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대한 잡설들/오감만족... 이 영화 봤수?

애니메이션 '그녀는 예뻤다'-30대 남자, 그리고 솔로를 말한다!

송씨네 2008. 6. 18. 00:18

 

 

 

애니메이션 이야기를 자주 하다보면 나는 또 이런 이야기를 한다.

과연 애니메이션은 아이들을 위한 전유물인가라는 의문말이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20대 혹은 30대를 위한 애니메이션은 없는 것인가라는 의문...

아마도 이번에 개봉된 애니메이션 '그녀는 예뻤다'는 그 의문을 풀어줄지도 모르겠다.

 

영화 '그녀는 예뻤다'는 스위트 박스의 친숙한 노래인 'Life is cool'로 시작한다.

(이 노래 제목은 이 영화의 또 다른 부제이기도 하다.)

여기 세 명의 궁상맞은 서른을 조금 넘긴 남자들이 있다.

일권은 잘나가는 파출소장이었다. 하지만 반복되는 일상이 싫어서 미국으로 떠났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평생 배필을 만나려고 하고 있다. 태영은 외무 고시생이었는데 자신의 여자친구가 교통사고로 가족을 잃게 되었고 그 덕분에(?) 태영은 외무고시 시험을 포기하고 그녀를 극진히 간병했다. 그러나 사랑만으로는 살 수 없기에 헤어졌다. 마지막 성훈 역시 잘나가는 기업에서 외국 바이어들을 상대로 가전제품을 팔던 사람이었지만 어느 순간 그는 농구장에서 용병 선수들의 통역을 돕는 통역사가 되어버렸다. 사랑을 꿈꾸지만 시도를 못해본 소심한 남자이다.

그리고 여기 한 여자가 있다. 그 여자 연우는 한 남자와 헤어지고 지금은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지만 그녀는 이 삶이 싫어 돈많은 남자와 결혼해 미국으로 떠나려고 한다.

그러던 와중에 세 남자를 만났다. 이건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이 영화의 감독은 최익한 감독이다.

재미있게도 그가 장편데뷔를 한 작품은 '여고괴담 4: 목소리'였다.

여고괴담 시리즈는 새 시리즈를 거듭하면서 흥행과는 멀어졌지만 감독들은 상업성보다는 그야말로 작품을 만들었다. 두번째 이야기를 만들었던 민규동, 김태훈 감독도 그랬고, 세번째 이야기인 '여우계단'은 상업성으로 다시 돌아가는 듯 했지만 과거의 명성을 찾기는 힘들었다.

두번째 이야기가 스토리(동성애를 소재로 보이지 않는 공포)를 이야기 했다면 네번째 이야기를 만든 최익한 감독은 음향으로 공포를 극대화 시켰다. 그러던 그가 웬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애니메이션을 도전하고 나섰다.

 

하지만 이 작품이 우리에게 중요한 이유가 있다.

국내 장편에서는 처음 시도 되는 '애니그래픽스 무비'라는 것이다.

그러니깐 실사로 촬영을 한 뒤 그것을 프레임 위에 선과 색을 다시 덧입히는 방식인데 이를 '로토스코핑 기법'이라고 한다.

이 기법을 활용한 것이 바로 '애니 그래픽스'라는 것이다.

젠장, 뭐 이렇게 어려워... 라고 하시는 분들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기법의 애니메이션이 결코 생소하지 않은 이유는 미국에서 개봉된 리차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작품 '스캐너 다클리'(2006)와 같은 작품이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한국에도 이 기법이 사용된 것이다. 강성진, 김진수, 김수로, 박예진은 실사로 미리 촬영을 마치고 다시 컬러를 입혀 만화적 케릭터로 재탄생된 것이다. 이렇게 놀라울 수가!

 

이 작품은 어떻게 보면 평범한 영화일지도 모른다.

세 남자와 한 여자를 두고 벌이는 신경전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흔히 보는 수법이 아니던가?

(보통 두 명이 한 명 가지고 그러긴 하지만...)

그러나 이 작품은 내 생각에는 실사로 옮겨도 그리고 지금처럼 애니로 만들어도 재미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뮤지컬 기법을 활용하거나 재미있는 상황의 애피소드를 많이 활용함(개인적으로는 성훈이 입사한 가전제품 회사의 애피소드가 웃기다. 정말 궁굼하시다면 직접 확인하시길..)으로써 또다른 재미를 준 것이다.

 

 

 

 

첫장면의 목욕탕 씬은 그래서 참 나름대로 파격적인 장면이라고 볼 수 있겠다.

(알몸 장면에서 중요한 부위(?)를  'Life is cool'이라는 푯말로 가린 것도 의외의 재미를 주는 장면이다.)

이 장면 역시 실사로 촬영하고 오프닝에서는 보시는 바와 같이 그들의 몸이 애니메이션처럼 등장한 것이다. 꽁꽁언 한강을 새싹이 돋은 풀밭으로 표현하고 초등학교 운동장과 농구 경기장은 왈츠나 탱고 같은 춤을 추는 장소로 탈바꿈 되는 것이 그런 것이다.

 

사실 이 영화가 놀라운 점은 바로 케스팅이다.

꼭지점 댄스로 스타가 된 김수로를 모셔왔다는 것도 그렇고(김수로는 애니메이션으로 옮겨왔음에도 여전히 코믹하고 유쾌하며 능청스럽다.) 오랜만에 연기 도전을 한 개그맨 김진수나 조용히, 묵묵히 조연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던 강성진이 이 영화에서 자신들의 캐릭터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소화해 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박예진은 도도하지만 한편으로는 쿨한 여성으로 등장한다.(그래서 이 영화에서는 'Life is cool'이 자주 등장했는지도...) 그녀가 최근 김수로와 한 오락 프로그램에서 보여주는 쿨한 모습은 어쩌면 그동안 드라마 '위대한 캣츠비'를 비롯한 여러 작품에서 보여준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것 같지만 '그녀는 예뻤다'의 연우가 어쩌면 그녀의 본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섹스 & 더 시티'가 네 명의 40대 여성의 라이프 스타일을 이야기했다면 이 작품은 30대 남성들의 사랑을 이야기하였다. 그러나 '섹스 & 더 시티'의 아슬아슬한 선정적인 것과 달리 이 작품은 선정적이거나 겉멋을 들이지 않고도 30대 남성들의 솔직한 삶을 꾸밈없이 이야기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앞에 이야기 했던 그야말로 20대와 30대를 위한 공감형 애니메이션이라는 것이다.

 

한 편으로는 이 영화는 재미있는 점이 사랑과 더불어 영어라는 소재가 빠지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깐 세 명의 주인공들 모두 영어와 뗄 수 없는 직업들이고 그렇다고 영어 울렁증에 빠진 현대인들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현 정부가 매주, 매일 떠드는 '프렌들리' 정책과는 일맥상통하는 영화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영화가 영어를 옹호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반대로 영어로 이루어진 세상을 풍자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시대는(안타깝게도) 아직도 영어를 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현실 받아들이긴 힘들지만 영어가 행복의 조건이 되어버린 것은 참으로 씁쓸한 대목이다.

 

 

 

한국에서의 애니그래픽스로의 첫 도전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는 아직도 애니메이션은 어린이들에 눈높이를 맞춘 작품들이라는 생각이다.

20, 30대도 공감할 이 작품... 그런데 극장 수가 적다.

분명한 것은 이 작품을 보고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건 내 얘기이고, 우리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20대에서 30대를 향해 달려가는 나에게도 있어서 이 작품은 매우 의미 깊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