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라는 이 도시...
남산타워와 63빌딩, 타워펠리스... 서울을 대표할 수 있는 것은 뭐가 될까라고 물으시겠지만 적어도 홍상수 감독은 서울에 감춰진 면을 잘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그의 전작 '극장전'에서 지금은 사라진 시네코아와 광신안경을 만났습니다.
그는 경남 통영, 강원도, 제주도 등등 전국을 돌지만 그 지역에서 한정된 이야기를 만듭니다. 아주 절묘하게 말이죠. 그는 다시 서울로 돌아와 또 다른 서울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영화 '북촌방향'은 바로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는 감독이었지만 지금은 아무런 영화도 준비하지 않습니다. 그러던 그가 친한 선배를 만나러 다시 서울에 왔습니다.
낯술을 먹다가 시간은 밤이 되었고 과거 사랑했던 경진의 집에 들어가 잊을 수 없지만 떠나야 함을 이야기합니다.
선배인 영호를 만난 성준은 '소설'이라는 술집에 찾아갑니다. 영호의 또 다른 후배이자 영화과 교수인 보람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소설'의 주인은 그런데 보이지가 않습니다.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는 주인 예전은 웬지 경진과 닮아 있습니다.
술을 마시며 성준은 우연에 대한 다양한 가설을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술집에 있는 피아노를 연주하기 시작하지요.
다음날도 이상하게 이들 세 사람은 만났고 거기에 성준의 첫 영화에 출연했던 중원을 만나게 됩니다. 베트남에서 사업하다가 돌아온 그는 성준에게 왜 자신을 두 번째 영화에 출연시키지 않았냐고 투덜거립니다. 기다리고 있었는데 성준이 아닌 스텝이 거절 전화를 했다는 것에 분통을 터뜨린 것이지요.
'소설' 주인장인 예전은 여전히 늦고, 늦게 돌아온 예전과 성준은 안주거리를 사러가던 도중 두 사람은 키스를 하게 됩니다.
보람은 우연에 대한 신기한 하루를 이야기하고 그리고 몇 일 후 성준에게도 그런 똑같은 우연이 찾아옵니다.
또 흑백이죠... '오 수정' 이후 두 번째이지만 어떻게 보면 '하하하'에서 흑백사진으로 이야기가 전개된 것을 생각한다면 의외로 홍상수 영화에서 흑백도 자주 보게 되는 모습이지요.
당초 지방을 통해 촬영하고 문소리 씨를 캐스팅하려던 계획은 서울의 북촌의 호텔에서 이야기 구조를 짜는 것으로 변경되고 우여곡절 끝에 '북촌방향'이 등장했다고 합니다.
이번 작품에도 홍상수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스타일이 그대로 살아있습니다.
남성들은 찌질하기 그지 없고 여성들은 강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유준상 씨는 홍상수 감독들의 전작들에 이어 찌찔한 남성들을 연기했으며 오래간만에 홍상수 감독의 영화로 돌아온 김의성 씨는 영화의 내용처럼 오랜만에 나타나 성준의 마음을 속상하게 만듭니다.
더구나 이번에도 홍상수 감독은 영화계의 이야기를 직간접적으로 표현하려고 합니다. 김상경 씨나 유준상 씨는 주로 이런 시나리오 작가나 영화감독으로 등장하는 것이 이제는 어색하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죠. 하지만 홍상수 감독은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이야기하기에는 너무 실감나는 영화계의 모순이나 찌질이들의 행진은 모두를 공감하게 만들지요.
유준상 씨도 관객과의 대화에서도 이야기했고 홍상수 감독 역시 텐아시아와의 인터뷰에서 밝혔지만 성준이 영화를 공부하는 세 명의 영화학도들을 데리고 얼떨결에 경진의 집에 향하는 장면에서 세 청년이 자신과 똑같이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발견하자 성질을 내고 도망을 가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이는 영화계의 이른바 따라하기에 대한 비판을 한 것은 아니라고 분명히 밝히기도 했습니다. (홍상수 감독의 방식의 컷을 따라하는 영화학도들이 늘어났고 그럴 때마다 영화과 관련 교수들이 낙제점을 줬다는 일화는 웬지 전설이라기 보다는 진짜 들려오는 이야기같기도 합니다.)
