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대한 잡설들/오감만족... 이 영화 봤수?

영화 '어느 날 그 길에서'-로드킬에 대한 진지한 물음...

송씨네 2008. 4. 29. 23:22

 

나는 공항에서 일한다.

공항을 가려면 영종도로 가야하고 고속도로를 가야한다.

그런데 항상 보는 표지판이 있다.

 

 

동물이 출몰 할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표지판이다.

뭐, 그런데에서 나와봤자 얼마나 나오겠는가 했는데...

몇 달 전 강아지 한 마리가 도로를 배회하는 것을 보았다.

마치 섬 같은 이 동네에 어떻게 이 녀석은 여기까지 찾아왔을까?

 

황윤 감독의 '어느 날 그 길에서'라는 작품은 바로 나에게 그 해답을 알려주는 듯 싶었다.

영화는 부엉이의 죽음으로 시작된다.

부엉이를 시작으로 고라니, 삵, 뱀, 개구리, 너구리 등의 수 많은 동물이 죽어나간다.

이른바 '로드킬'(roadkill)의 희생자들이다.

말그대로 도로에서 죽어나간 동물들을 이야기하는 용어이다.

최태영, 최천권, 최동기... 이 세 사람은 언제부터인가 지리산의 주요도로의 로드킬 현상을 연구하러 88 고속도로와, 산업도로 등을 돌고 있다. 그 동물들이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위기만큼이나 그 들 역시 달려오는 차들이 무섭기만 하다.

지리산을 둘러싼 고속도로는 그들의 밥줄을 위협할 정도로 인간들에게는 편리한 곳이지만 동물들 입장에서는 완전히 폐쇄된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도로는 해마다 건설되고 있고 1 평방 제곱미터 당 1Km의 도로가 건설되는 상황이다.

중복되는 건설되는 도로도 많고, 한산한 도로임에도 확장공사를 강행한다.

왜 그들이 무모하게 도로를 가로지르냐고 묻는다면 왜냐하면 그들(동물들)은 그게 본능이고 그 건너편 풀밭이나 초원이 그들의 고향이자 삶의 터전이기 때문이다.

 

생활터전의 반경거리가 짧았던 너구리도, 그리고 너구리보다도 더 많은 곳을 다녔던 삵도 인간들의 부주위로 갈기갈기 찢어진 상태로 세상을 마감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을 보면서 가장 인상이 남는 동물을 뽑으라면 역시 삵(살쾡이) 팔팔이였을 것이다. 88 고속도로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간 삵은 팔팔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3 명의 사내들의 귀여움을 독차지 했다. 연구를 위해 추적장치를 달고 그녀석을 방생했을 때도 그 녀석은 오래 버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88 고속도로는 위험해서 거기서 멀리 떨어진 곳에 방사를 했지만 그 녀석은 산을 넘고 넘어 다시 자신의 보금자리인 88 고속도로로 향했다.

그리고 다시 전에 그랬던 것처럼 그 자리에서 생명을 마감한다.

 

팔팔이는 인간들에게 묻는다.

왜 우리를 그냥 내벼려 두지 못하냐고 말이다.

그냥 살기 위해 우리들은 그 길을 걸었을 뿐인데 말이다.

뉴스에서는 새로운 도로가 개통되면서 몇 분, 몇 시간이 단축되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럴 수록 도로에 수많은 동물들의 주검이 나타나고 그들의 수명은 도로의 소요시간 만큼이나 단축되고 또 단축된다.

 

 

이 작품은 나레이션이 없다.

북한 이야기를 하던 다니엘 고든 감독도, 총기 사용문제나 의료보험의 함정을 지적한 마이클 무어 감독도 자신의 목소리로 이들의 정상성을 주장하고 이야기를 펼치는데 황윤 감독은 자신의 목소리를 나타내지 않는다.

그것도 그럴 것이 간단한 자막 하나로 동물들의 삶을 대변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EBS의 대표적인 프로그램인 '지식채널 ⓔ'가 나레이션 없이도 5분의 힘을 보여주듯이 이 작품은 그 보다 더 긴 시간임에도 차분이 나레이션 없이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다.

번영주 감독의 '낮은 목소리' 시리즈를 보고 감명을 받았다던 그녀의 이야기 답게 나는 그녀가 변영주 감독을 이은 또 한명의 좋은 다큐맨터리 감독으로 자리 잡길 빈다.

그녀가 변 감독처럼 장편을 만들고 상업화에 찌들어진다고 할것이라도 항상 초심으로 돌아갔으면 한다.

(변영주 감독이 여전히 '낮은 목소리'에 출연했던 정신대 할머니들을 챙겨주듯이 말이다.)

 

 

이 작품 역시 김명준 감독의 '우리학교'를 배급했던 영화사 진진의 히든카드 중 하나이다.

'우리학교'가 그랬던 것처럼 이 영화 역시 극장 상영이외 전국의 어디서나 상영이 가능하도록 시스템을 모색중이다.

또한 로드킬로 희생당한 동물들을 기리는 모금활동도 진행중이다.

(자세한 내용는 이 작품의 블로그 주소를 참고해주시길... ☞ http://blog.naver.com/oneday2008)

팔팔이를 비롯한 길 위에서 세상을 뜬 그들을 기리며 천국에서도 행복한 삶을 살길 기원해본다.

 

 

PS. 이 작품은 아시다시피 '작별'이라는 작품과 한 세트(?)로 구성된 작품이다.

두 작품을 모두 다 본다면 금상첨화이지만 두 작품 하나만으로만 봐준다면 참 좋을 것 같다.

 

 

★이 글은 인디영화 전문 극장인 '인디스페이스'와 함께합니다.

http://www.indiespac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