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대한 잡설들/오감만족... 이 영화 봤수?

[달빛 길어올리기]임권택, 그리고 한지가 101번째 영화를 이루다.

송씨네 2011. 3. 20. 18:15




지금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최고의 거장이라고 한다면 두말 할 것없이 이 사람의 이름을 부를 것입니다.

바로 임권택 감독님이죠. 그는 괴물 같이 수 십편의 영화를 찍어냈다고 고백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그에게 영화만이 그를 위한 유일한 소통 방식이었기에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장군의 아들'시리즈와 '서편제'를 당시 단성사 1 개관(지금과 달리 단성사는 멀티플렉스가 아니었던 시절입니다.)에서 상영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었지요. 지금은 멀티플렉스들의 증가로 매진사태는 거의 찾기가 힘들었지만 극장광고에서 매진사례라는 광고는 영화를 홍보하는데 큰 효과를 모으는데 충분하죠.

그는 흥행감독이자 어쩌면 자신의 생각을 고집하는 고집센 감독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의 영화에는 공통점이 있지요. 전통적인 것에 관심을 갖고 헐리웃 방식과 타협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것에는 충분한 당위성과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101 이라는 숫자는 100이라는 숫자 만큼이나 중요한 숫자인데요.

100이라는 숫자를 완전한 숫자라고 볼 때 101은 새로운 또다름을 의미합니다.

그런점에서 임권택 감독님의 101 번째 이야기인 '달빛 길어올리기'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지요.

한지와 전주, 그리고 우리의 것이 살아숨쉬는 그의 101 번째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전주시청 한지 부서로 투입된 공무원 필용은 조선왕조실록을 한지로 복원한다는 말에 기대감을 갖습니다. 하지만 전통문화에 관심이 없었던 필용에게 그 모든 것은 처음부터 공부를 해야하는 상황이죠.

더구나 그의 아내인 효경은 뇌경색이라서 요양이 필요한 편이고 공예를 했었던 효경에게 도움만 구하려고 하니 여간 미안할 따름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지의 우수성에 대해 특집 다큐를 준비하던 다큐맨터리 감독 지원을 만납니다.

그런데 한지의 우수성만 이야기하면 될 것이지 화선지와의 비교에 은근히 까칠한 면도 있어서 필용과 자주 작은 마찰들을 일으키지요. 하지만 점점 서로에게 가까워지면서 서로의 사고 방식을 이해하게 됩니다.

한편 조선왕조실록 복원작업에는 과거 방식대로 만들어진 한지가 필요한데 낮은 단가에 융자가 힘든 상황에서 한지를 만드는 제지 업체들은 난색을 표하고 있습니다. 그 속에서 한지를 옛날 방식으로 만드는 것을 고집하는 덕순과 의기투합하게 됩니다.

아무도 훼손하지 않은 자연속에서 전통방식으로 한지를 만드는 사람들...

밤은 깊어가고 달빛에 닥나무 재료와 넘실거리는 폭포수는 달빛의 기운을 받아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사실 이 영화에 대한 느낌은 몇가지였습니다.

임권택 감독님도 리얼 버라이어티에 영향을 받으신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더군요.

이 영화는 재미있게도 다큐를 소개하는 장면이 많은 부분을 차지 하기 때문이죠.

조선왕조실록에 대한 다큐를 보는 필용의 모습이나 한지와 우리 문화에 대한 다큐를 만든 지원이 필용과 전주시청 공무원들에게 자신이 만든 다큐를 보여주는 장면도 의외로 많은 부분을 차지합니다.

어떻게 보면 상당히 쓸대없는 장면에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가라는 의문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이 영화는 전주영화제와 전주시청이 영화제작에 참여한 영화라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이 영화는 한지에 대한 영화임과 동시에 전주에 대한 영화라는 것이죠. 상업적인 PPL 대신 전주시청이라던가 전주의 문화가 PPL처럼 드러난 것도 이 영화의 특징이지요.




하지만 저는 PPL이 나쁘다고만은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더구나 그 방식이 다큐적인, 리얼리티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하더라도 임권택 감독은 전통성에 대한 의문을 끊임없이 제기했으며 그에 대한 해답도 스스로 말하고 있었으니깐요.

