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대한 잡설들/오감만족... 이 영화 봤수?

[종로의 기적]성적 소수자들이 일궈낸 '낙원동 프리덤'...

송씨네 2011. 6. 9. 15:09




종로의 낙원상가 부근에는 과거부터 심상치 않은 소문이 있었습니다.

낙원상가 넘어가는 지점에는 게이들이 많은 지역이니깐 조심히 다녀야 한다라는 이야기였지요. 조금 겁나긴 했지만 저는 한번도 거기를 불안하게 지나간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게이, 동성애자, 성적 소수자... 거기서 더 심하면 호모라는 소리까지 듣게 되는 것이 이들의 현실입니다.

동성애자들을 위한 단체인 친구사이와 연분홍 치마가 만난 다큐맨터리 '종로의 기적'은 우리가 생각했었던 동성애자들에 대한 다른 시각을 보여주는 다큐입니다.  당신이 생각했던 그들에 대한 그릇된 편견을 깨볼까요?



#1. 소심한 게이 감독 준문

소준문 씨는 단편을 여러 작품을 찍은 나름 베테랑 감독입니다.

영화제에서 인정받는 감독이지만 그는 게이라는 컴플렉스 때문에 영화제작에 애를 먹습니다.

작품이 엎어지는 것은 물론이요, 시나리오에서도 퇴짜, 게이임을 밝히는 순간 역시 제작팀과는 불협화음이지요. 그는 군시절 겪었던 사건 때문에 일종의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습니다.

소심해진 것도 나약해진 것도 군생활에서의 커밍아웃 때문이었지요. 

하지만 이제 그는 나약해지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당당하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나는 게이 감독이라고 말이죠.


#2. 사회활동도, 사랑도 열심히 하는 병권

장병권 씨는 NGO 직원입니다. 

참의료 실현청년한의사회에서 일하고 일하고 있는 그는 낮에는 쌍용자동차라던가 외국인 노동자들을 비롯한 노동자들의 인권을 위해, 밤에는 게이들의 인권을 위해 뛰는 사나이죠.

그는 남자친구와 동거를 하고 살아가고 있지만 바쁜 일 때문에 같이 못하는 것이 미안할 뿐입니다.


#3. 나의 게이 인생의 황금기, 영수

최영수 씨는 조그마한 스파게티 가게를 운영합니다.

그 전까지는 시골에서 서울로 상경하면서도 게이들의 커뮤니티인 친구사이도 몰랐고 무작정 그들의 커뮤니티를 찾기 위해 이태원과 종로를 방황했지요. 

친구사이라는 모임을 만났고 G-boys라는 게이 합창단에 들어간 것은 그에게는 큰 행운이였고 즐거움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그가 말하던 그의 최고 인생의 황금기에 위기가 찾아옵니다.


#4. 위험한 사랑, 욜에게는 로맨틱한 사랑

정욜 씨는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오랫동안 한 회사를 다닌 사원이지만 그가 게이인 것은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회사 조퇴를 감행해서라도 그는 에이즈 치료제 판매를 중단한 한국 로슈 앞에서 싸우고 에이즈의 날 행사에서는 정부의 기념식 앞에서도 나서기도 합니다.

그가 그런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가 사랑하는 친구가 에이즈에 걸렸기 때문이지요.

위험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좋아서 하는 동거이고 사랑이라고 합니다.

그는 그 누구보다도 멋진 사랑을 진행중입니다.






사실 '종로의 기적'을 보면서 느낀 충격은 잔잔하지만 한 편으로는 의외의 모습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을 위해 요리를 하며 직장에서는 회사원으로 근무하고 심지어는 NGO로 활동하면서 갖은 온갖 수난을 겪는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단지 사랑하는 대상만 다를 뿐 사랑하고 일하고 그런 모습들은 일반인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실망하셨을지도 모릅니다. 꽃미남 게이들만 등장하는 영화들을 우리가 많이 봐서 그럴까요?

하지만 이것이 어쩌면 더 정상이고 현실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이 영화는 극영화가 아닌 다큐맨터리이니깐요.



각계 각층에서 맡은 일을 열심히 하는 그들의 모습은 오히려 멋지기까지 합니다.

첫번째 이야기의 소준문 감독은 옴니버스 영화 '동백꽃'을 비롯해 '올드 랭 사인', 'REC'등의 작품으로 미장센 영화제와, 서울디지털 영화제 등에 큰 사랑을 받은 감독입니다. 영화에서는 두 영화의 제작 현장을 보여주는데요. 하나는 앞써 말씀드린 'REC'라는 작품이었고 또 하나의 작품은 제작 도중 잠시 엎어진 '로드 투 이태원'이라는 작품입니다.

소준문 감독이 왜 소심해질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이유가 작품에서는 자세히 드러나는데요. 군 시절 커밍아웃이 그를 정신병자 취급을 하게 만들었고 그 일로 인해 정신적인 트라우마에 갖히게 된 것이 주된 이야기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이겨내고 중단했던 작품들을 다시 촬영하고 스텝들이나 배우들에게도 개방적인 모습을 취하게 됩니다. 


두번째 이야기의 장병권 씨의 모습은 가장 적극적인, 그리고 우리가 몰랐던 게이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 싶습니다.

