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대한 잡설들/오감만족... 이 영화 봤수?

우아한 세계-조폭 아빠... 그 남자가 사는 법!

송씨네 2007. 4. 8. 16:17

 

 

강인구...

그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남자이다.

단지 다른점이 있다면 필요에 따라 무기를 사용할 수 있으며 욕설과 협박을 하기도 한다.

그렇다. 그는 조폭이다.

사랑하는 딸과 아들이 있고 그럭저럭 내조한 아내도 있다.

하지만 더 이상 그의 편이 아니다.

조폭인 남편이, 건달인 아버지가 맘에 들지 않는다.

차라리 칼 맞고 죽어버리지...

인구는 이번에도 마지막을 외치며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작업을 시작한다.

그러나 순순히 그가 이 곳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노릇...

그래... 난 아버지다!

 

 

 

 

 

'연애의 목적'이라는 독특한 로맨틱 코미디를 들고 나온 한재림 감독이 두번째 영화를 우리에게 내놓았다.

사실 그의 전작 '연애의 목적'은 그리 끌리는 영화는 아니었다.

강혜정과 박해일의 열연은 돋보였지만, 과연 정말로 현직 교사와 교생 선생의 불안한 로맨스가 가능한 일인가라는 의문을 갖게 되었던 작품이었다.

'우아한 세계'는 일종의 반어법 같은 영화이다.

제목에 비해 주인공과 그들 가족이 내딛는 현실은 매우 암울하기 때문이다.

인구는 허구원날 상대 조직과 싸우고 무력을 동원해서 입찰권 따내기도 하는 비열한 남자이다.

 

송강호는 이번에도 우울한 현대인의 모습을 대변해주고 있다.

그의 영화는 항상 우울하다. 그럼에도 그 속에서 그는 관객을 웃기고 있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넘버 3'(1997)에서 무식하기 짝이 없는 어설픈 조직의 두목을 맡았고, '괴물'(2006)에서는 딸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통곡하다가 피곤에 지쳐서 졸고 있는 모습까지 보여준다. '살인의 추억'(2003)은 (어찌보면) 무식하게 수사를 하는 형사로 등장했다. '반칙왕'(2000)에서는 슬픔, 괴로움을 마스크에 가린 상태로 폭력으로 해결하는 역시 뭔가 어설퍼 보이는 프로레슬러로 등장했다. 이데올로기에 얼떨결에 휘말린 이발사로 등장한 '효자동 이발사'(2004)도 빼놓을 수 없다. (그나마 '쉬리'(1998)에서의 송강호가 가장 멀정했다.)

 

'우아한 세계'의 인구는 그나마 '넘버 3'의 조필보다는 똑똑하다. 그러나 여전히 뭔가 모자르다.

'괴물'에서의 강두 케릭터와 닮아있지만 한편으로는 전혀 다른 인물이다.

 송강호는 서민적이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보통사람(?)을 연기함으로써 관객들에게 대리만족을 시켜준다.

 

 

 

그동안 조폭 영화는 쑤시는 것에 집중하는 경향이 강했다. (푸욱~! 푸욱~! 찌르고 찌르는 효과음...)

쑤시고 피나오고, 죽고... 사람들은 그게 폼나고 멋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영화가 사람들을 그렇게 쇠뇌시켰다.)

'파이란'이나 '초록 물고기'에도 조폭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들 영화를 사람들은 최악의 조폭 영화로 뽑지 않는다. 이들 영화의 조폭들은 조폭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평범한 인간으로 이야기하고있기 때문이다.(더구나 절대로 폭력을 미화시키는 것도 아니다.)

물론 '우아한 세계'에서 인구는 많이 상대편 조직에게, 자신들의 조직에게 당한다.

그리고 못할말 다 한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조폭 영화로 이야기 할 수 없는 것은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더 크게 부각시켰기 때문이다.

 

이미 인구는 집안에서 내놓은 자식처럼 버려진 모습이고 아무리 가족과 화해를 시도하려고 해도 과거의 모습들에 실망한 가족들에게 쉽사리 그렇게 가족들은 그의 화해를 거부한다.

그는 그림같은 집을 사고 나서, 정말로(아니면 나름대로) 조직에서 벗어나려고 했었다.

