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돌이라고 불리워지는 것이 있습니다.
말그대로 성의 노리개로 사용되는 어른들의 장난감이죠.
여성의 신체와 비슷하게 제작된 이 대형 인형은 사람들의 성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으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재미있게도 최근에 만들어진 영화들중에서는 이런 색스돌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변태적 성향을 지닌 사람들로 매도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외로운 사람들이라서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걸어도 걸어도', '하나' 등의 잔잔하지만 무게감 있는 작품을 선보여온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내민 신작은 의외로 색스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환상특급'류의 판타지스러운 이야기라고 생각하셔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바이센테니얼 맨'처럼 사람의 감성을 가진 로봇이나 인형의 이야기는 늘 보던 이야기지만 이 이야기는 어딘가 다른 이야기 같습니다.
21 세기로 날아온 또다른 슬픈 피노키오의 이야기, 영화 '공기 인형'입니다.
그녀의 이름은 노조미...
그녀는 5980 엔에 파격가로 할인되어 판매중이었던 공기인형입니다.
사람들에게 성적욕구를 대신 충족시켜주는 인형이죠.
배꼽에 바람을 넣으면 배와 가슴이 부풀어오르게 되는 그녀는 죽어 있는 그저 그런 인형일 뿐입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그녀는 자기 자신이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얼떨결에 DVD 샵을 들렸고 거기의 알바청년인 준이치를 만나게 됩니다.
어느덧 그녀는 감정을 갖았습니다. 하지만 인간들 또한 감정조절을 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노조미에게 감정이 생긴 것은 어쩌면 좋은일이 될지도 모르고 그 반대일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을 느껴본 노조미에게 세상은 아름답기만 합니다.
하지만 노조미 주위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외로워 보입니다.
DVD 샵의 사장님은 홀로 밥을 먹고 도박에 빠져 살고 골드 미스 노처녀는 젊은 인턴 신참에 주눅이 듭니다.
오타쿠 소년은 노조미를 보면서 홀로 성적 쾌감을 즐기고 있고 거식증에 시달리는 여인은 매일 그렇게 음식을 쌓아두고 먹고, 토하고 있습니다. 싱글파더로 사는 사내와 딸도 보이고 노조미처럼 급조된 인생을 살았노라 이야기하는 전직 선생님은 쓸쓸한 노년을 보내고 있습니다. 중년의 아주머니는 누명에 시달리고요.
쓰레기도 재활용 혹은 불가능한 녀석으로 나뉘듯 노조미도 자신이 어떤 존재인가라는 의문을 갖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세상을 알면 알 수록 그녀에게는 온갖 슬픈 일로 가득차게 됩니다.그녀는 결국 자신을 만든 아버지(?)를 찾으러가지만 그곳에서도 유쾌한 답변을 듣지 못하죠.
어쩌면 노조미에게 시련은 지금부터 시작된지도....
이 작품을 인어공주로 이야기하신 분이 많습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과 꿈과 현실의 비정상적인 상황의 이야기가 닮아있어서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이 작품에서 공기인형 노조미는 축복받지 못한 프랑켄슈타인이나 피노키오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귾임없이 비슷하게 생산되는 인형들, 하지만 사랑을 받으면 오래 지속될 수 있지만 사랑을 받지 못하면 버려지고 사라지게 됩니다.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인 '토이 스토리'는 이런 이야기를 만화로 표현했고 이후에도 많은 영화들에서 이런 모습들을 직간접적으로 표현하였지요.
버려지느냐 사랑받느냐의 고민은 어쩌면 노조미에게도 생긴 고민이었을 것입니다. 그녀는 앞에도 이야기드렸듯이 자신을 만든 색스돌 제조회사를 수소문하여 가게 됩니다. 젊은 한 남자가 반겨주고 그녀에게 끝까지 사랑받지 못한 수많은 인형들을 보여줍니다. 이 인형들은 한달후에 재활용되어 버려지지만 어떻게 보면 앞으로는 되돌아오기 힘든 존재라는 것입니다.
희망을 가진 노조미는 사랑하는 남자와 부푼 기대를 갖고 자신이 몸이 공기가 빠졌다가 불어넣었다가 다시 그것을 반복하더라도 전혀 고통을 느끼지 않으려고 합니다. 조금만 기다리면 천년묵은 구미호가 사람이 되는 것처럼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으니깐요. 하지만 의외로 후반에 처절한 반전이 그녀에게 다가오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인간에게도 생일이 있다는 것에 부러움을 얻었단 노조미는 자신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그 날을 맞이하면서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집니다.
단지 인간이 아니었을 뿐이지 사람이나 인형이나 동물이나 버림받는다는 것은 상당히 슬픈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오래전에는 사랑받았으나 더 새롭고 좋은 것이 생기면서 사람들은 자신의 애인을 버리고 인형을 버리고 장난감을 버리고 동물을 버립니다. 끝까지 사랑받지 못한자의 슬픔은 그래서 무서운 재앙이 되어버리는 것이죠.
배두나 씨는 일본 작품이나 문화에 이제는 완벽한 적응을 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란더, 린다, 린다'에서 한국인 교환학생으로 등장했던 그녀는 일본문화와 더불어 자신의 취미인 사진찍기를 결합하여 책을 내고 일본문화의 전도사로도 활약해 왔습니다. 최근 그녀가 드라마 '공부의 신'에서 뭔가 열정은 있으나 문제아들에게 당황하는 여린 여교사로 등장합니다만 사실 아시다시피 '공부의 신' 자체가 일본작품이 원작인 소설과 드라마로 만들어졌던 점에서 배두나 씨에게는 그 일본 문화라는 것이 전혀 낯설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어쩌면 그녀는 일본으로 떨어지나, 한국으로 떨어지나 활동을 하는데는 전혀 지장이 없는 전천후 배우라는 것이죠.(물론 이미 윤손하 씨나 최지우 씨가 그런점에서는 크게 성공한 케이스이고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아무도 모른다'를 비롯해 여러작품을 통해 코미디와 드라마적 요소를 골고루 보여준 감독으로 외국에서도 관심을 보일정도로 그의 작품들을 주목하게 되었지요. '공기인형' 역시 부산영화제를 비롯하여 칸 영화제에서도 초청되는 등의 성과를 보여주기도 하였습니다.
사실 이 영화가 배두나 씨의 노출연기로 화제를 모았다고 하는데 그건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섹스돌이지만 감성과 이성을 갖은 섹스돌이 현실을 살아가면서의 여러가지의 기쁨과 고난 등의 희노애락을 겪는 과정을 다룬 영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사랑을 정열적으로 하시나요? 애정이 식으시면 그 사랑하는 사람을 헌 고무신처럼 버리시는지요? 사랑은 그래서 참으로 무서운 것인 것 같습니다.
잘 다루면 행복한 삶을 누리는 녀석이지만 사랑을 잘못 이용하면 무서운 재앙이 되는... 이 작품 '공기 인형'은 피노키오 대신 섹스돌로 찾아온 21세기의 또 다른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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