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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순결한 그래피티, 조작된 사회에 적응하는 법!

송씨네 2011. 8. 18. 00:29

 

 

 

그래피티를 아시나요?

쉽게 말해서 밖에 락카로 써진 정체불명의 낙서도 그래피티라고 우길 수 있겠습니다만 벽을 이용해 낙서나 PR을 하는 것 등이 바로 이 그래피티에 속하겠지요. 얼마전 우리나라는 그래피티에 대한 재미있는 사건을 언론을 통해 접했습니다.

 

G20 세계 정상회의를 앞두고 서울시에서 G20을 환영하는 광고물을 거리에 걸었는데 이 것에 누군가가 쥐 모양을 한 그림이 청사초롱을 들고 있는 것으로 대체 되어 등장한 것이죠. 사람들은 현 정부에 대한 도전이라고 생각했고 대학 강사인 사내가 붙잡혔습니다. 그는 벌금 200 만원을 내라는 판결을 받았지만 그것에 굴복하고 소송은 아직도 진행중이죠.

 

문제는 이 쥐 그림이었습니다. 누군가를 연상시킨다는 이유였지만 사실 그 그래피티의 원작자는 영국의 괴짜 그래피티 아티스트인 뱅크시의 작품을 모방한 것이었으니깐요. 그러고보면 오늘 소개할 작품은 과연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웃기는 질문에 이 사회와 문화가 역시 얼마나 조작되고 어처구니 없게 그것에 환호하는지를 보여주는 계기가 될 것 같습니다. 다큐 '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 입니다.

 

 

여기 한 남자가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티에리 구에타...

미국에서 그럭저럭 입에 풀질할 정도로 작은 옷가게를 운영하고 있지요.

하지만 그에게는 좀 독특한 버릇이 있습니다. 모든 것들을 촬영하고 기록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런 그에게 그의 사촌이 비디오 게임의 케릭터를 타일의 형태로 만들어 온 거리를 부착하고 다니는 것을 알게 됩니다. 스페이스 인베이더라는 닉네임으로 통하는 사촌이죠.

인베이더를 촬영하다가 티에리는 더 많은 거리의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을 만나고 그들에 대한 기록을 하게 되지요. 하지만 기록만 하지 절대 편집을 하거나 다시는 보지 않는 괴팍한 성격입니다.

셰퍼드 폐리 같은 그래피티 아티스트도 만나고 제이 리노 같은 연예인도 만났습니다만 그는 오로지 뱅크시라는 정체불명의 사나이에 관심이 많습니다.

뱅크시는 미술관이며 팔레스타인의 담벼락까지 그에게 두려울 곳은 없었으니깐요.

사생활의 노출을 꺼리던 뱅크시는 티에리를 만나기로 하고 여러 작업을 도와가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기고 마는 티에리...

집 팔고 가게 팔고... 대출받고 있는 사이 그 역시 뱅크시처럼 그래피티를 하고 있고 사람에게 자신을 알리면서까지 뱅크시를 넘어선 천재라고 우쭐대기 시작하지요.

그리고 그 허풍은 자신만의 전시회를 열면서 절정에 이르게 됩니다.

 

 

이 작품은 당초 뱅크시가 아닌 뱅크시에 대해 티에리가 뱅크시를 담을 목적으로 만들어졌지만 그에게 그래피티 작업을 제안하면서 이야기는 갑자기 안드로메다로 향하게 됩니다. 괴짜가 괴짜를 알아보게 된 것이지요. 그래피티만 하던 양반이 기인에 가까운 이 사내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보통 쉬운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을 보고 나면 너무 걱정을 했구나라는 생각이 드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티에리는 앞에 말씀드린대로 평범한 시민이었고 그냥 장사나 하고 다녔다면 그저 평범한 인물로도 끝났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사촌동생을 만나고 뱅크시를 비롯한 거리의 수많은 그래피티 아티스트를 만나면서 그 역시 자극을 받게 됩니다. 그게 자극으로 끝나면 다행이겠지만 다시한번 생각하면 자신의 분수를 망각한 행동을 하고 다니는 것이지요. 그런 행위들이 관객들에게 웃음을 유발시키는 것을 보시게 될껍니다.

 

이 작품은 하나의 문화와 사회가 어떻게 조작되는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디즈니랜드에서 9. 11 테러를 애도하고자 그만의 방식을 관타나모 수용자들의 모습을 형상화한 작품을 세우게 되었고 이 별안간 서프라이즈 전시로 인해 티에리가 붙잡히게 됩니다. 이후 '거리의 불법전시회'라는 이름으로 낡은 창고를 전시장으로 꾸며 그래피티 작품과 설치 미술작품을 선보이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풍자와 조롱에 의미가 담긴 작품들이 사람들에게 큰 화제를 몰고오게 되는데 문제는 이것을 상업적인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죠. 이는 뱅크시도 예상 못했던 결과이고요.

