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대한 잡설들/오감만족... 이 영화 봤수?

'이끼'-감독 강우석과 작가 윤태호의 어색한 조우?

송씨네 2010. 7. 8. 15:42




※이 리뷰는 스포일러가 상당히 많은 리뷰입니다. 

개봉일까지 이 리뷰를 읽지 않으시는 것이 좋으실 수도 있습니다.



원작 만화를 영화로 할 경우 많은 논란이 있기 마련입니다.

감독은 누가 될 것이냐, 배우는 누가 맡은 것이냐, 그리고 원작에 맞게 잘 작품이 만들어질 것이냐의 문제입니다. 감독의 연출력이 뒷받침되어야 좋은 작품이 만들어질 것이고 그 배우가 누구냐에 따라 외모나 스타일이 얼마나 원작과 싱크로율이 잘 맞을것인가라는 이야기가 나올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야후', '로망스' 등의 작품들로 많은 팬들을 확보하고 있는 윤태호 씨의 작품 '이끼'가 영화화가 결정되었을 때 많은 이들이 기대와 우려를 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감독은 누가 될 것이며 배우들은 누가 맡을 것이야는 것이죠.

그런데 의외의 일이 벌어졌죠. 만화 원작을 영화로 만들어본 경험이 전혀 없는 강우석 감독이 오래간만에 스릴러를 만들겠다고 하니 의문증이 생기실 것입니다.

강우석 감독 역시 다른 영화를 만들때 보다도 이 작품을 만들때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고 이야기할 정도로 원작을 재연해야 하는 부담감은 매우 컸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강우석 스타일로 만들어진 윤태호의 '이끼'는 과연 어떤 작품일까요?





해국이 마을로 향하고 있습니다.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법정에 자주 불려나간 그는 자신을 이렇게 만든 박민욱 검사를 지방으로 좌천시키고 떠나는 길입니다. 해국이 가는 곳은 자신의 아버지 목형이 세상을 떠난 마을로 가는 중입니다.

거기서 마을 이장인 용덕을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용덕의 행동들이 뭔가 찝찝하기만 합니다.

거기에 이 마을에 같이 사는 주민들 덕천, 성만, 성규 역시 의심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이 마을을 떠나지 않을 생각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영지라는 여인이 운영하는 점방(구멍가게)에 잠시 살기로 하였지요.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던 도중 해국은 알 수 없는 서류들과 알 수 없는 비밀통로를 발견하고는 이 마을 사람들을 더욱 더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던 와중에 하나 둘 사람들이 사고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되고 거기에 얼떨결에 해국이 끼게 되면서 상황은 더욱더 복잡하게 흘러갑니다.

그러던 와중 젊었을 때 아버지 목형이 기도원에서 일하면서 형사 출신이던 용덕을 알게되고 지금의 주민들과 같이 공동체를 만들게 된 사연을 알게 되지요.

이제 몇 사람 남지 않았고 이장 용덕과 해국은 물러설 수 없는 곳에 서 있습니다.

누군가가 죽거나 이 곳을 떠나야 합니다. 도대체 이 마을에는 무슨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일까요? 







원작을 읽어보지 않은 저로써는 이 리뷰에 대해 쓴다는 것은 예의가 아닐 것 같더군요.

그래서 순식간에 원작 80 부작을 다 읽고나서야 이 리뷰를 쓸 수 있었습니다.

우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강우석 감독은 원작을 크게 훼손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원작과 달리 그 순서를 동일하게 진행하지 않는다는 것이 다른 점이라고 볼 수 있지요.

원작은 마을에 찾아온 해국의 모습을 시작으로 이야기가 전개가 되지만 영화는 반대로 목형이 일한 기도원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가 됩니다. 기도원장이 목형의 탈세가 의심되어 당시 형사인 용덕에게 신고를 하였고 용덕은 목형을 의심하고 수사와 더불어 고문을 하게 되지요.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결국 목형을 감옥으로 보내는데 그의 기행은 더욱더 교도소 죄수들을 선하게 만들게 됩니다. 그것에 힌트를 얻은 용덕은 전과자들을 불러모아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게 되고 기도원에서 함께한 영지와 합류하면서 하나의 마을 공동체를 이루게 됩니다.

이후 등장하는 것이 바로 이 목형의 죽음이었고 그 상황에서 해국이 마을을 찾아온 것이죠.



이 작품은 미스테리 스릴러의 기본 골격을 잘 갖추고 있는 작품입니다.

