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스럽다고 해야할까요? 챙피하다고 해야할까요?
제 전재산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전세로 살고 있는 이 집이 전부이고 월급이나 이런저런 일로 해서 통장에 돈은 들어오지만 제 블로그를 자주 방문하셨거나 SNS를 읽고 계셨다면 그리 나은 형편은 아님을 알고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제가 일을 새롭게 시작할 때마다 사람들은 묻습니다. 부모님과 같이 살고 있냐고 묻고, 제가 혼자 산다고 이야기하면 왜 혼자사냐고 묻지요.
너무나도 지겹게 듣는 단골 질문들이라서 토씨 안틀리고 이야기하는 경우도 생겨버렸습니다.
부모님이 독립할 나이도 되었으니 한번 독립을 해보는게 어떻게냐고 해서 혼자 살게 되었노라...라고 말합니다.
독립을 한지도 5년 정도가 되어갑니다. 짧은 기간 동안 많은 일이 있었고 직장도 많이 옮겼습니다.
스물 중반의 나이에 독립을 함에 있어서 당시 세상은 참으로 잔인했습니다. 그리고 그 냉혹한 현실은 변함이 없고요.
갓 스물이 된 스무살의 두 남자들...
과연 이들도 저같은 마음이었을까요? 영화 <경복>(Big Good)입니다.
슈퍼를 운영하는 형근(최시형 분)이네... 물론 그가 직접 운영하지 않지만 대신 가게를 봐주는 경우도 있지요.
스물... 또래 고 3들은 모두 졸업했고 누군가는 대학교에 합격했다는 소식도 보이며 사랑을 하고 연애를 하는 사람들의 소식도 들려옵니다.
형근 대학에 진학여부 보다도 지금 당장 시험결과를 어머니에게 보여주는게 두렵기만 합니다.
어머니는 여행을 떠나러 집을 비웠고 절대 아이들을 집으로 데려오지 말라고 신신당부 합니다.
특히 동환(김동환 분)은 절대 데려오지 말라는 말도 잊지 않지요. 하지만 어김없이 자신의 방에 동완은 와 있습니다.
스물인 두 사람은 자유라는 생각에 독립을 결심합니다. 하지만 전세와 월세의 차이도 몰랐던 그들에게 쉽지 않은 도전이지요.
두 평이라도 좋으니 나만의 방해받지 않는 공간을 마련하고 싶었던 두 사람...
형근은 자신의 방을 다른 세입자에게 주기로 하고 동환과 집을 구하기로 합니다
그 중에는 시나리오 작가(허정 분)도 있고 뮤지션 지망생(이종필 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에는 들지 않습니다.
그러던 그들은 대학생 아가씨(한예리 분)가 새로운 방주인이 되는 것으로 의견을 모읍니다.
동환은 벌써부터 그녀를 위해 노래를 부를 준비까지 합니다.
그러던 와중에 뉴욕... 그러니깐 NY를 갔다왔다고 말하는 형근 학교선배(신이수 분)의 등장...
그는 그들에게 뉴욕을 가라고 뚱단지처럼 이야기하기 시작하며 자신의 무용담을 이야기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좀 이상합니다.
짐을 싸고 세상 밖으로 나온 형근과 동환... 과연 그들에게는 어떤 일이 그들에게 다가올까요?
<경복>은 전형적인 청춘에 관한 영화입니다. 그러나 그 방식이 기존의 영화와 약간 다른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저예산 제작방식은 과거에는 놀라운 방식이었지만 이제는 흔한 방법이 되어버렸고요, 다만 흑백화면에 거친 느낌의 영상이 등장하며 등장인물의 최소화와 더불어 기존의 저예산으로 끝나는 제작방식만 고수하지 않고 스텝들까지도 최소화 하는 독특한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의 러닝타임은 중편과 장편 사이를 왔다갔다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우선 배우이자 스텝들에서 그 면모를 볼 수 있는데요. 이 영화를 만든 최시형 감독의 경우 독립영화에서는 나름 많이 활동한 스타입니다. <다섯은 너무많아>, <은하해방전선>등의 작품에서 배우로써의 최시형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죠. 이 영화에서는 주연과 감독직을 겸하고 있지요.
그리고 이 영화에서 잠시나마 뮤지션 지망생으로 등장한 이종필 씨는 몇 번이나 이야기드렸습니다만 배우로도 익숙한 얼굴이었지만 최근 이경규 씨가 제작에 참여한 영화 <전국노래자랑>의 메가폰을 잡은 인물이기도 합니다. 독립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한예리 씨도 이 영화에 등장하는데요. (한예리 씨와 이종필 씨는 영화 <환상속의 그대>의 단편버전인 <백년해로외전>에서 이미 만난 경험이 있지요.) 무엇보다도 동네형 포스로 등장하는 신이수 씨의 모습이 무엇보다도 이 영화에서는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그 역시 영화감독으로 활동한 전력이 있는 분입니다. 따라서 이 영화는 다시 뜯어보면 배우가 영화 전반에 스텝들로도 참여하면서 실제 등장을 하고 있다는 것이죠. 시나리오 작가로 등장하는 허정 씨 역시 감독분이고요, 그는 손현주 씨가 출연한 영화 <숨바꼭질>의 감독을 맡았으며 곧 개봉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시 정리를 하면 이 영화에서 한예리 씨는 조연출을, 이종필 감독은 촬영을, 허정 감독은 동시녹음, 김동환 씨는 음악감독 스텝이기도 한 것이죠. 상당히 골때리는 영화(!)이지만 한편으로는 스텝과 배우들을 효율적으로 이용한 영화라는 것이죠.
이 영화는 내용면에서도 특이합니다. 스무살의 두 청년의 모습이죠.