김보경 씨가 맡은 경진이라는 인물을 보고 처음에는 당황스럽다는 반응이었다고 합니다. 그럴것이 너무 짧은 분량으로 등장하고 퇴장했으니깐요.
하지만 예전이라는 인물로 등장하면서 엄청난 열쇠를 쥐고 있는 인물이라는 것을 같이 출연한 김상중 씨에게 듣게 되었다고 하니 홍상수 감독이 독특한 감독인 것은 맞죠.
실제로 경진과 예전은 같은 사람이 아니며 연예관도 조금 다른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생판 처음보는 술집 여주인에게 바로 기습키스를 하는 성준과 그것을 꺼리낌없이 응하는 예전의 모습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성준의 상상이 아니었을까 하는 느낌도 들었으니깐요.
재미있는 사실은 또 있습니다. 성준은 술집 '소설'을 동료들과 세 번 방문하지만 '다시 방문하였다', '또 갔었다'라는 식의 나레이션이 아닌 마치 처음 온 듯한 나레이션으로 '소설'을 방문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피아노를 치는 부분에 있어서 한 번 더 피아노를 치는 부분에도 마치 처음치는 사람처럼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죠. 저는 그것이 의도된 장면일까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이 영화는 '인셉션' 같은 영화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그런점에서 틀린 부분은 아닌 것 같고요. 자꾸만 그 관점이 변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니깐요.
영화의 마지막은 보람이 잠시 이야기한 하룻동안 만난사람들에 대한 우연을 이야기하는 장면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보람은 하룻 동안 연속으로 영화계 인사들을 만난 것을 신기한 일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성준 역시 수많은 우연에 대한 경우의 수를 컵을 보여주면서 이야기하고 있고요. (실제로 시네마톡에서 유준상 씨는 관객에게 이 대사를 아직도 암기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 부분에서 관객들은 많이 웃기 시작합니다. 유준상 씨의 기억력에 놀라게 되고, 유준상 씨의 입담에 또 한번 놀라게 되는 대목이죠. 실제로 NG도 많이 나온 장면이랍니다.)
엔딩은 이를 다시한번 상징시켜 줍니다. 성주는 친하지 않은 영화감독(다큐 프로그램인 '엑소시스트'로 유명한 배우 백종학 씨), 정말 오랜만에 보는 영화계쪽 사람(배우 기주봉 씨), 그리고 기억이 가물가물한 영화 음악가(실제 영화음악가이자 배우인 백현진 씨)... 그리고 영화관계자 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자신의 팬인 한 여성을 연속으로 만납니다. 우연과 연속성을 강조하면서 이 영화는 늘 그렇듯 홍상수 감독답게 끝을 맺습니다. (음... 마지막에 팬이라고 하면서 등장한 그 여성분은 영화에서 직접 확인하시길...)
'북촌방향'은 어떻게 보면 만남과 인연에 대한 독특한 이론을 이야기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우연은 정말로 많은 변수를 가지고 있고 우리는 그것을 인식하며 살고 있고 혹은 인식못하고 살고 있다는 것이죠.
우리는 찌질합니다. 그것은 인간이 찌질한 동물일 수 있고 그 중에 남자가 그럴 수도 있다고 봅니다. 홍상수 감독은 그것을 그려낸 것이고요. 시네마톡 이야기에 극중 경진이 성준에게 담배를 달라고 이야기합니다. 두 개피를 달라고 하지만 성준은 자신의 담배갑에서 3~4개를 집어 경진에게 줍니다. 이 장면을 두고 유준상 씨는 최대한의 경진에게 줄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의외로 김보경 씨는 이 장면은 남자들의 찌질함을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고 그 장면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찌질합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하면 남자가 찌질한지, 여자가 더 찌질한지... 아니면 일방적으로 남성을 찌질하게 그린 홍상수 감독이 더 찌질한 것인지는 모르겠네요. 우리는 이상한 홍상수 나라에서 아직도 살고 있습니다.
ps. 영화속에 등장하는 술집 '소설'은 실제 있는 곳입니다. 더구나 실제 이 곳의 주인분도 자주 자리를 비워서 알아서 셀프로 술을 마시고 술값 역이 후불로 나중에 주인을 만나면 건내준다는 군요. 참으로 별난 술집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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