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개그 프로그램에서 좀비를 소재로한 개그를 본 적이 있었습니다.
좀비 퇴치를 해야하는 두 사내가 좀비를 퇴치하는데 죽이고 나니 너무 인간적이더라는 이야기죠. 이 개그가 먹힌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고정관념을 뒤집는 사고 방식이 바로 그 때문이었다고 봅니다.
그런데 이 좀비라는 소재를 큰 액수도 아닌 저예산으로 이야기를 만든다면 과연 그게 가능한 일인가라는 의문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매인 스텝진들은 겨우 4 명 정도이고 더구나 이들은 무술과 특수분장을 전공한 사람들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바로 지금 소개할 작품 '이웃집 좀비'입니다.
저예산으로 만들고 약간의 싼티가 나지만 치밀한 구성과 기존의 좀비 영화들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낸 이들의 영화들을 한번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영화는 옴니버스 형태로 여섯가지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각자 다른 이야기를 연출하고 대부분의 촬영은 이들이 실제 살아가는 작은 옥탑방 집에서 벌어집니다.
서문을 여는 '틈 사이'는 한 사내가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물리고 그것에게 벗어나기 위해 집밖으로 필사의 탈출을 벌이는 이야기입니다. 오타쿠스러운 사내의 모습이 인상적인 이 에피소드는 오영두 씨의 연출로 만들어졌으며 본인이 직접 그 역할을 하게 됩니다. 영화속 사내는 결국 그 미지의 무언가에게 아무런 저항도 못하고 점점 변해가는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두번째 이야기인 '도망가자'는 좀비로 사는 남자와 그를 보살피는 그의 애인에 대한 이야기로 여인 스스로도 결국 좀비가 되어버리고 이 두 사람은 백신을 찾기위해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여정을 향해 달려갑니다. 역시 오영두 씨의 각본과 연출로 만들어진 이야기입니다.
세번째 좀비 이야기는 '뼈를 깎는 사랑'으로 좀비가 된 어머니를 위해 딸이 어머니를 위해 자신의 살점과 피를 받치는 다소 하드코어적인 느낌의 이야기입니다. 이 상황에서 특수임무를 받고 탐문중인 한 특공대원와 맞딱뜨리게 되고 이들 모녀를 발견하게 되죠. 이후의 대치상황이 정신없이 돌아가게 됩니다. 네번째로 넘어가면 백신은 개발이 되었지만 백신을 만든 박사가 악의적인 목적으로 좀비의 특수성질을 지닌 물질을 가진 마약을 만들게 되고 그것을 삽입한 사내가 이들 좀비를 퇴치하는 특공대를 공격하는 이야기로 액션이 많이 가미된 작품입니다. '백신의 시대'라는 제목으로 류훈 씨의 연출, 각본작입니다.
'그 이후... 미안해요'는 어쩌면 기존의 좀비영화들이 잡아내지 못한 이야기로 백신을 투여받고 정상으로 살아가는 좀비였던 인간들의 후유증을 이야기한 작품으로 그나마 가장 현실적인 이야기로 평가하고 싶습니다. 장윤정 씨의 각본과 연출의 작품입니다. 마지막의 '폐인킬러'는 이 작품의 에필로그에 해당되는 작품으로 각 작품의 출연진의 크레딧과 같이 공개되는 형태로 작품 마감시간에 쫓기는 한 작가 좀비의 이야기를 다룬 에피소드입니다. 홍영근 씨의 작품입니다.
'이웃집 좀비'는 작년 부천영화제에서 관객에게 큰 호응을 얻었던 작품입니다.
심지어는 까다롭기로 소문난 프리미어의 허지웅 기자가 부천영화제 심사위원을 작년에 맡고 나서 이 작품을 줄곧 칭찬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을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작품은 상당히 저예산으로 만들어졌는데 작년에 많은 관심을 보인 작품 '낮술'과 더불어 저예산 영화가 절대 작품성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좋은 예로 평가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좀비라는 소재덕분에 사실 제작비가 많이 깨질수 있는 작품이지만 앞써 말씀드렸듯이 이들 시나리오도 겸한 4 명의 감독은 각자가 모두 능력을 자기고 있다는 점에서 그것을 효율적으로 활용한 덕분에 별도의 제작비를 절감한 효과를 볼 수 있었다는 것이죠.
