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대한 잡설들/오감만족... 이 영화 봤수?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 사랑하고 소통하라, 자비롭게 향기롭게...

송씨네 2010. 11. 10. 01:36





소는 근면성실한 동물의 대명사입니다.

느리지만 불평없이 주인의 말에 순종하며 밭을 갈고 있습니다.

소는 더불어 평화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인도에서는 여전히 소를 우상 숭배하지만 소가 우상이 되어버린데에는 많은 이유가 분명 있으리라 봅니다. 


얼마전 영화 한 편을 보았습니다. 작은 영화의 감동은 이루어 말할 수 없죠. 

분명 규모는 작은 영화이지만 거대배급으로 많은 곳에서 상영한다면 그야말로 다행인 일이죠.

오늘 소개할 영화도 그런 의미에서 좋은 작품이 될 것 같습니다.

강중약을 제대로 조절할 줄 아는 감독, 임순례 감독님의 신작...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을 소개합니다.




소를 팔겠다는 남자가 있습니다.

마흔을 향해 달려가는 총각 선호는 소를 애지중지하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농촌으로 귀농을 왔지만 그는 시를 쓰는 시인이었거든요. 그런데 시를 못쓰고 논을 갈고 있습니다.

소와 함께 그야말로 야반도주... 

아니, 새벽에 도주를 한 선호는 소를 팔기 위해 머나먼 여정을 떠납니다.

횡성을 지나 '맙소사'라는 절에서 정말 '맙소사'를 연발하는 사건도 벌어지고 피로를 풀기 위해 소는 휴식을, 선호는 사우나로 향하지요. 

그 뿐인가요? 아버지 덕분에 경찰에 수배도 됩니다.

우여곡절 끝에 여행은 계속 되고 바닷가 마을에서는 추억에 잠기기도 합니다.

여행을 다니던중 옛 애인이자 친구의 배우자가 되어버린, 그러나 지금은 미망인이 되어버린 현수를 만나죠.

그리고 이상하게 우연인지 뭔지 현수는 선호의 뒤를 따라오게 됩니다.

소는 팔지 못했고, 사랑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소와 함께 여전히 여행을 떠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숫소에게는 한수라는 이름과 피터라는 이름이 생겼습니다.

이 친구가 좋아할지는 모르겠지만 꼬리를 흔드는 것 봐서는 좋아하는 건 맞나봅니다.

어쩌다보니 이들은 도착지인 서울로 다가오네요. 

그리고 이제 소와 선호와 현수는 세로운 세상을 향해 달려갑니다.







어쩌면 정말로 단순하기 짝이 없는 줄거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대상이 소라는 점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지지요.

보통 우리가 만나는 로드무비는 사람과 사람이거나 혹은 한 사람이 홀로 여행을 떠나면서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남자와 남자의 여행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앞에도 이야기드렸다시피 이 소는 숫소이기 때문이죠.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이 작품은 김도연 작가의 동명소설을 각색한 작품인데 피터(혹은 현수라는)이름의 암소와의 여행을 다룬 이야기인데 숫소로 변경을 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사람보다 더 돌발적인 동물들이기에 여러가지 상황들을 배열하는 것이 이 영화의 특징입니다. 소를 팔기 위해 애를 쓰지만 낮은 가격을 부르는 사람들에게 실망감만 안기고 돌아옵니다. 거기에 집나간 아들과 얼떨결에 나와버린 소 때문에 선호의 아버지는 수배라는 극단적인 조치를 취하게 되죠. 더구나 현수라는 여인은 도대체 알 수가 없어서 사람마음을 들었다 놨다하니 고통스럽기만 합니다. 마치 홍상수 감독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여성들의 모습을 다시 보는 기분이라고 해야할까요?





어떻게 보면 이 영화는 상업과 저예산영화 사이를 왔다갔다 하고 있는 것과 동시에 불교적인 성향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모습까지 보여줍니다. 이는 최근 임순례 감독의 행보를 볼 수 있으면 알 수 있는 대목이죠. 

티베트의 불교인들(특히 달라이 라마)에 대한 중국의 탄압에 대한 의견을 이야기하신 것도 그렇고 여러 인권 사회 활동에 지속적으로 동참하고 계시는 것은 임순례 감독의 평화에 대한 의지를 많은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 싶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전작인 인권영화 프로젝트인 '날아라 펭귄'에서도 그런 느낌이 있었고요.

