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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의 왕]폭력의 사각지대, 괴물이 되어버린 돼지들...

송씨네 2011. 10. 24. 00:15

 

 

 

 

저의 학창시절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시기였습니다.

성질 더러운 친구들이 몇 명 있었고 그들 때문에 학교를 다니기 싫은 경우가 대부분이었지요.

그런데 말이죠, 그 친구들도 정말 훗날 그 학창시절을 아름답게 기억할까요?

아마도 연상호 감독도 같은 생각이었나 봅니다.

바로 이 작품을 통해 우리의 암울한 학창시절을 이야기하고 있으니 말이죠.

당신의 학창시절은 어땠나요? 암울한 우리들의 기억...

연상호 감독의 장편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 입니다.

 

 

 

중학교 시절 동창인 종석과 경민이 다시 만났습니다.

경민은 기업체를 운영하다가 부도를 맞았고 그 고통에 우발적으로 아내를 살해한 상태이고 종석은 남의 글이나 대필해주는 작가입니다. 애인과 냉전중이고요.

경민이 종석을 만났습니다. 술자리로 말이지요.

학창시절 이야기를 나누다 기억 저편에 있던 친구의 이름을 부릅니다.

그의 이름은 김철이였습니다.

종석과 경민은 중학교 시절 왕따였습니다.

강민을 비롯한 그의 친구들은 2학년과 3학년 선배들의 보호속에 1학년에서는 짱으로 군림했고 경민과 종석은 이들의 희생량이 되었습니다. 부잣집인 경민은 울보가 되었고, 누나가 아끼던 게스 청바지를 입고나온 경민은 졸지에 호모가 되었습니다.

그 때 마다 철이는 이들을 도와주었고 석이를 비롯한 아이들을 신나게 혼내주었지요. 그리고 철이는 정학 그리고 퇴학을 당합니다.

하지만  이들 세 명의 운명도 기구한 운명이기만 합니다. 철이의 어머니는 단란주점에서 늙은 아가씨가 되어 일하고 있고 종석의 아버지는 이 단란주점의 사장님입니다.

철이는 멋지게 죽으면서 석이를 비롯한 아이들에게 복수하겠다고 이야기하지만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그것을 중단하기로 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존재를 밝히고 싶었던 철이는 중학교 옥상에서 자살 연기를 하기로 합니다.

하지만 이 사건에는 다른 숨은 이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철이에 대한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애니메이션이 과거 대부분을 차지했다면 어느 순간부터 우리나라의 애니메이션들은 성인을 위한 애니메이션들이 조금씩 활기를 띄기 시작했지요.

우리나라 성인 애니메이션의 시초는 어떤 것일까요? 1994년에 제작된 '불루시걸'은 한국영화에서는 보기 드문 성인 애니메이션의 첫발을 디딘 작품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주 보기좋게 흥행 실패를 했지요. 성인용 애니메이션은 시도는 하고 싶지만 쉽게 건들지 못하는 장르였습니다.

이후에도 '누들누드' 시리즈가 만들어지긴 했지만 일부 메니아들에게만 사랑받은 작품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외에도 욕설도 강했지만 액션도 강했던 '아치와 씨팍'이란 작품도 있었고 전체관람가이지만 어른들에게 어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현세 작가의 '아마게돈'도 있었습니다.

한국애니메이션 실력도 좋고 잘 만들었습니다. '심슨가족'이나 '은하철도 999'가 우리나라에서 하청으로 해서 만들었다고 말한 뽀로로 아빠, 최종일(아이코닉스)대표의 이야기는 그래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정말 장편으로 제작되는 것은 한계가 있는 것일까요?

 

 

 

서두가 좀 길었던 것 같습니다.

앞에 이 이야기를 한 것은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야기하려고 말한 것이죠.

연상호 감독은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지옥'이라는 단편 애니로 출발하였습니다. 이 단편이 중편으로 만들어지면서 그의 실력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죠.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그의 작품은 그동안 어린이들의 전유물로만 여겨지는 애니메이션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것 만큼은 분명합니다.

그의 단편 '지옥'만 해도 오히려 죽음을 알리는 이가 저승사자가 아닌 천사라는 점도 이색적이고 죽음을 피하기 위해 도망가는 한 남자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심지어 짧은 단편인데도 불구하고 사람의 살갖을 모두 벗겨내는 상당히 자극적인 장면이 단편에 등장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 편의 작품 이후 그나마 관객에게 다가가기 좋았던 작품은 만화가 3인의 작품을 한데 묶은 '셀마의 단백질 커피'입니다. 각기 다른 세 작가가 만들어낸 단편이 모두 이색적이지만 '사랑은 단백질'은 처절함의 절정입니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사연이 있듯 생물이 아닌, 혹은 생물이었지만 무생물로 변해버린 치킨에 관한 이야기를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심각한 이야기를 웃기게 표현한 것도 감독의 재능일지도 모르겠네요.

