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김주원은 이렇게 이야기를 했죠.
'정말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라고 말이죠.
사실 현빈 씨의 인기를 두고 거품이다, 아니다라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어디 이런 경우가 한 두 번이던가요? 드라마로 인기를 끌면 그 사람이 오래전 출연한 영화가 뒤늦게 빛을 보는 상황이 오기도 하는데요. 저는 솔직히 정말 재수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재능을 미리 알아봤다면 그 때 당시 힘들었어도 밀고나가야 하는 것이 정상이라는 것이죠. 현빈 씨의 영화 두 편이 오랜동안 매장당할 뻔하다가 드라마의 인기로 개봉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그렇다면 영화는 별로였을까요? 글쎄요... 한번 보고 이야기해보죠.
1966년 이만희 감독의 역작으로 알려졌으며 그 외에도 여러번 리메이크된 그 영화... 오늘은 네번째 만들어진 '만추'를 이야기해봅니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면서 미국에서 살아가던 여인 애나...
그녀는 살인을 저지르고 감옥에 있습니다.
그러던 그녀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오지요. 어머니가 돌아가셨으니 집에 오라고 말입니다.
다행히도 모범수라서 약간의 보증금처럼 돈을 지불하고 잠시동안의 휴가가 허락된 것이죠.
수용소를 지나 시애틀로 향하는 버스에서 한 남자를 만납니다.
한국인이라고 소개한 그는 애나에게 차비를 빌립니다.
그리고 그들의 만남은 일회성으로 끝나나 싶었습니다.
재산분할에 혈안이 되어있는 가족들을 뒤로 하고 시애틀의 거리를 거닐고 있는 애나.
우연히 다시 만한 그 남자, 그의 이름은 훈입니다.
훈과의 만남은 그렇게 나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애나는 내일이면 형무소로 돌아가야 합니다.
어긋난 삶속에 훈에게 검은 그림자가 다가오고 그들은 기약없는 약속을 하며 휴게소에서 이별 아닌 이별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영상자료원에 가면 영화박물관이 있는데요.
거기에는 수많은 리메이크 영화에 대한 자료가 있습니다.
국내에서 가장 리메이크가 된 영화라면 '춘향전'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어떻게 보면 그 기록이 언젠가는 깨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원작을 포함해서 4번의 같은 이야기가 만들어진 '만추'.
'만추'는 1966년 이만희 감독이 신성일 선생님과 문정숙 선생님을 앞세워 만들어졌으며 이후 1975년 괴짜 감독으로 알려진 김기영 감독(1919~1988)이 '육체의 약속'이라는 이름으로 리메이크를 합니다. 그리고 두번째 리메이크는 1981년 김수용 감독이 매가폰을 잡고 김혜자 님과 정동환 님이 주연으로 이야기가 만들어지게 됩니다.
이야기 구조는 똑같습니다. 옥살이를 하게 된 여인이 특별휴가를 받아 세상으로 나오게 되고 그런 상황에서 범죄를 저지른 한 사내가 쫓기는 상황에서 휴가를 나온 여인을 만나게 되고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또 만들겠답니다. '가족의 탄생',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를 만든 김태용 감독이 그 주인공이죠. 왜 또 만들었는가라는 의문이 들긴 하지만 어쩌면 그 감독에 대한 존경 때문에 리메이크를 만든다고 해도 틀린말은 아닐껍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이만희 감독의 '만추'는 현재 필름이 분실되어 찾을 수가 없는 형편이고 나머지 영화인들은 아마도 1975년 작품이나 1981년 리메이크를 보고 자라온 세대들일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2011년 지금 이 먹히지도 않을 것 같은 이야기를 어떻게 현대적으로 바꾸었을까요?
이야기는 글로벌하게 미국으로 배경이 바뀌었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더구나 등장인물들은 말이 통할 것 같지 않은 한국인과 중국인이고요.
어떻게 보면 미지의 세계 같고 이방인 투성인 기회의 땅 미국에서 이들의 삶은 더 고단하고 힘든 상황이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골격은 여전히 유지하되 글로벌하게 이야기가 바뀌면서 '만추'는 또 다른 이야기로 바뀌게 되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 탕웨이를 선택한 것은 의외의 일이었습니다. '색 계'에서 충격적인 모습을 보여준 그녀가 이 시대의 최고의 까도남인 현빈 씨와 연기를 한다니 말이죠.
그런데 영화의 배경인 시애틀의 모습의 대부분은 비가 내리거나 안개가 낀 도시입니다.
