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대한 잡설들/오감만족... 이 영화 봤수?

[죽지않아]절대로 죽지 않는 것은 무엇? 시사 블랙코미디 스릴러를 보여주마!

송씨네 2013. 8. 13. 01:56

 

 

절대로 죽지 않는 것... 무엇이 있을까요?

007은 수많은 시리즈에서도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고 인류의 적인 바퀴벌레도 그렇게 오랜 시간을 인간과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무병장수를 기원하기 위해 누군가는 '니노 막시무스 카이저 쏘제 쏘냐도르 & 스파르타... 죽지 않아, 나는 죽지 않아'라고 주문아닌 주문을 외치기도 합니다.

근데 정말 죽지 않는게 있습니다. 바로 신념과 사상인데 그것이 아주 확실한 사람들은 대단하죠.

문제는 다른 것에 있습니다. 영화 <죽지않아>(Oldmen Never Die)입니다.

 

 

 

한 시골 마을...

머리를 빡빡밀은 청년과 나이를 분간할 수 없는 중년의, 아니... 노년의 한 사내가 보입니다.

이야기는 몇 년전으로 흘러갑니다. 할배(이봉규 분)에게는 아들(맹봉학 분)이 한 명 있었는데 젊을 때 학생운동을 하던 사람이었지요.

그는 그런 아들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를 포함한 이들을 빨갱이라고 불렀으며 그가 사는 마을 사람들 중에도 데모나 집회에 나가는 사람들을 보고도 그렇게 이야기하여 사람들을 불안불안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 아들... 그러니깐 할배의 손자가 한 명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지훈(차래형 분)으로 특별히 사상 따위 같은 것은 믿지 않는 것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할배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것과 죽어도 아들에게는 유산을 물려줄 생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땅부자에 시가로 따지면 약 30억원에 해당되는 그야말로 갑부죠. 월남전에 참전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확실치는 않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그를 '대령님'이라 부릅니다.

할배의 위대한 유산(!)을 알게 된 지훈은 아버지에게 유산 관심여부를 다시 물어본 뒤 자신이 그 유산을 갖기로 마음먹고 할배가 사는 마을로 향합니다.

근데 금방 돌아가실 것 같은 할배가 4년이 지나도 거뜬한 것은 물론이요, 거꾸로 흰머리 대신 검은 머리가 나고 있습니다.

맘마미아!... 세상에 이런일이, 화성인 바이러스, 안녕하세요... 따위에 나와야 할 기이한 일입니다.

할배는 그렇게 손주를 부려먹고 있었고 지훈은 시골을 떠나기로 합니다.

서울에서 은주(한은비 분)라는 아가씨를 만났고 술김에 할배 유산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지요.

설마 그녀가 관심을 갖을까 싶었지만 지훈은 정신차리고 다시 할배집으로 왔고 그녀는 할배집에 갑자기 나타나서는 나갈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

그리고 세 명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되었습니다. 과연 할배는 꿋꿋히 살 수 있을까요?

 

 

이 황당한 내용의 영화는 올해 부천영화제에 첫선을 보였습니다.

외국 영화들이 많이 선전한 가운데 이 작품도 큰 관심을 보였던 관객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더구나 홍보방식에 있어서 특이한 방식의 UCC 같은 뮤직비디오에 보수의 아이콘이 되어버린 어버이연합을 연상시키는 모습들이 드러난지라 이 작품에 대한 궁금증이 커진 것도 사실이지요.

뚜껑을 열어본 결과... 참으로 시의적절한 상황에 등장한 블랙 코미디이자 스릴러라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이 작품을 스릴러라 이야기 했지만 드라마에 가까웠고 드라마보다는 블랙 코미디에 더 가까운 작품이었습니다.

 

이 영화는 부자(父子) 관계에서 중간을 건너뛰는 대신에 손자와 할아버지라는 관계를 가지고 영화를 만들고 있다는 것이 특이한 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월남전 시절, 박정희 대통령 시절을 잊지 못하는 노인이며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 반대되는 것은 모두 빨갱이이자 적으로 간주하는 모습도 보여줍니다.

이런 모습에서는 앞에 이야기한 어버이연합을 비롯한 보수단체를 떠오르기 충분하죠. 하지만 한편으로는 허세와 허풍으로 가득찬 노인이라는 느낌도 듭니다.

손자에게는 월남전에 나가지 않았고 큰 부상을 당한적이 없음을 이야기하지만 은주에게는 자신의 무용담을 몇 배 뻥튀기 해서 들려주고 있지요.

아시잖아요. 남자들이 많이 하는 뻥튀기들 중 하나인 군대에 관한 이야기 말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도대체 할아버지는 언제 죽는가가 아닐까 싶습니다.

또한 유산을 누가 받느냐는 것이죠. 그래서 등장한 상황이 바로 복상사라는 것이죠.

쉽게 말하자면 섹스 도중 남자가 죽는 경우를 말하는 것인데 노인은 힘이 없으니 젊은 여자가 섹스를 통해 공격(?)하면 맥없이 쓰러질 것이라는 허황된 꿈이지요. 이 황당한 아이디어는 지훈의 친구인 준수(이무생 분)을 비롯한 이들의 대화도중 나온 것이지요.

그 황당한 이야기를 은주에게 들려주었고 그걸 진짜 해보려고 했던 것인지 할아버지의 집으로 찾아온 것이고요.