그리고 무능한 아버지, 싸움만 하는 아버지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그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그런데 영화는 엉뚱하게 노 회장과의 어쩔 수 없는 전쟁으로 인해 전환점을 맞는다.

절대 화해하기 힘들 것 같은 가족들이 그의 화해를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완전한 화해를 받아들인 것도 아니다.)

사실 이 영화가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의도에서 좋은 영화로 생각되지만 아쉬운 장면이 있다면 딸 희순이 아버지의 지갑속에 들어있는 자신의 어렸을 적 사진과 로또 영수증 몇 장으로 그를 이해하고 화해하려고 한 점에서 설득력이 조금 부족하다는 것이다.

딸이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음을 보여줄 수 있는 설득력 있는 반전(반전이라고 말하긴 그렇지만...)이 필요한데 그 면에서는 사실 좀 약했다.

 

하지만 상대편 조직이자 인구와 죽마고우인 현수가 이들 가족을 돕고 인구를 도와줌으로써 어느 정도의 의문과 이 영화의 돌파구를 찾는데에는 도움을 준 것 같다.

사실 현수는 과연 적군인가, 아군인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들은 서로 다른 조직인데 절대로 무력으로 싸우지 않는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곽경택 감독의  '친구'에서 서로 하와이나 갔다오라고 설득을 하려다 실패하자 결국 특단의 조치로 친구인 동수를 죽인 준석의 모습과 대조적이다.

친구는 적이 될 수 있다는 기존 조폭 영화의 상식에서 약간 벗어난 이야기라는 것이다.

물론 이 장면이 절대 아름답다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친구라도 폭력과 납치에 공조한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볼 때도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고픈 내용은 마지막에 드러난다.

우여곡절 끝에 이사를 간 인구는 희순의 유학을 허락한다. 그리고 인구의 아내 미령도 두 아들 딸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같이 출국을 하게 된다.

혼자 남은 인구의 모습은 최근 많이 이슈화 되고 있는 '기러기 아빠'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혼자 빨래를 하고 라면으로 식사를 한다.

어느 날 그들에게 온 소포를 접하고 그 속에 들어 있는 비디오 테이프를 틀어보게 된다.

그리움 때문에 인구는 울고 말았고 그는 너무 속이 상했는지 자신이 먹던 라면이 든 그릇을 박살낸다.

하지만 버려진 라면을 보면서 아까워 한다.

인구는 분명 조폭이었지만 한 가족의 가장이자 나약한 우리 아버지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전작인 '연애의 목적'보다는 더 깔끔하게 다가왔다는 점에서 한재림 감독의 두 번째 영화는 잘 만든 작품이라는 것에 동의한다. 하지만 여전히 조폭 코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은 너무나도 아쉽다.

'파이란' 처럼 건달(조폭) 이미지 보다는 안타까운 사랑이 더 기억이 남는 것은 연출력이 그 해답이었다.

 

우리 기억에 남는 영화들...

조폭 코드에게서는 벗어나긴 힘들지 몰라도 다양한 각도에서 감동을 줄 수 있는 좋은 작품이 많이 나오길 기대해본다.

 

 

 

 

PS. 최근 고현정 씨가 주연한 드라마 '히트'를 열심히 챙겨보는 사람이라면 낮익은 배우가 있다.

노 회장 역으로 등장한 배우 최일화이다.

악날한, 한편으로는 인간적인 조폭 두목(물론 '회장 님'이라는 존칭어를 쓰지만...) 역할을 맡았다.

'히트'에서의 노쇠한 노장 형사의 모습과 대조적인 모습이 인상적이다.

 

하나 더, 이 음악의 OST는 일본에서 알려진 음악가인 요코 칸노가 만들었다. '카우보이 비밥'의 감동을 떠오르는 분들에게는 좋은 선물임에는 분명하다. 초반에는 과연 그녀의 음악이 이 영화에 어울릴까라는 의문이 들었었다. ('웰컴 투 동막골'의 히사이시 조의 영화 음악이 안어울린다는 일부 마니아들의 이야기를 생각한다면 좀 불안했다.) 하지만 후반에 갈 수록 그녀의 음악은 영화에서 큰 힘을 발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