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대한 잡설들/오감만족... 이 영화 봤수?

애니메이션 영화 '페르세폴리스'-이란에서 한 여성이 사는 방법!

송씨네 2008. 5. 9. 01:55

 

나는 서른을 향해 달려가지만 만화에 환장한 사람이다.

그런데 게을러서 그런지 책으로 된 만화책은 도저히 읽기가 귀찮았다.

그리고 칸막이로 규정지은 틀에 박힌 만화들이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고..

그럼에도 애니메이션, 만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실사로 옮길 수 있다는 가능성과 더불어 상상력을 키울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런데 요즘 만화라고 하는 것이 예전 2D의 구식 방식을 사용하는 만화보다는 3D가 많다는 것을 느꼈다. 물론 환상적이고 화려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래도 아직 3D가 눈이 어질어질 하게 만드는 녀석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런점에서 얼마전 개봉한 '페르세폴리스'는 2D에 시종일관 대부분이 흑백톤으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을 보면 아무리 만화에 환장하는 사람이라도 저거 정말 재미있을까 라는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마르잔 사트라피는 이 만화의 주인공이자 실제 이 이야기를 만든 원작자이자 이 영화의 감독이기도 하다. 이란에서 태어났지만 전쟁으로 인해 오스트리아로, 이란으로, 다시 프랑스로 가는 우여곡절도 많고 사연많은 여성이다.

 

 

 

마르잔은 평범한 소녀이다.

단지 다른 점이라면 이소룡을 좋아하고 마이클 젝슨과 브렌드 신발을 사랑한다는 점이 또래 다른 이란 소녀들과 다른 점이다.

거기에 펑크락도 좋아하는 범상치 않은 소녀이다.

가족은 부모님과 가까운 곳에 살고 계시는 할머니가 가족의 전부이지만 모두 사랑스러운 가족들이다.

하지만 이런 가족의 평화를 깨뜨리는 것은 바로 무서운 전쟁이였다.

끊임없는 전쟁으로 사람이 죽는 것도 모자라 정권이 바뀌면 처형당하는 정치범과 거기에 차도르(이슬람계 여성들이 쓰는 두건, 히잡과 약간의 차이가 있으니 헛갈리지 말것!)에 관한 그들만의 엄격한 규칙 때문에 마르잔은 끊임없이 이 사회에 반항을 한다.

 

저항이 한계에 다다르자 마르잔은 오스트리아 행을 결정한다.

히피 족에 가까운 친구들도 사귀고 나름대로 행복했을지 몰라도 그 행복은 잠시뿐...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정체성에 시달리는 마르잔은 사랑을 하고 받지만 거기에 끊임없이 배반을 당한다. 결국 정처없이 떠돌다가 어느 덧 그녀는 노숙자 신세가 되고 만다.

다시 이란으로 돌아왔지만 아무것도 달라진 것은 업고 그냥 그렇게 차도르를 쓰며 신분을 감추다가 밤이 되면 차도르를 벗고 비밀 파티에 참석하러 다니곤 한다.

무료하고 반복되며, 거기에 평화라고는 기대할 수 없는 이 세상에서 마르잔은 한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한다. 하지만 이 역시 가부장적이고 남성우월적인 이란에서 여성이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불편하고 어려운 일이다. 이혼을 택한 그녀는 다시 정든 고향, 정든 나라 이란을 떠나게 된다.

 

 

이 작품에서 마르잔의 어린시절은 상당히 재미있고 유쾌하게 이야기된다.

이소룡이나 마이클 잭슨에 관한 일화가 대표적일 수 있고 그것을 통해 그들도 우리와 같이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충분히 인식시켜준다.

하지만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차도르는 이런 자유를 억압하는 도구로 전략한다.

차도르를 끝까지 내리지 않고 반항을 하는 마르잔이지만 결국에는 경찰과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만 당할 뿐이다.

자유를 얻으러 외국으로 떠났지만 그 곳에는 자유는 있을지 몰라도 고향이라는 것이 없었고 내 나라에 대한 정체성 역시 끊임없이 질문을 하게 된다. 자신을 부인하고, 나라를 부인하는 마르잔은 결국 그녀의 할머니에게 큰 충고를 해주게 되고 어린시절 정직하게 살겠다는 자신의 다짐에 대해 다시 반성을 하게 된다.

 

이 작품이 주목을 끄는 것은 이런 자유에 갈망하는 사람들에게 큰 공감대를 얻어서가 아닐까 싶다.

헐리웃에서도 러브콜을 보낸 이 작품은 그러나 결국 프랑스의 제작진과 협력하여 이 작품을 만들었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여배우인 까뜨린느 드뇌브가 마르잔의 어머니로 등장한 것을 포함해 쟁쟁한 배우들이 목소리 출연으로 참여하였다.

하지만 참 아쉬운 것은 이란의 현실을 이야기하는 대목을 프랑스어로 듣는다는 것에 대한 낮설움이다.

이란이나 이슬람 쪽의 영화들이 많이 들어오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지 아무래도 이들의 입장을 대변하기에는 프랑스어로 된 대사보다는 실제 이슬람 언어와 그 곳의 사람들이 더빙을 하는 것이 더 어울리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이슬람 국가는 점차 자율적으로 움직이고 있고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여성들은 조금씩 차도르와 히잡을 벗고 다니고 정부와 세상의 편견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마치 우리나라 조선시대 여성들이 그랬던 것처럼 남성중심의 세상은 조금씩 변화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이슬람 국가 여성들에게 해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슬람 쪽의 일부 국가에서는 여성들이 차도르나 히잡을 벗고 운전을 하는 것이 허용되고 있고 TV 뉴스에서도 당당히 자신의 얼굴과 헤어스타일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은 그들에게는 뛰어 넘어야 할 벽이 많다.

'메르세폴리스'는 분명 경쾌한 영화이지만 그 숨은 면속에는 암울한 이란의, 이슬람계 국가들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전쟁과 편견, 그리고 불평등 속에서 빠져나와 진정한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그런 세상이 이들 국가에서도 생겨났으면 하는 생각을 갖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