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늘 하는 소리가 있습니다. 영화는 현실을 반영한다고 말이죠.
몇 년전에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로 영화들이나 드라마들이 이야기가 전개가 된다면 요즘은 어느 것이 더 영화같고 현실같은지 헛갈릴 때도 있습니다.
오늘 소개할 영화는 안슬기 감독의 '지구에서 사는 법'입니다.
고등학교에서는 수학교사가 되었다가 방학이 되면 감독으로 변신하는 특이한 분이 계십니다.
바로 안슬기 감독이죠.
체리필터의 조유진 씨가 영어교사에서 뮤지션이 되듯 선생님들의 반란은 의외로 재미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전작인 '다섯은 너무 많아'라던가 '나의 노래는'에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펼쳤던 한 수학선생님의 또다른 작품에 대해서 이야기 하렵니다.
미리 말씀드리자면 이 작품은 외계인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SF물로 아니며 그 흔한 CG하나 없습니다.
더욱 더 중요한 것은 이 작품의 장르가 멜로라는 것이죠.
외계인의 이야기가 어떻게 멜로가 되어버렸을까요? 이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요?
[이 영화는...]
한 대도시의 아파트... 연우는 아직도 지구에 있습니다.
그는 시인입니다, 하지만 외계인이기도 하죠.
그러나 그가 하는 일은 인간이 하는 일과 똑같습니다.
빨래를 널고, 밥을 먹고, 청소를 하며, 시장을 봅니다.
사람의 몸뚱아리로 살고 있지만 그가 하는 일은 사람과 다를바 없습니다.
출판사에서 작가들과의 술자리를 주선하던 와중에 연우는 세아라는 여인을 만납니다.
그런데 어딘가 익숙합니다.
그들은 그렇게 버스정류장에서 대화없이 교감을 나누고 있었지요.
한편 연우의 아내인 혜린은 공무원입니다. 하지만 비밀 정보단체에서 근무하는 요원이죠.
도청과 도촬이 반복되지만 동료 직원이자 상사인 한 실장과의 부적절한 잠자리도 반복되고 있지요.
그러던 와중 한 실장은 혜린에게 새로운 지령을 내립니다.
세아를 죽이라는 것이죠.
남편의 정부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부터 혜린은 고민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알게 모르게 이들 4명의 남녀는 서로가 서로를 속이고 있습니다.
과연 그들이 숨기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앞에도 이야기했지만 이 영화는 외계인이 등장합니다.
영화 내용으로 보면 두 명으로 이야기되어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누가 더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지만 스포일러라서 일단 패스하기로 하죠.)
서로가 서로를 속여가면서 그들에 관한 비밀이 밝혀지면서 그 혼란은 더욱더 가중시키게 됩니다.
외계인이라고 영화에서는 이야기하지만 그들이 보통 우리가 알고 있는 살가죽을 벗기면 흉직한 모습을 등장하는, 혹은 남의 몸속에 숙주하여 에일리언처럼 기생하는 그런 외계인도 아닙니다. 더구나 이 영화는 앞에도 이야기했듯이 CG는 하나도 사용이 되지 않았습니다.
외계인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은 바로 이들을 사살하기 위해 특수 제작된 권총이 등장하는 장면과, 외계인들과의 대화를 검정 바탕의 하얀 글씨의 자막으로 모두 처리를 했다는 것이죠.
심지어는 실제몸과 그 안에 들어가있는 외계인의 실제 나이가 다른, 군대로 따지면 나이가 들어 늦게 들어온 이등병이 자기보다 나이 적은 상관을 만나는 것과 다른 것과 같은 모습을 취하기도 합니다.
영화의 첫대사는 '아직도 지구다.'입니다.
이 세상이 지옥같아서 살기 싫다는 푸념이 아닌 지구에서 정착하고 있다는 외계인이라는 소리입니다.
탈출을 꿈꾸지만 지옥같은 지구에서 인간처럼 왜 살고 있는가에 대한 연우의 불만 섞인 나레이션인지도 모릅니다.
그가 힘든 것은 지구에 정착하기 힘든 것이 아니라 아내와의 소통이 문제입니다.