이 다큐의 제목인 '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는 미술관이나 전시회장을 드나들다보면 퇴장로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기념품 가게 등을 빗대어 만든 제목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참고로 어떤분의 이야기로는 애틀랜타의 코카콜라 본사에 있는 전시장에도 이런 '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Exit Through the Gift Shop)라는 글귀를 발견하셨다는 겁니다. 일상적으로 보게 되는 이정표라는 것이죠.) 

 

티에리는 이 전시회를 보면서 자신도 이렇게 할 수 있음을 이야기하지요. 티에리의 장점을 배웠어야 하는데 자신의 작품을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하여 열심히 찍어내기에 이르죠. 그가 직접적으로 참여한 건 별로 없는데 말이죠. 이로써 티에리의 뱅크시 따라잡기가 시작되었고 어설프게나마 그것이 성공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는 언론사를 불러 좋은 글을 써달라고 청탁하고 심지어는 스승같은 존재인 뱅크시에게도 한 마디만 적어달라는 의미로 요청하는데 그 축사 같은 한마디가 오히려 자신을 뱅크시를 능가하는 인물로 과대포장하고 있고 스스로가 그렇게 생각한다는 점에서 어처구니 없는 모습을 보여주게 되는 것이지요.

과대포장 된 영웅... 그리고 스타의 등장이 얼마남지 않은 것이지요.

 

 

 

이후 엔딩크레딧에 보여지는 뒷이야기는 이야기는 더 가관입니다.

티에리의 아내는 티에리가 가지고 다니던 카메라를 대신 들고 다니기 시작했고 티에리는 마돈나의 베스트 엘범을 제작하고, 그것도 모자라 2010 년에 그의 두 번째 전시회를 열어 역시 대박으로 성공하게 됩니다.

오히려 티에리가 실패하는 것이 이 이야기의 결론에 맞지 않겠느냐고 하시겠지만 이 작품은 어디까지나 다큐니깐요. 하지만 한 인간이 과대포장된 영웅을 자처하고 스타로 발돋음하는 계기를 보여주었기 때문에 티에리는 충분히 위선자라는 비난을 받을 것은 영화를 본 관객들 모두 그렇게 생각하리라고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뱅크시에 대해서는 말이 많습니다. 그는 다큐에서 심하게 음성변조를 하였고 후드티를 잔뜩 뒤집어 쓴 상태에서 자신의 얼굴을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화면이 모자이크로 등장했으며 티에리가 찍은 일부 아티스트들 역시 자신의 얼굴을 공개하지 않고 모자이크로 등장합니다. 심지어는 뱅크시와 티에리가 동일인물이다라는 이야기도 나왔지만 뱅크시와 티에리는 작품을 잘 보시면 상당히 성격이 정반대인 인물이기 때문에 동일인물이라고 하기에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다시 쥐를 그렸다는 이유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분의 이야기로 넘어가보죠.

쥐그림으로 200만원을 내야 할 위기를 겪은 박정수 씨는 영화평론가 황진미 씨의 남편으로도 알려져 있는 분입니다. 재미있게도 이 사건 이후 황진미 씨는 티에리처럼 이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중입니다. 물론 그 부당함을 트위터를 비롯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알리고 있습니다.

박정수 씨는 다른 의도가 아닌 단지 뱅크시의 작품에 대한 패러디를 한 것임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보이고 다른 이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와 법원 판사분들은 이 작품을 보시지 않은 상태에서, 그리고 뱅크시에 대한 정보를 하나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에게 '법대로'를 들이대고 있지요.

 

어떻게보면 현 정권이나 판사분들은 작품 속 티에리처럼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함정에 빠진 분들이라는 점에서 한편으로는 안타깝기만 합니다. 퍼포먼스와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 분들이 말하는 소통이 과연 무엇인지 다시 묻게 됩니다. (촛불도 무서워하고 희망버스도 무서워하니 나중에는 정말 도깨비가 나타나면 거품물고 쓰러지실 분들이 아닐까하는 우려도 들고요.) 저는 의식있는 분들이 이 작품을 한 번이라도 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분을 비하하려는 의미로 그려진 그림도 아니고 퍼포먼스도 아니라는 것을 말이지요.

 

 

 

 

잠시 댓글 알바를 하면서 느낀게 있습니다.

여론 조작에 같이 휘둘리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겠다는 것과 여론 조작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깨달았다는 겁니다. 문화가 조작되고 사회가 조작되는 이 마당에 거기에 우리나라는 이들 퍼포먼스를 하나의 낙서라고만 생각하는 것도 문제라고 봅니다.

네, 물론 낙서 맞습니다. 당연히 문제가 되는 것은 법의 심판을 받야겠지요. 하지만 그래피티와 벽화는 같은 의미로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의미있는 것들이라면 오히려 보존을 해줘야 하지 않을까요?

가끔 지나치는 신촌역 굴다리 이름없는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의 작품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더욱더 들게 되는 요즘입니다.

 

 

 

PS. 뱅크시의 다양한 그래피티나 그 밖에 관련 작품을 보시려면... http://www.banksy.co.uk/

영화의 제목처럼 중간에 선물가게(기념품점)을 들리실 필요는 없습니다. 무료 관람 가능하니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