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대한 잡설들/오감만족... 이 영화 봤수?

[오월애]진짜 숨은 슈퍼 히어로들은 광주 거기에 있었다.

송씨네 2011. 5. 22. 01:39

 



사실 진작 봤어야 했던 작품이었습니다. 지난 수요일 바로 5. 18에 말입니다.

31 주년이 되는 해였고 광주는 늘 그랬듯 이 행사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몇 가지 달라진 점이 있었지요. 시민들이 주측이 되던 기념식은 나라에서 이제는 기념식을 진행할 정도로 합법적인 행사가 되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죠. 1979년 광주를 그렇게 만든 것도 이 나라 이 정부였는데 지금 이 나라가 그 아픔을 달래본다고 기념식을 국가적으로 진행하고 있으니 말이지요.

민주화 운동이 활발해진 바로 그 시절 이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다큐맨터리 '오월애'입니다.(영화 원제는 '오월愛'가 맞지만 편의상 한글로 '오월애'로 표기합니다.)



오월의 광주... 조감독이자 나레이션인 주로미 씨의 이야기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그녀는 젊은 시절 광주에 살았고 광주는 시민들이 폭도가 되어버린 것으로 그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광주를 지켜냈던 사람들의 증언들을 통해 그들의 삶이 결코 순탄치 않았음을 알게 됩니다.

기동타격대 중 힘들게 살아남은 양동님 씨도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자 나레이션입니다.

카메라는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비춥니다.

과일 행상을 하는 이영애, 하문순 씨는 시민군들에게 주먹밥을 나르는 이른바 '취사조'로 활약하던 시절을 이야기합니다. 초반 인터뷰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인 생각을 갖던 이영애 씨는 자신도 모르게 얼떨결에 배웠다던 '임을 위한 행진곡'을 배웠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고, 화통한 성격을 자랑하던 하문순 씨도 그 시절 그 기억을 떠오릅니다.

중화요리집을 운영하는 박복자, 양인화 부부는 광주에서 만나고 같이 투쟁하고 그리고 중국집을 운영하기 까지의 상황을 파노라마처럼 이야기합니다. 인화 씨는 다시 태어나도 지금의 마누라랑 살고 싶다고 하고 복자 씨는 농담반 진담반으로 남편과는 살고 싶지 않다고 합니다. 여태까지 고생한 세월이 야속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네요.

전파상 김결 씨, 5.18 묘지에서 꽃집을 운영하는 이세영, 종교인임에도 쉽지 않은 투쟁을 도운 김성용 신부님을 비롯해 지금은 각자 맡은 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버섯농사를 하고 있고 관광버스 회사를 운영하며 대안학교 교장을 활동하는 각자의 삶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은 하나같이 마지막까지 광주와 함께 싸워왔던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슬픔은 끝난 것 같지 않습니다.군들에 의해 희생되고 그리고 몇 년이 지나서는 우을증과 여러 합병증으로 자살하거나 생애를 마감한 동지들 생각에 그들의 마음은 편하지만 않습니다.

옛 전남도청은 문화시설을 만들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들로 대힙하고 있고요.

다시 돌아온 5. 18 기념식... 비는 내리고 있고 '임을 위한 행진곡'은 외롭게 울려퍼지고 있었습니다.






아이러니 한 것은 바로 첫번째 스틸에서 보이는 518번 버스입니다.

실제로 광주의 5.18 운동의 주요 장소를 지나는 버스라는 군요. 이 아이러니한 버스 노선 번호가 카메라를 비추면서 이 이야기는 결코 유쾌하지 않은 이야기임을 암시하게 됩니다.

특이하게도 두 명의 나레이션이 번갈아 벌어지는 이 작품은 옛 전남도청을 끝까지 지킨 사람들의 증언들로 이어지게 됩니다. 김태일 감독은 이들을 설득하고 섭외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고 이야기합니다.


특히 작품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참외를 비롯한 과일을 주로 파시는 이영애 님의 경우 이런 것 찍어서 뭐하냐는 볼맨소리만 들었다고 하죠. 하지만 그녀의 입에서 나온 광주에 대한 생생한 증언는 그 무엇보다도 충격적이었습니다. 이름없는 아낙네들은 소금에 대충 간을 한 주먹밥을 만들어 시민군들에게 배달을 하고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위험에 목숨을 건 싸움을 할 수 밖에 없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애국가를 부르면서 평화적으로 싸우길 원했는데 당시 군은 총을 앞세워 남자이건 여자이건 가리지 않고 폭력과 총탄을 날렸으며 심지어는 군인이건 시민이건 보살펴야 할 의무가 있는 적십자 완장을 찬 군인들도 폭력에 독참했다는 것은 이 사건이 얼마나 끔찍한 만행인지를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더구나 더 말이 안되는 것은 이들 사상자가 발생하였음에도 아무런 희생자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보도하는 부분입니다. 실종자도 많았고 사망, 부상자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실제 5.18 묘지에는 사망자만 있는게 아니라 실종자, 행방불명된 이들에 대한 임시묘소도 있습니다.)


