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대한 잡설들/오감만족... 이 영화 봤수?

[윈터스 본]열 일곱... 그 소녀는 왜 괴물이 되었을까?

송씨네 2011. 1. 25. 23:58




스릴러는 얼마나 진화할 수 있을까요?

사실 작년에 개봉된 영화 '베리드'는 관 하나로도 기가막힌 스릴러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저예산으로 신인 감독과 신인 배우들로 그리고 신인 작가들로 이루어진 이들 영화는 탄탄한 시나리오와 연출력, 연기력만 있다면 충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죠.

미국의 어느 후미진 곳의 산골마을, 그리고 겨울에 가까운 날씨...

이 마을에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요?



리 돌리는 평범한 열 일곱의 소녀입니다.

물론 이 소녀는 평범하지만 아버지는 마약 제조업자에 어머니는 몸이 불편하고 철 모르는 여동생 하나, 남동생 하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아버지가 마약 제조 혐의로 수감되었고 이후 보석금을 내고 풀려났나 싶었는데 갑자기 자취를 감춥니다. 마을 보안관은 리에게 아버지의 행방을 묻지만 그걸 알리가 없지요.

보안관은 상당히 충격적인 말을 합니다. 보석금 문제가 원만히 해결되지 않아서 아버지도 못찾고 보석금도 모두 납부하지 않을 경우 집이 팔릴 수 있다고 말이죠. 집을 담보로 잡은게 그 이유랍니다.

리는 마을사람들을 찾아 아버지의 행방을 묻지만 이건 말이 하나도 안 통합니다.

큰아버지는 아버지 찾는 것을 포기하라고 합니다.

심지어 구타만 신나게 당하고 돌아오긴만 했으니 쉽지만은 않습니다.

이제 소녀에게 아버지가 살아 돌아오는 건 바라지도 않습니다.

나이가 어려서 군대도 갈 수 없다면 아버지의 유품이나 뭔가라도 찾아야 할 판이니깐요.




이 영화가 19세 관람가라는 등급이 붙어서 이 영화가 얼마나 살벌한 영화일까 의문이 들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폭력적인 장면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없지는 않지만 상당히 자극적인 상황들이 많다는 것이죠.

마을 사람들의 대부분이 마약에 빠져 있으며 어느 누구도 리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지 않습니다. 무시는 기본이요, 아무것도 더 알려고 하지 말라지는 것이죠.


이상한 마을의 이상한 사람들... 이거 어디서 본 이야기 같지 않나요?

강우석 감독의 작품 '이끼'는 만화가 윤태호 씨의 만화가 원작이지만 이 작품에도 비슷한 상황들이 많습니다. 한 남자가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그의 아들이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사실을 접하다가 우연치 않게 마을 사람들의 비밀을 알게 되면서 생긴 이야기이죠. 이 작품 '윈티스 본'의 구조도 상당히 비슷합니다.

그러나 '이끼'와 다른 점이 있다면 살벌함 속에 웃음이 있었던 '이끼'에 비해 '윈티스 본'의 리는 살아 있음 자체가 공포라는 것이죠.






'리'라는 이름의 이 소녀는 상당히 갸냘픈 모습입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실종이 그녀를 당당하게 만들었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 군입대를 결심하고 맞아 죽는한이 있어도 아버지의 행방을 찾아내야 했던 것이죠.

자신들의 동생들에게는 원치는 않은 일지만 총으로 적들과 직면하는 법과 다람쥐의 내장을 꺼내는 모습까지도 가르쳐야 하는 극박한 순간이라는 것이죠

그것이 갸날픈 열 일곱의 소녀를 괴물로 만든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고 보면 갸날프고 평범한 인간들이 이성을 잃고 자신을 방해하는 모든 것들과 싸워야 하는 모습을 보여줘야하는 상황까지 오게되는데요. 그것이 착한 사람들을 괴물로 만드는 요인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특히나 화가 나는 부분은 침묵하는 마을 사람들이었지요.

마약으로 나눈 끈끈한 정(情)은 결국 마을 사람들의 침묵이 되었고 리의 아버지에 대한 어떠한 비밀도 침묵으로 일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지요. 특히나 리에게 병주고 약주던 여인 손야의 모습은 화가 날 정도였지요.

