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대한 잡설들/오감만족... 이 영화 봤수?

[일대종사]왕가위의 익숙하고도 난해한 이야기... 철학, 무술, 사랑의 절묘한 콜라보레이션!

송씨네 2013. 8. 18. 23:43

 

 

 

중국의 무협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누굴까요? 아마도 황비홍이나 엽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중국이나 홍콩영화에서 무술의 달인을 이야기하는 영화의 경우 약간의 과장이긴 해도 실존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잘 다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황비홍과 더불어 최근 많이 이야기되고 있는 인물은 바로 엽문이죠.

영춘권의 대가로 알려진 그에 대한 이야기는 견자단이 주연을 맡은 <엽문> 1편, 2편에서 볼 수 있지만 왕가위가 엽문의 이야기를 다루겠다니 이건 뭔소리일까요? 어쨌든 독특한 감성으로 관객을 불러모으던 왕가위가 보여주는 엽문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확인해보기로 하죠.

영화 <일대종사>(一代宗師 / The Grandmaster)입니다.

 

 

 

 

비가 내리는 어느 날 한 남자가 여러 사람들과 싸우고 있습니다.

추풍낙엽처럼 떨어지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어둠 저편에서 한 사람이 그의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일명 북방어르신으로 통하는 북방 무술의 대가인 공대인(왕경삼 분)은 은퇴를 앞두고 마지막 후계자를 찾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는 이미 빗속에서 여러 장정을 물리친 엽문(양조위 분)에 더 관심이 있지만 일단 마삼(장진 분)을 후계자로 삼은 상황에서 그를 누를 수 있는 또 다른 인물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왕이면 엽문이 와주면 좋겠지만요.

드디어 공대인과 엽문이 만나고 전병만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모습에 공대인 역시 감탄하게 됩니다.

그러나  공대인의 딸이자 한의학을 공부한 궁이(장쯔이 분)는 아버지의 자존심을 지켜주고 싶었던 나머지 엽문과의 식사자리에서 무술을 겨루고 단판을 지으려는 생각을 하게 되지요. 궁가 64수의 후계자인 궁이와 영춘권의 후계자인 엽문과의 자존심을 건 대결이었지요.

몇 년이 지났고 중국 역시 일본에 의해 굴욕적인 통치를 받기 시작했고 마삼은 일본의 앞잡이가 됩니다.

한순간 배신자가 된 마삼은 자신의 스승을 처단하게 되고 그 소식을 들은 궁이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유학에서 급히 돌아오게 됩니다.

다시 시간은 흐르고 또 흘러 일본의 항복으로 인해 전쟁은 끝이 났고 불산에서 홍콩으로 피신한 엽문과  궁이는 이 곳에서 제 2의 인생을 살기 시작합니다.

궁이와 마삼 간의 대결의 승자는 누구였을까요? 그리고 궁이와 엽문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결과는 어떻게 될까요?

 

 

 

이 영화는 엽문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입니다. 근데 감독이 왕가위입니다.

잘못 말하고 있는게 아니냐고요? 정확히 말씀드립니다. 감독은 왕가위입니다.

그런 그가 왜 엽문의 일대기를 다루었냐고요? 우연치 않게 왕가위는 엽문의 노년의 모습을 담은 동영상을 볼 기회가 있었다고 합니다.

쇠약한 몸으로 자신의 주특기인 108권을 보여주는 모습이었다고 하는데 공교롭게도 엽문이 세상을 뜨기 3일전의 모습을 다룬 영상이었다고 하네요.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엽문에 대한 모습이 있습니다. 앞에 언급한 2009년 영화인 <엽문>입니다.

이후 총 4편이 만들어졌지만 엽문을 맡은 견자단은 2편까지만 주연을 맡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엽위신 감독의 <엽문> 시리즈와 왕가위의 <일대종사>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것입니다.

엽위신의 엽문은 액션도 액션이지만 엽문의 영웅으로 그리기 위해 일부의 상황을 각색해서 만들었다는 것이고 왕가위의 엽문은 그의 일대기에 사랑이야기를 추가한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생각하시길 궁이라는 인물도 실존인물이라 생각하시겠지만 이 역시 가상의 인물이라는 것이죠.

하지만 이야기에 대한 사실감은 왕가위의 <일대종사>가 더 가깝다는 것입니다.

 

사실 영화로만 보면 좀 이해하기가 어려웠는데 다행스럽게도 제가 영화를 본 자리가 영화평론가 이동진 씨의 해설이 있는 특별상영이었습니다.

영화를 보고나서 이동진 씨의 해설이 더해지면서 영화에 대한 이해가 더 컸다고 보여집니다.

<일대종사>는 분명 왕가위의 영화이지만 기존 왕가위의 영화와는 노선을 달리하고 있다는 점이 다른점이라고 할 수 있지요.

앞에 이야기한 실존 인물의 일대기를 다룬 왕가위의 첫영화라는 것이 바로 기존 왕가위 영화와 다른 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동진 씨는 이외에도 이 영화의 특징들을 몇가지 지적했는데요.

먼저 첫번째로 이 영화는 영춘권의 계승자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영춘권은 남쪽무술로 영화의 앞에서 보여주는 공대인이 이야기하는 북쪽무술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영화의 공대인이 엽문을 눈여겨 본 것은 자신들의 무술을 우월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닌 각각의 장점을 잘 이용하여 멋진 무술로 탈바꿈 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영춘권의 탄생에 대해서는 맣은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소림으로부터 무술을 전수받은 염영춘이 영춘권의 창시자로 알려진 것이 그나마 유력한 이야기들 중의 하나입니다. 이는 1994년 원화평이 감독을 한 <영춘권>에서 그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고 합니다. 양자경이 바로 영춘권의 창시자인 염영춘 역할을 맡았다고 하네요.

