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대한 잡설들/오감만족... 이 영화 봤수?

[짐승의 끝]머나먼 휴게소처럼 고달픈 우리의 인생...

송씨네 2011. 3. 6. 02:42



2년 전으로 기억됩니다. 

'제불찰씨 이야기'라는 상당히 특이한 애니메이션을 봤는데요.

이 영화를 제작한 집단은 다름아닌 한국영화 아카데미이고 매년 이들의 영화가 제작되어 인디전용관이나 많은 관객들에게 공개되고 있습니다.

올해로 3년을 맞이하는 이 행사(연구과정)는 3기 작품으로 다섯 작품이 소개될 예정이며 이 중 '파수꾼'은 이미 개봉에 들어갔습니다.('파수꾼'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해드리기로 하죠.)


아직 개봉을 기다리는 작품들 중에는 박해일,김꽃비, 김민준 씨 등의 알려진 배우들이 대거 참여하여 이들 신인감독들에게 지원사격을 해주기도 했는데요. 오늘 이야기할 작품은 박해일 씨가 참여해 화제를 모은 작품, 조성희 감독의  '짐승의 끝'입니다.


조성희 감독은 이미 '남매의 집'이라는 작품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으며 '짐승의 끝'의 경우 작년 서울 디지털 영화제에서 상영되어 역시 많은 화제를 모은 작품입니다. 고립된 마을, 그리고 정전, 택시... 

과연 이 곳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순영은 만삭의 몸을 이끌고 고향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탔던 택시가 멈춰버립니다. 더욱이 그녀가 향하고 있는 마을도 정전이 된다고 합니다.

야구모자를 낯선 사내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담담하게 말하고 택시기사며 순영에게 이 역시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이야기를 하고 있지요.

배는 고픈데 택시는 멈춰있고 휴게소로 전화를 걸어야 하는데 휴게소는 멀기만 합니다.

저멀리서 들려오는 무전기 소리... 그 사내의 목소리입니다. 제발 택시 안에만 있으면 아무일도 없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자전거에 실려 떠난 택시기사는 감감 무소식이며 동네 주민이라는 꼬마는 당돌하게 순영에게 접근에 사사건건 참견입니다.

자전거를 몰던 사내를 다시 만나서 우여곡절 끝에 휴게소로 가는가 싶더니 자신의 집으로 인도하는 이 남자... 그런데 이 남자도 어딘가 이상합니다.

하나같이 뭔가 이상한 마을주민들과 심지어 이 곳에 왔다가 핸드백이며 신발까지 갈취한 의문의 여인까지... 보이지 않는 휴게소, 그리고 언제 출산할지도 모르는 급박한 상황에 순영은 고통스럽기만 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저는 이렇게 불친절한 영화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인물들도 짜증나고 이야기도 어디로 나가는지 알 수 없는 그런 영화들 말입니다.

얼마전 보았던 '블랙 스완'도 비슷한 느낌이겠지만 그래도 그 영화는 폐쇄된 공간도 아니었고 납득갈만한 상황들이 이어졌으니깐요. 하지만 '짐승의 끝'은 폐쇄된 공간이 아님에도 폐쇄된 공간의 느낌이 납니다. 마을 주민들도 보이지 않고 같은 자리를 계속 맴돌고 있으니 단지 반경만 좁지 않을 쁀이지 넓은 반경을 자랑할지 몰라도 여전히 폐쇄적인 공간의 사람들과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화 관람후 간단한 제작진(감독, 배우)와의 인터뷰를 통해서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약간의 의문이 풀렸던 것은 사실입니다. 과연 영화속의 야구모자 사내의 정체는 무엇일까라는 의문부터 자전거 사내는 과연 선한 사람일까라는 의문도 들었지요.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야구모자 사내는 인간의 모습을 한 신(神 혹은 조물주)의 모습이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지요. 

실제로 자전거를 탄 사내를 연기한 배우 유승목 씨도 기자들과의 대화에서 자전거 사내는 약간의 불순한 의도는 있을지 몰라도 나쁜 사람은 아니었을 것이다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엄마를 잃은 동네소년 역시 자신을 방어하려는 의미에서 순영에게 못되게 굴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의도가 어찌되었던 간에 순영을 위협하는 존재들이었음은 틀림없다는 것이죠.





