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대한 잡설들/오감만족... 이 영화 봤수?

[잉투기]잉여들이여, 희망을 갖아라! 독립영화계의 신선한 충격을 주는 영화.

송씨네 2013. 11. 12. 00:34

 

 

저는 잉여였습니다. 아마 몇 개월을 그렇게 놀았던 기억이 납니다.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정말 나는 쓸모가 없는 놈이구나라는 생각이었지요.

하지만 그렇게 말하기에는 잉여들도 나름 억울하고 하고 싶은 말을 꾹 참아야 하는 상황도 생기기 마련이죠.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잉여인가요?

최근 독립영화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신인이 등장했습니다. 형은 영화감독, 동생은 배우입니다.

음... 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본 얘기 같다고요? 데자뷰 같지만 이 이야기는 진짜입니다.

잉여들의 격투기 도전기를 다룬 영화 <잉투기>(INGtoogi:The Battle of Surpluses)입니다.

 

 

 

 

 

 

태식(엄태구 분)... 닉네임은 '칡콩팥'...

칡콩팥은 사이버상의 온라인 게임 아이템 거래를 위해 인천 간석오거리 역으로 길을 나섭니다.

아이템 거래를 위해 노트북을 꺼내든 사내... 그런데 저편에서 갑자기 칡콩팥을 향해 누군가가 주먹을 날리고 있습니다.

손도 못써본 칡콩팥은 그렇게 현피(온라인 상에서 싸우던 이들이 실제 오프라인에서 만나 싸우는 상황)를 당합니다.

칡콩팥은 '젖존슨'이라 불리우는 덩치 큰 사내에게 일방적으로 얻어맞습니다.

기억을 떠올려보니 디씨에서 이 두 사람은 보이지 않는 사이버 상에서 키보드를 두드리며 설전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죠.

울분을 참지 못하는 칡콩팥... 아니, 태식은 젖존슨의 행방을 수소문하다가 과거 '잉투기 대회'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알아냅니다.

젖존슨이 다녔다는 격투기장을 태식의 절친인 희준(권율 분)과 다녀오게 되는데 그들의 딱한 사연을 듣게 된 관장 형욱(김준배 분)은 그들에게 자신의 체육관에 다녀볼 것을 권합니다.

한편 이들 사이로 한 여학생이 지나가는데 형욱의 조카인 영자(류혜영 분)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과거 전직 복서 출신이던 그녀이지만 지금은 조용히 학교를 다니고 있고 밤에는 인터넷 방송으로 먹방을 보여주며 유저들이 건내주는 별풍선을 용돈삼아 살아가고 있습니다.

영자는 태식에게 젖존슨은 찾아주겠다는 제안을 하게 되고 이렇게 세 사람은 젖존슨의 행방을 찾아 나섭니다.

그리고 그들은 젖존슨에 대한 특이한 점들을 발견하게 되지요. 마침내 젖존슨의 집까지 들어온 이들은 결국 젖존슨에게 잉투기 대회에 나오라는 일종의 도전장(혹은 경고장)을 영자의 인터넷 방송을 통해 보이게 됩니다.

대회 당일... 관장의 반대를 무릅쓰고 나약한 자신과 싸워 이겨보겠노라 대회에 나온 희준을 뒤로하고 태식은 젖존슨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과연 그는 정말 나타날까요? 그리고 정정당당한 한판승부가 벌어질까요?

 

 

 

 

 

 

2000년... 류승완 감독이 4개의 단편을 모아 만든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들고 나왔을 때 당시 반응은 놀라웠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저 역시도 당시 졸업을 하고 사회 생활에 첫발을 딛게 될 쯤에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은 이 영화에 아마 크게 당황을 했던 기억도 납니다.

더구나 이름도 비슷한 류승범이라는 사내가 알고보니 류승완 감독의 동생이었다는 사실에 놀라고 껄렁껄렁함 속에 자신의 끼를 뽐내는 그의 연기도 인상에 남던 기억이 납니다.

평행이론이라는 말은 아마도 이럴 때 나오나 봅니다. 물론 13년 후의 상황이지만 형 엄태화는 감독으로, 동생 엄태구는 배우라는 점에서 비슷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는 것과 풋풋한 청춘들의 어긋난 삶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도 그 유사점을 볼 수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류승완 감독이 엄태화 감독의 등장에 농담반, 진담반으로 '저 친구들이 나오면 우리 같은 형제들은 어떻게 하라고...'라는 이야기도 했을 정도로 이들의 작품에 극찬을 했다고 하니 그들의 등장이 내심 기대를 걸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충분한 것 같습니다.