 

두번째 특징은 이 영화는 실향민의 아픔을 담아낸 것인데요.

엽문은 불산이라는 곳에서 홍콩으로 가게되지만 자발적인 것이 아닌 일제의 침략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길로 보여집니다.

그러나 엽문은 홍콩으로 건너가고 그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도 중국땅을 밟지 못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실향민의 아픔 같은 것인데 상하이 출신의 왕가위가 볼 때도 엽문의 이런 모습은 상당히 공감이 갔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또 하나 이 영화에서 주목할 점은 영춘권을 비롯한 대부분의 무술은 수직과 수평(혹은 가로와 세로)로 이루어진 활동이라는 것입니다.

수직으로 내려오는 사람들과 무술들이 있는 반면 공격을 받고 떨어지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일직선(수평)으로 누워 있다는 것이죠.

또한 수직이 살아있는자의 모습을 뜻한다면 반대로 수평은 죽어있거나 패한 사람들의 모습을 나타낸다는 것입니다.

이런 장면들을 이동진 씨는 하나하나 컷으로 예를 보여주면서 소개를 하셨는데  왕가위 감독이 얼마나 여우같이 게산적으로 이 화면을 담아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 영화는 왕가위의 전작들이 그렇듯 사랑에 대한 미묘한 상황을 그려냈습니다.

두꺼운 털로 이루어진 코트를 아내인 장영성(송혜교 분)에게 선물하는 장면은 가난으로 인해 이 옷을 되파는 장면으로도 이어지는데 단추 하나가 아예 빠져 있는 상태로 되파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빠진 단추의 행방은 엽문이 홍콩에서의 한 도장의 숙소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하나 남은 단추 역시 궁이에게 선물로 주면서 자신의 마음을 알아달라는 내용으로도 표현이 됩니다.

 

그 뿐일까요? 왕가위 영화의 뜬금없음은 이 영화에서도 등장하는데 주요 등장인물과 마주치지 않지만 의외로 자주 등장하는 일선천(장첸 분)의 모습이 대표적입니다. 일선천 역시 무술의 고수로 등장해 팔극권을 보여주는데요. 엽문과 마찬가지로 비오는 날 많은이들을 한번에 제압하는 모습도 등장하지만 아주 음침한 이상한 이발소에서 벌어지는 이상한 상황들과 이상한 대결들이 이 영화가 왕가위 영화라는 것을 다시한번 각인시키게 만듭니다.

 

<알대종사>는 양조위와 장쯔이, 장첸, 송혜교 등의 쟁쟁한 배우들을 스크린에서 볼 수 있다는 이점을 지닌 영화입니다.

잦은 부상으로 영화촬영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영춘권의 일인자로 모습을 보여주었던 양조위와 무용으로 단련된 기술을 무술로 결합하여 아름다운 무술을 선보인 장쯔이도 인상적입니다. 하지만 당초 알려진 것에 비해 분량이 상당히 적었던 송혜교 씨의 활약은 아쉬움이 남지요. 아예 극중의 장영성을 말없는 소심한 여인으로 그린 것은 왕가위가 의도한 부분이 아닌가도 생각됩니다. 대사도 상당히 짧았으니 말이죠.

 

 

 

 

 

이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일대종사'(一代宗師)는 무술 문파에서 한 시대에 나오기 힘든 힘든 위업을 달성한 위대한 스승을 말하는 것으로 엽문과 더불어 앞에 이야기한 황비홍도 이에 속한다고 합니다.

엽문은 이후 이소룡을 비롯한 제자들을 양성하게 되는데요. 염영춘으로 시작한 영춘권이 엽문을 거쳐 이소룡을 비롯한 많은 제자들에게 전파된다는 것은 매우 멋진 일이고 뜻깊은 일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영화의 엔딩에 뜬금없이 '너는 어느 문파니?'라고 묻는 영화속 엽문의 모습도 그렇고 '나라에 남북이 있습니까?'라고 엽문이 공대인에게 묻는 대화에서 보듯 무술은 그 종파나 문파, 그리고 그 고장을 구분하는 것이 아닌 서로를 이해하고 그 기술을 전파한다면 그 무술은 모두의 것이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 싶었던게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가 종교와 정치이념, 고향출신에 대해 싸우고 의견이 갈리는 부분이 많아지는 것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융합자체도 거부하기에 생기는 문제점으로 보여집니다. 이념과 사상에 목메이는 것은 차라리 무식하고 미련한 짓이라고 보여집니다.

당신의 고향, 종교, 이념, 사상.... 궁금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의 당신을 이해하는 과정이지 그것을 배척하고 거부하는 과정은 아닙니다.

그것을 알아야 하는데 아직 우리에게는 그런 개방적인 생각들이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왕가위의 익숙하지만 한편으로는 새로운 시도... 우리는 여기서 또하나 무엇을 느끼게 될까요?

 

 

 

ps. 부천에서 압구정의 이동진 씨의 모습을 보는 것도 아주 특별하네요.

근데 이동진 씨가 많이 피곤하신지, 아니면 힘드신지 <일대종사>를 <엽문>과 헛갈리시고, 양조위를 자꾸 장국영으로 이야기하시더군요.

애초롭고 안타깝네요... 일도 좋지만 쉬염쉬염 하셨으면 하는 생각도 갖아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