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대한 잡설들/오감만족... 이 영화 봤수?

[그을린 사랑]전쟁의 상처, 가감하거나 차감하거나...

송씨네 2011. 7. 27. 03:23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관람후 리뷰를 읽어주시길 권합니다.


전쟁을 하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겠지만 종교적 갈등이나 정치적 갈등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저는 의문이 들더군요. 왜 종교적인 이념으로 그들은 싸우고 있는 것일까라는 의문이죠.

예수도, 부처도 전쟁하라 이야기 했는가 묻고 싶더군요.

여기 한 쌍둥이 남매가 있습니다. 어머니의 이상한 유언처럼 생각했지만 그 유언이 그들에게 큰 파장을 줄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테니깐요.

전쟁의 소용돌에 얼떨결에 빠져버린 남매... 그리고 어머니의 유언...

영화 '그을린 사랑'입니다.



캐나다에 거주하고 있는 잔느와 시몽은 어머니가 일하던 회사의 동료에게 유언을 듣게 됩니다.

공증인인 장 르벨은 이들 남매에게 편지를 건내줍니다. 

어머니의 친 남편을 찾으라는 것과 친 아들을 찾으라는 것이죠.

그 때까지만 해도 어머니는 정신나간 소리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젊었을 적 사진과 여권만이 단서입니다. 어머니 유언에 따르는 잔느와 달리 시몽은 어머니의 유언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이야기는 과거로 돌아갑니다. 그들의 어머니 나왈은 중동이라 불리우는 레바논의 한 마을에서 살았습니다. 사랑해서 안되는 사람을 사랑했고 그 사람은 나왈의 오빠들에 의해 사살됩니다.

하지만 나왈은 아기를 갖았고 충격에 휩싸였던 나왈의 할머니는 아기를 출산시키는 조건으로 삼촌이 사는 번화가 도시로 가서 공부를 하라고 이야기합니다.

종교적 갈등으로 많은 이들이 그 자리에서 죽음을 당하자 나왈은 스스로를 테러리스트가 되기로 맘을 먹죠. 기독교계 중요 인사를 암살하고 크파르 리앗 감옥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모진 협박과 고문이 계속 되었고 그 곳에서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그리고 잔르와 시몽은 자신들의 출생이 의외의 배경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죠.

그것을 알고 나서 그들은 '1+1=2'가 될 수 없음을 알게 됩니다.





사실 트위터에 올라온 반응을 보고 궁금했던 영화였습니다. '이건 뭐지?'...

도대체 사람들은 무슨 이야기이길래 이 영화에 반응을 했는가라는 것입니다.

이 영화는 어떻게 보면 스포일러 덩어리로 가득한 영화라고 보시면 이해가 될 것 같습니다.

사실 이 영화가 미성년자 관람불가를 받을 이유는 없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에 충격적인 반전이 이 영화의 등급이 그렇게 나오게 된 원인이 아닐까 싶더군요.

이 영화를 이해하려면 이슬람권과 기독교권 간의 대립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애니메이션 '바시르와의 왈츠를' 같은 작품을 참고하셔도 좋을 것 같고요.

이 이른바 레바논 내전으로 인해 나왈은 사랑하는 남자를 잃었고 어딘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는 자신의 아들을 찾기 위해 이곳 저곳을 수소문합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나왈의 자녀들은 어머니가 밟았던 그 장소를 다시 밟게 되고 그 곳에서 어머니는 전혀 인정받지 못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죠.

나왈의 자녀들은 어머니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어머니의 고통이 매우 컸던 것을 알게 됩니다.

특히나 어머니 나왈과 외모가 흡사했던 자몽은 어머니의 발자취가 마치 자신의 모습과 어딘가 모르게 닮아 있다는 느낌을 깨달았을지도 모릅니다. 환영받지 못한 어머니처럼 레바논 어느 땅에 떨어진 그녀는 외국인이고 이방인이었으며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었으니깐요.


이 영화에는 챕터처럼 대문짝만한 소재목이 등장합니다.

이탈리아 영화 '아이 엠 러브' 같은 영화와 비슷한 모습으로 등장하는데요.

등장인물의 이름들로 등장하기도 하고, 때로는 지명이나 장소로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물론 이 영화속에 등장한 지명은 가상의 지명들이라고 하지만 레바논 내전은 실제 일어났던 이야기고 그들은 현재까지도 직간접적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잔르와 시몽 남매 역시 어머니 나왈 만큼이나 이 내전에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입은 당사자들이고요.