 

<잉투기>는 매우 별난 영화입니다.

온라인을 통해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으로 문제는 장윤현 감독의 1997년 작인 <접속>을 떠오르시겠지만 지금과 확실히 다른 점이라면 그 시절처럼 아름다운 낭만은 전혀 없으며 현실은 댓글로 서로를 비방하다 못해 실제 만남에서는 폭력은 물론이요, 살인까지 저지르는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이죠.

그렇다면 이 영화는 어떠냐고요?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습니다'라는 자막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지만 그것이 모든 것을 실화로 했다기 보다는 실제 전설처럼 내려오는 칡콩팥과 젖존슨이라는 닉네임의 일화를 상상력을 더해 재해석 했다는 것입니다.

실제 인천 간석오거리 역 앞의 공원은 현피가 종종 벌어지던 장소로 알려져 있으며 영화에서 등장한 '잉투기 대회'도 실제 존재한다는 것이죠.

이른바 진짜 잉여인간들과 키보드 워리어라 불리우는 사람들이 모여 진검승부를 벌이는 행사였던 것이죠.

거기에 디씨(디씨 인사이드)의 특이한 문화들을 다루면서 영화의 현실감을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칡콩팥과 젖손슨이 설전을 벌이게 된 것들을 다양한 글과 짤방, 댓글 등을 통해 보여주고 있으며 그것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태식이 젖존슨에게 복수를 감행할 수 밖에 없는지에 대한 이유를 충분히 보여주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부 디씨 유저들의 삐뚤어진 인식은 결국은 '일간 베스트 저장소'(일베) 같은 커뮤니티의 탄생을 촉진시키는 역할을 했고 그 문제점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젖존슨을 포함한 태식, 희준, 영자 모두 하나의 잉여였으며 한편으로는 외로운 인간들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에서 중반에 들어서면 젖존슨의 정체는 생각보다 쉽게 드러납니다. 하지만 그 부분이 충격적입니다.

과거 잘나가던 아이돌 가수였다는 것과 많은 팬덤까지 보유하였지만 한순간의 몰락으로 키보드 워리어가 되어버리고 결국에는 태식을 공격하는 상황까지 이른 것이죠. 젖존슨과 같은 기획사의 아이돌 맴버였던 근호(닉네임 마리안느/김희상 분) 역시 파멸해가면서 젖존슨과 똑같은 잉여가 되어버리고 태식을 공격하는 일에 가담하였다는 부분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잊혀진다는 것에 대한 슬픔은 곧 다른 방식으로 어떻게든 이어진다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음주운전, 뺑소니, 절도, 폭행, 마약, 도박, 사기 등등 같은 것이 그런 예죠.

어쩌면 전직 아이돌들의 이름이 은근히 뉴스에 많이 거론되는 것도 어쩌면 이런 이유이겠지요.

 

 

 

 

 

 

희준 역시 겉으로는 잉여임을 부정하지만 그가 아무리 부자여도 가슴속에 남아있는 뭔가의 부족함은 그가 태식과 더불어 운동을 하게되는 이유를 만들지 않았나 싶습니다. 나이 어린 영자에게 자꾸 접근을 하거나 체육관에서 같이 운동을 하는 진성(닉네임 교미킹/박종환 분)과 우진(닉네임 PK야도란/오희준 분)에게 과장에 가까운 자신의 연예담을 이야기하는 것만 봐도 그렇죠.

영자는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학교에서 왕따가 되어버렸고 심지어는 자신의 먹방 부분까지도 아이들에게 놀림감이 되어버리는 상황입니다. 탈출구는 없습니다. 차라리 영화 <킥 애스 2>의 힛 걸(클로이 모래츠 분)처럼 구토 나오는 전기 충격기라도 가져다가 아이들에게 공격한다면 좋을텐데 여긴 한국이라 그럴 수 없죠. (물론 영자는 영화 말미에 아주 무시무시한 무기(?)로 그들에게 복수를 하지만요...) 

