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은교>(2012)의 노인 이적요와 소녀 은교의 사랑을 추접하다고 할지도 모릅니다. 네... 맞는 말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이 사랑이라기 보다는 외로움에 기댈 곳이 없는 철없는 늙은이의 변명이라고 해도 이것 역시 맞는 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친구가 동정으로 인해 사랑이 된다면 이것도 과연 가능한 일일까요?
이란의 대표 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가 이번에는 일본으로 갑니다.
이란어는 물론이요, 영어 한문장 등장하지 않는 이 곳에서 그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요?
영화 <사랑에 빠진 것처럼>(Like Someone in Love)입니다.
일본 도쿄의 한 카페... 시끌벅적하게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나기사(모리 레이코 분)과 아키코(타카나시 린 분)의 대화가 심상치 않습니다.
아키코는 누군가의 전화를 받고 해명 아닌 해명을 해야하는 상황이며 바로 옆좌석에 있던 히로시(덴덴 분)라는 사내가 다가와 통화 상대인 아키코의 남친과 헤어지라고 합니다. 그러더니 자신의 부탁을 들어달라고 하는 군요. 아키코는 정말 내키지가 않습니다.
억지로 택시에 오르는데 택시 기사는 아무 말도 없지만 마치 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표정이 엿보입니다.
더구나 할머니가 도쿄로 잠시 상경을 했는데 만나지 못한게 유독 마음에 걸립니다.
택시를 그렇게 몇 바퀴를 돌며 먼 곳에서 할머니의 모습을 봐야하는 것이 마음편치 않습니다.
히로시가 만나라는 남자를 만났습니다. 노인이고 서재에는 엄청난 책들이 놓여져 있습니다.
타카시(오쿠노 타다시 분)라는 이 노인은 전직 대학교수로 지금은 번역일과 몇 개의 특강을 다니는 일이 주된 일입니다.
대화를 나누던 두 사람... 그러나 아키코는 그렇게 그의 집에서 잠들며 하룻 밤을 보내게 됩니다.
다음날 아키코는 자신이 다니는 대학교로 향하게 되고 얼떨결에 아키코의 남친인 노리아키(카세 료 분)을 만나게 됩니다.
중졸이지만 큰 자동차 정비소를 운영하는 이 청년은 다카시를 아키코의 친할아버지로 착각하게 되고 그녀와의 결혼승락을 얻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차에 타고 있는 세 사람... 다카시는 아키코와 비슷해 보이는 한 여성의 모습이 담긴 명함형 전단지를 건내주고 그 것 때문에 동료와 싸운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키코는 콜 걸이었던 것이죠. 하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정체를 숨기며 학업생활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비밀이 많아진 아키코와 다카시는 과연 이 위기에서 어떻게 벗어날까요?
저는 키아로스타미의 영화를 보고 자란 사람입니다.
아마 몇 번이고 제 블로그를 통해 키아로스타미 영화들에 대한 애정을 이야기드렸던 기억도 나고요.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1998)는 제 인생의 첫 영화였고, 몇 년후 재개봉되어 본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1996)는 왜 그를 거장이라고 이야기하는지 공감하게 만드는 부분이었고요.
그러던 그가 지금은 이란이 아닌 다른나라에서 영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물론 여전히 자국의 영화를 가끔 제작하고는 있지만요.
그의 영화를 보고 자란 저로써는 아직도 그가 이란이 아닌 다른 나라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난대없이 이탈리아로 건너가서 <사랑을 카피하다>(2010)를 만들었을 때 이건 무슨 이야기인가라는 의문이 들었습나다.
마치 '우리 결혼했어요'처럼 가상부부와 가상결혼을 이야기한 그의 진짜 속마음은 뭔지가 궁금했으니깐요.
근데 이 영화 <사랑에 빠진 것처럼> 역시 의문투성만 남는 영화가 되어버렸습니다.
아키코와 다카시는 왜 만나야 했으며 도대체 무엇이 아키코를 초초하게 만들었는가에 대한 의문이 초반 들었던 것이죠.
힌트라고 한다면 아키코가 할머니를 만나지 못하고 택시를 빙빙 돌리는 것과 아키코의 핸드폰 음성녹음에 담긴 명함형 전단지를 발견한 할머니의 이야기였습니다. 웬지 아키코를 닮은 것 같다는 이야기였던 것이죠.
그런데 그 비빌은 영화 중반이 흘러가서야 알려지게 됩니다. 바로 콜 걸로의 이중생활을 하고 있던 것이죠.
하지만 의외로 아키코와 다카시의 만남은 생각보다 건전하게 흘러갔습니다. 촛불을 켜고 와인잔을 준비했던 그는 금세 잠들어버린 아키코를 뒤로하고 하룻밤을 보내게 됩니다. 그리고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녀를 학교까지 데려다주고 있고요.
하지만 의외의 복병이 기다리고 있으니 바로 아키코의 남친인 노리아키입니다.
