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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루셔니스트]자크 타티가 이야기하는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고찰...

송씨네 2011. 6. 10. 16:10




잊혀진다는 것, 사라진다는 것은 얼마나 슬픈 것일까요?

살면서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잊고 살아간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잃어버린 우리들의 추억, 그리고 진짜 가족은 아니지만 뜨거운 가족애를 느낄 수 있는 애니메이션이 나왔습니다.

프랑스 코미디의 지존으로 손꼽히는 자크 타티의 원작으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 '일루셔니스트' 입니다. 

세상에서 행복한 마술사를 지금 만나러 가보시죠.



한 마술사가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타티셰프...

그는 떠돌이 같은 인생을 살아갑니다.

가방 몇 개에 통통해진 토끼와 자신의 얼굴이 담긴 포스터 한 장이 전부입니다.

평소 때 처럼 그는 마술쇼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는 늘 그렇듯 뒤에 벌어질 쇼의 바람잡이이거나 후반부 가장 재미없는 쇼의 주인공으로 낙인 찍히기 일쑤이지요.

박수소리가 조용해지면 그는 사실상 이 무대를 떠나야 합니다.

정처없는 발걸음을 하면서 그는 어느 사이 스코틀랜드의 어느 선술집까지 들어왔습니다.

기차타고 버스타고 배타고 다시 차타고 온 길... 

더구나 무대도 없지만 그는 혼신을 다해 마술을 선보입니다.

그의 열렬한 팬이 보이네요. 그녀의 이름은 앨리스입니다.

가난하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앨리스에게 그는 멋진 구두를 남깁니다.

다시 목적지도 없는 여행을 떠나는 마술사...

어느 사이 앨리스가 그의 뒤를 따라왔군요.

앨리스와 타티셰프의 기나긴 여정은 다시 시작됩니다.

어느 모텔... 일행은 서커스 단원들을 만납니다.

술주정뱅이 삐에로, 복화술 인형 아저씨도 보이고 아크로바틱 삼형제는 정신없이 모텔을 뛰어다닙니다.

호기심도 많고 갖고 싶은 것도 많은 앨리스는 마술사 아저씨에게 이것 저것 사달라고 조릅니다.

하지만 수중에 가진 돈은 없기에 낮에는 쇼윈도에서 인간 마네킹이 되어 백화점에서 호객꾼이 되고 밤에는 카센터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차수리를 해야 합니다.

노쇠해진 마술사, 앨리스에게 쪽지 하나를 남기고 떠납니다.

그리고 서로의 각자의 길을 향하게 됩니다. 과연 그들의 미래는 해피엔딩일까요?






마술사와 소녀...

마치 부녀지간 같기도 하고 레옹과 마틸다 같은 이 관계는 뭘까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것이 아닙니다.

앞에도 이야기했지만 이야기의 시작은 쇠락하는 마술사의 모습과 무대 뒤의 슬픈모습이라는 것이죠.

가는 곳마다 쫓겨나는 마술사... 하지만 그런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1950년 후반의 프랑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인근 영국도 마찬가지고 영국과 프랑스는 팝음악이 이슈로 떠오른 시기였습니다. 당연히 여러분이 알고 계시는 비틀즈의 탄생도 이 시기였으니깐 영국이나 프랑스는 팝음악에 열광한 젊은이들로 북세통이었겠지요.

이를 입증하는 장면이 있지요. 마술사가 무대를 준비하고 있는데 앞의 꽃미남 밴드가 열심히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노래가 끝나면 마술사는 다음 무대를 나서면 되는데 끝날 줄을 모릅니다. 계속되는 앵콜로 그의 무대는 계속 미뤄지게 된 것이죠. 보이 밴드의 앵콜이 끝나고 자신의 무대에 서지만 단 두 명만이 그의 무대를 보고 있습니다. 더구나 모자지간으로 보이는 이들 중 소년은 마술사를 향해 '저건 속임수'라는 제스츄어를 보내지요.

마술쇼는 더 이상 사람들이 열광하지 않으며 심지어 사람들은 속임수를 찾는데 집중하죠.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슬픔은 마술사와 소녀 앨리스가 살고 있는 모텔에서도 그대로 보여집니다.

같이 살고 있는 서커스 단원이 바로 그들이죠.

복화술 사내는 애써 웃음지으며 앨리스에게 다가가지만 보이지 않는 슬픔이 보이고 술주정뱅이 삐에로는 아예 자살 결심까지 합니다. 그나마 가장 활기찬 아크로바틱 삼형제는 서커스가 아닌 변색된 간판이나 광고물을 보수하는 작업에 투입되는 역할을 하게 되죠.

결국 서커스 단원들은 모텔을 떠나가지만 그것이 기쁜 일로 떠나는 것이 아닌 슬픈 퇴장을 하는 모습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렇게 유쾌하지는 않죠.