영화의 내용만큼이나 상당히 우울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느낌을 완화시키는 것은 판타지적인 장면으로 수를 놓은 김태용 감독의 촬영방식이죠.
특히나 놀이공원에서의 서로 다른 두 남녀가 범버카를 타고 있는 상태에서 또 다른 남녀를 바라보는 장면은 최고의 장면으로 손꼽힙니다. 두 남녀를 아는 듯이 애나와 훈은 그 남녀의 대화를 마치 더빙하듯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서로 밀고 당기기를 하던 그 정체불명의 두 연인은 컨베어밸트처럼 제지리 걸음을 하더니 공중위에서 춤을 추며 날아다닙니다.
그러고 보니 그의 전작 '가족의 탄생'에서도 이런 공중부양 장면이 있었지요. 물건이 날라다니기도 하고 영화에서는 선경(공효진)이 합창도중 날아다니는 모습이 등장하기도 했죠. 그가 유난히도 공중부양 장면을 좋아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현실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을 판타지로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리메이크가 원작과 확실히 다른 것은 하나 있습니다.
글로벌하게 바뀐 것도 그것이지만 낯선 땅에서 서로 다른 두 나라의 사람이 등장한다는 것이죠.
애나의 어머니의 장래식장에 찾아온 훈은 애나의 전 애인이던 왕징과 심하게 대립합니다. (참고로 왕징 역을 맡은 배우는 중국인이 아니라 한국인입니다. 김준성 씨로 뮤지컬 배우라고 하는 군요.) 이는 전 애인과 그야말로 앤조이로 불리우는 새로운 애인의 갈등구도이지만 한 편으로는 자신의 나라 사람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그야말로 굴러들어온 놈에 대한 배타적 감정 또한 싸움으로 이어진 점이라서 상당히 주목할 필요가 있는 장면이라는 것이죠.
이 영화는 단순히 현빈 씨나 탕웨이를 보기 위해서 영화를 보시는 것이라면 상당히 실망을 하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영화에 대해 부정적인 평을 보낸 분들의 대부분의 글이 위기나 반전이 없다는 점에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원작이 그랬는데 거기서 반전을 집어넣는다면 원작을 훼손한다는 소리를 들을 것이 뻔하죠. 배경을 바꾸되 이야기의 구조를 그대로 따른 것은 오히려 김태용 감독의 탁월한 선택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사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현빈 씨의 모습에서 하정우 씨의 모습이 보이더군요. 까도남은 까도남이지만 글로벌하게 바뀐 까도남이라고 할까요? 수염을 기르고 폼생폼사로 살아가는 모습에서 웬지 모를 하정우 씨가 출연하던 몇 몇 작품들이 떠오르게 만듭니다. 아마 저만 그렇게 생각했을까요?
현빈 씨와 탕웨이의 등장도 인상적이지만 오랜만에 등장한 김서라 씨도 반갑더군요. 옥자 역으로 짧게 등장하지만 강렬한 인상이 남는 분이죠. 사실 이 분도 1990년대 드라마나 영화에서 무진장 날리신 분인데 역시 세월에는 장사가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사랑은 어쩌면 어두운 안개나 비로 가득한 거리와도 같다고 봅니다.
늘 맑은 날만 있지 않고 우중충에 연속이라는 것이죠.
낮선 땅에서의 그들의 모습은 행복한 해피엔딩보다는 슬픔을 암시하는 것 같고요. 이는 고스란히 엔딩크레딧의 장면으로도 이어집니다.
엔딩크레딧에 불만을 이야기하는 분들도 많습니다만 이 것 역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입니다. 원작에도 사실 이들 연인은 행복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런데 해피엔딩을 강요하는 사람들이야 말로 원작을 훼손하는 나쁜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심지어는 트위터에서 자신있게(?) 결말을 이야기하신 분들도 있더군요. 참 자랑스러우시겠네요.) 원작이 그렇다면 리메이크도 그래야 한다고 봅니다. 물론 그 원작과 다른 결말을 이야기할 수 있지만 원작을 살리는 것이 어쩌면 그 원작자를 이해하는 당연한 방식일테니깐요.
PS. 이 영화를 배급한 CJ 엔터테인먼트-CGV는 영화 만추의 오리지널 포스터를 증정하는 행사를 일부지점에서 갖고 있는데요. 여성 관객은 현빈 씨를, 저같은 남성 관객들은 탕웨이의 싸인이 그려진 포스터를 선호하더군요. 물론 당연한 결과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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