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 감독의 영화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제는 제가 리뷰로 늘 강조를 하는 부분이라서 지겨우실 것입니다.
기가 센 여자들과 찌질한 남자들이죠. 그 방식은 변하지 않고 있고 앞으로도 변할 가능성도 희박합니다.
아울러 서울을 유람하며 소주와 함께하는 다양한 먹방을 능가하는 먹는 장면이 유난히 많이 등장하는 것도 홍상수 영화의 특징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질릴 때도 되었는데도 홍상수 영화는 질리지 않는 뭔가가 있습니다.
이번에는 선희라는 여인에 대해 세 남자가가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영화 <우리 선희>(Our Sunhi)입니다.
영화를 공부하는 대학생 선희(정유미 분)이 몇 년만에 학교를 다시 찾았습니다.
한간에는 길고 긴 잠수를 탔다는 소문부터 별의 별 말도 안되는 소문이 돌기도 했지요.
그녀가 캠퍼스를 다시 찾은 이유는 그녀의 스승인 대학교수 동현(김상중 분)에게 찾아가 유학을 위한 추천서를 받아내기 위함이죠.
하지만 교수님이 없다고 말하는 선희의 선배인 상우(이민우 분)의 거짓말에 화가 나게 됩니다. 그는 그냥 농담이었을 뿐인데요.
추천서를 써주었지만 이건 칭찬인지 욕인지 알 수 없는 내용들로 가득합니다.
이런저런 속상함에 학교 근처 치킨집에서 맥주 한잔을 마시려 하지만 직원의 불친절에 기분만 더 상합니다.
가게에서 횡단보도 밑을 바라보니 젊은 감독이자 대학원생인 문수(이선균 분)을 보게 되고 그를 불러세우게 되었습니다.
과거 연인시절 자신의 과거를 영화로 만들었다는 부분에 조금 속이 상했다는 이야기부터 선희는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 놓습니다.
한편 문수는 선배인 재학(정재영 분)을 만나게 되는데 재학은 현재 잠시 집을 나와 따로 살고 있는 중입니다.
재학의 단골 가게인 '아리랑'을 갔고 주인인 주현(예지원 분)은 치킨 잘하는 집을 안다고 말하고는 사라집니다.
동현은 선희에게 다시 추천서를 써주었고 맘에 들은 선희는 동현과의 사랑 아닌 사랑을 확인합니다.
동현도 그게 싫지만은 않고 그것을 후배 재학에게 이야기합니다. 근데 선희에 대한 감정은 문수도, 재학도 남아 있는 상황이죠.
동현과 선희는 창경궁에서 데이트를 하게 되고 선희가 화장실에 간 사이 문수와 재학도 창경궁에 도착하게 됩니다.
화장실 간다는 선희는 여전히 보이지 않습니다. 도대체 선희는 어디로 간 것일까요?
홍상수 영화의 특징을 서두에 이야기했지만 하나 빼먹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뭐냐하면 보이던 보이지 않던 이야기의 사이 사이에는 '1부, 2부...' 같은 이야기의 전환이 있고 그 전환되는 시점의 그 이야기의 주인공도 다르다는 것입니다.
전환점이 되는 시점에서 머치 새 이야기가 시작된 듯 철판깔고 같은 상황의 다른 관점 혹은 다른 관점에서 비슷한 상황을 보이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 선희> 역시 어김없이 이런 상황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조금은 다른 지점에서 이야기가 전환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우디 앨런 영화처럼 그렇게 많이 등장하던 1인칭 시점의 나레이션도 없습니다.
선희는 여기 있는데 문수와 동현, 재학은 자신의 시점에서 선희에 대해 이야기하고 선희와 사랑을 나눕니다.
물론 겉으로는 선희에게 자신의 감정은 숨기고 있습니다. 그것을 빙빙 돌려 세 사람은 술을 마시며,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그게 선희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도 있고 그게 선희일 것이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선희를 보는 그들의 느낌입니다.
영화 첫 장면의 상우와의 대화는 잠수탄 선희가 학교에서 어떤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상당히 가벼운 여자 아이고 농담 따먹기도 쉬운 그냥 다루기 쉬운 아이라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그 뒤 은수와 동현과 재학의 대화에서는 내성적이지만 한편으로는 똘끼도 있고 솔직한 아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세 사람은 다른 표현으로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결국에는 그들의 이야기는 하나로 통일된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분명한 것은 이들 세 사람은 선희는 독특한 4차원의 성격의 여성이지만 알고보면 매력적인 여인이라는 점에 공감한다는 것이죠.
누가 했을지도 모르는 말이 돌고 도는 것도 인상적인데요.
"끝까지 부딛쳐야 한계를 알고, 결국은 자기가 누군지 알게 된다"라는 말이죠. 동현이 선희에게 이야기하고 선희는 다시 문수에게 이야기하며 문수는 재학에게 이야기하는데 재학은 이 이야기는 자기가 한 이야기라고 주장합니다.
