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대한 잡설들/오감만족... 이 영화 봤수?

[소원]이준익 감독, 분노를 치유로 바꾸는 마술에 도전하다!

송씨네 2013. 10. 6. 14:56

 

세상이 참 흉흉한 사건들이 많습니다.

화 <살인의 추억>의 '여기가 무슨 강간의 왕국이냐?'라고 나오는 대사처럼 말이죠.

우리는 몇 년전 그 사건을 기억합니다. 여자 아이를 성폭행한 파렴치한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말이죠.

어쩌면 그 사건을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 쉽지 않은 결정이고 그것을 영화로 만들겠다고 했을 때 저라도 의심이 들고 왜 저래야만 하는가라는 의문이 들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오랜 침묵을 깨고 다시 돌아온 이준익 감독은 의외로 이 이야기를 다른 방향으로 풀어갑니다. 영화 <소원>(Wish)입니다.

 

 

 

 

철도 건널목 옆에 위치한 자그마한 슈퍼겸 문방구가 있습니다. 이 곳의 아침은 일반 가정과 똑같습니다.

엄마 미희(엄지원 분)는 그녀의 딸 소원(이레 분)을 바쁘게 학교를 보낼 준비를 하고 있고 공장에서 일하는 아빠 동훈(설경구 분)은 느릿느릿 출근 준비를 합니다. 비가 내리고 있었고 웬일로 소원은 거의 지각할 시간입니다. TV에서는 코코몽의 주제가가 흘러나오고요.

외진 지름길은 위험하니 지각하는 한이 있어도 돌아서 가라는 미희의 말을 뒤로 하고 소원이는 학교에 등굣길에 오릅니다.

그런데 웬 술에 취한 사내가 소원이에게 다가옵니다.

그리고...

아이의 소식을 건내 받은 미희와 동훈은 재빨리 병원에 가지만 큰 수술이 불가하다는 이야기를 전해 받고 절망감에 빠집니다.

소원이의 절친의 아버지이자 동훈이 일하고 있는 공장의 사장이기도 한 광식(김상호 분)과 그의 아내(라미란 분), 그리고 소원의 절친인 영석(김도엽 분)의 가족들도 소원이의 소식을 듣고 안타깝기만 합니다.

사건 수사를 위해 여경인 도경(양진성 분)과 심리 치료사인 정숙(김해숙 분)이 나서 소원에게 다가가지만 쉽지만은 않습니다.

한쪽에는 비닐 주머니를 차야 하는 상황에서 소원은 그냥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싶기만 하죠.

그러던 소원이에게 코코몽이 나타났습니다. 냉장고 나라의 소시지 모양의 원숭이인 코코몽은 친구들을 데리고 왔고 나중에는 홀로 와서 소원을 위로하고 갑니다.

다행히 범인은 잡혔고 알콜 중독자에 성폭력 전과까지 있는 종수(강성해 분)라는 사내가 재판장에 오릅니다.

하지만 술로 인해 아무런 기억이 없다고 발뺌하는 상황에서 소원의 가족들과 법정에 참관하던 방청객들은 분노가 치밀기 시작합니다.

재활치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소원은 감동적인 선물을 받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가면속의 코코몽에 대해 궁금해 할 필요도 없어졌고요.

 

 

이 해맑은 미소의 아이가 다른 이들에게 희생되었다면 저라도 화가 났을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비록 미혼이지만 결혼을 하고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된 상황에서 만약(만약도 있을 수 없지만...) 이런 상황을 겪는다면 세상을 평생 원망하고 살았을 것이 분명한 일이죠.

소재면에서 보면 참으로 불쾌하고 기분 나쁜 소재의 이야기입니다. <도가니>(2011)나 <공정사회>(2012) 등의 작품을 통해 어린 아이들의 성폭행 문제가 많이 수면위로 올라왔지만 아직도 크게 달라진 점은 없는 것 같습니다. 전자발찌 제도가 생기고 성폭행범에 대한 법정 최고형도 늘어난 것을 보면 많이 좋아진 것처럼 보이지만 피해자나 피해자 가족들에게 그 고통은 높은 형량이 그것을 결코 대신해 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영화의 소식을 접했을 때 저도 상당히 불쾌했습니다.

그것도 이준익 감독의 복귀작으로 이제는 입에도 오르내리기 싫은 그 성폭행 사건을 이야기하겠다는 것이 '이준익 감독이 이제 돈에 환장했나 보구나' 라는 우려도 들었으니깐요. 복귀는 해야 하는데 그에게 쎈 작품이 필요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으니깐요.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제가 어느 부분에서는 착각을 하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의외로 이준익 감독이 이야기를 풀어내는 과정은 사건 중심이 아닌 그 주인공과 주인공의 가족들이 치유되는 과정을 담은 것이니깐요. 앞에 예를 들었던 다른 영화에 비해 성폭행을 묘사한 장면도 거의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는 사건보다는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이 되었으니깐요. 거기에 난대없는 코코몽의 등장이 이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갈지도 살짝 궁금증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 영화는 앞에서도 이야기 했듯이 사건이 중심이 되는 영화도 아니며 용서에 대한 영화도 아닙니다.

