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중경삼림을 봤었다.
그 이야기를 여기에 글에 남겼지만 다시 본 중경삼림은 역시나 걸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왕가위와 크리스토퍼 도일(두기풍) 콤비는 마치 우리나라로 치자면 임권택 감독과 정일성 촬영감독 콤비를 보는 듯한 느낌도 들긴 했으니깐...
진가신 감독도 헐리웃에 갔고 이안 감독도 헐리웃으로 진출했다.
자기 나름대로의 스타일을 확실히 보여주었지만 이상하게 그들은 중국(혹은 홍콩, 대만...)에서 활동했을 때 만큼의 인기는 누리지 못했다.
아무래도 동양인의 생각과 스타일을 서양인들에게 적용시키기는 그리 쉽지 않아서가 아닐까 싶었다.
스타일로 따지면 앞에 이야기한 왕가위 감독도 둘째가라면 서러운 감독이다.
그러던 그도 헐리웃으로 진출하였다. 거기에 주드 로와 나탈리 포트먼, 거기에 영화배우로 첫발을 내딛는 가수 노라 존스까지 그의 동반자가 되었다.
한 허름한 작은 카페...
제레미는 술과 간단한 요기거리를 파는 이 카페의 주인이다.
그는 늘 그렇듯 작은 병에 손님들이 남기고 간 열쇠 꾸러미를 보관한다.
언젠가는 그들이 이 열쇠를 찾고 돌아갈 것이라고 믿고 있다.
제레미의 카페로 온 손님인 엘리자베스 역시 마찬가지였는지도 모른다.
그녀 역시 남자 친구와 헤어지고 나서 그가 다시 돌아올 것이라 믿고 그에게 열쇠를 맡기고 갔으니 말이다.
아무도 먹지 않는 블루베리 파이처럼 버려진 존재가 되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제레미와의 만남을 뒤로하고 엘리자베스는 무작정 여행을 떠나기 시작한다.
그녀는 라스베가스와 멤피스를 여행하고 일을 하면서 실의에 빠져 술로 하루를 보내는 경찰관 어니도 만나고 라스베가스에서는 인생은 한방이라면서 여유롭게 사는 여인 레슬리도 만난다.
1년이 지나 다시 제레미의 카페가 있는 뉴욕으로 온 엘리자베스...
그녀가 바라본 세상은 과연 어떠했을까?
어쩌면 이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왕가위 감독의 전작인 '중경삼림'을 떠오르게 만들지도 모른다.
극중 엘리자베스는 사랑을 기다리는 '중경삼림' 속의 아미와도 닮아있는지도 모른다.
아미 역시 기나긴 여행을 떠났고 엘리자베스도 기나긴 여행을 떠났다.
음식을 판다는 점에서도 극중 제레미의 카페와도 유사한 점이 많다.
이런 점에서 몇몇 사람들은 이 영화를 헐리웃판 '중경삼림'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광동어(중국어)에서 영어로 바뀌었을 뿐이지 왕가위가 추구하는 스타일은 변함없었다.
아니, 어쩌면 이 영화는 자신의 스타일을 다시 복제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한편으로는 그런 점이 좋은 점일지 몰라도 어떤 면에서는 발전하지 않았다는 표현도 틀린 말이 아니다.
왕가위 감독 역시 변하지 않고 자신의 고집을 밀고가는 것인데 그렇다고 변화가 있는 것도 아닌 자신의 작품을 다시 그대로 리메이크 하는 상황으로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왕가위 감독 영화중에서 그렇게 환영받을 작품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탈리 포트먼이나 주드 로, 레이첼 와이즈, 데이빗 스트래던 같이 연기파 배우들과 함께 작업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을지 몰라도 노라 존스를 기용한 것은 의외의 일이라고 본다.
물론 그녀가 연기를 못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만의 스타일을 보여주던 왕가위조차 헐리웃으로 가면서 개성을 잃고 있지 않은가에 대한 아쉬움도 들었다.
왕가위 만의 스타일이 사라졌음을 보여주는 또다른 증거는 바로 이 영화의 OST가 아닐까 싶다.
'화양연화'와 이 작품에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음악은 'Yumeji's Theme'(유메지 테마)로 '화양연화'에 등장한 음악을 다시 보사노바 풍으로 바꾸어 변주를 하였다. 왕가위가 이 음악을 정말 좋아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어떻게 보자면 우려먹는다는 느낌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화양연화'와 이 작품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는 근본부터가 다른 영화이기 때문이다.
왕가위 역시 변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건 아무리 자기 스타일을 추구하고 싶어도 '여긴 헐리웃이기 때문에...'라는 강박관념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이안, 진가신, 오우삼 등의 중국이 주 무대였던 감독들이 쉽사리 적응을 하지 못했던 이유는 아마도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왕가위 감독도 그런 강박관념에서 빠져나와 본인만의 스타일을 보여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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