직접적으로 NGO에 참여하고 쌍용자동차 파업현장에 물과 의료진 출입을 제한 시키자 왜 제한하냐고 경찰과 경비원들에게 따지는 장면은 일반 NGO운동가들이 보여주는 그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똑같이 소리내고 문제가 있으면 고쳐야 한다고 요청한다는 것이죠.

외국인 노동자이자 커밍아웃을 선언한 외국인 노동자 대표의 단식현장에 찾가가는 모습에서도 하나의 노동자이면서 동성애자라는 점에서 그 모든것을 감싸안고 이해해줄 수 있다는 면에서는 참으로 멋진 모습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세번째 이야기이의 주인공인 최영수 씨의 삶은 하나의 드라마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었습니다.

무작정 서울로 상경하여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무언가를 배우고 익여야 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함께 할 수 있는 친구들이 없다는 두려움이었을 것입니다.

게이 합창단을 만나서 활력을 찾고 그의 말처럼 내인생의 황금기를 맞이했다는 부분은 틀린 말은 아닌것 같습니다. 하지만 극적인 장면은 이상하게 뒤에 생기게 되지요. 뇌수막염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영수 씨의 이야기는 가슴이 아프고 뭉클하기만 합니다. 그가 게이라서 가엽고 측은해서가 아니라 멋진 삶을 살 수 있는 그에게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그 모습이 더 안타까워 보인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가장 현실감 있고 가장 극적인 이야기는 故 최영수 씨의 이야기가 아니었을까요?


네번째 이야기는 가장 다루기가 힘든 소재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에이즈 환자와 동거하는 남자의 이야기였지요.

정욜 씨는 잘나가는 회사에서 6년 이상을 일했던 사람입니다. 어쩌면 남부러울 것이 없고 부족할 것이 없는 상황이었지요. 하지만 그것이 그의 별난 사랑이 아닌 단지 좋아하여 그런 것이 전부라고 이야기하는 부분은 공감이 갈만도 합니다.

그 사람은 약간 아플 뿐이고 당뇨병처럼 조금 불편할 뿐 치료약은 분명 있다는 희망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지요. 그런점에서 이들이 한국 로슈 본사 앞에서 중단된 치료제 보급을 다시 풀어달라고 시위하는 그들에게 생명줄과 같은 희망이기에 그 희망을 짓밟아버렸다는 것은 슬픈일입니다.

거기에 정부까지 에이즈 환자들의 희망을 짓밟아버리는 일에 적극 동참해주시니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좌측부터 이혁상 감독, 소준문 감독, 시네마 톡 진행을 맡은 이송희일 감독





다큐 상영이 끝나고 시네마 톡 행사에 참여했습니다.

이혁상 감독과 첫번째 애피소드의 소준문 감독이 함께 자리를 했습니다.

그리고 역시 커밍아웃을 선언했으며 독립영화 제작에 앞장서는 이송희일 감독님이 진행을 맡으셨습니다.

세 명의 게이... 하지만 이들의 이야기는 상당히 진솔했습니다.

세번째 애피소드의 영수 씨의 이야기를 어떻게 처리하는가에 대한 고민도 보였고요. 네번째 이야기의 경우 금기시 되었던 에이즈 환자에 대한 이야기도 어떻게 보면 오히려 우리가 몰랐던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인상깊었다고 보여집니다.


사실 저는 영화가 끝나고 나서 이혁상 감독 님에게 개별적인 질문을 몇가지 드렸습니다.

게이로 살아가는 이들 중에서 병권 씨 처럼 인권활동으로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숫자가 궁금했는데 너무 많아서 파악이 안된다는 이야기를 해주셨고요. 

네번째 이야기 중 정부의 에이즈의 날의 물리적 충돌은 없었는가에 대한 의문도 들더군요. 다행히 물리적 충돌이 없었고 시위자들을 막았다면 이들의 모습이 사회적 문제로 보도되는 것을 염려한 것 때문이 아닐까라는 이야기를 하시더군요. 마지막으로 자막에서도 확인하셨겠지만 이 행사 이후 아이러니하게도 에이즈의 날의 기념식은 공식적으로 하지 않았으며 에이즈 환자와 관련된 기금은 지금 현제도 묶여저 있다고 합니다. (사실상 지원이 중단되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그 분(?) 덕분이죠...)




누군가 그럽니다.

이것은 게이들의 일부 이야기이고 사실 진짜 게이들의 어두운 모습은 많을 것이라고 말이죠.

그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모자이크에 가려지고 음성변조로 가려지는 그들의 모습은 이제 달라지고 있으며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죠.

이 작품을 통해 수많은 이들이 얼굴이 노출되었습니다. 그들 나름대로의 커밍아웃이라는 것이죠.

하지만 제가 볼 때 그들은 누구보다도 당당하다고 보여집니다.

또한 개인적인 사정으로 여전히 모자이크에 가려졌지만 그들 역시 사회로 한걸음 나아가는 사람들로 같이 인정해주고 보살펴줘야 한다고 봅니다.

정말 그들이 신의 실패작일까요? 이건 종교의 문제를 떠나야 하는 점이며 그 사상과 생각들에서도 달라져야 한다고 봅니다. 당신이 개방적이라고요? 

게이, 장애인, 외국인 노동자, 그리고 나와 다른 성별을 비하하고 비난하는 순간 당신은 폐쇄적인 답이 없는 보수주의자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