당시를 회고하는 인터뷰 주인공에는 두 가지 버전의 자막이 등장합니다. 당시 그들이 활약했던 담당 역할이 그것이고 지금 그들이 하고 있는 일이 두번째입니다. 중화요리집 사장님, 버스 기사, 관광버스 회사 사장님, 전파사를 운영하는 분도 계시고 구두와 열쇠를 수선하는 분도 계십니다. 유치원 교사나 신부님, 대안학교 교장선생님 등의 높은 직위를 가진 분도 계시지만 1979년 광주에는 직급과 나이, 성별은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같이 싸우고 투쟁한 것이 중요했다는 것이지요.





다큐 '오월애'는 담담하게 그 5. 18의 사건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던 와중에 전남도청은 문화시설로 탈바꿈하기 위해 건물을 허물어야 한다는 소식이 들려오죠. 이것을 지켜내려는 자와 허물어야 하는자의 싸움이 시작됩니다. 

옛 전남도청 터에서는 앞으로 싸울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다시 그들의 전쟁이 시작이 된 것이지요. 공청회라던가 여론조사 하나 없이 전남도청을 허물어야 한다는 사실에 광주 사람들은 격분을 합니다.

역사의 발자취가 되고 기념이 될 자리에 아시아 문화 전당이 웬말이냐는 것이죠.



잠시 뒤 다큐 속 TV 화면은 전두환과 노태우라는 두 범법자를 보여줍니다.

그들로 인해 많은 이들이 희생되었지만 법은 그들이 전직 대통령이라서 그랬는지 몰라도 가벼운 솜방망이 같은 판결을 내립니다. 폭도를 일으킨 사람들을 따로 있는데 광주시민들은 폭도를 일으킨 사람들이 되어버렸고 그나마 그 누명에서 벗어나는가 싶더니 이제는 기념식이랍시고 '임을 위한 행진곡'도 부르지 못하게 합니다. 정말로 아이러니한 일이죠.

누군가는 29 만원이라면서 우기면서도 경호 비용은 8억에 해당되는 돈을 낭비하는 전직 대통령이 있고 더 웃기는 것은 그를 비판하는 발언 잘못했다가 이상한 사람으로 낙인찍힌 배우분과 그녀를 비아냥 거린 모 정치인을 보면서 사실 이게 정상인가라는 의문을 갖게 만듭니다.


 

김태일 감독


'오월애' 상영 후 조촐하지만 절대 가볍지 않은 관객과의 대화가 이루어졌습니다.

제가 드린 첫 질문... 김태일 감독이 의외로 인터뷰하기 힘든 사람은 농민으로 등장한 한 여성분이었다고 합니다. 아무도 그녀에게 5.18 인터뷰를 했던적이 없던지라 그녀 역시 그런 증언이 처음이었고 자연스럽게 담아내기가 어려웠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또한 5. 18 피해자들은 국가유공자로 지정받아 주차장 할인을 비롯한 혜택을 받을 수 있음에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 때문에 이런 것들을 거부하고 살아가고 계신다고 합니다. 더구나 다큐에는 담지 못했으나 5. 18 운동에는 넝마주이 같은 분들의 활약이 대단했었는데 그들의 터전을 당시 정부가 공격하고 이들을 잡아들이는 바람에 현재 이들의 소재지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들의 인터뷰를 꼭 담고 싶었지만 그것이 불가능 했다고 이야기하고 있고요.




앞에도 말씀드렸지만 현재 5. 18 기념식은 정부 주최하에 열리고 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일인 것처럼 보이지만 '임을 위한 행진곡'도 기념식에서 못부르는 아이러니한 기념식이라는 겁니다. 더구나 나라를 대표하시는 분은 이 핑계 저 핑계 대고 불참하시고는 자전거 타기 행사나 일본 지진 순방을 나서고 계시니 과연 그 분께서 광주의 그 수 많은 시민들을 진실로 애도하고 위로해주는지는 의문이라는 겁니다.


김태일 감독과 조연출인 주로미 씨는 이 작품을 시작으로 민중 세계사를 탐험하는 두 번째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눈치채신 분은 아셨을지 모르겠지만 김태일 감독과 주로미 씨는 부부입니다. 덮수룩한 수염을 기른 김태일 감독과 달리 나레이션 화면속에 자녀와 같이 등장하는 주로미 씨는 젊은 분으로 등장하시지요. 이들이 만든 제작사도 그래서 자녀분들의 이름을 딴 '상구네'입니다.

상구네 가족들의 다음 모험은 어디로 이어질까요? 웬지 모를 저는 이들 가족 제작사의 여정이 기다려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