이렇게 세 편의 크고 작은 이야기를 만들어온 연상호 감독은 드디어 긴 장편을 만들기로 합니다. 학창시절 들어봤음직한 이야기... 하지만 그러나 쉽게 이야기할 수 없는 이야기죠.

 

 

 

 

 

그렇다면 '돼지의 왕'은 어떤 작품일까요?

연상호 감독과 같이 작업을 하던 최규석 씨와 같이 작업한 것은 물론이요. 목소리 출연도 같이 하고 있습니다. 그의 전작 중 하나인 '지옥'의 연장선상이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작품은 자극적입니다.

폭력으로 변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의기양양했던 자들도 폭력앞에서는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죠.

종석과 경민은 철이라는 안전한 울타리 덕분에 아이들에게 폭행이나 면박을 당해도 견딜 수 있는 희망이라도 있었지요. 하지만 그가 퇴학당하면서 그 울타리는 사라지게 됩니다. 전학생 찬영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당당함 속에 생활하려고 하였지만 강민 일당에게 결국 굴복하고 맙니다. 그리고서는 종석과 경민에게 철이와 같이 지내는 것은 좋지 않다고 충고아닌 충고를 하게 됩니다.

 

끝으로 갈 수록 이 세 사람의 미래는 암울합니다.

퇴학에 아버지를 잃은 슬픔에 철이는 세상을 포기한 듯 본드 같은 약품에 찌들어버리고 멋지게 죽어서 자신들을 괴롭힌자들을 복수하겠다는 말까지 하게 됩니다. 하지만 앞에서 이야기했던 것과 같이 어머니의 힘든 삶을 목격하고 나서 그는 자신만의 계획을 수정합니다.

하지만 새로운 삶을 망치려는자는 다름 아닌 종석이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물론 경민 역시 방관자였습니다. 자살 흉내를 옥상에서 시도하면 경민이 그걸 보고 마치 최초발견한 것처럼 발견하여 그 시도를 막아달라고 했던 것이죠. 하지만 그는 용기가 없어 그것을 수행하지 못하고 오히려 종석에 의해 어이없는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철이의 죽음을 멋진 퇴장으로 생각했던 종석의 잘못된 생각이 그것이었지요. 그들만의 돼지의 왕이 그렇게 맥없이 세상과 타협을 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 작품에는 많은 스타들이 목소리로 등장합니다.

양익준, 오정세 씨가 성인이 된 종석과 경민역을 맡았고 소년 역으로 등장한 세 인물에게는 재미있게도 여배우들을 기용하게 됩니다. 독립영화계에서 사랑받는 여신들인 김혜나, 박희본, 김꽃비 씨가 그 주인공들이죠.

이에 대해 연상호 감독은 이야기합니다. 순수한 어린시절 선한 모습들의 인물을 나타내기 위해 여성 배우들을 기용한 것도 있으며 보통 소년 역할에 여성 성우를 기용한다는 점을 착안했다고 합니다. 반대로 선과 악을 분명히 선을 긋기 위해 악한 역할에는 성인 배우들이 목소리 출연을 했다는 것이죠.

 

여기서 상당히 재미있는 점이 있습니다.

악역 삼인방을 연기한 사람들인데요, 강민, 정희, 석응 역을 맡은 배우들인데요. '웃찾사'와 '코미디 빅리그'를 통해 사랑받고 있는 개그맨인 조영빈, 한현민, 이재형 씨가 이 작품에 투입된 것이지요. 정말 그 개그맨들의 목소리가 맞는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걸쭉한 목소리로 욕설을 날리는 것이 인상적이기도 합니다.

아울러 더 재미있는 사실은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 익숙한 조영각 씨의 동생이 바로 조형빈 씨라는 것이고 두 형제 모두 이 작품에서 목소리 출연으로 등장했다는 것입니다. 이외에도 경순 감독, 영화평론가 허지웅 씨도 등장하여 자신만의 개성을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돼지의 왕'은 최근 개봉해서 많은 찬사를 받은 '소중한 날의 꿈'과 '마당을 나온 암탉'에 이어 올해 주목받는(혹은 주목받을) 세 개의 애니메이션 중에 그 마지막을 장식할 괜찮은 작품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동안 애니메이션이 아이들의 전유물이라고 여겼다면 생각을 바꾸고 이 작품을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생각해봤으면 좋겠네요. 당신에게 정말 그 학창시절은 아름다웠는지 말이지요.