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대한 잡설들/오감만족... 이 영화 봤수?

[통증]곽경택 감독... 자신의 스타일을 버리니 새롭고 색다르네!

송씨네 2011. 9. 8. 00:03

 

 

 

서로 다른 두 남자가 있습니다.

한 남자는 남자 이야기를 자신의 영화에 자주 집어넣기를 좋아하고 그 배경은 대부분이 부산이었습니다. 남자다운 박진감이 있었을지 몰라도 부산에 한정된 그의 이야기는 약간 식상해지는 분위기이기도 했지요.

또 다른 남자는 웹 카툰에서 똥 이야기로 이야기를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스타일은 코미디와 멜로, 미스테리 등의 장르를 가리지 않았습니다. 영화로 만들기 좋은 것들도 있었고 실제 영화화 되었지만 대부분 감독들의 역량의 문제 때문인지 말아먹은 작품이 한 두 개가 아니죠.

 

곽경택과 강풀...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곽경택 감독은 부산을 포기하고 서울에서 시작되는 영화를 만들었으며 순정만화 시리즈에서 만날 예정이던 강풀의 만화 한 편은 마치 비장의 무기처럼 원안(시나리오)이 되었습니다.

어울리지 않은 이 두 사람이 만든 격정적인 멜로가 이제 시작됩니다.

영화 '통증'입니다.

 

 

한 남자가 미친듯이 얻어 맞고 있습니다.

빛을 받으러 나온 이 남자는 빛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또 다른 남자에게 신나게 얻어맞고 있습니다.

범노와 남순은 그렇게 일을 마치고 있었고 얼음찜질을 하기에 바쁘기만 합니다.

남순은 교통사고로 모든 가족을 잃었고 눈앞에서 누나를 구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통증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렇게 얻어맞아도 느낌은 없고 이마에는 핏자국만 가득합니다.

동현은 홍대앞에서 악세사리를 파는 여인입니다.

부모님을 모두 병원에서 잃었기 때문에 병원에 대한 공포가 있습니다.

조금만 다쳐도 멍이 드는 그녀는 혈우병에 걸렸습니다.

사채업자와 돈이 없는 서민... 남순과 동현은 그렇게 만났습니다.

월세방에서 쫓겨난 동현은 그렇게 얼떨결에 남순 집에 얹어살지만 그들은 서로의 부족한 점을 알게 되고 어느덧 사랑에 빠집니다.

하지만 동현은 쓰러지고 매일 팔뚝에 꼽는 약이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체업자가 아닌 스턴트맨이 되어 새로운 삶을 살기로 하려던 남순에게 의외의 장애물이 생긴 것이죠.

과연 이들은 그 장애물을 뛰어 넘을 수 있을까요?

 

 

 

 

'통증'은 강풀의 '순정만화' 시리즈 중 하나로 원래 기획된 것으로 알려져 있었지요. 그러나 어느 순간 이 프로젝트는 엎어지고 '조명가게' 등의 작품이 예정대로 기획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상해하실 것은 없습니다. 어차피 강풀의 작품들은 영화인들이 좋아하는 시나리오이니깐요.

통증을 못 느끼는 남자와 통증은 물론이요 상처에 민감한 두 남녀가 사랑을 한다는 소재에 곽경택 감독은 감탄을 했다고 합니다. 기존 작품의 원안으로 강풀은 참여한 대신 이 작품을 한수현이라는 시나리오 작가에게 맡기게 됩니다. 여기서 놀라운 점은 곽경택 감독 본인의 시나리오가 아닌 다른이의 시나리오에 눈을 돌렸다는 것이고, 여성 작가에게 그것을 맡겼다는 점이죠. ('괴물 2'도 흐지부지, '29년'도 흐지부지 되었지만 여전히 강풀의 시나리오나 만화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겁니다.)

 

한 언론에서는 이를 두고 곽 감독의 남성적 스타일과 여성 작가의 섬세한 면이 충돌해서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으나 저는 좀 다른 생각입니다. 그동안 곽경택 감독은 남성적인 이야기에만 초점을 맞춰서 그런지 식상함이 많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조폭이야기나 부산 사투리가 끊임없이 등장하였지요. 그런 점에서 곽경택 감독은 일단 부산에서 탈출하고 조폭이 아닌 소시민의 이야기로 눈길을 돌리게 됩니다. 저는 오히려 그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감독 본인의 고집보다는 다양한 작가를 만나고 다양한 소재로 부딫치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는 것이지요. 그런점에서 이 작품은 기존의 곽경택 감독의 영화와 너무 다르다는 겁니다.