누가 목형을 죽였으며 이 마을에는 무슨 비밀이 숨겨져 있는가라는 것들이 이 작품에서 관객들이 풀어내야 할 숙제입니다. 등장인물이 많기 때문에 상당히 복잡한 작품으로 여겨지지만 원작에서의 내용들을 일부 생략함으로써 이야기의 구조가 살짝 간결해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령 영화에서 생략된 원작의 애피소드로는 이미 해국이 목형이 죽기 오래전에 마을을 찾아온 적이 있다는 것이며 비리 검사인 민욱의 사생활과 속사정들... 이와 관련된 애피소드들이 상당히 많이 생략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더구나 가끔씩 등장해 해국을 괴롭히던 천 순경과 용덕의 관계에 대해서도 영화에서는 후반에 그 반전이 공개가 되지만 원작에서는 애초에 중반부부터 그것이 공개되고 원작의 말미에서는 천 순경과 용덕의 관계를 다시한번 소개함으로써 그 관계를 확실히 밝히게 됩니다.






사실 재미있게도 이 영화에서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의외의 인물은 영지(영화에서는 유선 씨)입니다.

원작에서도 크게 관여를 하고 있지는 않지만 사건에는 간접적인 관계가 있는 사람이라고 강조한 부분은 이 영화에서도 그녀가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더불어 많은 것을 숨기고 있는 인물이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영지가 이 영화에서 중요한 이유는 기도원에서 목형이 그녀에게는 구원자 역할을 했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성폭행을 당했던 그녀는 용덕 덕분에 성폭행 했던 남성들에게 복수를 했지만 그만큼 용덕에게 댓가를 지불해야 하는 상황에 이릅니다. 그것은 용덕의 악행을 도와주지는 않았지만 침묵함으로써 용덕의 범죄를 도와주는 격이 되어 버린것이죠. 


이 만화가 다음 만화속의 세상에 연재되면서 많은 논쟁에 시달렸는데요. 

주인공이 하나같이 비정상적이다라는 것과 매우 폭력적인 장면이 많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더구나 종교적인 논란도 함께 떠밀게 되었지요. 이는 영화와 원작에 등장한 대사에서 특히나 그랬죠.

"넌 신이 되려고 했냐? 난 인간이 되려고 했다"라고 등장한 대사가 바로 그것이죠. 목형이 착한 사람들이 사는 유토피아를 원했지만 용덕은 무리한 범죄자들의 교화보다는 그들이 풍족하게 사는것이 원칙이었다는 점에서 그들의 의견충돌은 결국 겉잡을 수 없는 사태에 직면하게 된 것이죠.






주인공과 배우들의 싱크로율 역시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겠지요.

용덕의 캐스팅은 특히나 의외였다고 말씀하신 분들이 있으시리라 봅니다.

악한 기운이 느껴지는 원작의 용덕의 얼굴을 영화에서는 졍재영 씨로 대체했다는 것인데요. 싱크로율을 높이기 보다는 연기력과 분장기술로 그것을 대체했다고 볼 수 있겠지요.

범죄자로 등장하는 세 배우들의 경우에도 상당히 싱크로율은 낮습니다. 맞는 사람(닮은꼴)이 하나도 없죠. 그러나 덕천 역의 유해진 씨의 경우 외모보다는 백치스러움속에 공포스러운 이미지를 전달시키려는 모습이 많이 보여집니다. 석만 역을 맡은 김상호 씨나 성규 역을 맡은 김준배 씨 역시 싱크로율 보다는 원작의 스타일을 얼마나 따라가느냐에 따라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의외의 싱크로율을 자랑한 사람은 다름아닌 민욱 역을 맡은 유준상 씨 였거든요. 파마머리와 더불어 욕을 입에 달고사는 모습에서 원작과 높은 싱크로율을 자랑한다고 생각되어집니다.



강우석 감독은 원작의 공포감에 코믹함을 가미하여 약간 밝아진 느낌의 모습을 작용합니다. 물론 윤태호 작가의 원작이 유머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윤태호 작가가 섰던 유머의 경우 반대로 강우석 감독이 똑같이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이 다른점이라고 볼 수 있지요.

정의감이 넘치는 해국과 민욱의 모습은 마치 '공공의 적' 시리즈의 강철중 캐릭터를 반으로 쪼갠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어쩌면 강우석 감독이 요즘들어 이런 캐릭터를 즐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연재가 끝나고 태호 씨는 에필로그에서 정치적 논쟁과는 무관하게 스토리가 진행되었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회의 위성사진 속의 모습은 어쩌면 이 시대를 사랑가는 모든 이들이 자신이 괴물이 아니라고 부정하고 있지만 모두 괴물로 살아가고 있음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원작과 영화 모두 목형을 누가 죽였는지 이야기하였을까요?

아닙니다, 영화와 원작 역시 범인은 끝까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정말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을 수도 있고 제 3자가 그를 죽였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영화를 보시고 나서는 목형을 누가 죽였는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누가 그들을 괴물로 만들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닐까요?




보너스 화면... 이 작품의 일반 시사회 때 무대인사 장면을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