남매는 몰랐습니다. 어머니가 나왈이 어처구니 없는 유언을 그들에게 왜 남겼는지 말이지요. 땅에 생매장하되 비석은 의문의 편지를 전달하고 나서 세워달라는 유언을 말이지요.

사실 영화의 첫부분에는 인상적인 장면이 등장합니다. 

라디오 헤드의 ‘You and Whose Army?’란 노래가 흘러나오고 한 아이는 무섭게 카메라를 노려봅니다. 마치 세상과 한 판 겨루겠다는 의지의 눈빛이었지요. 그러나 이 소년이 그 후에 등장할 나왈의 큰 아들인 아부라는 것을 관객들은 뒤늦게 알아차리게 되죠.

그 분노의 눈빛은 그를 테러리스트로 만들었고 고문기술자로 만들었지만 염증을 느낀 그는 대형 버스의 청소 같은 허드렛일을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아이러니하죠. 과거에 영망높은 테러리스트이자 고문기술자가 그런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 말이죠. 그리고 우연치 않게 나왈과 상봉합니다. 나왈은 그게 자신의 아들임을 직감하지만 아부는 그것을 모르죠.


작년 부산영화제에서 큰 반응을 보였던 이 작품은 '그을린'에서 더 자세한 의미의 '그을린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개봉되었습니다. 원작은 연극작품을 바탕으로 하였고 영화화 되는 과정에서 몇가지 이야기를 수정하여 새로운 이야기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붕어빵에 붕어가 들어갈리 없지만 파전에는 파가 들어가야 하듯 레바논에서 벌어진 이야기를 담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레바논에서 실제 촬영되지 못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감독이 말하고자하는 메시지만 우선 전달되면 되니깐요.


영화에서는 같은 곳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데요. 가령 수영장은 이들 모자지간이 상봉하는 곳으로 등장하는 장소입니다. 물론 초반에도 이 수영장의 의미를 아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어머니 나왈이 쓰러진 장소이기도 하니깐요. 말라버린 수영장 바닥이 등장하다가 비에 흠벅 젖어 살짝 물에 잠긴 수영장의 모습도 등장합니다.

물은 생명 탄생을 의미하는 장소이기하지만 수영을 못하거나 고문을 당하면 죽음을 당할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죠. 어쩌면 수영장(물)은 생명탄생을 이야기하는 다른 영화와 달리 비극의 시발점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나왈은 죽음을 앞두기까지 현명한 방법으로 이들 남매의 아버지와 큰아들을 찾는 방식을 택했던 것 같습니다. 이는 '1+1=2'가 되지 않을 수도 있음을 다시한번 각인시킨다는 것입니다. 편지가 꼭 두 사람에게 모두 가게 될 수 있음을 나왈은 분명 유언에서 이야기하지 않았으니깐요.

두 통의 편지이자 혹은 한 통의 편지가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이 영화가 영상이 자극적이어서 그런 것이 아닌 비정상적인 가족관계로 인해 이 영화가 청소년 관람불가가 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자극적이지 않은 장면임에도 자극적인, 그리고 상상할 수 없는 일이 펼쳐짐으로써 영화는 그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고 있는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최근 종교간의 비극이 문제가 되었던 사건이 있습니다.

노르웨이에서 벌어진 과격한 기독교계 테러리스트의 대량 테러 사건이 바로 그것이죠. 이 테러리스트는 종교적 발언에 이어 가부장적인 아시아권 사회에 대한 지지 발언을 하여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영화나 드라마 속 테러리스트들 중에는 종교를 갖은 사람이 있는데 하나님께, 알라에게, 예수에게 기도를 하던 그들은 기도를 마치고 아무일 없다는 듯이 테러를 합니다.

정말 궁금합니다. 평화를 이야기한 분들은 이 분들인데 왜 당신들은 반대로 전쟁을 하는가라고 말이죠. 성서나 법전의 내용을 그들은 잘못해석하고 있는게 아닐까요?

그 뿐 만이 아닙니다. 헌금을 많이 내야 천국갈 수 있다고 하고, 예수와 하나님을 사칭한 일부 종교지도자들은 자신이 그 해결책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왜 그들은 자기 멋대로 해석할까요? 그게 평화일까요?





감독 드니 빌뇌부는 케나다 감독입니다.

어쩌면 그 역시도 이들 레바논의 현실을 바라보는 면에서는 이방인의 모습으로 바라봤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그의 생각이 꼭 옮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제 3자의 입장은 중립을 지키는데는 충분하다고 봅니다.

그런면에서 '그을린 사랑'은 제 3자인 우리의 입장에서 바라본 전쟁의 정당성을 이야기한 작품이 아닐까 싶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