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실업계 고등학교를 나왔습니다.
챙피스럽냐고요? 아마 몇년전이라면 그랬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저는 후회는 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내 머리로는 도저히 대학을 갈 수 없으며 공부와 담을 쌓은 나에게는 차라리 이렇게 사는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죠.
근데 말이죠. 대학이 인생의 전부인가라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게 사실입니다.
내가 대학을 졸업했더라면 지금보다 더 좋은 직장을 다니고 있을까라는 의문말입니다.
선생님으로 출발해 이제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된 신수원 감독...
그녀가 들려주는 학교 이야기가 지금 시작됩니다. 영화 <명왕성>(Pluto)입니다.
명문고로 알려진 세영고.... 그런데 이 곳의 한 학생이 숨진체 발견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사건을 수사하던 박 반장(조성하 분)은 이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동영상 촬영한 핸드폰 주인인 준(이다윗 분)이 정해진 상황입니다.
그러나 준은 법 조항을 들먹이며 자신은 억울하다며 이 사건과 관련없음을 말합니다.
무혐의로 풀려난 준은 학교 어딘가의 곳으로 내려갑니다. 엘리베이터 1 층 버튼을 두 번 누르면 나타나는 비밀의 방...
이야기는 얼마전으로 돌아갑니다. 준은 학교 기숙사로 들어오게 되고 룸메이트인 유진(성준 분)을 만나게 됩니다.
외국에서 살다온 유진은 유창한 영어실력도 실력이지만 어딘가 모르는 비밀을 가지고 있는 아이였습니다.
그러던 중 수진(김꽃비 분)에게 진학재라는 특별반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전교 10 등안에 드는 아이들만 따로 모여 공부를 하는 곳...
1인 1대의 대형 모니터가 달린 컴퓨터와 헤드폰 등이 완비되어 있는 시설을 갖춘 곳으로 말이죠.
하지만 더 중요한 사실은 이들 중에 비밀 스터디 그릅을 만들어 운영하는 이들도 있다는 이야기도 들려줍니다.
바로 유진을 비롯하여 명호(김권 분), 미라(선주아 분) 등의 아이들이 속해 있는 팀이죠.
그런데 이미 준은 미라에게 좋아한다 고백을 하다가 유진을 비롯한 아이들에게 된통 당했던지라 이들 팀에 합류하는 것이 내키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보험회사 일로 겨우겨우 입에 불칠하는 준의 어머니(길해연 분)와 아무리 발버둥쳐도 오르지 않는 성적에 결국은 이 비밀의 방에 들어서게 됩니다.
그러나 호락호락하게 쉽게 이 그릅 '토끼사냥'에 그를 끼워줄리가 없죠. 황당하기 짝이 없는 미션들이 준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답노트가 적힌 스터디 그릅의 비밀 사이트에 접속하여 공부해야 하는 상황... 성적은 오르긴 했지만 뭔가 이상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토끼몰이의 희생양이 된 것을 알게된 준은 처절한 복수를 감행하기 시작합니다.
공교롭게도 이 영화가 개봉하던 시기에 영훈중 사건이 터졌습니다.
치맛바람이 들었던 부모들이 아이들의 입학을 위해 부정을 저지르고 교감을 비롯한 선생님들은 비리를 저지르게 되지요.
교감이 자살을 하는 사건이 더해지고 재벌그릅 부회장의 아들이 자퇴를 하는 것으로 이 사건은 조용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쉽게 조용해질 분위기도 아닙니다.
그런데 이런 영훈중처럼 사립학교의 문제가 등장하게 된 것도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죠.
2001년 만들어진 영화 <두사부일체>가 상문고 사건을 다루었다는 것은 너무나도 유명한 일이죠.
이후에도 사학법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여전히 있는자들은 그들대로 귀족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명왕성>은 그런점에서 결코 묘한 타이밍에 나온 영화는 아니라고 봅니다.
더구나 이 영화를 만든 신수원 감독은 중학교 교사출신으로 학교에 있었다는 점 때문인지 몰라도 학교에 관한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다루는데는 유리한 점을 지니고 있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그녀의 데뷔작이라고 할 수 있는 <레인보우>(2009)를 들고 나왔을 때 영화는 참으로 섬세하지만 과연 다음 작품에서 독하고 강한 작품을 만들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거든요. 그런데 이 작품 너무 강도가 쌥니다.
물론 가상의 명문고와 가상의 비빌의 방, 그리고 가상의 스터디 그릅에 대한 이야기지만 어느 정도 현실을 반영한 상태에서 이야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충격 그 이상이라는 것이죠. 더구나 우리는 실업계나 그냥 일반 학교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만 보아왔고 특히나 남자아이들은 건달, 여자아이들은 그저 껌좀 씹어본 아이들 등으로 표현하는 것이 고작이었던 것이 과거 학원물(혹은 하이틴) 영화의 특징이 되었지만 지금은 많이 달라졌죠.