다혈질이라는 것과 짧은 학력, 가끔 데이트 폭력을 일삼는다는 점과 상당히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 집요함 등등...
단점만 가득한 남자인데 아직 아키코는 이 남자와 헤어질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앞써 콜걸 동료였던 나기사나 이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히로시가 그녀에게 남친과 헤어지라고 이야기를 하는 대목은 그가 얼마나 집요하고 사람을 피곤하게 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죠. 하지만 그녀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와 헤어지지 않습니다.
어쩌면 자주 끊어져 있는 그녀의 핸드폰으로 인해 불신의 감정은 더 커졌고 그것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은 그녀와 결혼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죠.
그러나 다카시는 아키코의 가짜 친할아버지로써가 아닌 그냥 동네 할아버지처럼 그에게 조언을 해줍니다. 물론 그 조언이 먹힐 가능성은 희박하죠.
이렇듯 키아로스타미가 <사랑을 카피하다>에서 결혼의 환상을 깨뜨리는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다면 <사랑에 빠진 것처럼>은 위험한 데이트와 그 사이에 끼인 전직 노교수의 모습을 보여주며 정말 진정한 사랑은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전작 <사랑을 카피하다>의 이탈리아의 경우 말이 통하지 않는 나라라는 점과 그 나라의 전통 문화나 라이프 스타일을 이해해야 영화를 만드는데 문제가 없을텐데 키아로스타미는 그것을 아무렇지 않은 듯 해결하고 영화를 만들어냈습니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의 문화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상당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일본의 성문화라던가 앵무새와 사람이 그려져있는 일본의 대표적인 서양화가 야자키 지요지(1872-1947)의 '교무'라는 작품이 바로 그런 것이죠. 일본에 대한 완벽한 조사는 아니더라도 일본 문화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상당히 담아내기 어려운 부분이라고 봅니다. 이런 예로 키아로스타미는 일본의 특이한 밤문화에서 많은 인상을 받았다고 하는데 바로 이 명함 사이즈의 콜걸들이 묘한 포즈를 보이는 전단지들이 아마도 그에게 큰 영감을 받지 않았나 싶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지저분한 전단지들로 힘들었던 때가 있었죠. 아마 요즘도 이런 전단지가 많이 돌아다닐껍니다.)
배우들은 그렇게 우리에게 익숙한 배우들은 아닙니다. 아니... 딱 한 명 우리에게 익숙한 배우가 있죠.
바로 카세 료 입니다. 일본에서 다양한 영화를 통해 연기의 스팩트럼을 넓히고 있는 그이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고 다양한 국가의 감독과 작업을 끊임없이 하고 있습니다. 키아로스타미가 그랬고 최근에는 홍상수 감독과 작업을 했다는 점에서 볼 때 그의 글로벌한 도전은 어디까지일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아키코 역을 맡은 타카나시 린의 경우 일본의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했는데 일본의 여배우들은 데부분 이런 신인 데뷔를 수영복 화보의 등용문인 그라비아 모델 아니면 전대물(변신 히어로들이 등장하는 로봇이나 사람이 등장하는 작품) 혹은 CF모델로 데뷔한다는 점이 공통점으로 작용한다고 볼 때 타카나시 린의 경우 후자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노교수로 등장한 오쿠노 타가시의 경우 일본에서 연극무대를 많이 경험한 배우라고만 알려졌는데요. 당초 60대 노인으로 설정했다가 오디션에서 합격했을 때 그의 나이를 확인하고 80대 노인으로 수정했다는 부분은 어느 정도 알려진 사실이기도 합니다.
이 음악 어때요?
음악은 그리 많이 등장하지 않죠. 하지만 엔딩에 이 영화의 동명 제목인 음악이 하나 등장합니다.
미국의 전설적인 재즈 아티스트인 엘라 피츠제럴드(Ella Fitzgerald, 1917~1996)가 부른 'Like Someone In Love'입니다.
영화의 제목만큼이나 감미로운 곡이죠. 폭풍처럼 다가온 사건을 갑자기 급히 마무리하는 음악으로 등장했지만 이 음악에서 아마도 키아로스타미의 의도가 확실히 깔려 있는 것 같습니다.
과연 정말 이 영화의 제목처럼 '사랑에 빠진' 사람은 누굴까요?
젊은 콜 걸을 만나 회춘한 다카시일까요? 미쳤지만 그냥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아키코일까요?
그것도 아니라면 사랑의 감정을 폭력과 폭언으로 밖에 해결할 수 밖에 없는 노리아키일까요?
낯선 땅 일본에서 키아로스타미는 이들 세 사람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키아로스타미의 영화도 점점 진화하고 있고 그의 영화를 보고 자란 저 역시 점점 세상을 알아가는 나이로 살고 있습니다.
근데... 그의 영화도 진화하는 만큼 점점 어려워지네요. 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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