영화에서는 구체적으로 들어나지 않았지만 분명 잠자리에 들어 성관계를 갖을 가능성이 없을 것이며, 식사시간도 무미건조한 대화가 계속 되었을 것이 뻔합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사랑의 권태기가 찾아온 것이죠.
세아를 만났지만 세아와의 만남은 관계를 맺기 위한 것이 아닌 인간의 소통을 배우고 싶은 연우의 생각이 담겨져 있는지도 모를일이죠. 요리를 배우고 싸구려 걸레 청소기를 구입함으로써 부인인 혜린과의 관계가 좋아지길 바랬지만 그렇게 쉽지가 않습니다.
오히려 혜린은 그 관계를 한 실장을 통해 해소했는지도 모릅니다.
세아와 연우는 밀월여행 아닌 밀월여행을 떠나지만 그 속에서 나아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혜린과의 소통에서 나아진 것도 없으며, 악몽처럼 꾸는 그 꿈의 정체에 대해서도 풀지 못합니다.
서로가 서로의 약점을 잡으면서 끝으로 가서는 점차 네 명의 주인공은 비극적인 상황을 맞이합니다.
아무도 지구를 떠나지 못했고 오히려 한 명이 희생되었으며 그런 와중에도 의외로 연우와 혜린의 관계는 쉽게 해결됩니다.
개봉을 앞둔 '디스트릭트 9'이 외계인의 남아공 생활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사실은 서로 같은 종족이 그 출신이 다른 이유로 배척을 받는 것에서의 문제가 이야기 되고 있는데요, '지구에서 살아남는 법' 역시 외계인이 등장하지만 어쩌면 이 영화는 외계인의 지구 정착기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많은 중년 부부들이 느끼는 사랑과 권태기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외계인이라는 소재는 전혀 중요하지가 않다는 것이죠.
사실 안슬기 감독들의 전작을 생각해 본다면 상당히 많이 무거워졌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다섯은 너무 많아'에서 보여준 새로운 가족 공동체에 대한 의미를 독특한 감성으로 재해석했던 것에 비해 이 작품은 너무 무거워서 안 감독의 작품이 맞나 하는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다섯은 너무 많아'를 너무 재미있게 봐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제 과거 리뷰를 생각한다면 이 작품은 너무 심심하고 뭔가 아쉽다는 느낌이 마구 드는 작품이었습니다.
이 작품은 조시내 씨의 독무대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단편이나 독립영화 시절부터 여러 감독들과 작업을 했고 특히 안슬기 감독과 자주 작업을 했던 조시내 씨의 연기 능력은 여기서도 크게 발휘가 됩니다. '다섯은 너무 많아'에서 깍쟁이 노처녀로 분했던 그녀는 '바르게 살자'에서 그 깍쟁이스러운 스타일을 그대로 끌고 옵니다.(장진 감독과 라의찬 감독이 분명히 그걸 잘 캐치했다고 보여집니다.) 여기서 약간은 냉혈한 성격만 빼서 그것을 다시 확대시킨 것이 '지구에서 사는 법'의 혜린 역할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마린 보이'에서 활약했던 박병은 씨와, 드라마 '하얀거탑'의 장소연 씨, '복면달호'를 포함한 영화 이외에도 연극, 뮤지컬 무대에서 활발한 활동을 해왔던 선우 씨까지...(선우 씨는 '미스터 투'의 맴버로도 알려져 있죠.)
이렇게 4명의 배우들은 각기 다른 모습으로 자신만의 개성강한 연기를 보여주었다고 생각됩니다.
아울러 영화에서 유일한 아역으로 등장한 김지훈 군의 경우 어린 모습과는 달리 어른스러운 연기를 해야 하는 부담감이 있었을텐데 똘망한 눈으로 의외의 연기를 선보였던 것 같습니다.(어쩌면 가장 고생한 친구인지도 모르겠내요.)
다시한번 말씀드리지만 이 영화는 SF도 아니며 외계인이 주체가 되는 영화는 아닙니다.
외계인의 눈으로 본 어쩌면 인간의 사랑과 권태기에 대한 보고서라는 것이죠.
항상 사랑이라는 것이 한결 같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사랑에 대해 생각해보고 권태기에서 벗어나는 법을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솔로인 제가 생각해도 항상...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사랑은 정말 어렵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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