돌고 도는 상황의 이야기지만 결론은 니 생각이나 내 생각은 결국에는 똑같다는 대목을 다시한번 상기시키게 만들죠.
홍상수 감독은 이 부분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우리 선희>의 공식 전단지의 뒷면에는 홍 감독의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중략) 사람들은 어떤 삶의 불확실함과 혼돈 속에서 충고를 필요로 하는 것이고, 그 충고에 대한 필요가 큰 거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충고란 것들이 하나의 기성 상품처럼 충고자들의 이 사이를 떠돌면서 사람들 몸에 억지로 씌워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전에 어떤 관심의 대상이 된 후배가 있었는데 아는 지인과 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 후배에 대한 우리의 의견이 굉장한 일치를 보면서, 우리끼리 그 후배에 대해 무슨 진실을 발견한 양 들뜬 적이 있는데. 후에 든 느낌은 그런 일치의 경우가 불일치한 의견으로 서로 충돌할 때 보다 더 위험한 짓거리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이하 생략)"
잘난척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알고 보면 똑같은 사람들이라는 것이죠. 유식한 것처럼 살아가지만 알고보면 종이 한 장 차이의 사람들이라는 것인데요.
소모적인 쓸대없는 싸움의 논쟁보다는 많은 대화속에서 공통점을 찾고 공감하는 것이 우선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홍상수 감독에는 의외의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면서 기존의 '홍상수 표 페르소나'를 벗어나려는 느낌이 강한 것 같습니다.
<다른 나라에서>(2012)의 권해효 씨나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2012) 정은채 씨 등은 마치 홍상수 감독 영화에서 오래전부터 연기를 했던 사람이라는 착각이 들 정도이죠. 이번 영화에서는 장진 감독의 페르소나로 익숙한 정재영 씨를 기용했다는 점이 이색적이죠. 웬지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과 달리 정재영 씨 특유의 불만이 가득찬 표정과 홍상수 영화와 만나 특이한 모습을 보여주지요. 홍상수 영화에서 볼 수 없는 찌질한 남자 스타일과 웬지 달라져 보이고요. (반대로 장진 감독은 최근 들어서 차승원 씨 같은 배우를 자주 기용함으로써 기존의 식상함을 전환시키고 있지요.)
홍상수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재미있는 점은 서울을 유람하는 재미인데 이번에도 이런 느낌이 강합니다.
아울러 홍상수 감독의 영화들의 특징이 그의 단골집들을 영화로 보는 재미도 솔솔한데요, <북촌방향>의 '소설',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의 '다정'처럼 이번에도 이런 식당, 카페가 등장합니다. (이 이야기는 뒤에 있습니다.)
사직공원, 남한산성 등의 공원 등을 사랑했던 홍상수 감독은 이번에도 특이하게 고궁이 등장하는데 바로 창경궁입니다.
서울대 병원 옆의 그 고궁이 어떻게 우리에게 다가오는지도 느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음악 어때요?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서는 클레식이 자주 애용이 되거나 정용진 씨의 영화음악을 자주 활용하고 있는데요.
그러던 그가 가요를 사용한다는 것은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로 최은진 씨의 '고향'이라는 노래입니다.
사실 이 노래는 1941년 발표된 노래로 원곡은 우리에게는 '목포의 눈물'로 알려진 이난영(1916~1965) 선생님의 곡입니다.
그렇다면 이 노래를 리메이크 했던 최은진 씨가 궁금하실텐데요, 이 영화 <우리 선희>에 등장하는 '아리랑'이라는 문화시설 겸 카페의 주인인데요.
최은진 씨는 연극배우로 알려진 분이며 이 노래는 2010년 발표된 노래로 1930년대 음악만 다시 부르는 의미의 앨범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고향'은 사실 2009년 박찬욱 감독의 <박쥐>에서도 이미 원곡인 이난영 씨의 버전으로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이 영화 <우리 선희>에서는 '아리랑' 카페 장면에서 여러번 등장하여 묘한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 선희>는 묘하게도 2010년 <옥희의 영화>의 속편의 성격도 가지고 있는 영화입니다.
옥희(정유미 분)와 진구(이선균 분)의 찌질한 사랑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는 몇 년 후 선희와 문수로 다시 재회한 듯한 느낌도 듭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영화화 했던 것에 이야기를 했던 것에 대한 부분도 드러나듯 홍상수 감독이 잘 시도하지 않는 액자식 구조가 어떻게 그려질지를 살펴보는 것도 큰 재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홍상수 영화가 약간씩 달라지고 있습니다. 남자들은 더 이상 찌찔하지 않으며 이야기를 보는 관점도 더욱더 댜양한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앞에 변화의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말은 취소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소주를 사랑하던 홍상수 감독이 이제는 치맥도 즐기자고 이야기하고 있고요. (예지원 씨가 그렇게 말한 치킨 맛있게 하는 집... 궁금하지 않으신지요?)
그래도 홍상수의 남자들&여자들. 홍상수와 그 찌질이들이 궁금하시다면 이 영화도 놓치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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