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대한 잡설들/오감만족... 이 영화 봤수?

'엉클 분미' 삶과 죽음에 대한 쉽고도 어려운 질문들...

송씨네 2010. 9. 30. 01:24





몇 년 전 실험영화제라는 행사를 다녀왔을 때 아무리 내가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이건 너무 어려워서 보기가 힘들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감독의 의도를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장편이나 단편으로 등장하는 실험영화들은 보고나서는 해설서라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요.


올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에는 의외의 작품이 수상을 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태국 영화이며(물론 여러나라와 합작을 했지만요.) 삶과 죽음에 대해 간단하면서도 뭔가 이해하기는 그런 힘든 영화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올해 시네마디지털서울 영화제의 개막작이기도 했지요. 

삶과 죽음 우리는 어떠한 자세로 받아들여야 할까요? 

그 대답을 한번 들어보실래요?

아피차퐁 위라세타쿤 감독의 영화 '엉클 분미'입니다.




꿀벌을 기르고 과수원에서 농작물을 기르는 남자가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분미... 신장 질환에 문제가 있으며 그가 얼마나 삶을 지속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19 년전 아내가 병으로 세상을 떴고 그 때쯤 그의 아들 분쏭도 사라집니다.

19 년이 지난 지금 그는 다시 과수원에서 요양을 하려고 합니다.

아내의 동생(처제)인 젠과 충직한 하인 '통'이라는 친구가 있습니다.

어느 때 처럼 저녁식사를 하고 있던 시점... 죽었던 분미의 아내가 유령이 되어 나타나고 아들 분쏭은 온몸에 털이 난 상태로 역시 테이블에 동참하게 됩니다.

오붓하게 앉은 저녁 시간... 분미의 부인은 자신의 죽음 이후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분쏭 역시 사라진 이후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사진기를 놓치 않았던 분미의 이야기도 이어지지요.

어느 순간, 분미의 아내는 분미를 비롯한 일행을 어디론가 안내합니다.

다름아닌 분미가 태어났다고 전해지는 동굴 속입니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듯 조용히 세상을 뜨는 분미의 모습을 뒤로 하고 '통'은 스님이 되어 다시 분미의 장례식장에 서 있습니다.

또한 아무렇지 않은 듯 젠과 그녀의 딸 이렇게 셋은 다시 만납니다.







이거 뭔 내용이야? 

아마도 이 영화를 보고나서 많은 분들의 첫 반응이 그것일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시간이 나신다면 저처럼 이 영화의 정보를 검색하고 계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단순한 줄거리이지만 직접 보고나면 이 영화가 무슨 영화인가 궁금증을 갖을 수 밖에 없는데요.

이건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분명 이런 느낌은 칸 영화제에서, 그리고 디지털 영화제에 상영장에서도 같은 느낌을 받지 않으셨을까 생각됩니다. 아무래도 이 영화는 설치 미술행사나 실험영화제에 어울리는 영화같죠?



'엉클분미' 뒤에 붙은 부제는 '전생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는 제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분미라는 남자의 이 이야기는 일부는 실제로 분미라는 남자의 이야기를 토대로 일부 모티브를 삼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앞에도 말씀드렸지만 일부작품은 설치미술로 선보여서 실제로도 전시(공연)이 되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영화의 감독인 아피찻퐁 위라세리쿤의 프로필인데요. 설치미술에서도 짐작하셨겠지만 그는 건축학을 전공한 학도로 그것을 영화분야에 접목시키는 시도를 하게 됩니다. 이는 그의 많은 작품을 만드는데 큰 도움이 되었고요.



재미있는 점은 이 영화에서 유령(혹은 귀신, 영혼)은 괴기스러운 존재가 아니라 그냥 일상생활에서 같이 살아가는 평범한 존재로 그려진다는 것입니다. 가끔 나그네처럼 나타나기도 하고 그것이 다른 사람을 데려간다는 점에서는 저승사자와 같은 의미를 띄지만 그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영혼이 되어 떠돌기도 하지만 영혼이 되는 것을 포기하고 사라지는 경우가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아울러 전생을 중시여겨서 그런지 이 영화에는 분쏭처럼 원숭이의 형태를 띈 영혼이 등장하여 분미와 함께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그런데 그 과정이라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사진을 찍다가 원숭이 형상을 한 영혼들을 보았는데 그들과 교감하기 위해서는 자신도 역시 원숭이 형상의 영혼이 될 수 밖에 없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는 분쏭은 이미 분미의 부인처럼 형체가 없는 형태의 영혼이지만 그 영혼의 정신만큼은 죽지 않았음을 이야기하는 대목이라고 보여집니다. 분미의 부인 역시 분미와의 추억을 더듬는 장면이 은근히 많은 것도 그렇죠.