그런데 이런 잉여임을 부정하고 스스로 나약해지는 것은 이런 아이들만 그런 것은 아닌가 봅니다. 태식의 어머니(길해연 분)는 불미스러운 사건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무작정 코스타리카로 떠나자고 합니다. 행복지수 1위라며 태식에게 같이 가자고 설득하지만 만약 그들이 타국으로 갔다고 하더라도 그 행복이 이어질지는 의문입니다. 현실을 탈출하기 위해서는 이사를 가거나 이민을 가거나 아니면 극단적인 자살이라도 해야한다는 이 세상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배우들은 익숙한 이들은 없지만 엄태화 같독과 같이 오랜동안 영화를 하고 같이 살았던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호흡은 정말 잘 맞는 편입니다.

엄태화 감독의 동생이자 배우인 엄태구 씨는 여러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단역이지만 꾸준히 연기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었으며 류혜영 씨는 엄태화 감독이 데뷔했을 때부터 그의 여러 단편에 출연하여 여전한 의리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실제 복싱이나 격투기를 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지만 류혜영 씨의 경우 액션 스쿨에서 약간의 훈련을 받은게 전부이며 다만 자신이 맡은 역할을 행각하며 스스로 간지(폼)나는 배우가 되어야 한다고 주문을 걸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몇몇 액션장면은 리얼함이 많이 돋보이죠.

 

 

 

이 음악 어때요?

이 영화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음악입니다.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추억의 가요를 삽입하는 부분이 첫번째입니다. 우리에게는 '세시봉 친구들'로 익숙한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 씨 등이 참여했던 '우리들의 이야기'(참고로 또 한명의 맴버인 조영남 씨는 참여하지 않았습니다.)라던가 들고양이라는 팀의 곡으로 알려져 있는 '나비소녀'의 경우 김세화 씨의 목소리로 오래전 다시 리메이크 된 이 곡들이 영화에 삽입된다는 것이죠. 엄태화 감독의 올드 가요 사랑은 이 뿐만 아니라 하길종 감독의 <바보들의 행진>(1975)을 좋아했다는 부분에서도 알 수 있는데 <잉투기>의 영자라는 인물도 바로 <바보들의 행진>의 영자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했을 정도니깐요. 

두번째는 아이돌 음악에 대한 일종의 패러디이자 오마주일 수 있는 부분입니다. 영화에서는 가상의 아이돌 그릅인 '볼케이노'라는 팀이 등장하는데요. 바로 젖존슨과 마리안느가 활동했던 그릅이라는 것이죠. 이들이 부르는 노래 '데칼코마니'는 마치 1990년대 활동했던 H.O.T의 '전사의 후예'(1996)의 패러디이자 오마주처럼 보입니다. '데칼코마니'의 뮤직비디오를 보면 실소를 금치 못하게 폭소하게 되지만 한편으로는 그 시절의 향수를 느끼게 만드는 대목이라고 볼 수 있죠.

 

 

 

 

 

 

<잉투기>는 한국영화아카데미(KAFA)가 제작하고 무비꼴라쥬가 배급하며 프레인이 홍보하는 영화입니다.

KAFA의 프로젝트가 단순 졸업영화를 발표하는 형식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이들 영화 중에는 현재 한국영화의 미래를 책임지고 있는 감독들이 여럿 활동했다는 점에서 이들의 프로젝트는 앞으로 계속되어야 하며 박수를 보내야 하는 부분이라고 봅니다.

<그래비티>를 올해의 최고의 영화라고 말하는 것은 오버일지 몰라도 올해 기억해야 하는 영화라고 이야기드린 적이 있었는데요, <잉투기>도 그런 점에서 볼 때 올해의 최고는 아닐지 몰라도 올해 독립영화들 중에서는 큰 수확이라는 점에서는 이의를 제기하실 분은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아울러 류승완-류승범의 '류 브라더스'에 이어 엄태화-엄태구의 '엄 브라더스' 역시 나날히 발전하고 좋은 모습을 보여주시길 기원합니다.

 

PS. 시네마 톡 행사에서 엄태화 감독, 배우 류혜영 & 김희상 씨의 싸인을 받았는데 세 분 모두 특별한 싸인이 없으시더군요. ㅠ ㅠ

세 분 모두 싸인 연습 많이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앞으로 미래에는 스타가 되실 분들이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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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준비했습니다. 팟캐스트로 듣는 <잉투기> 특집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시네마 톡 대담내용과 <잉투기>의 OST를 미리 만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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