재미있는 사실은 이 영화에는 남성의 폭력보다는 여성의 폭력이 더 살벌하다는 점입니다. 리의 큰아버지이자 리의 아버지와는 형제인 디어드롭을 통해 겨우 겨우 살아난 장면에서도 디어드롭은 손야에게 구타에 대해 물어보지만 같이 함께한 남자들은 리를 건드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손야를 비롯한 여성들이 그녀를 손봐주었다는 이야기죠. 그동안 영화에서 보던 남성들의 폭력과는 웬지 다른 모습입니다. 여자를 공격하는 것이 옮지 못한 일인 것을 알기에 공격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렇기에 여자가 여자를 공격하는 것도 남자가 남자를 공격하고 남자가 여자를 공격하는 것 만큼이나 엄청난 폭력행위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폭력을 정당하게 여기는 모습은 이 영화를 보면서 그렇게 유쾌하게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거기에 보안관은 웬지 모를 이들과 같은 편이 아닌가스러울 정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요.

이 영화에서는 어느 누구도 그녀의 편이 없었다는 것이 슬픈 일이었지요. 친구로써 도와준 사람은 게일이 전부였으니깐요.






이 영화의 엔딩을 보면 그 씁쓸함에 탄식이 절로 나옵니다.

아버지의 유품이나 그 무엇을 찾았냐고요? 물론 찾았습니다.

하지만 리의 목적은 아버지를 찾아 '왜 그러셨나요?'가 아니었다는 것이죠.

아버지를 찾아서 변명을 듣거나 시신이나 유품을 찾는 것이 목적이 아닌 팔리기 직전의 집을 지켜야 하며 가족을 지켜야하는 것이 그 이유였다는 것이죠.

하지만 아버지의 무언가를 찾고 그것으로 사태는 끝났나 싶더니만 보안관이 다시 나타나서 그녀에게 돈을 건내죠. 어쩌면 그 마을 사람들이 숨기고 싶었고 그 마을 보안관이 숨기고 싶었던 그 무언가가 뇌물성 댓가로 그녀에게 되돌아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서글픈 모습도 보입니다.



뭐니 뭐니해도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깊은 모습을 보였던 것은 리 역을 맡은 제니퍼 로렌스입니다.

열 일곱의 소녀 역을 했는데 실제 그녀의 나이는 스물 하나입니다.

여린 모습과 강한 모습, 두 가지를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이 매우 컸을 것 같은데 문제 없이 소화를 해냈다는 것이죠. 헐리웃이 주목하고 독립영화계가 주목하는 신인 배우 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디 포스터의 코미디 영화 '비버'에서도 이 상큼한 소녀를 만날 수 있다는데요. 국내에서 개봉은 할지는 모르겠네요.


'원터스 본'은 OST 면에서도 대단한 모습을 보여주는데요.

전곡의 대부분이 컨츄리 곡이라는 겁니다. (국내에 아직 OST가 나오지 않았지만 아마존 닷컴에 들어가시면 간단하게나마 들어보실 수 있습니다.) 역시 컨츄리 음악이 많이 발전한 미국답게 다양한 컨츄리 음악을 들을 수 있는데 웬지 모를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소품처럼 컨츄리 음악들이 영화에 등장하여 이 영화가 차가운 영화는 아님을 보여줍니다. (어떻게 보면 이 영화와는 딴판인 모습이죠.)

차갑지 않다는 것은 이 영화의 엔딩크레딧에서 그 모습을 보여주지요.



'이끼',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그리고 이 영화 '윈터스 본'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마을 자체가 폐쇄적이라는 것과 마을 사람들 역시 폐쇄적인 인물들이라는 것입니다.

1 : 1이 아닌 1 : 5 혹은 1 대 수 십명이 될  수 있는 외로운 싸움이라는 것이죠.

물론 그 1(일)은 주인공 본인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세 작품 모두 극단적인 상황으로 치닫지만 결말은 모두 다른 모습으로 흘러갑니다.


요즘 자꾸만 이 대사가 떠오르네요.

'우리 사람은 되지 못하더라도 괴물은 되지 말자'라고 말입니다.

'생활의 발견'을 만든 홍상수 감독의 영화 속 대사인데 홍상수 감독은 아마 이런 괴물들이 많아질 것이라는 것을 예상했는지도 모르겠데요.

그렇습니다. 우리 적어도 괴물은 되지 말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