함이 되지요. 자연재해라기 보다는 인공적인, 그야말로 돌발상황이지만요.), 외계인이나 킹콩등의 방문 등을 포함한(?) 다양한 돌발상황의 이유로 영화는 엎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요즘은 구사일생으로 영화가 제작되는 일도 있지요. 크라운드 펀딩 혹은 소셜 펀딩이라는 것을 이용해 모금형태로 제작비를 마련해 영화가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으니 적어도 돈이 없어서 영화를 못만든다는 이유는 최근 들어서는 핑계 아닌 핑계로 들어오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힘내세요, 병헌씨>는 두 가지 상황이 있는 영화입니다.

바로 병헌의 영화가 엎어지는 과정을 다룬 상황이 첫번째이며, 병헌을 비롯한 나머지 세 친구의 궁상맞은 삶들과 병헌의 가족들의 이야기가 이 영화의 주된 내용이지요. 그것을 이야기하기 위해 이들이 선택한 방식은 페이크 다큐입니다. 그러니깐 다시 말하자면 이 영화를 만든 이병헌 감독은 자신의 이름을 배우에게 그대로 대입시켜 실화인지, 페이크인지 모를 상황들을 보여주고 있지요. 하지만 어느 면에서 볼 때 이 영화는 페이크 다큐이자 극영화이며, 일부 장면은 실제 상황임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병헌 감독이 보여주는 영화 속의 상황은 거짓이지만 한국영화의 제작시스템을 보여주는 상황들은 어느 정도 진짜라는 것입니다.

아울러 영화의 말미에는 <냄새는 난다>(2009)라는 제목의 정체불명의 단편이 등장하는데 영화 속의 병헌이 연출한 영화로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 이 영화의 감독인 진짜 이병헌 감독이 만든 단편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이 영화는 별책부록처럼 자신이 만든 실제 단편영화를 끼워넣는 방식을 시도한 것이죠. 액자식 구조를 사용함과 동시에 이 영화가 페이크와 실제 상황을 넘나들고 있는 영화라는 것을 다시한번 상기시켜 주는 부분이라는 것입니다.

 

영화에 대한 영화를 만들 경우 자신의 모습을 다른 배우에 대입시키는 경우가 있는데요. 영화 <내가 고백을 하면>의 김태우 씨가 맡은 영화감독 인성의 역할이 제작자 겸 극장운영자인 조성규 씨의 모습이었다는 것처럼 이 영화 <힘내세요, 병헌씨>에서 병헌의 역할을 맡은 배우 역시 일종의 재연이지만 한편으로는 하나의 분신(아바타)처럼 영화에서 배우를 활용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점에서 병헌 역을 맡은 홍완표 씨의 연기가 참으로 좋았지요. 연극배우 출신으로 몇몇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한 경력을 가지고 있으시지요.

범수 역의 양현민 씨도 역시 연극배우로 알려진 분이죠. 승보 역의 허준석 씨는 탈렌트 출신으로 드라마 <드라마의 제왕>과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에 출연하기도 하였습니다. 스카프를 사랑하는 무명배우 영현 역의 김영현 씨는 앞에 이야기한 영화 속의 영화(실제 영화였던)인 <냄새는 난다>에도 출연하여 장편과 단편에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영화의 이색적인 등장인물도 빼놓을 수 없지요. 바로 강형철 감독입니다.

영화에서 의외로 많은 등장을 하는데 실제 이병헌 감독은 <과속스캔들>, <써니>의 각색작업을 했던 분이죠. 그렇다보니 동료이자 절친이 이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게 오히려 더 이상할지도 모르는 일이죠. 더불어 덤으로 <써니>의 강소라 씨까지 등장하니 의외의 영화보는 재미를 주기도 하는 것이죠. 아울러 강형철 감독에 대한 귀여운(?) 디스까지도 볼 수 있습니다.

 

 

 

 

 

올해 아주 재미있고 인상적인 독립영화들이 많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었다는 것은 독립영화라는 것이 결코 꼰대스럽고, 딱딱하며, 지루한 영화들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죠.

어쩌면 이 영화의 결론은 이 영화속의 병헌이자 실제 이 영화를 만든 이병헌 감독이 보여주는 단편에 그 해답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찌찔하고 가난하며, 이혼남에 되는 일도 하나도 없지만 영화가 좋기에 영화를 만들고 있고 어려운 시련이 다가와도 이런 그와 그 친구들의 도전은 계속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어쩌면 현재 겪고 있는 많은 영화감독들이나 시나리오 작가들이 처해있는 상황이기도 하죠. 하지만 어두운 미래보다는 밝은 미래를 향해 가야 하는 것도 그들에게는 고행이라면 고행이고, 운명이라면 운명이지 않을까 싶네요.

웃고 싶지만 절대 쉽게 웃을 수 없는... 그야말로 '웃고픈' 영화... <힘내세요, 병헌씨>였습니다.

 

PS. 시사회로 만난 이 작품은 아주 의외의 게스트들을 보았는데요. 배우 고창석 씨와 개그우먼 안영미 씨였습니다.

안영미 씨는 앞에 이야기 드렸던 <내가 고백을 하면>을 통해 독립영화에서의 정통 연기에 도전을 했었고요, 고창석 씨는 다큐 <춤추는 숲>의 배경이 되는 성미산 마을의 주민이자 다큐의 티저 예고편에 등장하기도 했죠. 독립영화와는 의외로 뗄레야 뗄 수 없는 분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