이 영화는 폭력적인 장면은 거의 없으나 순영을 간접적으로 괴롭히는 장면들을 집어넣음으로써 의도하지 않은 폭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임산부를 발로 찼거나 따귀를 때렸다면 직접적인 폭력이 되겠지만 순영이 폭력을 당한 장면은 의외로 다른 것에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이죠. 


소년이 만삭인 순영의 배에 자신의 충견을 잡아먹은 것에 대한 복수심으로 낙서를 하는 장면이나 드링크 병에 찔려 큰 부상을 입은 순영의 모습은 그녀가 직접적인 구타나 폭력의 피해를 입지는 않았으나 간접적인 피해를 입은 것으로도 간주되며 그러나 그 간접적인 피해의 결과는 참담한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인상적인 장면들로 생각됩니다. 물론 뭐니뭐니해도 순영이 고통을 입은 것은 자전거 남이 보여준 행위들이었지요.(더 이야기하면 문제 될 것 같으니 여기까지만 이야기 해두죠.)


사실 영화의 중간과 후반부로 들어서면 순영이 임신을 하였는가의 이유와 야구모자 사내는 하필이면 순영에게 광적인 집착을 하게되었는가를 보여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물론 그 장면을 보면 상당히 어처구니가 없을지도 모르겠지만요.



저예산의 영화답게 장소가 한정된 점과 순영 역을 맡은 이민지 씨의 열연, 그리고 의외의 등장인물인 박해일 씨의 등장이 이슈가 된 이 작품은 조성희 감독의 경우 박해일 씨와 친분이 있지는 않았고 다만 시나리오를 그에게 보내준 것일 뿐인데 관심을 갖게 될 줄은 몰랐다고 당시를 회상하고 있습니다. 만삭의 임산부를 연기한 이민지 씨의 경우 알려진 얼굴은 아니지만 혼신을 다해 연기한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추위와 싸우고 거지에 가까운 분장으로 자신의 얼굴이 몰골이 아니었을 때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볼 수 있었지요.




(좌측부터) 자전거 남 역의 유승목 씨, 감독 조성희, 

순영 역의 이민지 씨, 나루토 소년 역의 박세종 군



이 영화는 사실 그 메시지를 처음에 이해하기는 어려웠으나 어떻게 보면 이 영화가 전달하고자 했던 것은 인간의 폐쇄성, 그리고 내면에 숨겨진 악마같은 본성들을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떻게 보면 수영을 제외한 인물들은 하나같이 사람의 탈을 쓰고 있을 뿐 짐승과 다름없는 사람들인 것이죠.

악의가 있던 없던 그녀에게 직간접적인 피해를 주었고 실제 그녀에게 피해를 입힌 사람은 하나둘 의도하지 않은 죽음을 맞이하기도 합니다. 그것이 홀연히 나타났다가 사라진 야구모자 사내와 분명 관계가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그가 과연 이들 사람을 죽였는지에 대한 내용이 표현되지 않았으니 그 궁금함은 더해질지도 모르겠네요.


야구모자 사내가 떠나고 수영의 소중한 것을 가져가는 대신 소원을 이야기하라고 말합니다.

최대한 들어주겠다고 이야기하는데 사실 역시서 상당히 코미디스러운 대목이 나오죠.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평범한 소형 자동차에, 놀이동산 연관이용권을 갖고 싶어하는 수영의 혼잣말은 상당히 인상적으로 다가온 장면이었습니다. 

혹시나 해서 영화가 끝나고 조성희 감독에게 이 장면의 의미를 물어보았는데 이는 조성희 감독의 취향을 이야기한 것이 아닌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한 평범한 소원을 이야기하는 장면이었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글쎄요, 소중한 것을 잃은 그녀에게 과연 그 마지막 장면 이후 행복이 찾아왔을까요? 갑자기 궁금해진 것과 동시에 우리가 꿈꾸고 있는 그 무언가가 허상의 꿈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