영화 이창동 감독의 <밀양>(2007)이나 <시>(2010), 이정향 감독의 <오늘>(2011) 등의 작품들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용서에 대한 중요성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생각해보게 되는데요. 정작 범법자들은 자신은 용서받았고 구원받았다고 이야기하거나 자신의 죄를 모르쇠로 일관합니다. 오히려 피해자나 피해자 가족들을 두 번 울리는 상황인 것이죠.

이 영화 <소원>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등장합니다. 결국 용서를 해주기는 커녕 아무런 사과도 받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대부분의 영화에서는 이런 상황에서 분노로 변하고 복수극으로 이어지는 상황도 발생합니다. 하지만 의외로 이 영화는 그런 방식을 택하지 않고 담담하게 가족들의 삶을 계속 지켜보고 있습니다. 물론 영화에서는 정숙 같은 심리치료사가 등장해 이들 가족들을 도와주지만 어쩌면 가족 스스로가 치유되고 그 사건을 잊기를 기다리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절대 혼자의 힘으로 치유는 불가능하기에 이런 심리치료가 필요한 것이고요.)

 

 

따라서 이 작품 <소원>은 관객들에게 빠른 속도 전개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것이 아닌 관객도 소원을 비롯한 가족들도 천천히 치유되는 상황을 이야기하고 싶었지 않았나 싶습니다. 오히려 과한 설정이나 이야기 전개는 이야기의 사실성을 깨뜨리기 쉽기 때문이죠. 하물며 이 영화가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것임에도 늘상 실화 영화면 한번쯤 나오는 자막인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습니다' 따위의 자막도 넣지 않았다는 것은 관객과 피해자 가족들의 나름의 배려라고 저는 생각됩니다. 우리는 이 사건이 실화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에 그것을 굳이 영화속 자막에서 아픈 기억을 볼 필요도 없으며 제작진 역시 그것을 굳이 넣을 필요가 없던 것이죠.

 

이 영화는 너무 착합니다. 범인인 종수를 제외하고는 하나같이 착합니다.

코코몽의 탈을 무료로 대여해준 이벤트 업체 사람들도 착하고, 상처 받을까봐 조심스럽게 다가간 광식네 가족들도 착하며 심지어는 소원이 충격을 받지 않도록 그녀를 놀리지도 않고 오히려 감동적인 편지를 그녀의 집앞에 보낸 반 아이들도 착합니다. 너무 착해서 그게 말이 되나 싶지만 실제로 이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이준익 감독의 주장이며 저 역시 그 말에는 동의합니다. 이 상황에서는 착한 사람들이 이야기의 결말을 도와주는 것이 옮은 방식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영화가 다른 영화와 달리 성폭행이라는 어두운 주제임에도 12세 관람가를 받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가 아닐까도 생각됩니다. 전반적으로 나쁜 사람들로만 가득하고 이야기전개도 어두웠다면 이런 등급을 받기 힘들었을테니깐요.

 

뭐니뭐니해도 이 영화는 주인공 소원이를 연기한 이레 양의 역할이 큽니다.

피해 당사자이지만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이라던가 사투리를 구사해가며 가족들과의 애교를 부리른 모습에서도 사랑스러운 아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몇 작품이 되지 않은 아역연기를 하고 있지만 앞으로 주목해볼 친구라고 생각됩니다.

 

 

이 음악 어때요?

이 영화의 음악도 멋지죠. 전체적인 영화음악의 감독은 이준익 감독과 영화음악 작업을 많이 했던 방준석 씨가 담당했고요.

엔딩크레딧의 노래는 윤도현밴드(YB)의 노래로 노래의 제목 역시 동명 제목인 '소원'입니다.

(동영상은 영화 개봉전 벌어진 YB의 콘서트 장면중에 올라온 것으로 소개하였습니다.)

 

 

 

 

 

 

 

 

이 영화의 평은 전체적으로 좋은 편입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여전히 그 시선이 따갑기만 합니다.

피해자 가족을 두 번 울리는 영화라는 이야기도 있으니깐요.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영화를 보고 나서 얘기해보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어쩌면 이 이야기는 절대 일어나서 안될 일인 것 만큼은 분명하지만 결코 나의 가족과는 상관 없는 이야기는 아닐테니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