 

물론 두 사람은 은주를 경계합니다. 지훈은 자신의 유산을 은주에게 빼앗기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술먹다 만난 여자라는 이야기를 할 수 없었고 대략 어느정도 눈치를 챈 할배는 그녀를 꽃뱀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으니깐요. 하지만 먼저 그녀의 유혹에 넘어가는 것은 다름아닌 할배입니다.

보이지 않는 은주와 지훈의 신경전이 벌어진 상황이고요. 지훈은 준수와 함께 킬러를 고용해 할배를 죽이려는 다소 극단적인 방식을 취하지만 이 방식은 실패하게 됩니다. 더구나 은주의 신경을 더 건드리는 계기가 되어버리죠.

그러나 후반에 모든 전세는 역전되게 됩니다. 믿었던 그 모든 것이 착각이 되어버리고 반전 역시 드러나게 됩니다. 더 결정적인 것이 할배와 손자의 관계는 이상하게 다시 회복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죠.

 

 

이 영화는 보수로 대표되는 기성세대에 대한 조롱이자 풍자를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일단은 그렇습니다.

하지만 또 하나의 특징이라면 허황된 미래를 꿈꾸려고 무작정 달려가는 젊은이들의 실수 퍼레이드라는 것이죠.

그 계획들이 성공으로 돌아갔는지, 실패로 돌아갔는지는 영화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힌트를 드리자면 앞에 이야기드렸듯이 의외의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적이 친구가 되고 친구가 적이 될 수 있는 상황은 또래의 관계에서만 보여지는게 아니라는 것이죠.

 

이 영화를 만든 황철민 감독은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인데 프로필을 보면 영화공부를 위해 외국 유학까지 다녀온 나름 엄친아라는 것이죠.

하지만 그의 영화의 필모그레피는 안티조선 운동과 싸우는 주민들이라던가 재임용을 받지 못해 홀로 1인 시위를 하는 교수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 작품들을 틈틈히 만들며 사회 고발을 끊임없이 했다는 것입니다. 2004년 작인 <프락치>라는 작품도 대표적인 경우죠.

이런 감독이 만든 신작... 상당히 짐작이 가고도 남죠. 그러나 앞에서도 이야기드렸듯이 이 영화는 단순 보수로 대표되는 이들을 위한 풍자로만 이야기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젊건, 늙건 사람의 성욕도 똑같고 야망도 똑같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으며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보수도, 진보도 혹은 그 중간에 걸처있는 이들도 똑같다는 것을 보여주는게 아닌가 생각도 듭니다.

 

배우에 대해서는 자세히 설명드릴 수 없는 것이 이름은 익숙치 않은데 얼굴들을 보면 어디서 많이 본 사람들이라는 느낌이 강한데요.

우리에게는 그냥 잠시 스치는 동네 아저씨의 인상으로 여러 드라마나 영화에서 단역으로 등장했던 이봉규 씨는 이 영화에서 답이 안나오는 보수를 대표하는 노인 역으로 등장해 열연하였으며, <은하해방전선>의 차래형, 영화 <해결사>의 이무생 씨 등등 독립영화에서 꾸준히 활동한 이들을 배우로 기용하기도 하였습니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보수와 진보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일베이면 무조건 꼴통 보수라고 이야기하고 국민의례를 제대로 안하면 반대로 빨갱이로 비판 받기도 했지요.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보수 단체에 있다고 무조건 보수주의자는 아니고 나름 진보라고 이야기하는 이들 중에서도 정말 답이 안나오는 이들도 있으니깐요. 제가 만나본 보수 언론사나 보수 단체 중에서는 생각은 진보적인 분들도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세상에는 합리적인 보수도 있고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진보도 있다는 것입니다.

 

얼마전 SNS에 서울대 출신의 강사를 면접봤다는 분의 이야기가 이슈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토익점수도 높고 모든게 완벽하지만 면접 본 사람의 메일 주소가 일베 사람 같아서, 촛불시위에 참여하지 않아서 연락(합격)을 하지 않았다는 글이었지요. 이 글은 여러버전으로 패러디 되었고 조롱되었습니다. 그 분은 나름 행동하는 양심이라고 자부했을 것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메일 주소만으로, 그리고 촛불시위에 참석 여부만 확인하고는 합격시키지 않았다는 것은 그 면접자를 보는 자세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죠. 과연 이 사람은 우리가 이야기하는 행동하는 양심, 진보일까요?

 

실제 경험했던 일인데요. 제가 공항에서 일했을 때 요즘 것들은 삼청교육대를 보내야 한다, 빨갱이들이 많다는  등의 이야기를 입에 달고 사시던 분도 계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분의 말에 대꾸는 하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파견파트로 나가서 잠시 그 분을 만나는 것 뿐이고 평생 그 분과 일할 것도 아니고요.

어차피 일만 잘하면 되는 상황이니깐요. 만약 그시절 그와 제가 사석에서 자주 충돌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요.

 

극단적인 예를 들었습니다만 싸울때는 싸워야 하지만 무조건 싸우는 것도,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생각이 옮다고만 주장하는 것도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과연 여러분이 생각하는 진보와 보수는 무엇인가요? 가스통은 들지 않았지만 어느 한 노인의 모습에서 우리의 자화상을 보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죽지않아>에서 결국은 죽지 않은 것은 나이가 들어 죽는 노인의 모습이 아니라 머릿속에서 절대 나가지 않으려고 하는 망상과 망령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