물론 '태양의 서커스'처럼 전세계 적으로 사랑받는 서커스도 있지만 우리나라의 동춘 서커스단처럼 쇠퇴하다가 겨우 기사회생하는 경우도 생기고 있지요. 마술사의 경우도 노년의 마술사들은 사라지고 젊은 마술사들로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고요.

그런점에서 사라진다는 것은 그다지 기쁜일이 아님에는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은 또 하나 앨리스와 마술사의 관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도 피한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가여워서 보살폈지만 이들은 가족을 넘어선 끈끈함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것이 지나쳤을까요? 앨리스는 아저씨(마술사)에게 쇼윈도에 보이는 물건들을 이것 저것 사달라고 조릅니다. 그럼에도 마술사는 그것을 거부하지도 않습니다.

이는 마치 철없는 딸과 아버지의 모습과도 닮아있지요.

마술사는 아저씨가 아닌 아버지가 되어버립니다. 소녀에게 모자람 없이 키우기 위해 돈을 벌지만 상황은 전혀 나아진게 없으며 카센터와 백화점의 바람잡이가 되어 겨우겨우 돈을 법니다.


소녀는 숙녀가 되고 사랑하는 남자를 만납니다. 

그리고 아저씨와도 멀어지게 되지요.

이는 앞에도 말씀드렸지만 아저씨 대신 아버지라고 대입을 해도 어색하지 않은 상황이 됩니다. 딸 같은 소녀는 숙녀가 되었고 더 이상 자신이 보살피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죠.

철부지 딸 같은 소녀에게 그는 떠나면서 쪽지로 이런 말을 남기죠.

'더 이상 마법사는 이 세상에 없어!'라고 말이죠.

이 말은 지금 이 현실에서도 적용이 되는 말입니다. 이는 더 이상 우리가 생각하는 마술이라는 것은 없고 스스로 자신이 이 세상을 개척해야한다는 의미로도 해석됩니다.





사실 이 작품은 개봉을 앞두고 있는 작품이라서 유료 시사이자 시네마 토크 행사로 벌어진 행사였습니다.

애니메이션에 일가견이 있는 CBS 신지혜 아나운서와 과천국제SF영상축제 프로그래머인 추혜진 님의 진행으로 이 작품과 더불어 자크 타티와 실벵 소메의 작품세계 대한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자크 타티는 그렇게 익숙한 인물은 아니지만 클레식 코미디의 대명사로 불리우는 찰리 채플린이나 버스터 키튼만 생각하던 우리에게 그에 대한 존재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자크 타티의 각본인 이 작품은 영화화가 되려고 하였으나 그것이 실패되었고 애니메이션으로나마 그것이 부활되게 됩니다. (자크타티의 후손이 이 작품의 존재를 알게 되고 실벵 소메에게 넘겨져서 빛을 보았다고 합니다.) 애초 원작이 되는 배경 지역이 변경되고 마술사가 애지중지하던 동물이 닭에서 토끼로 바뀐 점을 제외하고는 원작의 느낌을 그대로 살렸다고 합니다.

시네마 톡을 얼마전 진행한 이동진 기자도, 신지혜 아나운서도 공통적으로 그의 전작 중 하나인 '윌로씨의 휴가'를 추천하였습니다. (이 작품은 어떻게든 구해서 봐야 할 것 같네요.)


감독을 맡은 실벵 소메도 프랑스의 유명한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알려져 있으며 우리에게는 옴니버스 영화 '사랑해 파리'로도 알려진 감독이기도 합니다. 깐깐하기로 소문난 그는 애니메이터들에게 원작을 읽어보고 작업을 지시할 정도로 작품에 대한 애정이 강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래서 그런지 클레식한 느낌이 상당히 강하죠.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2D로 제작되었으나 일부 장면은 3D로도 제작이 되었다고 합니다. 특히나 마술사가 토끼를 놓아주는 장면에서는 마을을 전체적으로 비춰주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상당히 멋진 장면으로 손꼽히지요.




'일루셔니스트'는 어쩌면 슬픈 작품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슬픔이 그것이요, 자식을 보내는 아버지의 심정이 한편으로는 슬프게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이는 또 다른 희망의 탄생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마술사는 힘들겠지만 머나먼 여정을 떠나게 될 것이고, 앨리스는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행복하게 살게 될 것입니다. 또한 미운정 고운정이 들었던 마술사의 토끼 역시 같은 무리의 집단과 새로운 삶을 꾸려나가게 될 것이라는 겁니다. 

슬프지만 이는 아름다운, 새로운 도전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한다는 것입니다. 


프랑스 애니를 우습게 봤지만 이 작품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버리기로 했습니다. 아시는가 모르겠지만 애니메이션의 역사적 시발점이 된 곳이 바로 이 프랑스라는 점에서 이 작품은 필히 관람을 하셔야 하지 않을까 싶군요. 왜냐하면 프랑스 애니를 만날 수 있는 이 기회는 흔치가 않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