근데 어른이라기 보다는 상당히 철없어 보이는 소년들에 가까워 보입니다. 어른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줄창 담배를 피워대며 일탈을 꿈꾸지만 생각하는 것은 아직도 졸업하기 전 당시의 고 3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전세나 월세라는 것도 모르고 세상살이에 상당히 어둡습니다.
다만 그들은 나름 자신들이 지혜롭다고(착각하는) 생각하는 이들이라는 것이죠. 전세비를 받아서 그것을 저축하고 나중에 그돈을 불려서 뭔가 다른 것을 하겠다는 것이죠. 그 구체적인 것은 나와있지 않지만 두 사람이 음악을 좋아했다는 것을 봐서는 뮤지션이나 그것도 아니라면 낙원상가 같은 곳에서 악기라도 팔고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자신들의 청춘이 초반부터 삐걱대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흑백이던 화면이 칼라로 잠시 변하는 상황에서 형근의 나레이션이 이들의 암울한 현재의 상황을 말하고 있는 것이죠.
"2003년 11월... 대학은 둘째치고 스무살이 다가왔다. 스무살이 되니 곁에 있던 친구들은 대학을 가고 군대를 가고 사랑을 하고 일을 하고 다들 어디론가 떠나였다."
이는 어쩌면 "나에겐 꿈이 없다"라고 말하던 영화 <비트>(1997)의 민(정우성 분)의 상황과는 정반대인 것이죠. 두 청년은 꿈은 있지만 돈이 없었던 것이고 민은 꿈도 돈도 없는 상당히 절박한 상황이라는 것이죠. 그 상황에서 그들이 전세비를 받고 자신들이 살아가던 터전을 떠나는 것은 상당히 중대한 결심이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경복>을 보시다보면 익숙한 목소리가 들립니다. 바로 영화평론가 정성일 씨의 목소리죠.
그들이 듣고 있는 라디오 방송에서는 마치 이들 청년의 암울함을 그대로 재연하는 이야기가 흘러나옵니다.
이는 자이장커의 영화인 <임소요>(2002)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목으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가 깔려 있습니다.
사제폭탄을 만들던 두 소년이 은행을 털러갔는데 초짜였던 그들은 은행을 털기는 커녕 사고로 폭탄이 터져 운명을 달리한다는 내용의 영화인데 이에 대한 내용을 설명한 것이 바로 정성일 평론가였죠. (이 이야기를 설명한 내용은 지금은 사라진 MBC 음악 FM의 '정은임의 영화음악'의 방송내용이라고 합니다.)
바로 이 대목들은 <경복>을 관통하는 중요한 대목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앞에 이야기한 <비트>의 주인공들의 모습도 그렇고 <트레인스포팅>(1997)의 렌튼(이완 맥그리거 분)을 포함한 그의 친구들의 상황도 막장 그자체고 역시나 꿈도 없는 상황에서 마치 어딘가의 늪에서 헛발질만 하는 상황만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경복>의 형근과 동환은 전세라도 내놓아서 그걸로 돈을 벌겠다는 생각이라도 했으니 그나마 꿈은 있는 아이들이라는 것이죠. 단연컨대... 전세자금은 그들에게는 희망이었던 것이죠.
이 영화에서는 익숙한 음악하나와 정체불명의 음악이 하나 등장합니다.
모두 극중의 동환이 부르던 노래입니다만 한 곡은 넷 킹 콜(Nat King Cole)의 'LOVE'라는 노래고 한 곡은 버스커스(Buskers)의 'If I ruled the world'라는 곡입니다. 이 노래를 이 영화 <경복>의 출연진들은 이렇게 불렀습니다.
이 영화는 상영관이 적습니다. 아니, 아예 홍대 상상마당 한 곳만 단독 개봉하였지요.
오히려 이런 한정판스러운 독점 상영관이 이 영화의 품격을 올리고 있는게 아닐까도 생각됩니다.
하지만 기왕이면 많은 분들이 봤으면 합니다. 러닝타임도 적당하거든요.
이 영화의 제목인 <경복>은 말 그대로 풀이하면 '큰 복' 입니다. (영문원제가 괜히 'Big Good'이 아닌거죠.)
이 영화의 제목이 <경복>인 또 다른 이유는 이 영화의 출연진인 김동환 씨와 감독인 최시형 씨가 실제 절친으로 자주 만나던 장소가 경복궁 근처었고 심지어는 경복고를 나왔다는 점에서 이 제목이 정해진 것도 있다고 합니다. 물론 이런 단순한 이유를 가지고 있지만 굳이 의미 부여를 하자면 앞에 첫번째인 '큰 복'이 이 영화의 제목이 <경복>인가를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새로운 보금자리로 갈 것입니다. 그리고 쉽지 않은 고난이 그들에게 다가올 것입니다.
그것이 독립을 하면서 많이 겪게되는 모습들이죠. 심지어는 그들은 자신이 독립을 한 것을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후회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적어도 살기 위한 그들만의 대책은 있어보이기 때문이지요.
창밖에 비가 많이 내리고 있습니다.
선풍기를 켠 상태에서 글을 쓰다보니 아무도 없는 옆방의 천장에 물이 새는 모습이 짜증을 넘어서 사람을 인내하게 만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형근과 동환도 아마 이런 시련을 겪고 있겠죠. 좋은 집을 구했다면 다행이겠지만 아마 누군가에 속았거나 돈이 부족해서 낭패를 봤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저도 그렇고 세상과의 첫 인연을 맺는 사람들 모두 수십번의 시행착오에서 발전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서태지 선생님께서는 말씀하셨죠.
'♪ 우린 아직 젊기에... 또다른 미래가 있기에...' 제 말이 맞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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