무엇보다도 '서편제'나 '천년학'을 보더라도 우리의 소리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이야기했으니깐요. 사실 '천년학'을 보더라도 '서편제'의 재탕이라는 평을 일부 얻긴 했지만 '서편제'를 중학교 시절 시청각용 교제처럼 관람하던 기억이후 이 작품에 대한 기억이 가물가물했으니깐요. '서편제'의 또다른 속편인 '천년학'은 '서편제'의 전편에 대한 지난줄거리 요약판이자 그 이후의 이야기를 이야기한 또다른 이야기의 작품이었지요.

'달빛 길어오르기'는 '서편제'와 '천년학'과는 다른 이야기이지만 전통, 그리고 우리의 것을 이야기한다는 면에서 그 맥락을 같이 합니다. 현대로 넘어왔을 뿐이지 그 이야기는 계속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만 그 점을 풀어 이야기하기에는 진부해질 수도 있기에 다큐를 이용하고 리얼리티적인 상황을 도입했다고 보여집니다.






이 영화는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 이후 오랜만에 박중훈, 강수연 커플이 다시 만났다는 점에서 화제가 된 영화입니다. 당시 '미미 안뇽~!'이라는 대사는 유행어가 되었다고 할 정도이니깐요.

젊은 시절에 만난 이 두 사람이 중년에 다시 만났으니 그 느낌도 색다르다고 보여집니다. 그래서 그럴까요? 이 장면에서는 딱 한번 필용과 지원의 베드씬이 등장하는데(물론 상당히 강도가 약한 장면입니다만) 이 장면은 전체적인 영화의 분위기를 깨뜨리는 장면이라는 평가도 얻고 있지만 오래간만의 만남이 격정적인 사랑으로 이루어질수도 있구나라는 생각도 들더군요.(물론 이 두 영화는 각기 다른 배역이었지만 말이죠.)



임권택 감독이 전통성을 추구하고 있지만 한 편으로는 임권택 감독의 위트와 재치를 볼 수 있는 대목들도 있습니다. 바로 카메오 출연이죠. 물론 여기에는 존경심의 뜻으로 그의 영화에 카메오로 기꺼이 출연한 사람들도 있는데요. 감독이자 부천영화제 집행위원으로 활약중인 김영빈 씨가 대표적인 예 입니다.

또한 임권택 감독의 과거 술친구이자 동료 영화인이었던 김동호 전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도 태연하게 연기를 하는 모습도 보실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송아진 전주시청 시장이 실명으로 직접 등장해 깨알같은 카메오로 등장합니다. 그 뿐이 아니라 실제 그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그 역할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영화속 한약방 의사로 등장하는 양복규 씨는 실제 이 한의원 대표이기도 하죠. 실존인물들이 실제 인물을 하면서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주고 있지만 어떻게 보면 영화와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면서 약간의 어색한 연기를 보여주기도 하는데 그게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는 것이죠. 무형문화제 권위자들도 실존인물로 등장하여 리얼함을 더해주고 있지요.

이것이 앞에 말씀드렸던 임권택 감독이 리얼리틱한 영화를 갑자기 만든 것이 아닌가 의문을 갖게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정말로 영화와 리얼리틱의 경계를 왔다갔다하고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됩니다.






이 영화를 단순한 재미를 위해 보셨다면 크게 실망하실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우리가 봐야할 의무가 있는 영화입니다.

전통문화를 소홀하게 생각한 우리들에게는 반성에 대한 의미로 봐야 할 영화이며 나아가 이 영화는 외국인들에게 보여줘야 할 영화입니다. (물론 앞에 말한 쌩뚱맞은 베드씬만 제외한다면 말이죠.)


아쉬운 점은 이 영화의 배급입니다. 전주영화제가 배급을 맡았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이 영화는 쇼박스, CJ, 롯데등의 3대 매이져 배급사들이 참여한 영화입니다. 사이좋게 거장감독의 영화에 대해 존경을 표한 것은 옮은 일입니다. 하지만 말로만 존경을 표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드는게 개봉관도 많지 않은데다가 은근히 교차상영을 하는 곳도 많다는 것입니다. 존경한다면 그리고 그의 101번째 영화에 참여할 의사를 밝혔더라면 끝까지 책임지는 것이 옮은 일이라고 보여집니다.


많이 봐주시고 많이 이 영화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냈으면 합니다.

임권택 감독님에게는 이 '많이'라는 단어가 어색하지 않은, 정말로 존경받아야 하는 이 시대의 거장이니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