어쩌면 <여고괴담> 시리즈나 드라마 <학교> 시리즈가 보여준 요즘 중학생, 요즘 고등학생들의 이야기가 제대로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명왕성>은 한단계 더 나아가고 있는 작품이라는데에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시리라 봅니다. 거기에 최근 초딩들의 세상을 다룬 드라마 <여왕의 교실>까지 더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는 예전처럼 <호랑이 선생님>이나 <반올림>, <사춘기> 같은 악인없는 착한 사람들만 등장하던 청소년 드라마에서 완전히 벗어나고 있다는 것이죠. 가슴 아픈일이지만 차라리 현실을 보여주는게 더 잘된 일인지도 모릅니다.
1 등이 되기 위해서는 나머지 라이벌은 죽인다는 괴담이 오래전에도 많이 떠돌긴 했지만 그만큼은 아니더라도 자신이 1 등이 되기 위해서라면 상당히 치졸하고 위험한 짓도 서슴치 않는다는 점에서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스터디 그릅 '토끼사냥'의 모습은 결코 남의 이야기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극 중에서 11 등으로 밀려난 미라가 스터디 그릅 아이들과 합세하여 아이들을 몰아내고 무려 9등으로 올라서는 장면은 공포 괴담 저리가라 수준의 살벌함을 보여줍니다. 이는 수진의 친구도 당했던 일이고 준의 새 룸메이트도 당했던 일이며 준 자신도 당할 일입니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배신하면서 스터디 그릅 안에서도 누군가를 몰아내기 위한 또 다른 음모가 진행되는 것이고요.
신인들로 구성되었을 것이라는 생각과는 달리 이 영화 <명왕성>에 등장하는 고등학생 역할의 배우들은 우리에게 낯익은 얼굴들입니다.
수진 역의 김꽃비 씨는 말씀 안드려도 아실테고요, 준 역의 이다윗 군은 영화 이창동 감독의 <시>를 통해 알려졌고 그 이후로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방성준이라는 이름으로도 익숙한 성준 씨는 최근 드라마 <구가의 서>에서 맹활약을 펼쳤던 인물이며, 서울대에 가기 위해서라면 어떤 악행도 서슴치 않는 인물로 등장한 명호 역의 김권 씨도 이 영화의 또 하나의 히든카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별출연의 자격으로 등장하는 조성하 씨는 <파수꾼>(2010)에 이어 사건을 추적하고 관찰하는 관찰자 역할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른 점이라면 한 아이의 아버지에서 형사로 바뀌었다는 점이죠. 이 영화를 '제 2의 파수꾼'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과장한다고 할 수 있지만 한 편으로 볼 때는 청춘들의 엇나감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는 동일한 부분이라고 봅니다.
이 영화는 당초 청소년 관람불가로 청소년들에게 이야기하고픈 영화가 정작 청소년들에게 보이지 못할 뻔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아주 자극적이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극단적인 아이들의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악날한 아이들로 이루어진 비밀 스터디 그릅이라던가 사제폭탄을 들고 협상 아닌 협상을 해야하는 상황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오히려 마지막 장면에서 명호가 예비 합격자에게 애걸복걸하는 장면이 웃기면서도 한편으로는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던 장면이라고 보여지거든요. 사람이 살기 위해 자신의 악행을 반성하는척 하는 모습들을이 재수없어 보였는데 통쾌하게 이를 풍자하고 있으니 어느 정도 시원하다는 느낌도 들더군요.
거대한 전광판에 1 등부터 60여등이 넘는 아이들의 성적이 공개되는 장면이 있습니다.
10등 뒤로 떨어지면 거의 낙오자로 놀림받는 상황... 마치 이 영화의 제목이기도 하는 명왕성의 추락을 보는 듯한 모습이기도 하죠.
명왕성은 1930년 발견 이후 태양계의 9번째 행성으로 불렸지만 2006년 국제천문연맹으로부터 행성 지위를 박탈당하여 이름없는 숫자 행성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이유는 이 영화의 대사에서도 등장했지만 크기와 질량이 매우 작고, 충분한 중력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태양을 포함한 10개의 다른 행성이 파괴되지 않는 이상 명왕성이 자신의 이름을 찾고 태양계의 아홉번째 행성으로 불리울 가능성은 거의 희박합니다.
마치 10등 이후로 밀려난 아이들이 다시 자신의 타이틀을 찾기 위해 미친 듯 달리는 모습과도 다름 없다는 것이죠.
고등학교를 졸업해도 우리는 대학교라는 곳에서 다시 경쟁을 하기 시작하며 그것도 모자라 사회생활에서 또 다른 경쟁을 해야 합니다.
대학은 1차윈적인 목표가 될 수 있지만 어느 시점에서 볼 때 자신 타이틀을 얻기 위한 수많은 어려운 관문 중의 하나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아무런 앞날이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과연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경쟁에서 밀려났으니 포기하고 자폭해야 할까요? 글쎄요... 그건 아니겠지요.
과연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그리고 무엇을 위해 다시 살아야 할까요?
뒤숭숭한 상황속에서 이 작품 <명왕성>은 그냥 놓칠 영화는 아니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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