류훈 씨의 경우는 '텔 미 썸딩'의 제작부로 활동했고 장비와 더불어 현장편집에 재능을 보이는 분이며 오영두 씨의 역시 연출부 출신으로 장편데뷔를 준비하고 있는 실력파 감독입니다. 오영두 감독의 아내인 장윤정 씨는 '은행나무 침대'의 분장팀으로 출발한 경력을 가지고 있어서 특수분장이나 의상 등의 문제면에서는 쉽게 해결되는 장점을 지니고 있었으며 마지막으로 홍영근 씨의 경우 무술담당을 맡아 열연을 했으며 최근에는 영화 '의형제'와 드라마 '선덕여왕'에 출연하여서 그 영역을 넓히고 있지요.
자, 이렇게 각자의 전문화된 파트를 지니고 있는데 제작비가 더 깨질수가 없다는 것이죠.
이 작품은 제작비 절감에 대한 방식을 각자 파트의 자급자족으로 꾸려나간 점도 있지만 대부분의 촬영장소(세트)를 오영두, 장윤정 감독의 집으로 정했다는 점에서 또 하나의 제작비 절감 효과를 보게 됩니다. 자세히 보시면 아시겠지만 '백신의 시대'를 제외한 다섯 작품이 모두 이들 부부의 집에서 촬영 되었다는 것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상당히 눈썰미가 있으신 분이라면 말이죠.
이렇게 약간의 싼티(?)가 존재함에도 내용 구성면에서도 헛점이 거의 보이지 않는데에는 배우들의 열연과 허를 찌르는 시나리오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영화에는 하은정 씨나 서윤아 씨 같은 인상적인 아름다운 배우들도 있지만 그걸로 끝나는 것이 아닌 자신을 망가뜨려가면서 연기하는 모습이 멋있었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이 좀비 분장을 해야하고 얼굴의 움직임도 좀비처럼 보이기 위해 부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그래서 결코 쉽지만은 않은 연기들을 해냈다는 점에 주목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사실 가장 인상적인 이야기는 '도망가자'와 '뼈를 깎는 사랑', '그 이후... 미안해요'입니다.
세 작품에서 보는 공통점은 기존의 좀비 이야기에서 벗어난 인간적인(?) 좀비의 이야기를 다루었다는 것입니다.
'도망가자'의 경우 좀비 커플이 힘든 상황속에서도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험난한 여행을 떠나기 앞써서 다양한 변장을 시도하는 장면에서는 그들이 좀비가 아닌 하나의 인간처럼 보이기도 했으며 마치 축복받지 못한 사랑을 하려는 커플처럼 보였다는 점에서 한편으로는 웃기지만 한편으로는 슬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뼈를 깎는 사랑'의 경우도 한국적인 정서가 아니라면 그 서양 어디의 좀비 영화에서도 볼 수 없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저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었습니다. 아시다시피 과거에 '전설따라 삼만리'나 '전설의 고향'같은 이야기에서는 귀신 이야기도 많지만 이런 효자들의 이야기도 간혹 등장했기 때문이죠. 한 인간이기 이전에 나를 낳아준 부모님에 대한 지극정성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니깐요.
'그 이후... 미안해요'는 좀비였던 한 사내가 평범한 회사원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하지만 사회에서는 좀비였던 그를 써주지 않고 거기에 인간이었던 사람들은 이런 좀비였던 과거 인간들을 공격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가족들을 죽였기 때문이죠. 사내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악몽에 시달리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점에서 이 에피소드는 현재 적응을 못하는 일부 방랑자들에 대한 이야기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지 좀비라는 소재가 아니더라도 이런 아픔을 가진 사람들은 아직도 많기 때문이죠.
저예산이지만 노력한 흔적이 돋보이는 작품 '이웃집 좀비'...
작년에 '낮술'이 저예산 독립영화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면 올해는 이 작품이 그 가능성을 충분히 이어주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비위가 약하신 분들이 아니라면 정말로 많이 보시고 많이 느끼셨으면 하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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