죽음을 공포의 존재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의식처럼 이야기를 하는데 물론 분미는 자신의 부인(영혼)에게 가장 무서웠던 순간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그 순간이 지금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과 비슷하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상하게도 저 역시도 그 대목이 공감이 가더군요.

가끔 저 역시 사후 세계에 대한 공포를 갖고 있는 사람으로써 그 공포는 자신이 그동안 겪었던 공포들 중에서 그와 맘먹는 형태의 비슷한 공포가 똑같이 작용되고 있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후반에 들어서면 이 사후세계에 대한 공포에 대해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TV를 보던 젠과 그의 딸, 그리고 통... 세 사람의 유체 이탈같은 상황이 바로 그것이죠.

그들이 정말로 죽어서(혹은 죽지 않고) 한 쪽 영혼이 식당을 향하고 있을 것이고 아니면 그 영혼이 TV를 보는 사람들의 모습으로도 형상화 될 수도 있는 것이죠. 그것도 아니라면 그저 그들의 환상일 수도 있고 관객 역시 그 환상에 같이 속아넘어가고 있는 것도 아닐까라는 조심스러운 생각을 해봅니다.


물론 이 영화에서 가장 황당한 것은 공주와 메기의 이야기가 등장한 대목과 또 하나는 왜 갑자기 통이라는 사내가 스님이 되었냐는 의문일 것입니다. 중간 상황 다 생략하고 바로 스님이 된 모습을 보여주니 더욱더 헛갈리는 것도 사실이죠. 그가 어느 순간에 스님이 되기로 마음 먹었는가도 가장 궁금한 부분일테고요.

메기도 그렇고 원숭이의 형상을 한 사람 아닌 영혼도 그렇고 이 영화에서는 영혼을 인간의 형태만으로 나타내지 않고 다양한 동물로 나타내고 있으며 인간과 동화되기 위해 교미(섹스)를 하는 듯한 암시를 주는 장면을 곳곳에 집어넣습니다. 원숭이 영혼은 물론이요 메기와 영혼을 교류한 공주의 이야기 역시 마찬가지죠.

이 점에서 이 영화가 평범한 드라마로 볼 수 없는 판타지 장르로 규정지을 수 밖에 없는 이유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이 영화의 의문점은 한도 끝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감독을 붙잡고 질문을 하지 않는 이상 해답을 얻기 힘들테고요.

이런 난해한 점이 이 영화를 보고난 일부 관람객들이 지루하다, 수면제 영화라고 평가하는 이유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참고로 이 영화를 배급한 백두대간 측에는 미안한 이야기였지만 과거에도 관객들을 피곤하게 하는 영화들이 좀 많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너무 영화가 어려워서 지루해지기 쉽다는 것이죠. 과거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영화들을 주로 수입했던 것도 백두대간이었던 것을 생각한다면 말이죠.) 아마도 이 영화에 대한 평점도 갈리고, 더불어 상영관 수가 늘지 못하는 이유가 이런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이런 난해함에도 이 영화를 봐야하는 이유는 분명 있습니다.

적어도 나는 죽어서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이죠.

이 영화의 제작된 태국이 불교를 중시하는 국가이고 우리나라 역시 불교가 중심이 되던 사회에서 살고 있다보니 이런 죽음에 대한 진지한 고찰도 많이 할 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됩니다.

분미의 부인이 이야기합니다. 천국같은 것은 없다고 말이죠.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영혼이 죽어서 행복하다면 그것이 천국일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지옥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어쩌면 두 번 이상 이 영화를 관람하거나 이 영화의 감독인 아피찻퐁 위라세리쿤이 직접 한국에 다시와서 답변해주는 것 외에는 뾰족한 방법은 없는 듯 싶네요. 

아울러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었다고 해서 죽음을 정당화 하거나 자살을 조장하는 영화는 절대 아니라는 겁니다. 이 영화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그야말로 자연사이거든요. 따라서 이런 오해를 하시기 보다는 이 영화를 보고 왜 제가 하고 있는가를 확인하시면 좋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