더구나 우연인지 몰라도 단편으로 준비한 그녀의 또다른 작품 역시 동물을 소재로 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최근 임순례 감독은 불교, 평화, 동물, 인권 등의 다양한 생각을 가지고 계시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소와 선호의 여행은 '맙소사'라는 이름의 황당한 절을 지나면서 절정에 이릅니다.

여기서부터 이 영화의 성격이 조금씩 드러나는 대목이라고 해야할까요?

소를 잠시 잊어먹은 사고가 그 첫번째이며, 엉뚱한 기행을 일삼는 스님의 모습도 이상하기만 합니다.

심지어는 꿈에서 소를 사겠다고 나서는 사람들 때문에 힘들어하지요.

심지어는 절이 불타는 꿈도 꾸는 모습도 보여지는데요. 그 뿐만 아니라 서울로 도착하여 선호 일행이 도착한 것은 사찰(절)입니다.


사실 가장 궁금한 장면은 선호의 꿈들이었습니다.

우선 선호가 만난 사람들이 꿈에 몽땅 나타나 소를 사겠다고 나타난 사람들의 경우도 그렇고 절이 불타는 장면 역시 그렇죠. 심지어는 소가 선호에게 말을 하는 장면도 등장합니다.

물론 섣부른 생각이지만 아마도 임 감독님은 꿈 장면들을 통해 무소유와 공수래 공수거(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나 싶습니다. 많은 것을 소유하다 보면 욕심이 생긴다는 것이죠. 욕심을 버리고 자비를 배풀고 살라는 뜻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저는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라면 위의 스틸컷이 아닐까 싶습니다.

소가 종각 거리를 활보하는 아주 인상적인 장면이죠. 그리고 조계사에 들려서 촬영한 장면이 나오는데 실제로 재미있게도 조계사는 이 장면을 허락해준 것은 물론이요, 이 영화의 특별 시사회를 조계사에서 열기도 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최근 기독교(개신교)를 소재로 한 다큐가 많이 쏟아지고 있었다는 점에서 불교계에서도 포교 활동이나 홍보면에서는 이 작품이 아마도 제격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물론 제가 볼 때도 이 작품은 그런 느낌이 확실히 들었고요.


점점 매력적인 모습으로 다가오는 공효진 씨도 인상적이지만 연극무대로 노하우를 쌓은 배우 김영필 씨의 등장도 매우 인상적입니다. 충무로에서 앞으로 계속 주목할 배우가 아닐까 생각되고요.

피터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소에 대해서도 궁금하실텐데 연기 경력(!)이 있는 이래뵈도 대단한 소라는 것입니다. 먹보라는 이름의 소는 실제 많은 사극에 단역으로 등장하여 활약을 보여주기도 했으니 동물도 아무 동물이나 쓰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이 영화의 음악을 담당한 분도 인상적인데요. 바로 노영심 씨죠.

물론 이 분에 대해서 설명을 한다는 것 자체가 웃기는 일이지만 노영심 씨의 경우 임순례 감독과 마찬가지로 불교 쪽에 관심을 갖고 계신점이 인상적입니다. 법정 스님이 돌아가셨을 때 추모하는 자리에 그녀가 있었다는 것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죠. 그런 분이 이 작품의 음악을 담당하는게 어쩌면 어색하지 않을 수도 있겠군요.

아울러 이 작품에는 인상적인 노래가 등장하는데요. 피터, 폴 앤 메리(Peter, Paul and Mary)의 '500 mile'이라는 곡입니다. 과거 CF에서도 자주 애용될 만큼 좋은 곡입니다만 이 영화에서는 등장인물들의 친구들의 영어 닉네임으로 사용되던 에피소드에서 등장한 장면이자 노래입니다. 다시 들어도 멋진 명곡입니다.





사실 이 영화가 개봉된 시점에 불교계에서는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봉은사 직영사찰 논란이 바로 그것이었지요. 종교계의 경우에도 같은 종파라고 할지라도 보수와 진보로 나뉜다는 것이 사실 이해가 가지 않긴 합니다. 누가 잘하고 잘못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최근 불교이건 개신교이건 간에 종파간에 갈등하고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서 싸우는 모습은 그리 좋지 못하다는 겁니다. 심지어는 정치적 잣대까지 들먹이지요.

그런 점에서 종교지도자들은 법정스님이 이야기하신 무소유 정신을 그대로 가슴에 심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싸우면 그 분들은 이 영화 속 소만도 못한 사람들이 될테니깐요. 타협과 소통이 필요한 이 시점에서 종교계 지도자들이 이 영화를 보고 많은 생각을 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