 

반면 서울이라는 도시를 주무대로 하는 것은 강풀의 장기중 하나였습니다. '순정만화' 시리즈의 대부분이 서울을 대표로 하였고, 이 시리즈의 하나였던 '그대를 사랑합니다'나 '바보' 역시 서울이라는 공간안에서 소시민들의 모습을 잘 보여주었으니깐요. 아시다시피 강풀은 미리 소재가 될만한 장소를 직접 방문하여 사진도 찍고 취재를 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이 강풀 작품을 우리가 신뢰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남순과 동현의 모습은 각기 다른 서울에서 살아가는 소시민의 모습이지만 과연 그들이 사랑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부모를 죽였디거 자책하는 남순의 삶은 하루하루가 고통이었고 단지 통증을 느끼지 못할 뿐이지 가슴의 상처 또한 얼굴의 상처만큼이나 깊은 마음을 보여줍니다.

악바리같이 살아가는 동현의 모습도 만만치 않지요. 혈우병이라는 것을 가졌기 때문에 사람을 대할 때도 조심스러운 그녀는 그러나 악세사리를 파는 그 순간만큼은 즐겁게 행복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하죠.

고아가 된 두 남녀가 서로를 의지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느꼈습니다.

 

 

 

 

동현 역을 맡은 정려원 씨의 첫 이미지는 럭셔리함 그자체였죠. 걸그릅인 샤크라에서 화려한 의상과 춤을 추던 그녀는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공주처럼 살아가지만 연기력 논란만큼이나 다양한 역할을 보여주지 못한 것에 대한 문제점이 많았지요. 그런 점에서 '두 얼굴의 여친'의 다중인격이나 '김씨 표류기'의 하키코모리 캐릭터는 그녀가 얼마나 많은 캐릭터에 도전을 하려는 것인지 변화된 모습을 볼 수 있는 좋은 계기였습니다. '통증' 역시 어쩌면 전국민에서는 1% 이하에 해당되는 혈우병 환자 연기를 하고 있으니 그 점을 높이 사줄만 하다고 봅니다. 그녀는 이 영화에서 정말 귀여운 말라깽이였으니깐요.

 

남순 역의 권상우 씨는 어쩌면 과거 사건들을 생각한다면 여전히 용서할 수 없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대물'에서 고현정 씨와의 호흡은 그를 어느 정도 용서하고 싶은 마음을 들게 만듭니다. 그리고 '통증'에서 농담반 진담반으로 '얻어맞는 연기를 할 때 팬들에게 속죄하는 기분으로 연기했다'는 말은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멍해보이는 그의 초점은 환자같다는 느낌을 받기 충분했고 영화에서는 그의 짧은 혀를 의식해서 그런지 자신은 혀가 길다고 이야기하는 대사들은 관객들에게 웃음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그래요, 당신 혀 긴 거 맞아요!)

 

 

영화에는 재미있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영화 속의 드라마인 '거친 인생'이라는 드라마입니다.

남순이 지하철에서도 눈 뚫어져라 보는 이 드라마는 곽경택 감독의 스타일이 잠시나마 잘 녹아있는 장면인 것 같습니다. 더구나 이 장면에는 김민준 씨가 카메오로 등장하여 폼생폼사의 연기를 선보이지요.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김민준 씨는 부산 출신이고 곽경택 감독의 출연빈도가 많은 배우이기도 하죠.) 한편으로 드라마 속의 사나이는 그동안 '말죽꺼리 잔혹사' 등에서 보여준 권상우 씨의 폼생폼사 연기의 연장선상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대사를 따라하는 것도 모자라 그 드라마에 얼떨결에 출연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죠.

 

 

 

 

영화에서는 참으로 가슴아픈 장면이 등장합니다.

바로 남순이 일하고 있는 이른바 용역깡패들의 모습이죠.

어쩌면 그 장면에서 이미 관객들은 이 영화가 새드엔딩이라는 것을 예상했을지도 모릅니다.

용역깡패라 불리우는 사람들... 자신들이 뭐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며 안다고 하더라도 돈을 벌기 위해 몽둥이와 쇠파이프를 들고 다니는 그들의 모습은 악당이기 이전에 불상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남순 역시 그 사건의 피의자이자 피해자이기도 하고요.

용산사태를 염두하고 이야기한 것이 아니냐고 하자 곽 감독은 용산사태 뿐만 아니라 해마다 부서지고 희생되는 사람들에 대한 모습으로 생각하면 좋겠다는 맨트를 남기더군요. 그러고 보면 부산 한진 크레인, 제주 강정마을, 홍대 두리반, 명동의 카페 마리까지... 우리가 앞으로 싸워야 할 일이 수두룩 하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유쾌한 장면이 아닌것만큼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아픔이 많은 우리들은 아프면 눈물 흘리고 상처도 납니다.

하지만 그 상처가 우리 눈에서 보이는 상처가 아닌 마음의 상처인 것도 있지요.

그 상처를 이겨내기에 남순이 그렇게 발라대던 복합연고를 보며 우리 마음도 치료할 수 있는 복합연고도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